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소장품 - 슈테판 츠바이크의 대표 소설집 츠바이크 선집 (이화북스) 2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상원 옮김 / 이화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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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의 대표 소설집-보이지 않는 소장품>은 2020년 발행된 <광기와 우연의 역사>에 이은 두 번째 '츠바이크 선집'으로 발간되었다. 내가 츠바이크를 처음 접했던 것이 니체나 톨스토이와 같은 위대한 인물에 대한 평전이었기 때문에 츠바이크에 대한 개인적 감회는 굉장한 필력을 지닌 전기작가라는 인상이었다. 위인의 일생과 그들의 저작을 서술하는 츠바이크의 글은 해당 인물이 살아온 삶을 소개하며 "왜 그 인물이 남긴 저작은 이런 형태를 띠고 있나, 혹은 왜 그 인물이 이런 형태의 저작을 남길 수 밖에 없었나!"를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있었다. 이런 첫인상이 강했던 탓인지 츠바이크라는 인물이 남긴 평전 위주로 그를 접하게 됐고 그가 남긴 소설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가장 최근에 읽었던 츠바이크 작품인 <광기와 우연의 역사> 역시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대한 츠바이크의 생동감 있는 전개가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소설적이라기 보다는 역사서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번에 <슈테판 츠바이크의 대표 소설집-보이지 않는 소장품>를 접하면서 츠바이크의 필력을 소설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대표 소설집-보이지 않는 소장품>는 총 6 편의 소설(아찔한 비밀, 불안, 세 번째 비둘기의 전설, 모르는 여인의 편지, 모르는 여인의 편지, 보이지 않는 소장품, 어느 여인의 24시간)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세 번째 비둘기의 전설'과 '보이지 않는 소장품'은 10여 페이지 분량의 단편이며 나머지 4개의 소설은 중편 소설이다. 이 리뷰에서는 아찔한 비밀, 불안, 모르는 여인의 편지,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소장품에 대해 소개하고 내가 느낀 감흥을 간략히 적고자 한다. 


첫 번째 '아찔한 비밀'은 어머니와 아들이 여행 중 맞닥뜨리게 된 위기 상황에서 벌어지는 심리변화와 갈등을 세밀히 묘사하고 있다. 어머니는 낯선 남자와의 만남에서 겪게 되는 위태로운 심리를, 아들은 소년의 마음에서 갈등을 거쳐 내적 성장을 이루는 모습을 보이는데 인물들의 심사는 마치 내가 그 인물이 된 것과 같은 깊은 몰임감을 남긴다. 어머니와 소년이 느꼈던 짜증, 고통, 실망, 초조, 불안, 죄책감, 행복, 평안 등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어 글을 읽는 내내 독자로서의 내가 등장인물이 되어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내가 착하고 성실하기만 한 사람이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이었기에 스스로에 조금의 부끄럼이 가미되었다. 


'불안'은 상류사회에 속한 어느 여인의 외도가 불러 온 정신적 파국을 담고 있는데 단지 호기심에 저질렀던 외도가 누군가에게 발각되면서 여인의 평온했던 삶이 극도의 비참함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풍족한 삶과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가를 뼈저리기 절감하지만 이미 상간을 저질렀고 그 사실이 드러났을 때 불러올 절망적 결과가 그녀를 계속해서 옥죈다. 자신의 행위가 온 천하에 드러날 것이라는 두려움은 온실 속 화초처럼 살아 온 그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가혹했으며 결국 그녀는 스스로의 삶을 놓고자 한다. '불안'은 여인, 아니 어떤 인간이라도 겪을 수 있는 잘못된 행동에 대한 대가가 그 사람의 정신과 삶에 얼마나 파괴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죄책감이라는 멍에를 지닌다. 비밀리에 이루어진 죄라도 자신까지 속일 수는 없고 그 죄가 클수록 죄책감 또한 크게 다가올 것이다. 또한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위로가 사라졌을 때,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나의 죄를 알아챌 위기에 처했을 때 인간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리라 생각한다. 


