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 내 삶에 복을 불러오는 주문
이성숙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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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느 상점에 가거나 고객센터에서 흘러 나오는 고객님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라는 말을 하루에 한번 이상 듣고 사는 세상이 왔다.
 내가 어린 시절엔 참 듣기 어려운 말들이였다. 교회에나 나가야지 들었던 말들로 기억된다.
 언어란 그 현재의 사회를 대변해 주고 있다. 모처럼 버스를 타고 출장을 가던 길에 버스안에 학생들 대화가 기억이 난다. 첫 마디와 마지막 마디가 꼭 욕이 들어가는 대화체이다. 요즘 아이들이 다 그렇다고 하더군요.
 지금 생각해 보면 대화가 자연스럽게 서로의 대화로 어찌보면 본인들은 아무런 감정 없이 쓰고 있기에 괜찮지만 다른 어른들은 미간을 찌푸리기에 바쁘다. 그렇다고 고상한 언어를 쓰라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언어란 그 쓰임새를 논하기 보다는 그 뜻을 알아야 한다. 욕도 성(性)적, 동물적, 그리고 의학적 병에 대한 명칭으로 나뉘어져 있다. 물론, 부모나 형제 자매를 논하는 욕도 있고 요즘은 사물에 비유 한다고 한다.
 그런것 처럼 요즘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너무 남용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린 학생부터 젊은이들 사이에서 아무런 감정없이 쉽게 내 뱉는 말처럼 들리고 있는 것은 비단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요? 어느 순간 무감각 해지고 들어도 그냥 일상 용어로 정도로 쓰이고 있는 사실에 현재의 사회상를 나타내고 있다. 진정한 "고맙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를 듣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초등학생인 딸아이의 서평입니다.
 
  이 이야기는 평화롭고, 보면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의 책 같다.
 더울 때 아주머니가 아이스크림 사 주실때, 무거운 물건을 누군가 같이 들어 줄 때 저절로 '고맙습니다' 라는 우리말 단어가 나온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뿌듯해져서 그 좋은 말을 배우고 있다.
 우리 사람들도 잘 돕고 잘 말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기분 나쁜 욕이나 모르는 사람이라고 안 돕고 잘 안 챙겨주는 사람들이 많다. 딱 지구 전세계 인구의 94%가 그렇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말들이 지구상에 떠들썩하게 들려야 되는데 '너 왜이리 못해?', '똑바로 좀들어', '이 못난아' 등의 말이 나온다.
 하지만 좋은 말을 하기 위해 내가 먼저 실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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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아이랑 친구 되는 행복한 놀이
이주연 그림, 천신애 글 / 행복한나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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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어릴 적 추억이 되살아 난다. 놀이 자체로도 어릴 적 땅거미가 자욱하게 퍼진줄도 모르게 놀던 그 시절 동무들과 놀던 그 어린 시절 지금 다시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나마 추억속에 거닐다 오는 것 같아 마냥 즐겁기만하다.
5월 5일을 맞아 어디 놀러가기란 힘이 들것 같다. 아이도 초등6학년이라 다른 저학년처럼 특별히 노이 동산에 가길 원하지도 않는다. 사실 작년에 딸아이가 우겨서 놀이동산에 갔지만, 놀이기구 타기 위해 1시간 이상 기다리다 보니 그런 것 같아서 그냥 근교에서 맛있는 것 사먹고 학교 운동장이나 공원에 가기로 했기에 이 책을 가지고 가서 아이와 함께 놀아 주어야 겠다. 나도 옛 생각을 하며 그때의 어린 시절로 돌아 갔으면 하는 바램으로 .......,

하기의 서평은 초등6학년 딸아이의 서평입니다.

