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의 사랑
손석춘 지음 / 들녘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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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 둘레를 떠나 호젓하게 술잔을 나누고 싶다는 몇몇 후배들과 거나히 마신 뒤,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작은 신문사의 논설위원인 한민주는 대학후배이자, 큰 신문사의 논설위원인 류선일을 만난다. 자신을 비꼬는 류선일의 변절에 실망하던 한민주는 대학시절, 류선일과 함께 가자고 약속했던 런던 하이게이트의 마르크스 무덤을 향해 떠난다. 마르크스의 무덤에서 서성이던 한민주는 몰락한 소련의 사회주의리얼리즘 작가를 만나, 그가 집필한 소설을 접하게 된다. 마르크스와 예니 폰 베스트팔렌 그리고 또 한 여자, 헬레네 데무트.

손석춘의 소설 <유령의 사랑>은 이 틀로 진행된다. 마르크스, 그의 전기적 소설 제목이었던 <프로메테우스>처럼, 인류에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주고 불행해진 남자. 소설은 한민주의 이야기와 한민주가 런던에서 접한 마르크스, 예니, 그리고 데무트에 대한 이야기로 이루어진다. 하녀의 임금을 착취하고, 급기야 임신시켜 사생아를 낳게 하고 그를 엥겔스의 아들이라 숨긴 '비열한' 인간 마르크스. 한민주는 런던에서 접한 원고를 통해 마르크스의 '사생활을 변호'한다. 그리고 데무트의 말을 빌려, 마르크스와의 숭고한 사랑을 내세운다.

좌파적 입장마저 하나의 상품으로 유통되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한민주의 고민은 시작된다. 그가 변호하고싶었던 것은 마르크스가 아니라, 정작 자기 자신이었다. 헤겔은 자기존재를 목숨걸고 긍정할 수 있는 사람이 승자요, 주인이라고 했다. 이 소설은 한민주가 50줄이 넘어서야 비로소 자기 삶의 주인이 되려는 순간을 기록한 책이다. 마르크스가 하인이자, 연인이었던 데무트를 통해 각성하듯, 한민주 역시 여성노동자였던 고수련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현실에서 다시 지쳐갈 때쯤 고수련을 그리워하던 한민주는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소설의 재미는 덜하다. 마르크스에 대한 숨겨진 사실에 혹한 나와 같은 독자가 아니라면, 또 불잉걸 같은 자신의 의지를 다시 활활 피워줄 무언가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면, 더 그럴 것이다. 진보니, 마르크스니 프롤레타리아 혁명 등등의 단어 낯선 사람은 오죽하랴. 너무 적나라하고 무람없는 짓인가. '혁명'의 '무오류성'이 '진보'의 '자기수정능력'으로 역할과 위치만 바뀌었을 뿐. 학부시절 읽었던 몇몇 소설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다. 그렇게 변했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변화 그 자체다. 그 사실을 과감히 선언할 수 있는 용기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내가 보기에, 우리의 과거는 진실보다, 마르크스의 명령이 더 절실했다. 항일무장투쟁의 전략과 전술이 더 절실했을 때였다.

최근 한 종교집단이 교주의 부활을 믿고 시신을 방치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부활과 영생 앞에 인간이 우스워지던 뉴스는 전에도 많이 있었다. 우리의 진보도 그러지 않았을까. 마르크스의 부활을 꿈꾸며. 혹은 그 무언가의 부활을 꿈꾸며...

한민주는 스스로를 햄릿에 비유한다. 아버지의 유령이 나타나 원한을 갚아달라 하는데, 정작 실천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햄릿. 굳이 마르크스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우리는 한때 꿈꾸었던 아니 좌절하기 바로 전까지 가슴속에 품었던 것들의 유령 앞에 서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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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힘
성석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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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힘>은 작가가 집안 신도비 건립행사에 참석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그 신도비 주인공의 행적을 쫓아가면서, 인간의 힘이란 무엇이고 어디서 오는가를 풀어보려는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채동구를 통해 가례등 형식에는 목숨을 매달면서 지행합일에 대해선 미적거렸던 당시 유교사회를 비꼰다. 그러나 그것은 잔가지라 생각된다. 오히려 그럭저럭 음덕(蔭德)을 보며 인생을 즐길 수도 있었지만, 스스로 결정한 바에 충실하기 위해 길을 나서는 채동구의 모습 그 자체가 고갱이다.

