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모든 사람을 위한, 그리고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이진우 옮김 / 휴머니스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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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모든 사람을 위한, 그리고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가진 위명에 이끌려 오래 전부터 여러 차례 읽고자 시도했지만 번번이 완독하지 못한 채 '읽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다'는 기억만 남겼었다. 니체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하 <차라투스트라>)에 미련이 남아 니체를 읽기 위한 사전준비로써 다양한 니체 입문서를 접하면서, 니체가 남긴 언어들이 갖는 의미와 니체의 사상에 대해 조금씩 이해를 더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차라투스트라>는 여전히 어려웠고 여전히 버거웠다. 니체와 차라투스트라에 대한 욕구는 '다른 책'이라는 도피처를 택해 한동안 거리를 두게 됐다. 


니체와 <차라투스트라>를 잊고 지내다 작년 겨울에 두 권의 책을 접하면서 다시 <차라투스트라>를 읽고자 하는 동기를 얻었다. '베르너 슈텍마이어'의 <니체 입문>과 '이진우'의 <인생에 한번은 차라투스트라>는 <차라투스트라>에 담긴 니체의 의도와 사상적 핵심에 대해 보다 쉽고 간결하게 설명해주고 있었기에, 나처럼 철학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조차 니체의 생각에 발을 담궈보도록 권유하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차라투스트라>를 어떤 자세로 읽어 나가야 할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이전에 여러 차례 <차라투스트라>를 시도하며 겪었던 가장 어려웠던 점은 글의 연속성을 찾기가 어렵고 문장에 담긴 의미를 내가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가'를 모르기에 문장은 겉돌고 낱개로 부서졌다. <차라투스트라>에 담긴 문학적 요소가 위태로운 연속성을 제공해 주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5백 페이지가 넘는 책을 집중해 읽기 힘들었고 1부와 2부 언저리에서 책을 덮기 일쑤였다. 그런 경험이 몇차례 반복되면서 <차라투스트라>는 점점 더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고 다른 철학서들을 더 접한 후에야 재시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정도를 품을 따름이었다.


이런 상태에 놓여있던 내가 <차라투스트라>에 대한 재도전에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고 <차라투스트라>를 완독할 수 있었던 것은 <인생에 한번은 차라투스트라>나 <니체 입문>을 통해 얻은 몇가지 영감을 기준으로 책을 읽어나갔기 때문이다. 주관적 경험이지만 <차라투스트라>를 읽는 것조차 버거운 '나'와 같은 사람들이 조금은 편하게 <차라투스트라>를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내가 <차라투스트라>를 읽는 동안 지속적으로 염두에 뒀던 생각들을 적어보려 한다. 


일단 유명한 몇몇 단어들(초인, 권력에의 의지, 영원회귀, 마지막 인간, 우월한 인간 등)이 갖는 의의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니체가 추구하는 초인이라는 존재가 어떤 것인지, 초인이 되기 위해 인간은 어떤 과정을 겪거나 수행해야 하는지, 영원회귀는 어떻게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실존에 의미를 부여하는지, 마지막 인간과 우월한 인간의 차이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간단하게라도 스스로에게 대답할 수 있는 정도의 사전 지식을 가져야 한다. 용어에 대한 이해는 무엇보다 책을 수월하게 읽을 수 있게 해주고 집중력을 높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위에 언급한 용어들의 의미는 니체와 <차라투스트라>를 다루는 대부분의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인데, 개인적으로는 이준우의 <인생에 한번은 차라투스트라>를 추천하고 싶다. 


주인공 차라투스트라의 행동과 사고를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하다. 차라투스트라는 기존의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폐기하고 다시 창조하는 자로 간주될 수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우리가 삶에서 당연히 받아들였던 것들에 대한 회의적 사고를 지지한다. 도덕과 종교, 선과 악, 운명과 숙명, 진리와 이성, 이성과 자유 등 이미 진실이나 진리로 굳어져 버린 모든 것들을 되돌아보고 재평가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본다. 현실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든, 선을 베푸는 사람이든,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이든, 차라투스트라의 시선에서 이들은 모두 천민이요, 짐승에 가까운 인간들이다. 정신적인 부분을 비롯해 주어진 것들에 만족하고 순응하며 지내는 모든 것들은 비난받아 마땅한 대상이 된다. 차라투스트라는 주체적으로 생각/사유하고 현재를 경멸하고 더 나은 경지에 이르고자 끊임없이 노력/투쟁하는 자를 높게 평가한다. 


차라투스트라에게 고독과 고통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더 전진하기 위한 필수재다. 차라투스트라는 인간을 극복돼야 할 존재로 바라봤고, 보다 나은 존재(보다 나은 세상)가 되고자 하는 굳은 의지로 현재를 경멸하고 반성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철저한 고독에서 비롯된 뿌리 깊은 사유를 통해 가능하고 고통을 동반하는 과정이다. 차라투스트라가 겪는 고통은 새로운 것을 잉태하는 생성의 고통이기에 희열을 동반한다. 




이제껏 몇 번이나 <차라투스트라>를 시도했는지 모르겠다. 이제서야 <차라투스트라>를 완독하고 안에 담긴 일부를 얻은 기분을 느끼게 됐지만 <차라투스트라>를 덮자 마자 다시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차라투스트라>를 아주 천천히, 하루 1장 가량의 분량을 소화하며 읽어나가면 이번에 발견하지 못한 더 많은 의미를 헤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차라투스트라>를 읽으며 <차라투스트라> 이전의 니체의 저작을 조금 더 접해보고 싶다. 


니체도 어렵고 <차라투스트라>도 어렵다는 점에 심히 공감한다. 그러나 약간의 사전준비를 거친다면 꽤 흥미롭고 꽤 의미있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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