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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 그 개념의 역사
알리스터 맥그래스 엮음, 오현미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20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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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독교도가 아니다. 종교라는 측면에서 나를 돌아볼 때 똑 부러지는 어떤 신념을 가졌다기보다 불가지론자의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독교 신앙 그 개념의 역사>라는 책에 관심을 두고 읽어보게 된 것은 세계사를 공부하며 접하게 된 기독교의 영향 때문이다.
예수의 탄생을 기점으로 기원전과 기원후라는 구분이 주어졌고 4세기 초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함으로써 로마제국의 역사에 기독교가 아주 깊숙이 개입하게 됐음을 알게 됐다. 때때로 교리의 차이에 바탕을 둔 기독교도들 간의 대립은 로마제국을 위태로운 지경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천 년에 가까운 중세를 거치는 사이 유럽 대륙은 기독교로 뒤덮였으며 철학과 예술을 비롯한 모든 영역은 기독교를 제외하고 논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신의 뜻에 따른다는 허명아래 자행된 여러 차례의 십자군 원정은 동서의 갈등을 부추겼고 나중에는 원정의 의미조차 불분명해져 애궂은 희생자 수만 증가시켰다.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 종교적 타락에 대한 반동으로 루터나 칼뱅이 등장해 종교 개혁을 부르짖었고 인쇄술의 진보는 성서에 대한 대중의 접근성을 증대시켜 교단과 사제가 장악하고 있던 신의 말씀에 일반인이 다가설 수 있는 활로가 마련됐다. 성서를 해석하는 견해의 차이에 따라 교리를 달리하는 다양한 종파가 파생되었고 결국 서로의 신념을 유일한 신의 가르침이라 주장하는 교파들 간에 분쟁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대항해시대를 거치며 아메리카 대륙에 진출한 기독교 세력은 원주민들과 그들의 삶(터전, 문화, 종교 등)을 파괴하고 기독교라는 피의 성전을 고착시켰다. 현재까지도 종교 갈등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국제적 긴장감을 조성하는 주요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 같은 뿌리에서 발생된 종교들 간에 더욱 극명한 혐오를 보이는 것은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한편으로는 모르는 사람보다 변심한 연인을 더욱 증오하는 인간의 오묘한 심리를 돌아보면 그럴 수 있겠다라는 생각도 든다.
지난 이천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기독교가 세계사를 움직이는 주인공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기독교에 대한 지식은 주워들은 몇몇 단어를 넘어서지 못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어 <기독교 신앙 그 개념의 역사>를 통해 지식을 넓히고 세계사를 공부하는데 도움을 얻고자 하였다.
<기독교 신앙 그 개념의 역사>은 간략한 기독교 역사를 소개하는 것을 시작으로 믿음, 하나님, 예수, 구원, 교회, 그리고 기독교의 소망을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역사, 하나님, 예수 부분을 흥미롭게 읽었다. 그리고 모든 글의 저변에 흐르는 '믿음'이라는 측면을 곰곰히 생각해보게 됐다.
리뷰의 첫머리에 언급했다시피 난 기독교도가 아니기에 믿음이라는 측면에서 회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마치 과학자들이 빅뱅이론 이전을 설명하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듯(범인의 기준으로는 회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독교 또한 유일신 하나님의 실재를 증명하지 못하지만 '일단 있다고 믿고' 시작한다.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증명이나 토마스 아퀴나스의 원인론적 증명 등은 유명하지만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점은 기독교인들조차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이런 류의(지적설계 논증 등) 이론들이 널리 퍼지고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믿음'을 전제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기독교 신앙 그 개념의 역사>을 읽으며 더 깊이 인식하게 됐다.
소위 과학적 사고를 한다는 사람들은 현재의 지식으로 밝히지 못하는 어떤 것들, 존재하는 지식만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들에 대해 현재의 과학과 지식의 한계로 인해 봉착한 문제임을 인정하고 다가올 미래의 어느 순간에 과학과 지식이 더 발전되면서 해결할 수 있으리라 추정한다. 즉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은 지적 역량의 부족에 말미암은 것이라 간주한다. 기독교에서는 이를 믿음으로 대체할 수 있다. 즉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바를 신의 존재를 믿음으로써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양측 모두 근원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리고 양측 모두 상대방의 믿음을 인정하기 어려워 한다.
근현대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모든 종교적 영역은 과학이 대체할 것이라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과학의 발달과 함께 지식의 영역은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됐지만 여전히 설명하지 못하는 난제에 봉착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으며 과학의 빛에 가려 사라질 것으로 보이던 종교는 여전히 굳건한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믿음'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는 점을 아는 믿음.
신앙이 없는 사람으로서 <기독교 신앙 그 개념의 역사>를 온전히 이해하고 감동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기독교에 대한 영역과 기독교를 설명하는 용어들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평상시에 잘못알고 있거나 애매하게 알고 있던 용어들의 정리는 앞으로 책을 읽어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리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자주 들어본 단어인 삼위일체설은 대략적으로나마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기독교 신앙 그 개념의 역사>을 읽다보니 오히려 어려워진 부분이다. 글로써는 이해되지만 의미를 파악하기는 매우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어려운 철학적 주제를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기독교 신앙 그 개념의 역사>을 읽다보면 신앙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쓰여졌다기 보다는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견고히 하고 깊이를 더해주고자 하는 용도로 제작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종교에 상관없이 기독교가 세계사에 기여한 바가 너무 크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이어지는 독서와 세계사의 이해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에 인문서적으로서나 교양서적으로서 읽어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믿고 싶어한다. 안타깝게도 철학자들이나 과학자들이나 종교인들이나 모두가 한결같이 주장하는 바는 보이는 것이 진실된 것이라 믿는 것은 착각이란 사실이다. 보이지 않지만 있으리라는 믿음, 현재는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 보게(확인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통해 과학과 신앙은 발전해 왔다. 21세기 현재, 우리가 어느 위치에 서있는 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어떤 것을 믿는가에 따른 것이다. 아마 인간은 언제까지고 과학과 종교로 대립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그것은 상대가 그른 것이 아니라 믿음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