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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키메 ㅣ 스토리콜렉터 26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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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소설을 읽으면서 진짜 무섭다고 느낀 건 처음이었다.

평소 공포나 미스터리,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공포영화는 잘 보지 못한다.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소리나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들이 무섭기 때문이다. 반면 책은 다르다. 글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장면을 그려내는 건 나 자신이기에, 어느 정도는 상상의 수위를 조절할 수 있다.

그런데 《노조키메》는 달랐다.

처음에는 작가가 실제로 겪은 이야기인지, 허구로 만들어 낸 이야기인지 헷갈렸다. 정말 있었던 일을 들려주는 듯한 서술에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생겼다. 과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허구일까.

첫 번째 이야기인 〈엿보는 저택의 괴이〉는 모든 일이 잘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마지막에 다시 한번 소름을 돋게 했다. 끝난 줄 알았던 일이 사실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 그 존재에게서 벗어날 방법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섬뜩했다.

이어지는 이야기에서는 앞서 읽었던 내용과 연결되는 고리들이 하나둘 드러났다.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맞춰지는 듯한 재미에 다음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졌다. 마지막에는 그 존재의 정체에 대한 나름의 추측이 제시되는데, 인간이 저지른 끔찍한 일에 놀라면서도 그것만으로 모든 기이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남았다.

어쩌면 인간이 저지른 일과 초자연적인 현상이 함께 존재했던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 이 책이 무서웠던 건 읽는 순간보다 책을 덮은 뒤였다.

나는 보통 육퇴 후 밤에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주인공이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을 나 역시 함께 느끼며 이야기에 몰입했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나서도 그 감정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앉아 있는 곳이 아닌, 불 꺼진 다른 공간이 무섭게 느껴졌다. 책을 덮고 불을 끈 뒤 방으로 들어갈 때면 어두운 거실에 누군가 있는 것만 같았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공간인데도 말이다.

책 속 이야기가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그동안 공포소설은 내가 상상하는 만큼만 무서웠다. 하지만 《노조키메》는 책을 덮은 뒤에도 그 공포가 내 의지대로 사라지지 않았다. 소설 속 인물들이 느꼈던 두려움이 어느새 나의 두려움이 되어 있었다.

책의 내용 자체보다 책을 덮은 뒤에 남겨진 감정이 더 무서웠다.

그럼에도 정말 재미있었다. 무서워하면서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고,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는 미쓰다 신조의 다른 작품도 읽고 싶어졌다.

공포소설을 좋아하지만 이렇게까지 무섭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아마 《노조키메》는 내가 읽은 공포소설 중에서도 오래 기억에 남을 작품이 될 것 같다.

이야기는 끝났지만, 어쩐지 그 존재는 아직 어딘가에서 나를 엿보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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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 2만 리 1 ㅣ 비룡소 클래식 25
쥘 베른 지음, 드 뇌빌 외 그림, 윤진 옮김 / 비룡소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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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불명의 괴물이 사실은 잠수함이었다는 반전부터, 인간 세상과 인연을 끊고 바닷속에서 살아가는 네모 선장의 모습까지. 해저 2만리는 처음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였다.

특히 노틸러스호 안에서의 생활이 흥미로웠다. 해초로 만든 향수, 고래수염으로 만든 펜, 먹물로 만든 잉크처럼 바다에서 얻은 것들로 일상을 꾸려간다는 발상이 신선했다.

물론 모든 부분이 흥미진진했던 것은 아니다. 네모 선장이 노틸러스호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마치 과학책을 읽는 듯했다. 세세한 설명이 이어지다 보니 조금 지루하기도 했다.

그런데 책을 읽어나갈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이토록 방대한 바다에 관한 지식을 얻기 위해 작가는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을까. 그리고 그 지식을 하나의 모험소설로 풀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까.

단순히 지식이 풍부하다는 사실보다, 그 지식을 바탕으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냈다는 점이 놀라웠다. 과학적 지식과 문학적 상상력이 만나 만들어 낸 노틸러스호의 세계는 실제로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도 바다를 묘사하는 문장들은 무척 아름다웠다.

