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사 - 볼가강에서 몽골까지
피터 B. 골든 지음, 이주엽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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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롯해 세계사에 관심을 갖는 많은 독자들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는 아닐지라도 인류가 지나온 길을 대략적으로라도 추적하고픈 욕심을 품을 것이다. 인류의 조상이 어디인지까지 거슬러 오르지 않더라도 대략 3천 년(기원전 1천 년부터) 정도의 세월을 거치며 인간이 행하고 이룩한 굵직굵직한 발자취들을 따라가는 것만으로 인류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반복되는 역사의 오점들을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많은 지성들이 언급했다시피 우리가 읽는 역사는 승자 중심의 기록이며 권력자와 역사가의 입김이 가미된 가공품이다. 축적된 기록이 방대할수록 여기서 파생되는 저작 또한 증대되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게 되는데 그런 점에서 서양을 대표하는 로마사와 동양을 대표하는 중국사가 가장 많이 연구되고 다양한 저작이 쏟아져 나오는 듯 보인다. 반면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등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세계사의 변방으로 취급되고 자주 언급되는 순간조차 로마사와 중국사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로 한정된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중앙아시아사>에서 언급되는 중앙아시아는 몽골 초원과 만주에서부터 볼가강에 이른는 지역이며 역사적으로 다양한 문화가 만나 교차하는 가교 역활을 수행했고 로마, 페르시아, 그리고 중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지역이다. 그럼에도 내 독서와 공부의 부족으로 인해 중앙아시아의 역사에 관한 개괄적 이해가 크게 부족했는데  <중앙아시아사>라는 책을 접하며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된 것을 좋은 기회이자 행운이라 생각한다. 


<중앙아시아사>는 총 9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유목민의 기원에서부터 현재  중앙아시아의 상황에 이르는 광대한 역사를 축약해 다루고 있다.


유목민의 기원에 대해서는 학자 간 의견이 분분하고 그 시기 또한 불분명하다. 그러나 대략 기원전 4000년경에는 중앙아시아 지역에 상당수의 유목민이 활동한 것으로 보여진다. 유목민은 주로 씨족이나 부족단위로 구성되어 말과 양 같은 가축을 거느리고 계절과 환경에 따라 이동했다. 본래 식용으로 사육되던 말이 이동수단과 전투수단으로 발전하면서 유목민의 기마술은 크게 발전했다. 한정된 초지를 두고 유목민 집단 사이의 갈등에서 밀리거나 유목생활을 더이상 영위할 수 없는 부족은 오아시스 주변 등에 발전한 도시에 정주하게 됐다. 유목민과 정주민은 교역을 통해 서로에게 이득이 되기도 했지만 서로를 침략하는 전쟁을 치루기도 했다. 중앙아시아의 역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이들 유목민과 정주민 사이의 영향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은 뛰어난 기마술을 갖춘 유능한 전사집단이었다.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의 키루스와 그의 후손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중앙아시아의 서부 지역을 복속시키기도 했지만 절대적 지배권을 행사하지는 못했다. 기원전 3세기에 몽골에서 출현한 흉노는 주변의 유목민들을 병합하거나 몰아내고 중국제국과 대치했다. 흉노에 밀려 서쪽으로 이동한 유목민족은 이후 유라시아의 전역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흉노는 지속적인 정복활동을 통해 지배영역을 넓혀 나갔지만 기원전 1세기 중반에 이르자 강력한 중앙 행정체제가 부재한 느슨한 부족연맹 형태로 존속하던 흉노 제국은 한제국과의 끊임없는 분쟁과 내부분열로 세력이 약화되고 분열되었다. 결과적으로 흉노의 흥망은 몽골과 중국 변경 지역의 유목민들을 서쪽으로 이주하게 만들었다. 흉노에서 파생됐다 여겨지는 훈족이 서방으로 이동하면서 기존의 서방 유목민족인 고트족과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촉발했고 5세기 서로마제국의 멸망에 기여한다(저자 피터 B 골든은 훈족이 여느 저서에 쓰인 것과 달리 그리 흉폭하지도 않았고 로마제국의 쇠망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고 기술한다.).


한제국과 흉노의 쇠망 후 흉노가 지배하던 지역에 북위, 유연, 헤프탈이 등장해 세를 과시했으나 6세기 중엽 등장한 돌궐(Turk, 투르크)에 의해 패망한다. 돌궐은 만주에서 흑해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정복했으며 최초로 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유라시아 횡단국가를 건설했다. 돌궐 제국이 팽창해 유럽에 가까워지면서 비잔티움 제국과 사산왕조 페르시아와 국경을 맞대게 되었으며 이 세 제국은 서로를 견제하고 경계하였다. 돌궐 제국이 장악한 광대한 영토는 수많은 부족 집단의 연맹체제로 유지됐는데 부족들로부터 지속적인 충성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공물과 전리품이 필요했고 잦은 반란으로 인해 막대한 비용이 지출되었다. 돌궐 제국의 성근 부족연맹은 내분이 심했고 7세기 당나라의 부상으로 돌궐에 대한 압박이 거세지자 돌궐 제국은 크게 쇠퇴하였다. 7세기 말 돌궐 제2제국이 힘을 얻었으나 오래가지 못하고 8세기 중엽 위구르인에 의해 패망하였다. 위구르 제국은 약 1세기 가량(7세기 중엽에서 9세기 중엽까지) 돌궐의 영역을 통치하며 쇠약해진 당나라를 수탈했는데 9세기 중엽 키르키즈인에 의해 멸망했다. 


