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천희란의 첫번째 장편소설『영의 기원』.
요즘 마음이 좀 무거워서 일까.... 무거운 책을 피하고 싶었는데...이 책... 무겁다. --; 하지만 내가 무겁다고 느낀 건 아마도 가장 우리 삶의 중심에 자리한 피할 수 없는 주제가 바로 죽음이기때문일지도 모른다. 천희란의 문체는 상당히 간결하고 짜임새가 있다. 군더더기가 없다. 그래서인지 무거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빠져들 듯 읽었다. 소설을 다 읽고 가장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작가의 말을 읽었을 때, 이 무거움의 깊이를 재차 확인했다. ---------------------------p.331 수없이 많은 것을 그토록 쉽게 버려왔는데 왜 이것만큼은 포기하지 못했는지, 줄곧 궁금했고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즐거웠던 적은 거의 없다. 매번 유서를 쓰는 심정이었다. 그럼에도 계속 쓰면서 여기까지 왔다.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건 없다고 한 소중한 친구는 말했다. 언제나 끝에 가보고 싶다고 말하지만 내심은 그 끝이 멀리있기를 바라기도 한다. 이 이야기들을 쓰기 위해 결코 가볍지 않은 대가를 치렀다. 그러므로 누군가 한 명쯤 오래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어도 좋겠다는 게 솔직한 바람이다.---------------------------작가의 말을 읽고나서 영화도 소설도 왠만해서는 같은 것을 두 번 보지 않는 내가 이 소설을 다시한번 읽었다. 매번 유서를 쓰는 심정으로 적었다는 작가의 말에 눈물이 났고 공감갔기 때문이다. 참... 처절하게 썼겠구나...여덟 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의 내용에는 각 장의 다른 죽음이 자리한다. <창백한 무영의 정원>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입장의 주인공은 불운의 끝없는 나락을 경험하는 사람같았다.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죽었다. 동생은 사랑해, 용서해줘라는 단 두 마디를 남기고 자살을 선택했고 어머니는 이런 상황을 못이기고 실종되었다. 동생의 자살로 인해 알게된 자살클럽에 모인 사람들. 그리고 주인공은 그들의 죽음에 동참한다. 여러 사람의 죽음을 바라보며 그 죽음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창백한 정원 속의 주인공이 인상적이다. 이 책의 제목이 된 <영의 기원> 속 '영'은 다중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숫자로 본다면 0은 無이거나 시작일 수 있고, 永으로 해석된다면 끝없이 이어지는 끝나지 않는 길고 긴 인생같기도 하다. 그리고 영은 그림자(影)이기도 하고 영은 혼(靈)이기도 하다. 작가는 시작을 숫자 0에 대한 풀이로 이어나간다. 소설 속 '영'은 한 인물의 이름이다. 그는 이 수많은 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아마도 그래서 이 책의 전체 제목으로 선택되었을 것 같다. <경멸>p209 그에게 예술은 짧았고 인생은 무한에 가까웠다. 그가 만든 무엇도 그보다 오래 살아남을 수는 없었을 터, 그는 언제나 현재에 속했고 그의 작품들은 늘 과거에 남겨졌다. 과거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과거에 사라진 것으로서. 남아있는 것보다는 불태워진 것이 많을 것이며, 앞으로도 마찬가지였다. 이 소설에 대한 서평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 죽음에 대한 무게의 깊이, 인간이면 누구나 언젠가는 맞이하게 될 죽음을 작가의 손을 통해 아프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죽음을 즐거워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것을 마지막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많은 인생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자신의 첫 장편소설을 장식한 작가 천희란의 다음 작품은 무엇일까?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살아계시다면 올해 100세가 되었을 문익환 목사. 그에 대한 평전이 장장 700페이지가 넘는 책으로 나왔다.
