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병원 로비로 산책을 나갔다. 건강한 사람에게 그 정도 거리를 산책이라 하진 않겠지만 병상에서 보내는 기간이 점점 길어지는 아빠에겐 로비 외부에 마련된 쉼터까지 바람을 쐬러 나가는 것도 산책의 일종이었다. 아빠는 나와 내가 가져가는 간식을 기다렸고 나는 다행히 도시락 싸기를 좋아했다. 그날은 바람이 선선하여 챙겨간 간식 도시락을 쉼터에 펴놓고 먹기로 했고 썰어간 수박을 후룩후룩 소리를 내며 드시는 아빠를 넋 놓고 보고 있는 그때였다. 드릉드릉 소리를 내며 배달 오토바이 한대가 쉼터쪽으로 다가왔고 때마침 맞은편 병원 로비에서 부터 수액 거치대를 끌며 회색 비니를 쓴 소녀가 힘겹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녀의 혈관으로 모이는 여러개 수액의 무게만 해도 몇키로는 될거 같았다. 소녀는 배달음식을 받아들며 아빠가 도시락 통을 열 때 처럼 환하게 웃어보였다. 이윽고 도착한 소녀의 엄마도 소녀가 먹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마치 좀전의 나처럼. 작년 한해, 우리 가족은 입원실이 갖춰진_(옛날말로)큰 병원에 몹시도 자주 오가게 됐다. 병을 가소롭게 여기고 집에서 버티고 앓다가 병이 커질대로 커져서 병원에 갔다. 같은 방을 쓰는 환자가 몇번 바뀌는 동안에도 우린 병실을 떠날 수 없었다. 우리집 아이도 그랬고 아빠도 그랬는데, 불운한 상황에서도 우리에게 닥친 이 위기가 최악을 아닐거라 낙관했다. 의료파업 중에 우리에게 허락된 입원실과 의료진이 있어서 다행이었고, 마침 직장이 없어서 딸 아이도 아빠도 챙길 수 있어 다행이었다. 사려 깊은 직원분들 덕에 불안하지 않은 병원 생활을 할 수 있어 다행이었고, 날카로울 수 있는 상황에서도 서로를 배려하는 병동사람들이 다행이었다. 엄마는 오랜 간병에도 다인실을 고집했는데, 숨소리까지도 칸칸이 공유가 되니 그것 때문에 조심스럽긴 해도 쓸쓸하진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엄마는 내게 도시락을 가져올 때 간호사 선생님과 옆 침대 보호자들의 주전부리를 부탁했다. 다행인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니 다행인 것을 찾는 편이 나았다. 병실에 지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환자와 보호자의 감각은 뭉툭해져 갔지만 우리는 불안함을 안도감으로 바꾸는 긍정 사탕 한알씩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살살 녹여서 단맛을 본 후엔 다시 아껴두는 알사탕 처럼_아빠는 나를, 엄마는 간호사+복지사선생님을, 내 아이는 병원 도서관을. 더 정확히는 도서관에 꽂힌 많은 만화책을. 그리 여겼다. 타의적으로 꾸려진 병실 공동체 속에서 저마다의 희망 오아시스를 품고 살았다. #4x4의세계 의 가로세로도 그랬다. 이곳을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지 손꼽기 보다 병원이란 배경 속에서도 기쁨을 찾는 현명한 어린이들의 이야기는 바람이 되어 안긴다. 우리는 기대어 자생한다. 삶에서 만큼은 기대어 사는 것과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은 반대가 아니라 동의어다. 그곳이 어디든 각자 살고 함께 산다. 이 책은 이토록 당연한 이치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효능감과 효용감, 효율을 중시하며 담고 채우는 것이 익숙해져버린 우리에게 어린이 병동이란 제한적 공간이지만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삶의 모습에서 우리는 근본적이고 원초적 마음에 다가가 볼 수 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한 에피소드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에 감화된 우리는 책을 덮고 한동안 멈춰서 마음을 다듬었다 #조우리 #창비 #호수네책 #호수네책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