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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ㅣ 허밍버드 클래식 M 5
찰스 디킨스 지음, 김소영 옮김 / 허밍버드 / 2020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번개를 만들고 보관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번개로 사람을 내리치는 것은 찰나의 순간이듯, 지진을 만들고 보관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지진이 도시를 휩쓰는 것이 짧은 순간이듯, 혁명의 불씨를 만들어 키우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일단 만들어진 혁명의 불씨는 불꽃이 되고 화마가 되어 온 대지를 뒤덮었다.
찰스 디킨스는 세익스피어와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칭송받고 있으며 그의 작품은 시대를 넘어 꾸준한 사랑을 받는 스테디셀러로 유명하다. 특히 <두 도시 이야기>는 <올리버 트위스트>, <크리스마스 캐롤> 등과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두 도시 이야기>의 배경은 왕정과 귀족의 폭정에 항거해 1789년 발생한 프랑스 대혁명 전후이며, 이 혼란한 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의 굴곡진 삶을 글로써 묘사하고 있다.
결말을 제외한 대략적 줄거리를 적자면 다음과 같다.
죽을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 마네트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접한 루시와 루시의 후견인 격인 로리는 마네트 박사를 만나기 위해 파리로 향한다. 오래전 죄명도 모른 채 갑자기 끌려가 감옥에 갇힌 마네트 박사는 15년이 넘는 수형생활의 고초로 인해 기억을 잃고 정신마저 잃은 상태로 석방되어 파리의 빈민가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마네트 박사를 런던으로 데려와 지극정성으로 보살핀 결과 어느정도 기억이 돌아오고 정신병적 증상도 상당한 호전을 보였다. 오랫동안 누리지 못했던 가족과 친구들의 따뜻한 온기에 마네트 박사의 삶은 그가 마땅히 누렸어야 할 행복을 늦게나마 되찾은 것 같았고 루시가 다네이와 결혼해 가정을 꾸리면서 마네트 가족의 행복은 더욱 풍성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 전야에 프랑스로부터 다네이에게 날아온 한 통의 편지는 이 가족을 깊은 수렁으로 이끈다. 현명하고 정의로운 다네이는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시민'의 도움을 외면할 수 없어 파리로 향하게 되고 그가 예상치 못했던 곤란에 빠지면서 마네트 박사와 루시까지 휘말리게 된다. 다네이는 프랑스 귀족 출신이라는 신분 자체가 죄명이 되어 사형선고를 앞두게 됐고 다네이의 위기를 알고 달려온 마네트 박사와 루시 또한 흉흉한 파리의 분위기에 공포와 위기를 느낀다.
다행스럽게도 마네트 박사와 다네이의 곁에는 그들을 믿고 지지하는 로리와 같은 친구가 도움의 손을 내밀었으며 루시를 사랑하지만 자신의 조건이 좋지 못한 이유로 그녀에게 친구로 남기를 택한 카턴 같은 비범한 인물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상황은 녹녹치 않았다. 그동안 압제에 시달렸던 시민 계급의 분노는 상상을 초월했고 그들의 자행하는 온갖 폭력행위는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다네이의 목숨이 언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긴박한 상황에서 마네트, 로리, 카턴 등은 각자의 능력을 활용해 다네이의 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두 도시 이야기>를 처음 펼쳤을 때는 여느 재미있는 소설일 것이라 지레짐작했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나가면서 내가 경솔한 생각을 품었음을 여실히 깨달았고 왜 이 책이 2억 부나 팔렸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두 도시 이야기>에 담긴 찰스 디킨스의 문장은 객관적 묘사를 담고 있지만 화려하거나 장황하지 않았다. 더욱이 무거운 주제와 긴박한 상황을 다루는 순간에도 종종 등장하는 재치있는 멘트는 독자의 미소를 유도하고 자칫 긴박감 일색으로 빠질 수 있는 상황의 완급조절을 해주는 느낌이었다. 특히 '7장 도시의 나리'와 '14장 정직한 상인'은 찰스 디킨스의 재치와 해학, 그리고 풍자를 새련되게 담고 있었다.
<두 도시 이야기>의 많은 부분은 프랑스 대혁명을 앞두고 만연해 있던 위정자들의 비윤리적 폭거와 압제를 드러내고 시민들이 1789년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기까지의 과정과 이 후의 전개를 등장인물들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데 할애된다.
찰스 디킨스가 써내려간 프랑스 대혁명은 아름답지도 숭고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았으며 선과 악이란 무엇인지 정의란 무엇인지 인간의 본성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사유를 자극하고 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년, 들라크루아 작)'을 떠올리게 하던 드파르주 부인과 같은 인물을 보고 있자면 더욱 그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요구받는 기분이 든다.
보통 같은 시기에 몇 권의 책을 생각나는대로 잡아 읽는 편인데, <두 도시 아야기>는 단숨에 마지막 장까지 읽도록 자극하는 매력과 재미를 지닌 소설이었으며 재미, 긴장감 그리고 사유까지 다양한 요소를 품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몇가지 에피소드는 오래토록 기억에 남으리라 생각한다.
본문에 귀족의 마차에 치여 어린아이가 사망하는 장면이 나온다. 부패한 사회에 걸맞게 가해자인 후작은 되려 자신의 길이 방해받았음에 분통을 터뜨리고 말이 괜찮은지 걱정할 뿐 죽은아이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아이의 아비는 울부짖으며 항의하지만 억압과 부당함에 익숙해진 이웃들이 그의 분노를 억제시킨다. 후작이 적선하듯 죽은 아이의 애비 앞에 금화 한 닢을 던져주는데 그 아비는 금화를 보며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아이의 생명을 앗아간 귀족에게 달려들지도 못하는 분통이 어떠했을 것이며 얼마나 애달팠을 것인가. 이러한 삐뚤어진 시대의 단면을 보자면 시민들의 분노가 발산된 프랑스혁명의 당위성을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이 터지고 자유와 평등과 박애를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애국시민의 행태는 또다른 불편함을 전한다. 부당한 대우에 억눌려 있다 폭발한 혁명의 주체인 시민들이 새로운 기득권이 되어 자신들 또한 부당함을 행사하는 데 거리낌을 느끼지 않게 된다. 다네이가 자신에게 호의를 표시하며 눈물을 흘리고 포옹하려 달려드는 애국시민들의 모습에서 만약 이 애국시민들이 다른 물결에 휩쓸렸다면 자신의 사지를 찢기 위해 맹렬히 달려들었을 것을 상기하며 섬뜻함을 느끼는 장면은 무거운 의미를 던진다.
잘나가는 변호사 스타라이버의 조수로 등장하는 시드니 카턴이란 인물 또한 흥미로웠다. 무언가 내성적이고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를 그의 모습은 아웃사이더의 전형같이 다가오지만 그가 간직한 사랑과 사랑의 맹세는 한 치의 오점도 남기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무뚝뚝하고 불친절하고 무관심한 듯 보여지는 카턴, 그러나 그의 짤막한 말들과 말보다 훨씬 큰 의미를 선사하는 행동들을 통해 카턴이라는 인물을 굉장히 매력적으로 이끄는 것 같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는 총 3부로 구성돼 있는데 1부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들이 대부분 복선이 되어 2-3부에 나타나며, 개연성이 높은 스토리 전개로 글이 끊어지는 느낌 없이 부드럽게 이어지고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이 고조돼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등장 인물들 모두 맡은 바를 충실히 열연하고 막을 내리는 영화를 본 기분이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