1918년 만주 북간도에서 태어난 문익환은 우리에게 늘 목사로 불리지만, 사실 시인, 번역가, 언어학자이다. 이런 그의 평전을 쓴 저자 김형수는 시인이자 논객으로 이미 14년 전에 문익환 평전을 썼는데, 이번에 다시 문익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내용을 보강하여 출간했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온 인생을... 그것도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 유신 등 수많은 격동을 세월을 속 한복판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온 인물에 대해 700여 페이지는 어쩌면 적은 분량인지도 모르겠다. 문익환의 아버지 문재린도 목사였다. 문익환의 아버지 문재린의 스승은 독립운동가이자 명동서숙과 명동교회를 창설하고 교육사업을 이끈 김약연이었다. 그러니 문재린이 목사가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솔직히 내 주변에 과도하게 종교성을 강조하는 인물들을 종종 보았기에 나는 어느 정도 기독교에 대해 긍정적이지않은 생각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물론 모든 종교를 존중한다. 하지만 사회 전반에 대해 합당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그 종교를 믿는 이들에게는 동조할 수 없다)우리나라의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지만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가장 핵심적으로 전개한 것이 교육사업이다. 때문에 근대 우리나라에서 신식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 많다. 문재린, 문익환도 그 중 한 명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들은 개인의 사리사욕이 아닌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자신의 생각과 배움을 전개했다. 내가 기억하는 문익환은 나의 학창시절이었던 1989년 방북사건으로 투옥되면서였다. 그때 어린 내 머리 속에는 "뭐지? 왜 나라에서 못가게 하는 북한에 저 할아버지는 굳이 간 거지?"였다.그리고 그 해 <천사의 선택>이라는 드라마에서 본 문익환의 아들 문성근이란 배우.(물론 이 배우를 처음 보았을 때는 문익환목사의 아들이란 것은 몰랐다)(근데 나 이 때 고3이었는데 드라마 참 열심히 봤네. ㅋㅋ) 지금은 중년 아니 노년을 향해 가는 문성근 아저씨. 내가 처음 문성근이란 배우를 알게된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저 배우 괜찮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이 드라마에 잠시 신애라씨가 나왔던 듯... ^^;)아무튼 그래서 이후 내 머리 속에 문익환은 문성근의 아버지로 자리했다. 그런데 『문익환 평전』을 읽으며 "아... 이 분이 이런 분이었구나... 하는 걸 알았다. 그동안 무지했던 내가 좀 부끄러웠다. -------------------------------------p.28문익환은 만주 북간도에서 초중고를 다닌 후 21세때 일본신학교로 유학을 갔다. 도쿄에서 알게된 전도사 박용길과 결혼했고 장춘에서 목회 활동을 하다가 1946년 월남하여 31세에 한신대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다. 1949년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에 유학을 갔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유엔군에 지원해 통역자로 정전회담에 참여했다. 한신대와 연세대에서 구약학을 강의했고 한빛교회 목사를 지냈다.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에 연루되었고 재야운동을 하면서 6차례의 옥살이를 하다 1994년 별세했다.----------------------------------------그의 이력을 보면 일제강점기에 신식교육을 받았고, 한국전쟁때 통역자로 일할 만큼 엘리트였다. 만일 본인이 보다 편안한 길을 가고자했다면 충분히 그럴만한 조건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평생을 험난한 길을 걸으며 살았다. 내가 생각하는 종교인 (신부님, 목사님, 스님)은 이런 모습이다. 최근 뉴스 매체에서 종종 접할 수 있는 개인의 사리사욕을 챙기는 종교인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문익환 목사에서 관심이 갔다. 종교인으로서가 아닌 인간 문익환에 대해. 문익환을 시를 쓰는 시인이었다. 