채동구는 사화와 호란 등 위기에서 임금과 조국을 구하고자, 홀연히 길을 나선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미쳤다고 욕을 한다. 또 4번에 걸친 출정(?)에서 그가 건진 것은 하나도 없다. 사실 한 일도 없다. 알아주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도 그는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후손들 역시 그가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결국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혼자만의 의지에 의해 '억울한' 죽음의 문턱에도 다다른다.

'난 이 어른이 뭘 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네. 이 어른은 초지일관해서 당신 가실 길을 가셨네. 남들이 우습다고 하고, 미쳤다고도 했지만 어른은 신념을 지키셨네. 신념이 옳다 그리다가 문제가 아니라 끝까지 변함없이 그걸 지킨 것. 난 바로 그게 사람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네.'

吾載吾頭(내 머리를 내가 이고 있다.) 그의 묘지명이다. 작가가 채동구의 행적을 통해, 또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묵묵히 조상을 기리는 그 후속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했는지 느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느낌을 자신의 삶으로 실천하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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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눅스*그냥 재미로 - 우연한 혁명에 대한 이야기
리누스 토발즈 & 데이비드 다이아몬드 지음, 안진환 옮김 / 한겨레출판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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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글을 시작하기 전에 빌게이츠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더욱 이해를 도울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어찌보면 빌게이츠라는 '주류'덕에 더욱 유명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리누스 토발즈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해주고 몇가지 시사점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혁명은 우연하게 만들어진다는 인용문처럼, 이 책에서는 괴짜 리누스가 우연히 좋아하는 컴퓨터에 몰두하다가 이처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일을 저질렀는가에 대해 알게해주었다. 그러나 과연 오늘날 우리 땅에서 그처럼 단지 '재미'라는 즐거움을 추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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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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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글은 참 부끄럽게 만들고 머리가 아프게 한다. 한동안 손에 책을 들 수 없었다. 이미 내 손에 일상의 무언가가 잔뜩 쥐어있었기때문이다. 실로 오랜만에 든 책인 '손님'은 역시 황석영 바이러스는 머리속에 침투시켰다. 이 책을 보면서 나는 이전에 읽었던 노다마사키와 김동춘의 글들이 함께 떠올랐다. 이 세 글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인간의 문제였다. 인간은 얼마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이땅의 주인인가? 이러한 믿음들이 깨지는 것이다.

