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생명의 기원과 진화
2부 진화론과 과학혁명
3부 인간, 동물, 기계
토템 신앙에 의해 형성되는
사회체제 및 종교 형태로 시작된 인간의 호기심과 끊임없는 그 실체에 대한 해답으로 존재를 확인하고자 그 수천년간 제사장, 철학자, 마법사, 수도승
등 다양한 이름 하에 그 자연적, 초자연적 존재를 때로는 이용하고 때로는 부정적으로 사회에서 배척 당하면서도
끊임없는 탐구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인간이라는 동물이
아닌 창조주에 가까운 존재이기에 더욱 그러한 것일까?
1부 생명의 기원, 진화는
현재에도 미래에도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갈 것인가에 진부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한번쯤 상상, 생각이라는
것을 해 봤을 것이다.
철학, 문학, 예술 그리고 과학이 공존한다기 보다는 수레바퀴와 같은 논리일까?
한가지를 해결하면 또 다른
의문과 문제가 항상 존재한다.
우리는 그 문제를 철학, 문학, 예술 그리고 과학으로 그 존재를 증명하고 이해하고 그 속에서
우리를 발전, 혹은 진화를 거듭하는 동안, 인간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문제는 과학이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매우 실용적인 지식을 제공하지만, 우리가 던지는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왜 태어나야만 했는가?”라고 물으면, 쓸데없는 질문이라고 일축해버리는 과학자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과연 과학적으로 의미가 없는 그래서 비과학적인 질문은 무의미한 걸까요? 과학이 답을 할 수 없을 뿐, 우리에겐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질문을 ‘궁극 질문’이라고
합니다. 과학은 보통 궁극 질문을 다루지 않습니다. 바로
앞 질문을 이렇게 바꾸어보면 어떨까요? “우리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이런 질문을 ‘근접 질문’이라고 하는데, 과학은 주로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과학자들은 가용한 모든 정보와 실험 결과, 관찰을 근거로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기 위해 실험을 하고 또 다른 관찰을 하기도 합니다. 검증
과정에서 가설이 맞지 않으면 폐기되거나, 수정· 보완되어
다음 검증을 받게 되지요. 이런 과정에서 가설이 살아남아 계속 다듬어지면 이론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142~143쪽)
2.
진화론과 과학혁명
진화론에 우리는 문학과
예술이라는 다른 관점에서 이상할 정도로 과학혁명을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마치 SF소설, 영화 그리고 상상력이 더해진 그 모든 예술 행위가 과학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사실에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진화론의 체계적, 논리적으로 그리고 물적 증명을 해석하는 도구로 우리는 과학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만들고 탄생 시켰으며 더불어
더욱 발전된 기술로 해석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단계이지만 지금도 그 진행은 계속된다고 본다.
과학에서 말하는 이론이란, 수많은 증거를 토대로 더 완벽한 이론이 나오기까지 사실로 인정받는 지식의 체계를 말합니다. 진화이론은 명백한 과학 이론입니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진화론이
좋거나 싫을 수는 있겠지만 무조건 진화이론을 부정하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과학이라는
잣대로 다른 사람의 종교적 믿음을 비웃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요. 소모적인 논쟁보다는 열린 자세로 논리적이고
건설적인 비판을 통해 서로 약점을 보완하면서 진리를 찾아가는 데 힘을 합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75쪽)
3.
인간, 동물, 기계
인간과 동물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더불어 대체 물질로 기계라는 도구를 만들었으며 아직 시작 단계인 키메라 같은 대체 생명체까지 넘 보는 단계에 이르렀으니 수 억년의 시간
속에서 그 짧은 진화로 우리 인류는 엄청난 발전에 자신조차도 놀라고 두려움에 미래를 내다보며 과거의 인류가 그토록 찾고자 알고자 했던 것이 오늘날
발전된 과학인지 예술인지 그 구분과 경계 그리고 알면 알수록 더욱 미궁 속에 감추어진 그 무엇을 향해 또 다른 탐구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창조주를 믿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창조주가 아닐까 한다.
