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브 경제학 - 경제를 움직이는 입소문의 힘
로버트 J. 실러 지음, 박슬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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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는 특정 상황이나 인물들을 통해 전염력을 획득하고 사회전반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가곤 한다. 이야기는 그 진위성과 별개로 커다란 파급력을 띠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경제학의 측면에도 마찬가지로 작동한다. '내러티브 경제학'은 전염성 강한 대중적인 이야기가 대중의 경제적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대중 내러티브의 전염적 확산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효과적으로 적용된다면 경제 사건의 예측과 대비를 도울 수 있다.

'내러티브(narrative)'는 보통 '이야기(story)'와 동의어로 쓰이는데 저자 '로버트 쉴러'가 <내러티브 경제학>에서 사용하는 내러티브는 "특정 사회나 역사적 시기 등을 설명 또는 정당화하는 서술을 할 때 사용되는 이야기나 표현"을 의미한다. 로버트 쉴러는 내러티브 경제학이란 용어를 사용하는데 있어 다음의 두 가지 요소에 집중하고, 이야기가 경제학에 미치는 영향력을 살펴보고 이를 학문적으로 규명하고자 한다.
1. 말로 전해지며 이야기 형식을 띤 아이디어의 전염
2. 전염성 강한 이야기를 새로 창조하거나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를 널리 확산시키고자 하는 노력





<내러티브 경제학>은 총 4부로 구성돼 있으며 각각에서 내러티브 경제학의 시작, 토대, 영속성, 그리고 미래를 조명한다.


1부 내러티브 경제학의 시작 

얼마전 비트코인 열풍이 세계를 휩쓸었다. 2009년 '사토시 나카모토'가 발표한 <비트코인 :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한 전자화폐 시스템>, 이 짧은 논문은 국가와 금융권으로부터의 자유를 표방하며 개인의 자율에 근거한 범세계적 화폐의 타당성과 당위성을 주장했다. 대중은 비트코인에 열광했고 아무런 실체도 없는 비트코인 열풍은 과열되어 비트코인의 가치가 300조가 넘는 규모로 치솟기도 했다.(2021년 현재 비트코인의 시총은 1,000조에 육박한다.) 마치 17세기 네델란드의 튤립 파동을 연상케하는 비트코인 열풍의 내면을 들여다 보면 결국 대중의 내러티브에 힘입은 바가 크다. 입에서 입으로, 인터넷을 통해, SNS를 통해 전파된 비트코인 이슈는 대중의 경제적 결정을 이끌었고 비트코인이라는 가상의 가치에 매혹되게 했다. 


비트코인의 핵심 기술인 '전자서명 알고리즘'은 비트코인이 나오기 수십 년 전에 발표되었지만 당시에는 대중적 호응이나 각광을 전혀 받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해 봤을 때, '전자서명 알고리즘'과 비트코인의 차이를 만든 내러티브의 힘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경제 내러티브는 마치 전염병의 패턴과 유사한 성향을 보인다. 전염병이 발생 초기에 급격히 감염자 수를 증가시키다 정점에 이르고 회복기에 접어드는 것처럼 경제 내러티브도 초기에 급속도로 확산되어 대중의 지대한 관심을 얻는 시기를 거쳐 정점에 이르고 점차적으로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과정을 보인다. 비트코인의 예에서도 이와 유사한 패턴을 관찰할 수 있다. 


내러티브가 언제 기원했는가를 특정하기 어렵다. 또한 어떤 내러티브는 살아남고 어떤 내러티브는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원인을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내러티브가 천 년 이상 존속하고 있으며 특정 내러티브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감수성을 자극하고 기억에 오래 남는 형태를 취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2부 내러티브 경제학의 토대 

내러티브가 자신이나 타인의 행동에 경제적 이야기를 포함할 때 이것은 경제 내러티브가 된다. 따라서 경제 내러티브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의견을 접한 후 취할 수 있는 일련의 행동과 관련이 있다. 내러티브의 발생은 바이러스나 세균에서 변종이 생기는 것처럼 무작위적이지만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추적과 정량화에 어려움이 있지만, 전염성을 지니고, 사람들이 따를 수 있는 대본을 제시하고, 메시지를 반복하고, 인간적 흥미에 힘입어 전파되는 패턴을 지닌다.


대중 내러티브가 바이럴이 되어 경제적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내러티브를 깊이 이해한다면 경제적 사건과의 관련성을 모형화하고 경제 사건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경제 내러티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몇 가지 기본 명제를 알아야 한다. 

1. 내러티브는 다양한 속도와 규모로 전파된다. 

2. 중요한 경제 내러티브는 적은 양의 대화만으로도 만들어 질 수 있다. 

3. 내러티브 군집은 하나의 내러티브보다 강력하다.