북간도시절 동창생 윤동주가 젊은 시절부터 천재적인 시인이었던 것과는 달리 문익환은 오십대가 되어서 시를 썼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에는 젊은이의 고뇌가 아닌 중년의 나이까지 살아오며 몸으로 부딪히고 견디어낸 생활 속 고뇌가 담겨있다. ----------------------------p.366오늘로 3.1절 쉰일곱 돌을 맞으면서 1919년 3월 1일 전 세계에 올려퍼지던 민족의 함성, 자주독립을 부르짖던 그 아우성이 쟁쟁히 울려와서 이대로 앉아 있는 것은 구국선열들의 피를 땅에 묻어버리는 죄가 될 것같아 우리의 뜻을 모아 민주구국선언을 국내외에 선포하고자 한다. <3.1 민주구국선언서>----------------------------문익환의 글이다. 이 글을 쓴 시대에 나는 아기였지만 태어나 있었다. 그런데 마치 일제강점기의 글같다. 그럼 당시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같은 분위기였을까... 과거의 역사를 바라보는 후대인의 해석은 늘 혼란스럽다. 2018년 지금 이 순간의 시점으로 돌아와 생각하면 이번 주에 지방선거가 있었다. 정치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지만, 내 나라에.. 내가 살고 있는 이 순간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기에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고민고민하며 투표를 했다.개표방송을 보며 그 결과에 대해 흡족해 하는 사람들... 불만스러워 하는 사람들... 내 주변에서 모두 보았다. 그러나 내가 가장 씁쓸했던 것은 언제나 양분된 색상. 선거때가 되면 우리나라 지도를 놓고 당선된 정치가의 소속 정당 색상을 표시한다. 언제는 파란색과 오렌지색, 언제는 녹색, 언제는 빨강색, 언제는 노란색 등등... 내가 살아온 사십여년의 삶 속에서 정당의 색상은 무수히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를 매우고 있는 색상은 늘 2종류로 압축된다. 이번에는 파란색이 우세했고, 빨간색이 일부분을 차지했다. 나는 늘 다양성을 중요시여기고 검은색도 흰색도 아닌 회색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서 일까... 명확히 양분된 색상을 보며 느끼는 불편함. 그래서 정치는 내게 늘 불편한 존재로 남아있는지도...문익환 목사가 살아있다면 그는 지금의 모습에 대해 뭐라고 했을까? 그도 살아있었다면 누군가처럼 변했을까? 평생을 일관되게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일관되게 살았고, 현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 흐름은 또 다른 정권이 들어와 변할지도 모르지만.... 최근 그가 생전에 살았던 집에 <통일의 집>이 개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번 가봐야 겠다. 한 시대를 살았던 선인의 발자취를 돌아보기 위해...
이제까지 이렇게 서평을 늦게 쓴 적이 없는데... 정말 요즘은 정신이 없긴 없다.가볍고 귀여운 만화라서 읽기는 진작에 읽었는데 왠지 서평이 금새 써 지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물론 바빴지만, 지금의 내 상황에서 이 책이 크게 공감가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젊은 남녀의 오글오글 사랑이야기
솔직히 그림이 너무너무 귀여워서 금방 후다닥~ 읽었다. 그리고 아... 나도 예전에 이렇게 오글거리는 사랑을 했었지... 하는 마치 여든 먹은 할머니같은 생각을... --;만화는 주로 4컷 만화 형식을 이루고 있다. 한쌍의 바퀴벌레같은 연인, 투투와 와와. 내 예상에 이 남자주인공은 아무래도 중국 남방지역사람이 아닐까...싶다. 전적으로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내가 중국에서 살았을 때 그리고 이제까지 겪어 본 중국친구들을 생각해 보면 중국은 남방과 북방의 남자들 성향이 너무 다르다. 북방은 우리나라 경상도 남자같은 무뚝뚝하고 천상 남자!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은 반면, 남방은 완전 자상~자상~ 상냥~ 상냥~ 러블리~한 남성들이 많았다. 그래서 친구들은 종종 중국 남자를 사귀려면 남방 사람들을 사귀라고 했다. 그래야 일신이 편하다나? ㅋㅋ이 책을 읽으며 지금은 그 이름도 잊어버린 상하이에서 알던 친구의 남자친구가 생각났다. 전형적인 상하이 남자였던 그는 자신의 여친을 위해 티라미수 케익도 만들어 오고, 집안 청소는 늘 도맡아했으며, 기분이 내키는 날에는 커다란 꽃다발을 그녀의 근무처로 보냈다. 아마도 이 책의 남주인공 역시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듯~ ^^아쉽게도 내가 알던 그 상하이 친구들은 몇년 간 뜨겁게 사랑했지만, 헤어졌고 소문에 의하면 지금은 각자 다른 상대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고 한다. 다행히 이 책의 주인공 투투와 와와는 알콩달콩 자신들의 사랑을 예쁘게 잘 이어가서 결혼에 골인했고 지금도 알콩달콩 살고 있단다. ^^잠시 사랑에 지친 커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책으로 추천!
