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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로 철학하기
슬라보예 지젝 외 지음, 이운경 옮김 / 한문화 / 2003년 6월
평점 :
무식하면 겁도 없다. 아는 것이 없으나, 한글을 깨쳤다는 것 하나만을 무기로 이리 무턱대고 덤비니 문제다. --; 결론부터 말하자. 매트릭스로 철학을 접하는 것은 쉬울 지 모르겠다. 그러나 매트릭스라는 영화가 이런 의미를 표면에 드러냈다면 분명 흥행에 실패했을 것이다. 이 책은 지젝의 유명세를 등에 업으려는 의도가 유쾌하지않다. 단지 제일 많은 분량의 글을 썼다는 것만으로 지젝은 이 책을 기획하고 윌리엄 어원이라는 엮은이보다 더 강조되어 이름이 올라있다. (나를 비롯한) 사람들 역시 지젝의 대단한 기획의 일환이라 여기며 이 책을 손에 잡았을 것이다.
이 책은 15명의 학자들이 플라톤, 데카르트, 칸트, 흄, 라캉, 마르크스 등 철학적으로, 때로는 불교, 힌두교, 기독교 등 종교적으로,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 사르트르 등을 통한 문학적 방법으로 매트릭스에 접속을 시도한다. 이들이 내게 내민 빨간 약과 파란 약을 번갈아 먹으면서, 내가 이 책을 통해 접한 인간문제에 대한 매트릭스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네오는 누구인가. 둘째, 네오와 사이퍼의 선택 중 옳은 것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진실은 존재하는가.
플라톤의 동굴비유가 생각나는가. 동굴 안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를 실체라 믿고 있다. 그 중 한 사람이 동굴 밖으로 기어 나와 밝은 세상을 보고, 다시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이 책에서 네오는 어두운 동굴에서 탈출하여 진실을 보고 다시 동굴로 되돌아가는 선지자의 의미를 부여받는다. 문제는 동굴 밖으로 어렵게 나와 '그'가 본 것이 황량한 '진실의 사막'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을 던져보자. 과연 인정할 수 없이 괴로운 현실대신 '진실하면서 동시에 가치있는 지각경험'으로 '쾌락'을 선택한 사이퍼의 결정은 정당하지 못한 것인가? 우리는 고민하는 사이퍼 앞에서 배부른 돼지 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라고 조언하는 것이 옳은가? 매트릭스를 부정하는 것이 절대선이 아니라면, 과연 우리에게 환상을 심어주는 매트릭스는 무엇인가? 지젝은 매트릭스가 현실을 왜곡함과 동시에 현실로부터 우리를 보호한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그리고 매트릭스의 논리구조가 갖고 있는 버그들을 지적한다. 그래서 지젝은 매트릭스 속편이 진행될수록 ''진실의 사막' 역시 매트릭스가 만들어 낸 세계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런데 정작 영화는 그런 결말은 아닌가보다.)
지젝이 던진 물음 중에 기억에 남는 것 하나를 소개해본다. 매트릭스에게 인간이 단순한 건전지에 불과하다면, '왜 매트릭스는 각 개인을 그 자신의 유아론적 인공의 세계에 몰입시키지않는가? 어째서 모든 인간이 하나의 똑같은 가상 세계에 살도록 프로그램을 조정함으로써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가?' 지젝은 그 대답으로 '주이상스'(Jouissnace:고통과 쾌락의 변증법적 관계-내맘대로)를 든다. 음... 스미스가 모피어스를 잡아 심문할 때를 기억나는지. 아무도 고통받지 않고 모두가 행복한 세계로 설계했던 매트릭스가 실패했다는. 그러면서 인류는 고통을 통해 현실을 인식한다는.
영화에서 네오는, 엘리스가 이상한 나라로 인도되듯, 하얀 토끼를 따라 진실로 인도된다. 나도 '그'처럼 '토끼를 따라'가봤다. 그러나 처음부터 무리였는지 모르겠으나, 두 마리 토끼 중 한 마리를 포기해야했다. 영화? 아니면 철학. 나름대로 진실을 알기위해 약을 삼켰으나, 여전히 헤매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