4. 내러티브의 경제적 영향은 시간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  

5. 진실만으로는 잘못된 내러티브를 막을 수 없다.

6. 경제 내러티브는 반복 기회가 많을수록 전염력이 크다. 

7. 내러티브는 인간적 흥미, 정체성, 애국심 등과의 결합을 통해 번성한다. 


3부 영속적 경제 내러티브

내러티브는 전염병처럼 재발과 변이를 통해 다시 찾아오는 것으로 영구히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사건에 의해 재등장한 내러티브는 원래의 모습과 다른 특성을 지니는데 내러티브와 연관된 인물(주로 유명인)이 다르다거나 시각적 이미지 또는 핵심적인 문구가 달라지는 식이다. 내러티브의 재발은 무작위로 발생하기도 하지만 특정인(마케팅 전문가, 정치인, 소셜미디어 사용자 등)에 의해 부추겨지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경제 사건은 하나의 내러티브에 의해 좌우되기보다 수많은 내러티브(군집)의 작용이 어우러져 발생하기 때문에 그 실체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 어떤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 특정한 내러티브 군집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반대되는 입장의 내러티브 군집을 소멸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도 있고 논란을 증폭시켜 반대쪽 내러티브 군집을 강화시키는 촉매로 작동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공황과 신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대중들은 은행을 신뢰하고 규제 당국의 도덕성을 신뢰하며 은행의 다른 고객들이 한꺼번에 돈을 인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20세기 초기에 벌어진 대공황을 겪으면서 신뢰 내러티브를 앞지르는 두려움과 좌절감을 대변하는 내러티브가 자리잡게 됐다. 이후 경기는 회복되었지만 금융 위기를 비롯한 경제 위기가 도래할 때마다 20세기 초의 대공황 때 만들어졌던 부정적 내러티브는 변이된 모습으로 재등장하게 된다. 대공황 때 각인된 내러티브가 대공황을 겪었던 사람들 뿐 아니라 후대에까지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 것이다. 


다른 경제 내러티브의 예로 부동산 시장의 호황과 불황을 언급해 볼 수 있다. 부동산으로 거부가 되거나 부동산 가치가 상승해 부유해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중의 관심을 끈다. 부동산이 부를 창출한다는 내러티브가 확산됨에 따라 부동산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조차 부동산을 관심을 갖고 무리해서 매입하는 행태를 보이게 된다. 경기가 호황일 때는 부동산의 값어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했기 때문에 '부동산 가치는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며 배신하지 않으리라'는 내러티브는 더욱 더 굳어진다. 그러나 2007-2009년 세계금융위기와 경기침체와 같은 일이 발생했을 때 부동산의 가치는 급락하고 담보대출의 연체가 급증하면서 대출자들은 심각한 경제적 곤란에 놓이게 된다. 부동산 시장의 불황을 겪으면서 발생한 위기와 곤란에 대한 내러티브는 호황기에 부동산을 투자처로 삼았던 인식을 바꾸어(낮추어) 놓았고 부동산 시장 상황에 대한 대화의 빈도를 낮추었다. 



4부 내러티브 경제학의 발전 

내러티브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이라 단정할 수 없지만 과거의 전염병이 변이를 통해 새롭게 발생하듯 내러티브도 새로 유행하는 시기가 오리라 짐작할 수 있다. 과거 일어났던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다면 과거의 내러티브가 다시 부활하는 일이 생길 수 있고 과거의 내러티브의 변이가 새로운 내러티브로 등장할 수도 있다.  


내레티브는 정보기술의 발전과 문화의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전염율과 회복률이 바뀌고 내러티브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달라지게 된다. 


경제 내러티브는 이제 태동하는 분야로 학문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과학적 방법론을 포용해야 한다. 이제껏 소수의 연구에서 내러티브 경제학을 다루고 있지만, 내러티브가 사람과 사회에 밀접히 연관돼 있고 개인의 경제적 문제를 포함한 많은 결정에 관여하는 만큼 내러티브 경제학에 대한 연구는 지속될 것이며 발전될 것으로 전망(희망)한다.



인간은 무릇 이야기꾼이다. 언제나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에 둘러싸여 살고,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그런 이야기를 통해 본다. 때문에, 자신의 삶조차 그 사람을 이야기하듯이 살아가려 한다. 

- 쟝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 



PS) 본문에 언급된 '통섭'이라는 개념이 경제학에도 적용돼야 하고, 인간의 경제 활동에 영향을 끼치는 내러티브를 경제학의 분야로 끌어들여 함께 고려할 때 경제 사건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저자의 견해는 매우 흥미로웠다. 어려운 수식이나 법칙의 나열 없이 내러티브가 경제학과 어떻게 관련돼 있는가에 초점을 맞춘 전개는 나처럼 경제학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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