제목을 보고 당연히 위로를 위한 책이라 생각했다. 『사랑이 끝나고 나는 더 좋아졌다』과연 더 좋아졌을까? 이 책을 손에 들자마자 나는 그런 의구심이 들었다.
p.24"우리 조금 거리를 두자. 네가 싫어진 건 아니야."네가 그 말을 뱉은 순간부터 우리 사이는 5억 광년쯤 멀어졌다. ---------------그래 맞다. 정말 5억광년쯤 멀어진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말을 던진 사람도 받은 사람도 그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상처가 있었을지... 나 역시 경험으로 안다. 이 책은 헤어짐에 대한 남녀의 차이도 섬세하게 표현했다. 문득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이름으로는 일본인같은데 '디제이?' 좀 일반적인 이름이 아니다. 일본 사이트에서 저자에 대해 찾아보니 "정체를 밝히지않는 주부 트위터리안, 블로거."라고 나와있다. 그런데 자신의 트위터와 블로그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연애상담을 하고 그 가운데는 유명인도 있단다. 팔로워가 40만명을 육박하는 sns상의 상담사. 이 정도면 전문가 포스가 물씬 풍긴다. 저자의 블로그: djaoi.blog.jp
이 저자가 쓴 책을 찾아 한국어판으로 번역 출간한 출판사도 참 대단하다~ ^^ 원제는 想いよ、逝きなさい.직역하면 "기억(추억)이여, 떠나거라."뭐 이쯤되려나? 한국어 번역본 제목이 상당히 은유적이다. p. 109사귀었던 남자의 "친구로 돌아가자"는 말에서 친구는 친구 이상의 관계를 뜻합니다. 반면에 여자가 그런 말을 했다면 친구 이하의 관계로 지내자는 뜻이죠. 남자에게 헤어진 여자란 언제나 친구 이상의 존재이며 여자에게 헤어진 남자는 친구 이하의 존재입니다. 남자에게 헤어진 여자는 잊고 싶지 않은 존재이며 여자에게 헤어진 남자는 잊고 싶은 존재예요. 이는 성별에 따른 감수겅의 차이에서 생겨난 성향입니다. ------------------------이 말이 모두 맞는 것은 아닌 듯하다. 여자에게 헤어진 남자가 반드시 잊고 싶은 존재일까? 음... 남자도 정말 지긋지긋하게 헤어진 여자라면 잊고 싶지 않은 존재일까? 헤어짐에 대한 기억과 감정은 그 헤어짐의 방식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이십대에는 몰라도 사십대를 살고 있는 내게 헤어짐에 대한 감정은 그렇다. 이 책은 작가에게 헤어짐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에 대한 상담과 그에 대한 적절한 답변으로 이루어져있다. 마치 어릴 적 여성잡지에서 보았던 "고민상담 코너"같은 책이다. 물론 예전 고민상담코너처럼 신파적인 내용은 아니다. p.205사랑의 가장 중요한 스킬은 사랑하는 법도 사랑받는 법도 아닌 이별하는 법입니다. 이별을 통해 사랑하는 법과 사랑받는 법을 배우고 더 나은 사랑을 위해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이 말은 완전 동의. 살아오면서 사랑도 하고 사랑도 받고 이별도 해 봤다. 뭐 이 나이 먹어 당연한 일이겠지만...이별은 어떤 이별이든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이별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세상에는 90%이상이고 이별 또한 그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사랑을 할 때 기쁨이 나의 몫이었듯 이별을 했을 때 아픔도 오롯이 나의 몫이다. p.183상대에게 지나치게 기대는 사람의 특징. 같은 음식을 너무 자주 먹는다. 마음에 드는 음식은 질릴 때까지 되풀이해서 듣는다.계획없이 돈을 쓴다.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한다. 일은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마지못해 한다."귀찮아". "졸려", "지겨워"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윗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서툴다.편한 사람에게는 말이 거칠다.낯가림이 심하다.------------------------------자신에게 해당되는 항목이 많다면 그 사람에게 너무 의존하고 있는 거란다.음... 그런데 난 의존과 관계없이 사랑을 할 때도 이별을 할 때도 사랑을 안할 때도 저기 적힌 몇가지를 늘 한다. 이건 뭐지? --; 요즘 사람들이 참 많이 힘들구나... 하는 건 서점에 놓인 책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수많은 책들이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말들로 가득하다. 위로의 말이 늘어난다는 건, 상처받은 이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신은 사랑이 끝나고 더 좋아졌나요? 솔직히 전 아직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사랑이 끝나고 그것을 극복해 가면서 제 자신이 성숙해 지는 건 맞는 거 같아요. 평생 아이처럼 있을 수 없다면 어느 정도는 성숙해 져야겠지요. 혼자 힘들어하지 말고 한발짝 세상 밖으로 나간다면의외로 내가 했던 사랑보다 이별보다 더 흥미로운 일들이 많더라구요. 적어도 전 그랬습니다. ^^
편혜영의 이번 소설은 국내의 여러 사회상을 적절히 버무려 놓은 것 같다. 그리고 그 사회 속 사건의 중심은 한 병원이다. 소설의 배경이 된 이인시는 한때는 조선소의 번창으로 경제가 번창했으나, 이제는 시의 중심을 이루고 있던 사업의 쇄락으로 전성기와는 달리 경제가 침체되니 인구가 줄고... 그러면서 병원 경영도 난항을 겪고 있다. 굳이 실명을 거론하지 않아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강 어느 곳을 배경으로 설정했는지 알듯하다.
