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조지 오웰 지음, 한기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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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유구한 역사는 진보의 발걸음을 내딛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믿는다. 가끔은 실수로, 가끔은 착각으로 퇴보를 겪기도 하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인간 문명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며 그 속도는 거세게 빨라지고 있다. 서양문명을 기준으로 봤을 때, 중세가 끝나고 계몽주의 사상이 부각되면서 신학에 갇혀 있던 인간의 이성은 눈부신 성취를 보였으며 18-19세기에는 사상의 홍수라 일컬을 만큼 수많은 사상과 위대한 철학자들이 등장했다. 그 가운데 '공산주의'는 너무도 매혹적인 요소를 품고 있었는데, 그것은 '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민중은 농노의 신분은 벗어났지만 생활상은 비참한 행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자신들의 노동은 생계,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필수제를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무산자)가 자신들을 착취하는 대상을 타파하고 진정한 해방을 맞이하게 되면 모든 노동이 정당한 대우를 받고 모든 인간이 마땅한 대우를 받게 되리라는 초기 '공산주의'는 피끓는 젊은이들과 무산자들에게 복음과 같이 전파되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마르크스와 앵겔스, 이들에 의해 신흥종교 공산주의는 19세기 중반부터 유럽 전역에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포교되었다.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공산주의라는 열병을 앓고 회복했지만 러시아와 같은 나라는 공산주의 세력에 의해 나라가 지배되었다. 어쩌면 당시의 러시아는 이론적(물론 '모든 인간이 공동체를 위해 희생할 수 있다'는 전제 등의 이론적 한계도 명백하지만) 공산주의가 국가통치에 어떻게 적용되는 가를 시험하는 무대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지 오웰의 관점에서 공산주의는 실리를 추구하고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인간의 보편적 본능을 등한시한 이론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의 대표 저작이라 할 수 있는 <동물농장>과 <1984>는 공산주의의 맹점을 냉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우화로 공산주의를 비판한 <동물농장>과 달리 <1984>는 공산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가를 묘사하는데 공산주의 또한 기득권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일반 사람들이 희생되는 구조라는 점에서 기존 체제와 다를 바 없으며 오히려 선전과 감시에 의존하는 체제유지로 인해 인간의 자유를 더 옭아매는 구조로 발전하리란 점을 보여준다. 


<1984>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포함한 대다수의 '일반인'들은 프로파간다(propaganda)에 휩싸여 살고 있다. 과거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미디어의 외침에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감히 그것을 밖으로 표출하지는 못한다. 자신의 행동은 항상 누군가에게 감시당하고 누군가를 '사랑'할 자유조차 박탈당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순종하며 살거나 순종이 결여된 의구심을 표출한 자들은 어딘가로 끌려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도처에 깔린 텔레스크린은 모든 사람들의 행동을 감시하고 있으며 정체를 감춘 사상경찰은 어딘가에서 감시의 눈길을 더한다. 감시도구와 더불어 자식이, 배우자가, 친구가 혹은 그 어떤 사람일지라도 자신을 이적행위자로 고발할 수 있는 세계에서 한 사람이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배적 위치가 아닌 모든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늘 감시의 눈초리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새로운 도전이나 생각은 사회로부터 억압당한다. '사람'이란 사회의 부속품처럼 정해진 길을 왕래하는 역할에 충실히 임하고 불합리한 일에도 '당'의 말이라면 철썩같이 믿어주는 미덕을 갖춘 인간만이 적합한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진다. '빅 브라더'의 눈과 귀는 천지사방에 깔려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모난 행동을 할 수 없는 사회, 그런 사회가 바로 공산주의 혁명에 성공한 오세아니가 꿈꾸는 세계이다.  


주인공 윈스턴은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사회가 과연 진실을 이야기하는가에 의문을 품는다. 그의 온전한 생각이 표현된다면, 직장 동료를 비롯한 어떤 사람이 자신을 밀고할테고 자신도 증발된 사람들처럼 어디론가 끌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임을 알기에 항상 사회에 동조하는 듯한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그가 하는 생각, 진실을 찾고자 하는 행위, 사회의 부조리로부터 오는 이질감 등 모든 것을 억제하고 감추는 가면은 그의 일상이 된다. 그러나 아무리 완벽한 위장을 한다고 해도 없는 것이 아니므로 윈스턴의 이적행위는 꼬리를 밟힌다. 


