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조용하고 불행은 요란하다
윤설 지음 / 마음의숲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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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블룸을 통해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_ 선물하기 좋은 에세이

_여행 가서 보기 좋은 책



처음 책을 본 순간, 이 책을 들고 기차나 전철을 타고 여행을 가는 상상을 해봤다. 제목부터 마음을 다독여 줄 것 같고, 표지도 감성적이라 온 마음을 다 빼앗겼다. 서평 책이 아니었다면, 여행 가서 더 여유롭게 읽었겠지만, 나는 가까운 도서관으로 가서 책을 읽으며 들썩이던 나의 마음에 조용히 글을 입혔다.


윤설 작가님은 낮에는 회사원, 밤에는 작가로 열심히 살아가는 분이셨다. 작가 소개란에서 '삶과 사람을 쉽게 사랑한다고 말하진 못하지만, 결국 오래 붙잡고 쓰게 되는 것은 늘 삶을 향한 질문과 사람의 마음이다.'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책의 서두에 들어가기도 전에 나의 마음을 꿰뚫는 것 같았다.


행복은 조용해서, 곁에 있을 때는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다.

반면 불행은 대체로 요란하다. (...)

행복은 어느새 지나가 버리는데 불행은 무심코 지나칠 수가 없다. 그래서 산다는 건 행복의 언어를 수집해 가는 일처럼 느껴진다. p.6


행복의 언어를 수집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한다. 행복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지만, 늘 금세 사라지고 만다. 그만큼 조용하기 때문이다. 불행이 요란하다면, 우리는 조용한 행복의 편에 서야 더 기억해 줘야 할 것이다.


책에는 삶의 여러 순간들이 담겨있다. 누구나 한 번쯤 겪어 본 모습이지만, 그 속에서 발견한 통찰을 통해 지혜로 이끈다.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온전히 나로서 서는 이야기, 행복과 불행을 대하는 태도 등 많은 이야기 속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 >


_ 행복에 이유를 달아두는 일


몰두할 일이 없을 땐 생각할 시간이 많아서 좋았고, 이야기 나눌 친구가 없을 땐 책 읽을 시간이 많아서 좋았다. 중요한 건 어떻게 바라보느냐일 것이다. p.18


행복에 이유를 달아두는 일. 이는 훗날 어둠을 마주했을 때 그 속에서 어둠을 밝혀줄 횃불을 모아두는 일이다. (....) 불행한 사람은 늘 불행하고, 행복한 사람은 늘 행복하다. p.19


나도 한때는 계속된 불행에 이유를 붙였었다. 핑계인지 이유인지 모를 것들을 잔뜩 붙이고 곱씹기를 반복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남편의 말이 허황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불행의 이유를 찾기 위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불행은 내가 불러오는 나의 마음의 문제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불행에 오래 갇힌 사람들은 책을 읽고 이해를 하면서도 쉽게 변하기 힘들다. 그래서 긍정적인 기운을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고, 회복하는 마음을 반복해서 연습해야 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불행이 아닌 행복에 이유를 달아두라는 글이었다. 생각지 못했던 발상의 전환같이 느껴졌지만, 행복에 이유를 달아보니 삶에서 소소한 행복부터 참 많은 행복이 내 곁에 있었다. 아직도 나는 불행이 찾아오면 깊이 빠져든다. 하지만 예전처럼 오랫동안 빠져있지 않고, 평소보다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이제 행복에 이유를 붙여보고 늘 감사해야겠다.



_ 인간관계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


주변에 훼방 놓는 사람이 많다면, 그건 인간관계에 새로운 흐름이 필요하다는 신호다. 예쁘게 자랄 꽃이라 해도, 달콤한 열매를 맺을 나무라 해도, 주변에 잡초가 많으면 영양분을 빼앗겨 제 몫을 다하지 못하는 법이다.