다른 동물들의 경우와 달리 인간에게는 이성적 확신에
의거해서 본성과 습관을 넘어서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인간 사회의 뿌리 깊은 악, 그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을 단순히 생물학적 존재로
여기는 관점은 인간 사회에서 빚어지는 수많은 악의 현상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인간이란
완전해질 때에는 모든 동물 가운데 최선이지만, 법과 정의로부터 일탈할 때에는 최악입니다. 인간에게는 이런 양극의 가능성이 존재하고, 이 양극의 가능성은 인간이
이성적인 동물, 즉 호모사피엔스라는 데서 유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축복일까요, 저주일까요? 아무쪼록 이 강의가 인간으로서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우리가 지향할 만한 최선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414쪽)
이 강연은 연세대학교 학생이라면
꼭 들어야 하는 강의?
연세대학생이기에 들어야
하는 강의가 아닐까? 교수님이 연세대 대학교 교수이니 말이다.
생명의 기원에서 기계문명과
생명공학에 이르기까지 쉽고 간결하며 그토록 따분하고 어렵게만 느껴져 나 조차도 섣부른 호기심에 쉽게 접하지 못한 그 방대한 대서사시 같은 철학, 문학과 예술 그리고 과학을 심오한 편견도 상상속 기염도 아닌 그저 평범하면서도 체계적으로 나열하고 심도 있게
구성하면서도 간략하게 편성함으로써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오히려 더욱 호기심이 유발할 수 있는 내용들로 연세대학생에겐 얼마나 행운인지 그들은 모를
것이다.
위대한 유산은
약 200년간, 2세기에 너무도 많은 발전에 인류 자체가 두려움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또 다른 새로운 곳에 탐구하려는 인간의 욕망,
자체를 우리 스스로가 두렵게 느껴지기에 새로운 세상으로 눈을 돌려 애써 외면하려는 마음을 다시 한번 과거로 돌아가라는 뜻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과 실패 그리고 성공을 자성하라는 뜻일 것이다.
젊은이들에겐 기초적 학문을
기성 세대에겐 더욱 완성된 학문, 예술 또는 과학이든 남겨진 숙제에 대한 완성된 답을 찾는 것보다는
그 내면에 숨겨진 진실 보다는 더욱 깊은 지구라는 공존하는 사회가 아니라 공생하는 관계가 아니라 자연 속에 자연에 속해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에서 드러나듯이 나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은 동서양의 현자들에게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물음이었습니다. 탈레스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지요. 기원전 6~7세기에 살았던 탈레스는 ‘서양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이에요. 그는 이 세상 만물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질문을 던졌고, 물이
모든 것의 원리라고 대답했지요. 탈레스의 지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일화가 있는데, 어떤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무엇인가라고 묻자 탈레스는 “남에게
충고하는 것”이라고 대답했지요. 남에게 충고하는 것, 훈수 두는 것만큼 쉬운 일이 어디 있겠어요? 바둑에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도 이세돌이 바둑 두는 데 훈수를 둘 수 있어요. 그다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자 탈레스는 “나 자신을 아는 것”이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2700여 년 전의 탈레스에게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나 내가 무엇인지 아는 일은 가장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364쪽)
젊은 시절, 장년인 시절에 그리고 중년인 지금 “위대한 유산”을 읽다 보면 새로운 느낌이라기 보다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100년의 중간에선 중년, 노년엔
어던 느낌으로 다가올 지 무척 궁금합니다.
“위대한 유산” 은 마치 우리의
몸 속 DNA 와도 같은 공존 속에 존재한다면 과거에도 미래에도 우리 인류는 끊임없는 철학, 문학, 예술 그리고 과학의 수레바퀴의 톱날을 새것으로 교체할 수는
있어도 그 해답은 또 다른 질문으로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