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계시다면 올해 100세가 되었을 문익환 목사. 그에 대한 평전이 장장 700페이지가 넘는 책으로 나왔다.
1918년 만주 북간도에서 태어난 문익환은 우리에게 늘 목사로 불리지만, 사실 시인, 번역가, 언어학자이다. 이런 그의 평전을 쓴 저자 김형수는 시인이자 논객으로 이미 14년 전에 문익환 평전을 썼는데, 이번에 다시 문익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내용을 보강하여 출간했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온 인생을... 그것도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 유신 등 수많은 격동을 세월을 속 한복판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온 인물에 대해 700여 페이지는 어쩌면 적은 분량인지도 모르겠다. 문익환의 아버지 문재린도 목사였다. 문익환의 아버지 문재린의 스승은 독립운동가이자 명동서숙과 명동교회를 창설하고 교육사업을 이끈 김약연이었다. 그러니 문재린이 목사가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솔직히 내 주변에 과도하게 종교성을 강조하는 인물들을 종종 보았기에 나는 어느 정도 기독교에 대해 긍정적이지않은 생각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물론 모든 종교를 존중한다. 하지만 사회 전반에 대해 합당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그 종교를 믿는 이들에게는 동조할 수 없다)우리나라의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지만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가장 핵심적으로 전개한 것이 교육사업이다. 때문에 근대 우리나라에서 신식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 많다. 문재린, 문익환도 그 중 한 명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들은 개인의 사리사욕이 아닌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자신의 생각과 배움을 전개했다. 내가 기억하는 문익환은 나의 학창시절이었던 1989년 방북사건으로 투옥되면서였다. 그때 어린 내 머리 속에는 "뭐지? 왜 나라에서 못가게 하는 북한에 저 할아버지는 굳이 간 거지?"였다.그리고 그 해 <천사의 선택>이라는 드라마에서 본 문익환의 아들 문성근이란 배우.(물론 이 배우를 처음 보았을 때는 문익환목사의 아들이란 것은 몰랐다)(근데 나 이 때 고3이었는데 드라마 참 열심히 봤네. ㅋㅋ) 지금은 중년 아니 노년을 향해 가는 문성근 아저씨. 내가 처음 문성근이란 배우를 알게된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저 배우 괜찮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이 드라마에 잠시 신애라씨가 나왔던 듯... ^^;)아무튼 그래서 이후 내 머리 속에 문익환은 문성근의 아버지로 자리했다. 그런데 『문익환 평전』을 읽으며 "아... 이 분이 이런 분이었구나... 하는 걸 알았다. 그동안 무지했던 내가 좀 부끄러웠다. -------------------------------------p.28문익환은 만주 북간도에서 초중고를 다닌 후 21세때 일본신학교로 유학을 갔다. 도쿄에서 알게된 전도사 박용길과 결혼했고 장춘에서 목회 활동을 하다가 1946년 월남하여 31세에 한신대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다. 1949년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에 유학을 갔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유엔군에 지원해 통역자로 정전회담에 참여했다. 한신대와 연세대에서 구약학을 강의했고 한빛교회 목사를 지냈다.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에 연루되었고 재야운동을 하면서 6차례의 옥살이를 하다 1994년 별세했다.----------------------------------------그의 이력을 보면 일제강점기에 신식교육을 받았고, 한국전쟁때 통역자로 일할 만큼 엘리트였다. 만일 본인이 보다 편안한 길을 가고자했다면 충분히 그럴만한 조건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평생을 험난한 길을 걸으며 살았다. 내가 생각하는 종교인 (신부님, 목사님, 스님)은 이런 모습이다. 최근 뉴스 매체에서 종종 접할 수 있는 개인의 사리사욕을 챙기는 종교인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문익환 목사에서 관심이 갔다. 종교인으로서가 아닌 인간 문익환에 대해. 문익환을 시를 쓰는 시인이었다. 북간도시절 동창생 윤동주가 젊은 시절부터 천재적인 시인이었던 것과는 달리 문익환은 오십대가 되어서 시를 썼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에는 젊은이의 고뇌가 아닌 중년의 나이까지 살아오며 몸으로 부딪히고 견디어낸 생활 속 고뇌가 담겨있다. ----------------------------p.366오늘로 3.1절 쉰일곱 돌을 맞으면서 1919년 3월 1일 전 세계에 올려퍼지던 민족의 함성, 자주독립을 부르짖던 그 아우성이 쟁쟁히 울려와서 이대로 앉아 있는 것은 구국선열들의 피를 땅에 묻어버리는 죄가 될 것같아 우리의 뜻을 모아 민주구국선언을 국내외에 선포하고자 한다. <3.1 민주구국선언서>----------------------------문익환의 글이다. 이 글을 쓴 시대에 나는 아기였지만 태어나 있었다. 그런데 마치 일제강점기의 글같다. 그럼 당시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같은 분위기였을까... 과거의 역사를 바라보는 후대인의 해석은 늘 혼란스럽다. 2018년 지금 이 순간의 시점으로 돌아와 생각하면 이번 주에 지방선거가 있었다. 정치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지만, 내 나라에.. 내가 살고 있는 이 순간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기에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고민고민하며 투표를 했다.개표방송을 보며 그 결과에 대해 흡족해 하는 사람들... 불만스러워 하는 사람들... 내 주변에서 모두 보았다. 그러나 내가 가장 씁쓸했던 것은 언제나 양분된 색상. 선거때가 되면 우리나라 지도를 놓고 당선된 정치가의 소속 정당 색상을 표시한다. 언제는 파란색과 오렌지색, 언제는 녹색, 언제는 빨강색, 언제는 노란색 등등... 내가 살아온 사십여년의 삶 속에서 정당의 색상은 무수히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를 매우고 있는 색상은 늘 2종류로 압축된다. 이번에는 파란색이 우세했고, 빨간색이 일부분을 차지했다. 나는 늘 다양성을 중요시여기고 검은색도 흰색도 아닌 회색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서 일까... 명확히 양분된 색상을 보며 느끼는 불편함. 그래서 정치는 내게 늘 불편한 존재로 남아있는지도...문익환 목사가 살아있다면 그는 지금의 모습에 대해 뭐라고 했을까? 그도 살아있었다면 누군가처럼 변했을까? 평생을 일관되게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일관되게 살았고, 현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 흐름은 또 다른 정권이 들어와 변할지도 모르지만.... 최근 그가 생전에 살았던 집에 <통일의 집>이 개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번 가봐야 겠다. 한 시대를 살았던 선인의 발자취를 돌아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