그렇다고 극단적으로 모든 관계를 끊어내는 건 현명하지 못하다. 어차피 잡초는 뽑아도 계속 난다. 이럴 땐 본인 스스로 비옥한 땅을 찾아 나서야 한다. p.167



인간관계에 대한 다정하면서 나를 지키는 조언도 인상 깊었다. 내 주변에 좋지 못한 인연들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면, 우리 스스로 좋은 사람을 찾아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려면 나부터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나라는 중심을 바로잡고 서야 하며, 진짜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나다움을 잃지 않으면서 시련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중요하다.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작가님의 경험에서 나온 진심 어린 조언들이 인상 깊었다. 아무렇지 않게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삶의 파편 같은 찰나 속에서도 깊은 통찰이 느껴졌다. 또 내가 겪은 비슷한 경우의 경험담에서는 매우 공감하고 위로받았다.


이 책은 서툰 나의 인생에 다정한 조언자 같은 책이다. 사려 깊은 문장들은 내면을 알차게 채워가게 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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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맛있는 걸 먹으면 - 제13회 브런치북 소설 부분 대상작
이수민 지음 / 은행나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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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


누군가를 지탱해 주는 그 다정함을 쓰고 싶습니다.

겨우 버텨내고 있는 이를 안아주는, 이야기 안과 밖의 사람이 모두 위로받는 소설을 오래도록 많이 쓰는 것이 꿈입니다.

- 작가의 말 중 -


책표지부터 다정함이 느껴지는 이 책은, 제13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소설 부문 대상을 차지한 이수민 소설가의 책이다.

15편의 다정한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은, 단순히 음식에 대한 소설이 아니다. 음식과 사람과의 소통, 그리고 추억을 담아낸 소설이다. 짧은 단편은 자기 전에 한두 편씩 읽기 좋았고 나조차 잊고 있었던 추억을 상기시켜주는 소설이었다.


< 인상 깊었던 몇 가지 단편들 >


_두 번째 단편 _ 리스본행 에그타르트


3년 전 리스본행 비행기 티켓과 레스토랑을 예약해뒀지만 면접 일정과 겹치게 되고 결국 가지 못하게 된 주인공. 친한 언니와 먹었던 달콤한 에그타르트는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 대한 꿈을 키워나가게 한다. 한 가게에서 에그타르트를 먹고 맛있어서 다시 돌아간 가게. 그곳에서 뜻밖의 선물과 마주한다.


일종의 마침표이자 힘들었던 시간에 대한 위로로, 두 사람은 리스본행 티켓을 끊었다. p.36


_ 일곱 번째 단편 : 알록달록한 서울과 한강공원의 치맥


중고거래를 위해 나간 자리에서 우연히 외국인과 마주하게 된다. 외국인은 서울에서 가보고 싶은 여행지에 같이 동행할 친구를 찾고 있었고, 주인공은 멋진 하루를 보내게 된다. 소문난 빵집에서 먹는 맘모스빵, 한옥 카페에서 먹는 아메리카노와 수정과, 그리고 인절미와 약과, 경복궁에서의 한복 입은 친구, 한강에서 먹는 치킨.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지만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따라 특별한 하루가 되어간다.


무엇보다 취향이 잘 맞는 동행인을 만난 것이 큰 행운이었다. p.116


_마지막 단편 : 클레멘타인과 아이슬란드 오로라 헌팅


계속된 시험 낙방으로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던 주인공은 가족들의 응원과 자신에게 주는 휴식으로 아이슬란드에 오로라를 보러 떠난다. 귤의 한 종류인 클레멘타인 한 봉지, 그리고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과의 저녁 만찬, 북유럽에서 겨울에 즐겨 마시는 글뢰기. 오로라를 보며 듣는 다정한 말의 위로와 깊은 깨달음.


