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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이지수 옮김 / 디플롯 / 2026년 7월
평점 :
📖 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 가와카미히로미
처음에는 그저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낯선 세계와 인간의 모습들이 이어지면서 이 이야기가 어디까지 갈지 궁금해서 계속 읽었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내게 남은 건 의외로 거대한 미래나 인류의 운명보다는 한 사람이 살아가는 평범한 하루와 기억, 그리고 누군가가 남기고 간 기척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인류는 반드시 존속해야 하는가?’였다.
내 대답은 ‘아니오’에 가깝다.
인간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인류의 생존과 존속을 선한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그것 역시 인간의 관점일 뿐이다. 지구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인간이라는 종은 오히려 꽤 거슬리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종이 생겨났다가 사라졌듯 인간 역시 언젠가 사라질 수 있다.
생명은 인간이 없어도 계속될 것이다. 생명은 신비롭고, 자연은 또 다른 생명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사라지는 것에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기술을 이용해 인류를 존속시킬 수 있다고 했을 때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그때 살아남는 ‘인류’란 도대체 누구일까. 정말 모든 인간을 구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결국 돈과 권력을 가진 일부만 살아남게 되는 것인지. 그렇다면 그것을 과연 ‘인류의 존속’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런데 재미있게도 책을 읽으며 내가 사진으로 남긴 문장들은 그런 거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기억하고 잊는 것.
저마다 다른 평범한 하루.
사람마다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
나는 인간이라는 종이 영원히 존재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인간의 평범한 하루에는 분명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하루의 주체가 ‘나’이기 때문이다.
똑같이 평범해 보이는 하루도 내가 무엇을 보고, 누구와 함께하고, 어떤 감정을 느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하루가 된다. 즐거운 시간은 짧게 느껴지고 무료한 시간은 길게 느껴지는 것처럼 시간조차 그것을 살아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내가 사라진다면 나에게 있었던 그 하루의 의미 역시 함께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나와 함께했던 사람들에게는 내가 남는다. 함께했던 모든 일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기억은 희미해지고 어떤 일들은 완전히 잊혀버리더라도, 그 사람의 삶 어딘가에는 내가 존재했던 기척이 남는다.
인간은 영원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
그래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경험한 평범한 하루들은 나에게 의미가 있고, 누군가와 함께했던 시간은 그 사람에게 조금씩 남는다.
어쩌면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영원히 존재하는 일이 아니라,
존재했던 기척을 남기는 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