사람으로서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여지는 생각의 자유, 사랑의 자유, 행동의 자유는 이 무채색 사회에서는 적대행위에 불과하며 '프롤레타리아에게 희망이 있다'는 표어는 프롤레타리아를 무지로 몰아 넣는 정부 정책으로 인해 '희망'을 잃는다. 오세아니아라는 국가에 속한 구성원들은 그저 국가의 존재와 위정자들의 지배를 원활히 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기능 외에는 모든 것을 차단당한다. 


윈스턴의 자신의 회색 빛깔의 삶 속에서 진실과 사랑을 추구했다. 당국이 말을 바꾼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그 흔적을 찾는 행위조차 국가반역죄에 해당하는 사회에서 윈스턴이 실행한 '인간의 삶'은 반역죄에 해당하는 항목이었기 때문에, 생각의 자유와 사랑의 자유의 실천은 결국 윈스턴을파국으로 몬다. 윈스턴의 착각 속에(정확히 말하자면 윈스턴을 착각하게끔 유도한 것이겠지만)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다고 여겼던 오브라이언은 사상경찰이었으며 윈스턴과 그의 연인은 체포된다. 체포된 윈스턴에게 주어진 정신적 육체적 고문은 윈스턴이 품었던 빅브라더의 사회에 대한 의구심을 탈색시키고 윈스턴 자신이 빅브라더의 맹신자가 되고 윈스턴으로 하여금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하게끔 만든다. 그 어리석음이란 오브라이언을 믿었다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가면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것도 아니며 단지 빅브라더가 세운 유토피아에서 자신이 가졌던 의구심이 얼마나 부끄럽고 부당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윈스턴은 그 자신으로서가 아니라 개조된 정신상태로 최후를 맞는다. 공산주의를 찬양하고 빅브라더를 숭배하는 그런 상태가 된 후에야 죽음이 허락된 것이다. 





<1984>, 세 번째 이 책을 읽었는데 처음은 너무 어린 나이에 읽어 제대로 기억조차 하지 못했으며 두 번째 읽었을 때는 과거의 기억을 되짚는다는 느낌이 들었다면 이번 독서는 인간 사회가 잘못된 길에 들어섰을 때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운 사회로 치달을 수 있는지를 절감하며 읽게 됐다. 현대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어느 정도의 공산주의적 요소를 함유하고 있다. 이 정도를 조율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의 과제인데 자칫 공산주의적 요소가 강하게 또는 절대적으로 지배하게 된다면 그 사회는 <1984>에 그려진 회색보다 더 어두운 세상을 초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가 누리는 대부분의 자유는 의무를 수반한 자유이다. 상대방과 사회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 조절되는 자유이다. 법이나 도덕에 의해 규제되는 자유의 범위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누구나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고 다른 의견을 피력할 수 있으며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한 행동에 나설 수도 있다. 국민에 의해 존재하는 정부가 지나치게 국민을 억압하는 것에 대해 저항할 수 있어야 하고 시민의 자유가 축소되는 것들에 대해 경각심을 유지해야 한다. 


인간의 유구한 역사는 우리 인류가 진보해 왔음을 보여준다. 지금 우리가 갖춘 국가사회적 체계가 최선이라고 말할 순 없을지라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진화해 온 형태라 볼 수 있다. 근시안적인 접근이 아닌 거시적 흐름으로 본다면 1세기 후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는 현재의 사회형태와 다른 모습의 사회가 만들어져 있을 것이라 추측한다. 그 새로운 사회의 모습은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면서도 인간 자유의 보장이 강화된 형태이길 기대한다. 


고전으로서의 위치 뿐 아니라 사회가 그릇된 방향으로 흘러갔을 때 사회가 직면하게 될 디스토피아의 형태를 간접적으로 볼 수 있는 좋은 책으로써 <1984>를 읽길 추천하고 싶다. 


* 겉표지에 보이는 매서운 눈이 항상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해보면 소름 돋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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