마음은 그렇지 않으면서도 웃고 있었다. 요즈음 자꾸 이랬다. 일그러진 마음만큼, 겉으로는 웃어야 플러스 마이너스 0의 균형 있는 상태가 유지될 것 같아 그런지도 몰랐다. p.256


초록색 오로라만 있는 건 아니에요. 다른 색 오로라도 이렇게 아름다워요. p.267



우리는 저마다 음식과 관련된 추억은 많다. 나에게는 혼밥도 추억일 수 있지만, 그보다 좋은 사람과 함께했던 음식이 진정한 추억처럼 느껴진다. 엄마와의 추억 속 음식은, 엄마가 즐겨 드시던 숯불 오리와 유독 솜씨가 좋으셨던 갈치조림, 명태조림, 된장찌개 등이 생각난다. 차 타고 3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에 사시지만, 결혼하고 나니 한 번씩 엄마 음식이 그리워진다.


이 책의 일곱 번째 단편처럼 나에게도 우연히 알게 되고 아직도 연락하고 지내는 외국인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를 떠올리면 언제나 '호떡'이 생각한다. 그 친구는 늘 호떡을 먹으면서 항상 '왜 일본에는 호떡이 없을까'라며 매우 아쉬워했었다. 부산의 호떡 아주머니는 일본에 호떡가게를 차리고 싶다고 친구 보고 동업하자고 적극적으로 제안하기까지 했었다. ><


또 우리 아버님은 늘 계란 한 판과 딸기를 남편 편으로 사주셨다. 계란은 떨어지면 안 되는 식자재이고, 딸기는 내가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으며 무심한 며느리는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든다.

이 책도 그런 추억과 함께하는 다정한 이웃들의 이야기이다. 그 배경이 한국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이기에 다양한 음식이 등장하는데, 내가 몰랐던 음식을 알게 되는 재미가 있었다.


치유받던 기억과 함께 떠오르는 음식,

누군가를 기억할 때 떠오르는 음식,

내 기억 속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자리한 음식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음식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내 주위의 지인들을 한 사람씩 떠올리며 어떤 음식을 같이 먹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신기하게도 특정 음식을 떠올릴 때마다 소중했던 지인들이 떠올랐다. 더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지인, 여전히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하는 지인 등 다양한 지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책은 나에게 잊고 있었던 다정한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또 나도 누군가에게 맛난 음식과 함께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베풀고 싶은 마음도 들고, 좋은 음식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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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내가 사계절을 맛있게 즐기는 법
니이자카 니이코 지음, 이수은 옮김 / 미우(대원씨아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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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이런 분들께 추천 >

_ 요리책을 만화로 재미있게 읽고 싶으신 분

_ 일본 요리에 관심이 있으신 분

_ 색다른 요리법을 알고 싶으신 요리고수분들

_매일 같은 음식에 지쳐서 조금은 다른 요리가 먹고싶으신 분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는 각 계절마다 즐겨먹는 제철 음식이 있다. 가까운 나라 일본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사계절이 뚜렷하고 계절마다 즐겨 먹는 음식이 있다.


이 책은 일본 저자 니이자카 니이코가 각 계절에 알맞은 음식을 만화로 소개하고 있다.

그림체가 다정해서 책을 읽고 있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마다 4~5개씩 요리와 레시피를 소개하고 있으며, 한국과 닮은 음식도 있고, 일본의 정서가 묻어나는 요리도 있다.


요리하고, 먹고, 함께 웃고,

비슷한 듯

조금씩 달리지는

하루하루

사계절을 느끼며 살아가면

평범한 하루도

특별해져요.

- 책 속 문장 -


한 가족이 새집으로 이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봄 파트에서 인상 깊었던 요리는 < 크림파스타 >이다.

한국에서 주로 만들어 먹는 파스타와는 다르게, 유채와 벚꽃 새우가 들어간다.

벚꽃 새우가 몰라서 검색을 해봤는데, 일본에서는 자주 먹는 재료인지, 포장된 일본산 벚꽃 새우를 판매하는 곳이 많았다. 주로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식용으로 잡힌다고 하니 시즈오카에 가게 되면 관련 요리를 꼭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특징은 '콩소메 스톡'을 넣는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치킨스톡으로 대신하면 될 것 같다.