앞서의 저자들의 책에서 인간이 전쟁이라는 상황하에 무참히 인간성을 상실해간다는 것을 이미 알고있는 사람들이라면, 더 나아가 인간성이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설 자리를 잃고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야수적인 본능을 정당화시킨다는 것에 더욱 두려울 것이다. 황석영의 글을 보며 움찔했던 것은 바로 그때문이다. 기독교나 공산주의 모두 그러한 인간성의 상실에 또하나의 공범이고 동조자였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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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인간 - 군국주의 일본의 정신분석
노다 마사아키 지음, 서혜영 옮김 / 길(도서출판)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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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기억은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왜곡과 침묵을 강요하는 일면이 있다. 그러나 그것에 휩쓸리지 않고 아픈 기억을 들쑤셔라도 반복시키고 싶지 않은 인간의 의지 또한 낳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들에게 전쟁의 기억은 무엇인지 노다 마사아키는 그 자신 스스로의 분석을 통해 그 물음에 답하려는 미미하지만, 힘이 되주어야 할 것 같은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서장에서 과거의 체험의 부인은 콤플렉스를 만들고 억압된 마음의 상흔은 감정의 경직과 병적인 충동의 폭발을 가져온다고 보고 일본이 당시 침략전쟁과 다른 정신으로 살고 있는지 반문한다. 전후 일본인의 반응에서 물질주의로 전쟁에 대한 상처를 대체하고 부인하려했던 것이 '오늘날의 일본문화를 만든 원천'이라고 보았다. 그는 희미해진 양심의 소리에 귀기울여 사금파리 찾기와도 같은 청취작업을 통해 일본인들의 죄의식을 파헤치고 분석함으로써 일본인의 20세기를 아시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아직까지 남아있는 죄의식이야말로 우리들의 귀중한 문화이며, 죄의식을 억압해온 일본문화의 모습을 통해 우리들은 자신의 내면의 얼굴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전쟁 범죄를 대하는 데 있어 전쟁에 대한 일반화는 사고의 태만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이러저러한 구체적인 전쟁이 있고, 그에 따라 각각의 군대가 있으며, 그런 구체적인 시스템 속에서 인간은 잔혹해진다는 것이다. 전쟁중의 잔학행위에 대해 들었을 때, 일반화 하기 쉽지만, 그것은 개개의 사례를 검토한 뒤의 귀납이 아니라, 미리 해버린 일반화이며, 사실을 잊으려는 의도를 숨기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또 집단이 끊임없이 개개인이 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모호하게 흐리고, 모든 행위에 동의하는 장치로서 기능하지만, 전쟁 중 저질러진 범죄에는 명령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의지에 의해 벌어진 범죄도 있음을 보여주는 그의 말은 결코 흘려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한 범죄의 이면에 일본형 상승의식이, 그를 잔혹성을 느끼지 못하는 살인기계로 변화시키고 있음을 보여주고 이렇게 전쟁 중에 권위로 인해 개인을 자각하지 못하고 도구화, 대리상태가 되는 것에 대해 사회적으로는 문명이 부단히 장려하는 권위에 대한 복종의 심리를 당장은 바꾸기 힘든 것으로 인정하고, 이러한 인식 위에서 커다란 권위인 국가의 동향을 비판하고 개인적으로는 비인도적인 명령을 거부하는 인간이 되야한다고 주장한다.

학살에 대해 저자는 일본인 집단의 시선 속에서 스스로 나서서 학살에 순응하고자 하는 정신적 자세가 미리 형성돼 있었으며 천황제 이데올로기가 쉽게 새디즘으로 전화하는 통로를 갖추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음을 지적하고 일본군대의 강함이란 '감정마비의 강함'이며 이러한 '감정마비'는 전후 일본인에게 지속되고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사회에 대해 지은이는 전쟁을 반성한 사람들에게 침묵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그의 진짜 슬픔, 전쟁에서 저지른 죄를 의식하고 사는 의미를 들어봄으로써 그 외의 사람들도 경직된 역사관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으며 노병의 슬퍼하는 마음에 공감함으로써 전후세대도 감정을 풍부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평화는 이성에 의해 유지된다. 그러나 이성이 무시당하고 파괴되는 전쟁의 메커니즘에 대항하기 위해 비단 반전평화운동뿐 아니라, 공격성에 대한 적극적인 분석도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평화를 원한다면, 타자의 슬픔을 감싸안는 문화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의지가 약한 인간은 전쟁 반대를 말할 수 없지만 그는 강한 인간이기 전에 느끼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즉 평화를 얻기위해서 우리 인간은 풍부한 감정을 회복해야하고 '상처입을 줄 아는 정신'을 되찾아야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인데, 그러기 위해서 알고 느끼는 이러한 두 단계를 거쳐 평화를 얻을 수 있는 '상처입을 줄 아는 부드러운 정신'을 되찾을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일본의 소중한 죄의식을 기록하고있다는 것뿐 아니라 그의 조언이 우리 사회에서도 새겨볼 말이라는 것에 그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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