7세기 무함마드가 전파한 이슬람교는 급격히 세를 확산해 중동을 넘어 중앙아시아로까지 전파되었는데 9세기에 등장한 사만 왕조는 페르시아의 학문과 문화를 계승하였으며 서돌궐이 장악하던 지역까지 지배력을 획득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슬람교가 전파되었다. 이슬람교가 널리 성행하며 중앙아시아는 투르크계와 이란계(페르시아계)가 뒤섞여 다양한 문화를 창출해 냈다. 


돌궐의 영역이였던 지역은 몽골 제국이 등장하기 전까지 다양한 세력(국가)이 등장하고 사라졌는데 사만 왕조가 몰락하자 셀주크 제국이 뒤를 이었고 11세기 말 셀주크 제국이 멸망하자 화라즘이 융성했다. 화라즘과 같은 시기 중앙아시아의 중부는 거란 족의 유민들이 세운 카라 키타이가 장악하고 있었고 보다 동쪽의 만주와 몽골 지역은 금나라가 위치했다.


11세기 몽골은 하나의 국가라기 보다 느슨한 부족 연맹으로 구성된 유목민 집단이었다. 칭기스 칸(테무진)은 1160년대에 부족장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징기스 칸이 어렸을 적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가세가 크게 기울었다.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며 성장해 용맹한 전사로 성장한 칭기스 칸의 주변으로 그를 따르는 젊은 용사들이 모였고 징기스 칸은 몽골 부족들을 하나로 묶고 씨족 부족 사회의 전통을 없애고 자신에게 복종할 군대를 양성해 제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13세기에 이르자 몽골의 세력은 거대해졌고 칭기스 칸은 사방으로 정복전쟁을 수행해 동쪽으로 고려에서 서쪽의 화라즘까지 진출하였다. 1227년 칭기스 칸이 죽은 후에도 그의 뒤를 이은 칭기스 칸의 아들들은 정복전쟁을 지속해 유럽으로는 헝가리와 폴란드까지 서아시아로는 시리아에 이르렀으며 동아시아에서는 쿠빌라이 칸이 중국까지 평정하며 원나라를 세웠다. 


몽골 제국의 팽창은 인재와 문화의 교류를 촉진했으며 국제 교류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그러나 몽골 제국은 꾸준하게 이어진 후계자들의 권력 다툼과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가진 민족들 간의 반목으로 인해 전성기의 힘을 잃고 쇠퇴해 여러개의 국가로 쪼개진다. 화약의 발달은 활과 화살에 의존하는 유목민들의 위상을 끌어 내렸다. 신무기(총)를 도입하려고 시도한 유목인들에게는 그런 류의 무기를 제조할 역량이 부족했고 구매할 여력도 없어 군비 경쟁에서 뒤쳐지게 되었다.


16세기 러시아 제국이 등장해 볼가강 유역의 칸국들을 정복하고 빠른 속도로 영토를 확장해 나가자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서쪽으로부터 압박을 받게 됐고 17세기 만주족이 중국에 청 제국을 세워 세를 키워나감에 따라 동쪽으로부터의 압박도 받게 되었다. 쇠퇴했거나 분열돼 있던 중앙 아시아의 국가(부족)은 두 제국의 확장에 저항하기 어려웠다. 러시아 제국과 청 제국이 각각 서와 동에서 팽창해 서로 조우하게 되는데 제국의 국경은 네르친스크조약(1689)과 캬흐타조약(1727)으로 확정된다.


19세기에 들어 청 제국이 내부적 혼란과 실정으로 힘을 잃어간 반면, 러시아 제국의 팽창은 멈추지 않았다. 러시아는 카자흐, 키르기즈, 투르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가니스탄 등을 침공해 서유럽과 거의 같은 크기의 중앙아시아를 정복해 엄청난 영토를 속국으로 삼았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발발하고 그 여파로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자 1917년 두 차례의 혁명을 거쳐 공산당이 집권하게 된다. 러시아 제국이 관활하던 수많은 속국(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변모하였다. 그리고 소련이 1991년 해체되면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었던 중앙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독립하게 된다.   





<중앙아시아사>는 3천 년 이상의 중앙아시아 역사를 3백 페이지 가량의 한정된 공간에 축약하고 있고, 어족에 따른 분류나 명칭이 익숙치 않아 기본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글을 읽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중앙아시아가 어떤 과정으로 성장하고 변모하였는가의 골자를 접하게 된 점은 '중앙아시아사' 자체 뿐 아니라 이후 세계사를 읽는데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유럽의 역사(로마사 등)와 중국사를 이해하는 데 중앙아시아사가 필요하듯 중앙아시아사를 이해하는 데 주변 지역의 역사의 이해가 필요함을 절감했다. 


<중앙아시아사>를 읽으며 단절된 역사의 연결고리를 발견한 듯 했고 그동안 여러 역사서를 접하면서도 뭔가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유럽과 동아시의 역사가 실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흘러왔음을 살피게 되었다. 


PS) 글을 읽고 아주 간략하게 리뷰를 작성하는 것조차 버거울정도로 광대한 역사적 사실이 산재해 있는 곳이 중앙아시아라는 점을 알았다. 책의 후반부에 나열된 수많은 참고문헌과 색인으로 이 300페이지 분량에 책에 얼마나 많은 연구가 담겨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고 <중앙아시아사>를 간략하게나마 접할 수 있었던 이번 기회가 나중에 세계사를 읽어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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