일본은 매실로 다양하게 활용하는 나라이며, 매실 관련 음식을 즐겨먹는다. 이 책에는 < 매실청 담그는 법 >을 소개해뒀는데, 우리나라와 비슷한 듯 다른 차이가 있었다.


'빙당'이라는 것을 파는데, 매실과 빙당을 번갈아 넣고 중간중간 골고루 섞이도록 병을 흔들어준다.

'빙당' 은 말 그대로 얼음 설탕이었고, 일본 마트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었다.

이런 작은 차이의 발견도 나에게는 일본의 소소한 일상에 파고드는 느낌이라 매우 흥미로웠다.



여름에 먹을 맛있는 요거트 아이스크림도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게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재료는 건과일과 요거트, 설탕, 생크림만 있으면, 집에서 수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시원하게 먹을 수 있다.


그 외 주스, 푸딩, 화과자, 주먹밥, 샌드위치 등 다양한 레시피에 대한 소개가 들어있다. 일본의 음식을 책을 통해서 만나는 시간은 지식이 하나둘씩 쌓이면서 일본 문화를 알아가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책의 내용이 어렵지 않아서, 일본 원서로 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만화이기에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다음에 일본 가면 서점에 가서 원서를 찾아봐야겠다.


일반적인 요리책은 단순히 재료와 레시피만 있지만, 이 책은 만화와 요리를 함께 만나기에 음식에 대해 소중한 마음 또한 절로 든다.


사실 나는 주부지만 요리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남이 해주는 음식이 더 맛있는 건 당연한 거지만ㅎ, 여기 책에 있는 요리 중 몇 가지는 직접 해보고 싶어졌다.


또 사계절에 맞는 한국 음식은 어떤 게 있을까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일단 이 책을 읽고 나서, 마트에 오이를 사러 갔다. 날씨가 무더워지고 본격적인 여름이 되니, 시원한 음식이 생각났고 오늘은 '오이 냉채'를 해서 맛있게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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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김명순 외 지음, 이루카 엮고 옮김 / 아티초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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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캣책곳간에서 책을 제공받아 성실히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으며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

_ 김명순 (한국 최초의 근대 여성 소설가이자 시인)


세계 곳곳에 숨겨진 여성들의 목소리를 어디에서 들을 수가 있을까.

그것도 지난 4천 년간 역사를 통과해 온 대표시를, 세계 100명의 여성 시인들에게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초판 한정 양장본인 덧표지는 영국 유명 화가 데이비드 인쇼의 < 배드민턴 게임 >(1972~1973) 이라는 작품이다. 한가롭게 여가를 즐기는 표지는 책의 내용과 사뭇 다르다. 여성인권이 낮았던 시대를 살아온 여성시인들이 늘 꿈꿔왔던 여유롭고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책에는 고대 로마•그리스, 일본, 한국, 유럽, 중동, 남미, 아시아 국가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각국의 대표 여성 시인들이 시가 실려있다. 그 속에는 나혜석, 김명순, 히구치 이치요, 브론테 자매들, 조지 엘리엇, 루시 모드 몽고메리 등 유명한 작가들도 있으며,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된 시인들도 있다.


여성 인권이 낮았던 시대를 살아간 여성들이 그 시대를 담담하게 이겨내거나, 때로는 격분하고 호소하는 시를 만나볼 수 있고, 내면의 고뇌와 상실도 만나볼 수 있다.

페이지를 펼치면, 왼쪽 면에는 에칭 스타일로 정교하게 복원한 시인의 초상이 그려져 있는데, 이 초상화가 매우 인상적이다. 단순히 시만 봤다면 어떤 사람인지 너무도 궁금했을 것 같은데, 그런 궁금증을 말끔히 사라지게 한다.