✏️ 태양의 애무를 받으며 깨어나고 있습니다.

이 문장을 읽었을 때는 잠시 책장을 넘기는 것을 멈췄다. 바닷속 생명들이 햇빛을 받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을 이렇게 낭만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니.

과학적 지식으로 바다를 생생하게 그려내면서도, 그 안에서 시적인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한편, 노틸러스호의 세계가 구체적으로 그려질수록 네모 선장은 오히려 더욱 미스터리한 인물로 느껴졌다.

그는 어느 순간 홀연히 나타났다가 다시 모습을 감춘다. 노틸러스호의 주인이면서도 정작 그 안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아로낙스 박사가 이 모든 것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네모 선장이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라 박사의 꿈속에 나타난 허상의 인물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노틸러스호는 실제로 존재할 것만큼 생생한데, 정작 그 안의 네모 선장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이 묘했다.

1권을 덮고 나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처음에는 이야기의 반전에 놀랐고, 노틸러스호의 생활에 호기심을 느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이 모든 세계를 만들어 낸 작가가 대단하고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동안 지루하게 느껴졌던 설명들조차 돌이켜 보면 이 세계를 생생하게 만드는 데 필요한 과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네모 선장의 정체도, 그가 인간 세상을 떠난 이유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더욱 궁금하다.

이토록 현실적인 바닷속 세계에서, 이토록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네모 선장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2권을 빨리 펼쳐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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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랜도 ㅣ 머묾 세계문학 자아 3부작
버지니아 울프 지음, 정해영 옮김 / 머묾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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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잡기도 어려웠고, 몇 번이나 문장을 되짚으며 읽었다.

그러다 남성이었던 올랜도가 여성이 되는 장면에 도착했다.

놀라웠던 것은 성별이 바뀌었다는 사실보다 올랜도의 반응이었다. 너무나 무덤덤했다. 이렇게 큰 변화가 일어났는데도 올랜도는 자신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억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책의 표지가 다시 보였다. 처음에는 시대적 배경에 맞는 옷이 있는 표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성으로 변한 올랜도를 만난 뒤 다시 보니 얼굴은 보이지 않고 남성과 여성임을 드러내는 옷만 선명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겉모습이 달라진다고 그 안의 사람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올랜도는 정말 많이 변한다. 남성에서 여성이 되고, 수백 년의 시간을 살아간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도 달라지고 올랜도의 생각과 행동 역시 그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그 모든 변화 속에서도 올랜도는 계속 올랜도였다.

우리는 흔히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대부분 좋지 않은 의미로 사용하는 말이지만, 올랜도를 읽으며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게 됐다.

사람은 분명 변한다.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 성격이 달라지기도 하고, 관계를 겪으며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지기도 한다. 나 역시 어릴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똑같지는 않다. 어릴 때는 지금처럼 다른 사람의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살아가면서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고 사회의 영향을 받으며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렇게 변했다고 해서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사람인 것은 아니다.

올랜도 역시 성별도, 시대도, 관계도 계속 달라지지만 기억은 이어지고, 오랫동안 문학과 글쓰기를 향한 마음을 놓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생각, 행동은 변하면서도 그 모든 시간을 관통하는 무언가는 계속 남아 있었다.

어쩌면 사람에게는 쉽게 바뀌지 않는 본질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변한다는 것은 이전의 내가 사라지고 새로운 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나를 품은 채 새로운 모습들이 계속 더해지는 과정일 수도 있다.

나는 계속 변한다.
그래도 나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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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ㅣ 머묾 세계문학 자아 3부작
메리 셸리 지음, 이미애 옮김 / 머묾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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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프랑켄슈타인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빅터가 자신이 만들어낸 존재에 너무 무책임하다는 것이었다. 생명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그토록 집착했으면서, 정작 그 모습에 충격을 받고 도망쳐버린다. 빅터는 괴물의 몸을 만들었지만, 그 존재가 어떻게 살아갈지는 외면했다.

