나우누리, 천리안, 하이텔과 같은 PC통신이 처음 들어 왔을 때, 왜 그곳에서 새로운 해방감을 느낀 것일까? 나는 나인데 또 다른 내가 되어보는 것. 익명성으로 갖게 된 자유는 진솔한 이야기 하게 했다. 보여지고 싶은 모습과 보여져야만 하는 모습이 아니라 진짜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아주 깊이 했던 것 같다. 어떤 것도 남과 비교되지 않고 오직 손가락 끝에서 나와 키보드를 또각또각 눌러 전달되는 이야기를 통해서만 서로를 알아가는 경험은 공평하고 정정당당한 게임처럼 느껴졌다. 재단이 불가능한 주관적인 관점을 은근히 수치화하는 세상에서 벗어난 일탈이기도 했다. #고요한우연 은 내가 겪어온 그 시절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청춘들에 양은냄비와도 같은 이야기이다. 넘치지 않을뿐 뚜껑을 들추면 저마다에 온도로 끓고 있는. 우정을 구걸하지 않고 고고한 척 보이려 애쓴건 외로웠기 때문이다. 쎈 척 했던건 나약함을 감추기 위한 트릭이었다.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하고 자격지심과 열등감으로 칭칭 감겨있던 나를 달래기 위해 이제와서 청소년 문학을 읽는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다시 질풍노도에 시기로 돌아간다면 어중간한 위치에 머무르며 미지근한 온도를 유지하는 삶을 선택할 것이다. 있는듯 없는듯 될 수 있는한 고요하게. 이 소설 속 주인공 수현은 내가 바라던 가장 보편적인 고등학교 1학년에 모습을 갖추고 있다. 열심히 흔들리고 적당히 유연하며 때로는 맹렬하고 끈질기게 나는 누구이고 너는 누구인지 탐구에 시간을 차근차근 밟아가는 시절. 덧없는 것이라곤 하나 없이 매 순간 부셔지고 깨지며 견고히 빚어지는 청춘에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피가 뜨거워진다. 관찰자와 피관찰자의 관계를 넘나들며 외로움에 관점을 다양하게 다루는 #고요한우연 은 반짝여야만 빛이 나는 것은 아니라고 읊조린다 #문학동네 #호수네책 #책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