초상화 밑에는 시인의 생애를 간략하게 기록해두었고, 하단에는 왼쪽 면 시에 대한 해석이 적혀있다. 나는 왼쪽의 시를 읽고 나서 오른쪽 시인의 생애와 해석을 참고하며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시 한번 시를 읽어보면 확실히 처음 느낌과 다르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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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시가 마음에 들어왔지만,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시 몇 편을 소개하고 싶다.


- 섬세함은 약함이 아니다 -

우리 여자도 무장하고 단련하면,

모든 사내에게 얼마든지 맞설 수 있으리

우리에게도 손과 발과 심장이 있으니

여자는 부드럽고 섬세하니 약해 보여도

섬세한 사내가 강할 수 있고,

거친 남자가 겁보일 수 있잖은가.

여자들은 아직도 그걸 모르죠.

우리가 마음만 먹는다면

죽을 때까지 당신들과 싸울 수 있을 텐데.

- 베로니카 프랑코(1546 ~1591 ) p.34



위의 시는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의 시인이자 지적인 고급 기녀였던 베로니카 프랑코의 시이다. 마법을 부렸다는 혐의로 종교재판소에 회부되는데, 변호사없이 스스로 적극 변호하여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위의 시는 남성 시인이 베로니카를 음란한 창녀라고 비방하자, 그녀는 죽을 때까지 싸울 수 있다는 시로 정면 응수했다.(책의 해설 요약)


앞 페이지부터 여러 여성시인들의 진취적인 시를 읽어나가다가, 위의 시를 읽고 내 마음속에 서서히 불붙던 불씨가 타오르는 것 같았다. 온갖 비방에도 흔들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당당함과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는 문장에서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는 대범한 결의가 느껴졌다. 확신에 찬 시를 들은 상대 남성은 이미 반박할 힘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한국의 소설가이자 시인 김명순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여성의 글과 연애가 억압받던 시절에 기생 출신의 어머니 자식이라는 꼬리표와 그녀의 재능과 자유로움은 허용되지 않았다. 동시대 소설가들에게서 갖은 비방과 모욕을 견뎌내야했고 싸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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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에게, 만약 내게 딸이 있다면

세상은, 언제나 그래왔듯,

현명한 이와 어리석은 이로 북적이고,

찬찬히 생각해 보면, 눈물보다는

쓴웃음이 더 어울리는 곳이란다.

지나친 의심은 가슴에 앙금을 쌓고,

지나친 믿음은 뒤늦은 후회를 부르지.

모든 장미에 가시가 있다고도,

모든 남자의 가슴에 덕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말렴.

안나 마리아 렝그렌 (1754 ~1817 )


나도 딸이 있다면 위의 시를 들려주고 싶다. 시 안에는 여성이라는 위치에서 자기 자신을 소중히 대하라는 조언도 들어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현명함을 가르쳐 주고 인간을 꿰뚫은 통찰이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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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이의 곁에서 -

참으로 달콤하겠지, 오 나의 죽은 이여,

모든 수고를 내려놓고 두 손 모아 누워 있는 일은.

위대한 신비의 인장으로 봉인된

아무거도 묻지도, 답하지도 않는 그 입술

평생의 사투가 끝났다, 완전히 끝났다.

참고 견디던 고단함도, 고통도.

두 눈은 감겨 다시는 뜨이지 않으리

황량한 새벽도, 쓸쓸한 밤도 두 번 다시 보지 않겠지.

느린 날갯짓이든 빠른 날갯짓이든, 그 모든 시간을 뒤로하고

참으로 달콤하겠지. 더없이 달콤할 거야.

- 이나 쿨브리스 (1841 ~1928 )


이나 쿨브리스는 미국에서 최초의 계관 시인이자 황금주의 문학적 어머니로 불린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자신의 예술적 야심을 접어두고, 그 속에서 서정적이고 절제된 시를 써낸 인물이다.