그런데 책을 읽을수록 ‘괴물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괴물은 처음부터 자신이 흉측하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사람들을 관찰하며 그들과 자신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비로소 자신이 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절망하는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기준조차 다른 사람들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괴물은 처음부터 악한 존재도 아니었다. 타인에게 사랑받기를 바랐고 자신에게도 친구가 생길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거절과 고독 속에서 결국 복수와 범죄를 선택한다. 그렇다고 괴물이 저지른 행동의 책임까지 모두 빅터와 사회에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마지막 선택은 결국 자신의 것이었으니까.

🤔 나는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지금의 내 성격을 생각하면 나는 사회적인 영향을 꽤 많이 받으며 만들어진 사람인 것 같다. 특히 다른 사람의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 그렇다. 어릴 때의 나는 지금처럼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살아가며 여러 관계를 경험하고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면서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진 게 아닐까.

괴물이 타인의 모습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듯, 나 역시 어느 순간부터 타인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법을 배운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라는 존재는 태어날 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사회의 기준, 내가 겪은 경험과 그 안에서 내린 선택들이 계속 쌓이며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빅터가 만든 것은 괴물의 육체였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괴물’을 만든 것은 그 이후의 수많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괴물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나로 태어났지만, 지금의 나는 살아오며 만난 수많은 것들로 만들어졌다. 지금의 나는 무엇으로 만들어졌으며 앞으로의 나는 무엇으로 만들어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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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이지수 옮김 / 디플롯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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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 가와카미히로미

처음에는 그저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낯선 세계와 인간의 모습들이 이어지면서 이 이야기가 어디까지 갈지 궁금해서 계속 읽었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내게 남은 건 의외로 거대한 미래나 인류의 운명보다는 한 사람이 살아가는 평범한 하루와 기억, 그리고 누군가가 남기고 간 기척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인류는 반드시 존속해야 하는가?’였다.

내 대답은 ‘아니오’에 가깝다.

인간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인류의 생존과 존속을 선한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그것 역시 인간의 관점일 뿐이다. 지구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인간이라는 종은 오히려 꽤 거슬리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종이 생겨났다가 사라졌듯 인간 역시 언젠가 사라질 수 있다.

생명은 인간이 없어도 계속될 것이다. 생명은 신비롭고, 자연은 또 다른 생명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사라지는 것에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기술을 이용해 인류를 존속시킬 수 있다고 했을 때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그때 살아남는 ‘인류’란 도대체 누구일까. 정말 모든 인간을 구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결국 돈과 권력을 가진 일부만 살아남게 되는 것인지. 그렇다면 그것을 과연 ‘인류의 존속’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런데 재미있게도 책을 읽으며 내가 사진으로 남긴 문장들은 그런 거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기억하고 잊는 것.
저마다 다른 평범한 하루.
사람마다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

나는 인간이라는 종이 영원히 존재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인간의 평범한 하루에는 분명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하루의 주체가 ‘나’이기 때문이다.

똑같이 평범해 보이는 하루도 내가 무엇을 보고, 누구와 함께하고, 어떤 감정을 느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하루가 된다. 즐거운 시간은 짧게 느껴지고 무료한 시간은 길게 느껴지는 것처럼 시간조차 그것을 살아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내가 사라진다면 나에게 있었던 그 하루의 의미 역시 함께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나와 함께했던 사람들에게는 내가 남는다. 함께했던 모든 일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기억은 희미해지고 어떤 일들은 완전히 잊혀버리더라도, 그 사람의 삶 어딘가에는 내가 존재했던 기척이 남는다.

인간은 영원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
그래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경험한 평범한 하루들은 나에게 의미가 있고, 누군가와 함께했던 시간은 그 사람에게 조금씩 남는다.

어쩌면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영원히 존재하는 일이 아니라,
존재했던 기척을 남기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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