병원은 아픈 사람이 살기위해 들어가지가지면 사람들은 살아서 나오기도 하고, 죽어서 나오기도 한다. 세상에 가장 많은 탄생과 죽음을 마주하는 곳 병원. 이 소설은 탄생보다는 죽음 쪽에 코드를 맞추고 있다. 내 자신이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다보니 최근 주변에는 부모님들을 요양원에 모시는 분들이 많다. 자녀들이 있는데 부모를 요양원에 모시는 일은 뭔가 자녀들이 부모에게 효심이 적어서라는 예전의 인식과는 달리 요즘에는 부모님을 요양원에 모시고 자주 찾아뵙는 경우가 보편화 되었다. 모두 바쁘게 사는 현대사회의 탓도 있지만, 요양병원에는 아픈 환자를 위한 시설들이 집보다 훨씬 잘 갖추어져 있으니 환자를 치료할 때도 보다 빨리 대처할 수 있고, 부모인 당사자들도 집보다 요양원을 선호하는 일이 많아졌다. 물론 그로 인한 부작용도 있다. 세상 모든 분야에 빛과 어둠이 있듯이. 소설의 배경이 된 이인시의 선도병원은 그동안 이런 환자들을 적절히 수용하여 비교적 잘 운영해 왔다. 그리고 그 운영의 중심에는 이석이란 인물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찌어찌 간호조무사 자격을 취득하여 병원에 취업하게 된 이석. 부지런함과 영리함, 그리고 빠른 눈치. 거기다 이인시의 경제발전이 이루어진 적절한 시기가 맞물려 이석은 의사도 간호사도 아니며 내노라하는 학벌을 가진 경영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최근 내 주변에서 이석과 같은 배경의 인물을 만난 적이 있다. 그의 행동이 이석과 같다는 뜻이 아니라, 그의 사회생활 배경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런 분들은 다른 이들에 비해 치열하고 열정적이며 목표를 향한 한 길만을 바라본다. 이러한 면 또한 어느 상황에서나 장단점이 있다.주인공 무주는 그런 선도병원에 이직해 가면서 이석을 만났다. 병원사람들은 이석을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그의 성실함을 인정했고, 병원에서 그의 존재를 인식했다. 무주는 성실하다고 믿었던 이석이 벌인 병원내 비리를 보았다. 그리고 이를 둘러싼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병원내에 퍼져갔으며 어느 새 무주는 그 중심에 있게 된다. 경제가 쇄락한 도시의 모습, 그리고 현대인들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늘어나는 요양병원. 병원의 요양시설 증가. 증가되는 과정 안에 담긴 어두운 그늘. 이 모든 것이 바로 우리들 삶 속에 자리한 그대로의 모습이다. 작가는 그런 우리들의 현실 삶 속에 독자를 데려 옴으로써 현재 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해 준다.아마도 이미 노년인 나의 부모, 그리고 언젠가는 노년이 된 나도 이런 시설을 찾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더 소설에 공감된 같다. 소설의 마지막에 작가는 이 작품을 쓰면서 철스 그래버의『그 남자, 좋은 간호사』라는 책을 참고했다고 적었는데 이 책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