위의 시는 자신의 아들이 어린 나이에 숨을 거두고 반복된 상실의 경험을 배경으로 한다 (책의 내용 요약)


위의 시는 죽음을 달콤하다고 표현한다. 죽음이라는 것은 무섭고 두려운 일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전혀 두렵지 않다. 상실을 경험하고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 너무 큰 비극을 겪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삶이 더 고통일 수 있음을 잘 드러낸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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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드러운 비가 내릴 것이다 -

부드러운 비가 내리고 땅에서 흙 내음이 피어오르고,

제비들이 반짝이는 소리를 내며 하늘을 맴돌고,

밤이면 연못에서 개구리들이 울어대고,

(...)

아무도 전쟁을 알지 못할 것이고,

마침내 전쟁이 끝나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새도, 나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인류가 완전히 사라진다 해도.

새벽에 눈을 뜬 봄조차,

우리가 사라진 것을 눈치조차 채지 못할 것이다.

- 사라 티스데일 (1884 ~1933 )


사라 티스데일은 퓰리처상의 전신인 컬럼비아 대학교 시문학상의 초대 수상자라고 한다. 이 시는 인간의 잔혹한 전쟁과 대조되는 자연의 평화롭고 무심한 영속성을 담담히 그렸다. (책의 내용 요약)


전쟁으로 모든 것이 황폐해져 가는 가운데 인간도 예외일 수 없지만, 자연은 우리가 사라진 것도 모르고 평화로운 일상을 지속한다. 서로가 이기려고 하는 지독한 인간의 싸움이 자연 앞에서는 그저 헛된 일임을 너무도 잘 표현한 시였다. 자연의 입장에서는 대포 소리도 그저 잠시 스쳐갈 소음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이 책에는 옛 시대의 진취적인 여성들의 치열하고 고된 삶이 시에 고스란히 묻어있다. 사회적 모순과 억압에 펜을 들고 글로 맞서 목소리를 낸 여성들의 모든 삶이 짧은 시 안에 담겨 있었다. 그 목소리는 당시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메아리가 되어 조금씩 바뀌어 나갔을 것이다. 당차고 강인하게 세상과 맞선 시인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또, 소중한 사람을 잃은 상실과 개인적인 아픔을 노래한 시들도 마음을 울렸다. 고독했던 내면의 소리를 시로 담아내기도 했고, 인간의 근원적인 고뇌에 대한 깊은 사색도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시와 시인의 생애를 함께 만날 수 있어서, 시를 이해하기가 더 쉬웠고 시의 깊이와 서사를 알아가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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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
앨런 레비 지음, 노지양 옮김 / 오팬하우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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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모처럼 깊은 울림을 주는 진정한 어른을 만났다.

그 어른은 테오라는 86세의 노인이다. 신사적이고 인자하며, 다정하다. 많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세상을 따뜻하게 품을 줄 안다.


< 작가 소개 : 앨런 레비 (미국) >

_싱어송라이터, 변호사, 판사, 작가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_1980 ~1990년까지 변호사로 활동하였고, 이후 1996년 전업 음악가의 길을 걷는다.

_ 나이가 70에 접어들었을 때 첫 장편소설 ⟪ 테오 ⟫를 자비 출간한다.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책이 널리 알려지고 밀리언 셀러에 오른 책이다.

_ 작가는 현재 ⟪ 테오 ⟫의 속편을 준비 중이다.


정말 다양한 이력을 지닌 저자는 이 책 안에 자신이 사랑했던 것들을 담아냈다.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작가의 애정과 해박한 지식은 다양한 측면을 깊게 이해하고 들여다본다.