이 책은 아빠와 친해지는 책같다.
 다양한 재미, 놀이 등 모든 재미가 다 있다. 아빠하고 같이 놀았으면 좋겠는데 내가 부쩍 자라고 엄마, 아빠의 할일이 바뻐지자 놀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학교일 때문에 나도 여유는 없었다.
 역시 어른이 되는건 싫다.
 하지만 이 책으로 가족들과 다양한 재미를 즐기고 싶다.
 이 책을 읽고 생각나는 말은 어른이 되면 이 놀이들이 유치하다고 왜 그럴까? 어른이 되면 모든게 변한다. 몸도, 마음도, 지능 등 모든게 바뀌어 버린다. 사업 생각과 돈 걱정이 싫다. 영영 어린아이로 살고 싶다. 그러면 가족과 더 재미있게 살 수 있겠지만 사람은 나이를 먹을 수록 늙어 간다.
 가족과 놀고싶다. 나이 차로 인해 가족들을 이 세상에서 떠나 보내기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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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영 - 불멸의 전설
황원갑 지음 / 바움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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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황원갑 작가의 고단한 여정에 연개소문의 이복동생인 연수연이 장군으로 고구려의 위상을 드높인 사실은 중국의 역사학회에 일부 공개되고 지금도 그 기록과 관련 학술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시기에 여성의 위상?과 상관없이 요즘 사회의 이슈인 선덕여왕의 미실 등 역사 속 여인 찾기가 유행인 것 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어찌되여던 학생 및 독자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안겨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나라 잃은 슬픔 속에 잃어지고 몸과 마음이 지친 덕혜공주나 그 나라에 숨이 붙어 있는 한 살아 보려고 발버둥 치던 국민이나 매 한가지, 신분에 차이가 없듯이 그 아픔과 슬픔은 똑같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왕의 씨가 따로 없다고 하잖습니까?
 그러나 우리 역사인데도 불구하고 이제껏 배워 온 역사서는 한 낱 흰 쌀밥에 대한 얘기만 있었지 보리밥, 밀 그리고 좁쌀 등등 역사에 대해 체계적이고 전문화된 역사관 하나 없으니 말해 뭐하겠습니까?
 연수영 역사 소설을 읽어 보고 있자면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불멸의 이순신이나 미실이 없어서 상당히 실망했을 것 같습니다.
 역사 소설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니 말입니다.
 이 책은 역사서를 그대로 옮겨 작가의 상상을 더해 만들어 낸 역사로 그 한마디 한마디의 역사 기록에 잠시 숨을 고르고 있으면 눈보라에 저 멀리 황야의 대지 위에 죽음을 부르는 말발굽이 이 땅을 그토록 탐하려 애쓰는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해를 돕기에 사진과 기타 기록물을 그림으로 삽입해 더욱 좋았던 것 같습니다.
 작가의 특별한 말이 부활이다. 부활하는 이순신. 
 연수영, 1,400년만의 부활? 이라.......,
 역사에 기록된 것을 확인하고 다시 세밀히 확인 한다면 부활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고조선, 고려와 고구려 그리고 발해 역사상 여장군이 아니더라도 여자 무사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고 나 또한 그런 사실을 알았을 때가 몇 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중국에 한동한 파견 근무로 중국인과 교포를 통역사로 둔 적이 있었을 때였습니다.
 우리역사에 대해 중국은 어떠한가? 가만히 보면 일본보다도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학자들의 자부심과 그것을 어떻게 이끌어 내고 전파하는지에 대해 치밀한 계획과 자연스러울 정도로 정밀하게 한치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노력이 미래에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책 마련을 할 지 심히 궁금하고 불안하다.
 우리역사학자들이 교수자리며 일정 위치 등등 개인의 권위에 몰입하고 있는 지금, 무명과도 같은 작가의 손끝에서 그 동안 숨죽여 왔던 마지막 공주의 일대기가 나와야 하는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인 및 교포들과 약 2여 년 가까이 지내 본 결과 그 동안 제2, 제3세 교포들은 고조선을 중국의 역사로 공부하고 있고 독도마저도 일본의 것을 독립 후  강탈한 것처럼 알고 있다. 가까운 중국도 그러 한대 먼 나라는 말해 무엇 하랴!
 고구려는 중국의 역사서에도 아주 세밀하고 각 각의 왕조시절에 매번 나오는 아주 친밀하면서도 적대국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리고 고구려와 삼국시절 왕래하던 상인과 사절단이 남긴 기록 등을 살펴보면 독특한 면이 있다. 일본만이 혼욕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우린 고구려시절부터 압록강에서 남녀 혼욕을 하고 있다는 사절단의 기록이 있고, 언제인가? 기억이 가물 하지만 신라의 화랑도 알고 보면 화랑이 있기 이전에 여성 무사 집단이 있었으며 그 집단의 문제 발생으로 남성 무사 집단이 화랑이 생기고 화장술 또한 그 유래에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황원갑 작가님도 알고 계시는 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이처럼 역사서가 남성들에 치우치고 일제 시절의 역사 말살정책으로 없어 진 역사가 마치 일제하의 시절 우리 역사를 바로 가르치려고 신채호가 조선상고사를 만들 듯 역사학자가 아닌 우리 독자의 영원한 작가들에 의해 다시 한번 아름다운 역사를 꽃피웠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더불어 저 먼 발해를 후대가 다시 찾을 수 있는 노력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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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메아리 같아서
 

 사랑은 메아리 같다. 70년 개띠인 나에게 어쩌면 58년 개띠인 작가와 동일 인물 것 같습니다.
올 해엔 시나 동화 같은 어릴 적 기억이 날 수 있는 그런 책들을 많이 접했으면 하는 생각에 "사랑은 메아리 같아서"의 시집을 읽고 있으면 마치 지나 온 과거와 앞으로의 미래를 다시한번 돌이켜 볼 수 있는 사색에 잠깁니다.

 좋아서
 눈물이 그렁하니
 세상이 다 보석입니다.