'모르는 여인의 편지'는 익명으로 발송된 편지를 읽는 남자가 등장한다. 호감형 외모와 태도를 가졌고 작가로서 큰 성공을 거둬 부족할 것 없는 대접을 받고 사는 남자는 어느 날 익명의 편지를 받는다. 거기에 담긴 내용은 자신을 사랑하는 어느 여인의 삶 전반이 담겨 있다. 소녀였을 적부터 그를 사랑했던 여인은 이제 삶의 마지막 순간이 되어 처음 그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평생 그 만을 사랑했던 여정을 담은 편지를 남긴 것이다. 이를 받은 남자는 그녀가 누구인지 떠올리고자 노력하지만 기억은 쉽사리 그녀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편지에 담긴 내용은 그와도 깊이 연관된 중요한 사항인지라 그는 그녀와 그녀의 사랑이 남긴 잔재를 좇으려 하지만 머리만 더 복잡해질 뿐이다. 아마도 그는 여생을 그녀에 대한 의문과 고통 속에서 살게 되리라 짐작된다. '모르는 여인의 편지'는 사랑에 대한 관점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할 수 있을까, 단지 사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사랑과 별개로 자신이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조차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고 상대방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바라봐 주기를 한결같이 바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그녀는 편지에 삶의 마지막을 앞둔 순간조차 그를 사랑했음을 후회하지 않노라고 적었지만 과연 그녀는 그를 온전히 사랑했음에도 그의 눈길조차 받지 못했음에 어떤 슬픔과 원망도 없었을까? 그녀에게 사랑은 찰나의 기쁨일 뿐 대부분이 고통이었을텐데 그녀는 그 사랑을 다시 하고 싶을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진다. 


'보이지 않는 소장품'은 평생에 걸쳐 고미술품을 수집해 온 노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두 눈을 잃었음에도 그가 수집해 둔 소장품은 그에게 삶의 에너지가 되고 기쁨의 원천이 된다. 너무도 애정을 기울여 모아온 것들이기에 실명한 상태에서도 그는 소장품의 내역을 모두 나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세세한 부분까지도 기억에 담고 있다. 소장품의 이미지는 그의 눈이 아닌 뇌리에 각인돼 있어 눈의 도움 없이도 볼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이런 노인을 바라보는 미술품 상인은 자신이 느낀 감동을 다른 이에게 전달해주면서 스스로도 깊이 감화된다. 행복의 기준을 생각해 보게 하는 소설이라 느꼈다. 굉장히 짧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삶의 목표로 생각하는 '행복'이 과연 눈 앞의 실체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마음과 기억에 있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여지를 남기는 작품이었다. 나도 그렇고 누구나 행복하고 싶다. 행복의 척도는 주관적이기에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라도 내가 누리는 것들이 주는 편안함과 행복이 어떤 성취를 이루어 더해지기 보다는 내 마음먹기에 달렸음을 다시 느끼게 해준다. 쉽지만 어려운...







"믿고 읽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대표 소설"이라는 문구가 책의 뒷면에 새겨져 있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대표 소설집-보이지 않는 소장품>에 소개된 6편의 소설은 '믿고 읽을 수 있는 츠바이크의 글'을 증명하는 소임을 다했다고 느껴지며 이 책을 계기로 츠바이크의 다른 소설을 찾아보게 되었다. 이 책에 수록된 소설들은 모두 등장인물의 내면을 세밀히 묘사하고 있다. 전지적 시점이기 때문에 등장인물이 겪는 마음을 독자도 쉽사리 이해할 수 있지만 그를 뒷받침하는 인물들의 행동의 묘사는 글로써의 이해를 넘어 공감이라는 감정을 일깨우는 것 같다. 


츠바이크의 평전이 아닌 소설을 처음 접했는데 평전만큼이나 뛰어난 필력을 접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다음에 츠바이크를 떠올릴 때는 전기작가가 아닌 그냥 작가라는 이미지가 먼저 등장할 듯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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