이 책은 노인 테오가 연고 하나 없는 마을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92점의 초상화를 전해주는 여정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남쪽 도시 '골든'을 방문한 테오는 우연히 한 카페에 들어서게 되고, 그곳에서 92점의 초상화를 보게 된다.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보던 테오는 작품을 초상화 주인에게 돌려줄 계획을 세운다. 많은 초상화를 돌려주려면 이곳에서 사계절을 지나야 한다. 사계절 동안, 테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들과 유대를 쌓게 된다.


당신의 초상화를 바라보면서 이 작품은 당신이 갖고 계시거나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의 손에 있어야 한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결국 완성된 작품은 처음 영감을 준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p.35


첫 이웃은 공인회계사 미넷이었다. 그녀는 초상화를 돌려준다는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되고, 가장 먼저 의심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 정말 선의로 이런 일을 할까? "

나쁜 일에 휘말리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되었지만, 노인 테오의 반듯한 글씨체와 배려가 묻어난 편지를 믿어보기로 결심하고 테오를 만난다.

나는 미넷과 테오가 만나는 62페이지부터 울컥했다. 테오의 따뜻한 말에 마음 깊은 곳이 건드려진 기분이었다.


"이 얼굴에는 힘이 있습니다."

잠시 멈추었다. "용기도 있고요." p.62


" 아니요. 슬픔은 여러 가지 모습일 수 있지만, 슬픔이 한심한 경우는 드뭅니다. 좋은 슬픔은 언제나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말해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p.63


주인공 테오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의 말을 들어주고, 상대가 어렵게 꺼낸 말을 다정하게 받아준다. 초상화를 건네주면서 나누는 테오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있고 그 속에는 힘이 있다.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존중이 깃들어있었다. 그리고, 테오의 질문들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날에 대해 말해줄 수 있을까요?" p.225



어떤 초상화를 보다 보면, 이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을지 그려보게 된다. 주인공 테오도 그러한 과정을 거치게 되고, 낯선 타인과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들은 초상화 속 얼굴처럼 다양한 사연을 간직하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초상화는 테오가 타인과 가까워질 수 있는 매개체이자 선물이었다. 나를 이해하려고 애쓰고, 소중하게 다루어주는 테오의 태도를 보고, 낯선 타인은 어느덧 이웃이 되었다.


그림을 받아든 타인은 미소 짓는다. 상처나 힘듦을 위로받기도 하고, 삶의 의지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그 만남으로 다른 사람에게 또 다른 선의를 베풀 마음이 생겨나기도 한다.


이 책을 보면서 나는 ⟪ 어른 김장하 ⟫의 김장하 선생님이 떠올랐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후원을 했는데 장학금을 받은 사람이 1000명을 웃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에 나온 장학생은 김장하 선생님께 도움을 받은 만큼 자신도 베풀고 살겠다는 했다. 이 책의 주인공 테오와 닮아있었다.


책을 덮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나를 되돌아보았다. 삶은 우연히 찾아오는 고통과 행복 속에서 자신만의 삶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 좋은 이웃의 다정한 말 한마디, 선함과 다정함을 만나게 되고, 나의 태도를 결정하게 된다.


책이 마지막에는 예상을 뒤엎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야기의 흐름이 매끄럽고, 감동과 반전이 함께 하는 책이라 추천한다.



< 좋았던 문장들 >

치유는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들쑥날숙하게 진행될 것이었다. 최소한 이 생에서는 완전히 최종적인 치유는 없을 터였다. p.158

깊이 생각해 볼 것이 많았고 앞으로도 많을 터였다.

소중히 해야 할 것도 많았다.

아파해야 할 것도 참 많았다. p.201

이 눈 속에 지혜로움이 담겨 있다고, 나는 믿어요. 젊은 사람의 다정, 늙은 사람의 성숙이 다 있어요. p.258

황금색 이파리 하나가 두 사람 사이로 떨어졌다. 늦게까지 버티던 계절 같았다. p.260

이 낡고 오래된 격언 '네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하라'는 켄드릭이 할머니에게서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었다. p.375

아름다운 것들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잠시 떠나 있기도 하지요. p.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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