 시집 제목으로 왜 메아리인지 가장 잘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슬픔에 눈물은 어떤께 표현 했을 지 더 궁금하더군요.
 작가가 가장 행복하고 가장 사랑하는 그 무엇이 이 시집에 잘 담겨진 것 같습니다. 마치 어떤 사랑의 메아리를 듣고 아니면 사랑하는 그 무엇으로 인해 사랑으로 가득찬 온갖 종류로 체험하고 곧 바로 펜을 들고 마치 신들린 사랑처럼 써 내려간 것 같은 시......,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말들, 사랑은 구름속을 걷는 듯한 꿈같은 거라고 합니다. 이 시집도 구름속을 헤메이는 사랑과도 같은 것 같아요.
 항아리 여자, 시골 뒷뜰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항아리를 여인네의 엉덩이에 비유하는 시는 시골 정취를 마음속 깊숙한 그 무엇으로 느끼기에 충분하다. 작가의 전공이 공학도여서 인지 사물에 대한 세심함 속에 내 어릴 적 가족의 행복을 뒷뜰 항아리 앞에 맑은 정한수를 달빛 기운을 받아 빌고 또 비시던 어머님이 갑자기 생각이 나더군요.
 40이 넘은 지금 저는 더덕 냄새에 소낙비 같은 4월 봄비의 마지막 추위속에 이 시집을 덮을쯤 아침 햇살이 언제 그랬냐는 듯 반팔을 꺼내여 뒷산 암자에 올라 가 다시한번 말없이 스님이 건네주신 더덕주에 잠시 목을 적시고 있을 무렵 저만치 딸 아이의 치얼대는 불평도 내 귀엔 사랑의 노래로 들리고 있다.
 "이대로 암자에서 한숨자고 싶다." 조용하고 봄바람도 제법 따뜻하게 내 몸을 감싸고 더덕향내음이 마치 수면제라도 된 듯한 착각에 잠시 누군가의 몽유도원을 움쳐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잔을 가지러 오신 스님께 시주 하듯 이 시집을 건네고 일어서려는데, 스님께서 한마디 하시네요.
 "자네는 사랑의 메아리를 들어 보았는가? 난 아직도 못 들었다네. 부처님이 좀 큰소리로 얘길 해 주면 좋으련만, 자넨 아직 젊으니 귀가 잘 들릴거야 나 보다도. 잘 들어보고 다음에 올 때 꼭 얘기한번 들려주세나! 바쁘더라도 자주 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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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메아리 같아서 동랑시선 1
오철수 지음 / 동랑커뮤니케이션즈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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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은 메아리 같다. 70년 개띠인 나에게 어쩌면 58년 개띠인 작가와 동일 인물 것 같습니다.
올 해엔 시나 동화 같은 어릴 적 기억이 날 수 있는 그런 책들을 많이 접했으면 하는 생각에 "사랑은 메아리 같아서"의 시집을 읽고 있으면 마치 지나 온 과거와 앞으로의 미래를 다시한번 돌이켜 볼 수 있는 사색에 잠깁니다.

 좋아서
 눈물이 그렁하니
 세상이 다 보석입니다.

 시집 제목으로 왜 메아리인지 가장 잘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슬픔에 눈물은 어떤께 표현 했을 지 더 궁금하더군요.
 작가가 가장 행복하고 가장 사랑하는 그 무엇이 이 시집에 잘 담겨진 것 같습니다. 마치 어떤 사랑의 메아리를 듣고 아니면 사랑하는 그 무엇으로 인해 사랑으로 가득찬 온갖 종류로 체험하고 곧 바로 펜을 들고 마치 신들린 사랑처럼 써 내려간 것 같은 시......,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말들, 사랑은 구름속을 걷는 듯한 꿈같은 거라고 합니다. 이 시집도 구름속을 헤메이는 사랑과도 같은 것 같아요.
 항아리 여자, 시골 뒷뜰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항아리를 여인네의 엉덩이에 비유하는 시는 시골 정취를 마음속 깊숙한 그 무엇으로 느끼기에 충분하다. 작가의 전공이 공학도여서 인지 사물에 대한 세심함 속에 내 어릴 적 가족의 행복을 뒷뜰 항아리 앞에 맑은 정한수를 달빛 기운을 받아 빌고 또 비시던 어머님이 갑자기 생각이 나더군요.
 40이 넘은 지금 저는 더덕 냄새에 소낙비 같은 4월 봄비의 마지막 추위속에 이 시집을 덮을쯤 아침 햇살이 언제 그랬냐는 듯 반팔을 꺼내여 뒷산 암자에 올라 가 다시한번 말없이 스님이 건네주신 더덕주에 잠시 목을 적시고 있을 무렵 저만치 딸 아이의 치얼대는 불평도 내 귀엔 사랑의 노래로 들리고 있다.
 "이대로 암자에서 한숨자고 싶다." 조용하고 봄바람도 제법 따뜻하게 내 몸을 감싸고 더덕향내음이 마치 수면제라도 된 듯한 착각에 잠시 누군가의 몽유도원을 움쳐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잔을 가지러 오신 스님께 시주 하듯 이 시집을 건네고 일어서려는데, 스님께서 한마디 하시네요.
 "자네는 사랑의 메아리를 들어 보았는가? 난 아직도 못 들었다네. 부처님이 좀 큰소리로 얘길 해 주면 좋으련만, 자넨 아직 젊으니
귀가 잘 들릴거야 나 보다도. 잘 들어보고 다음에 올 때 꼭 얘기한번 들려주세나! 바쁘더라도 자주 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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