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감옥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고요한숨 / 2020년 11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자인 '쓰네카와 고타로'는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다 2005년 <야시>를 통해 데뷔했다. 그 후로 많은 작품을 집필했고 <야시>, <천둥의 계절>, <금색기계>, <멸망의 정원> 등의 자품이 한국에 소개되었다. <가을의 감옥>은 2007년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에 노미네이트 된 작품이며 2008년 한국에서 발간됐다 절판된 후 독자들의 요청에 의해 재발간된 작품이다.  


<가을의 감옥>은 세 편의 단편을 담고 있다. 



가을의 감옥


그들은 매일 같은 시각에 같은 채널을 본다. 같은 대목에서 웃고 똑같은 대사를 주고받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운명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기계다.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 가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백만 번이나 반복 상영되는 영화, 그리고 거기에 나오는 엑스트라. (41 페이지, 주인공의 독백)

11월 7일에 갇혀버린 사람들, 감옥이란 말로 표현된 정해진 기간을 반복하는 사람들인 리플레이어가 사는 세상을 그린 소설이다. 만약 내 삶이 이런 반복이라면 나는 어떤 느낌이 들까. 소설에는 11월 7일이라는 시간이 주어졌지만 만약 내 인생 자체가 갇힌 감옥처럼 반복되는 것이라면 또 어떨 것인가. 윤회사상에 등장하는 반복은 같은 시대를 다른 인간 혹은 생물의 몸을 빌어 사는 것인가 아니면 앞으로 전진하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 이루어지는 생사의 고뇌인가. 우리가 사는 인생이 니체가 말한 영혼회귀라면 우리네 삶은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어떤 이는 더 열심히, 어떤 이는 초연하게 살아간다. 만약 내 삶이 무한히 반복되는 중인데 내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라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자칫 허무주의로 빠져들 수 있지만, 인식하지 못한다는 장점을 빌어 더 열심히 살아보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신의집


세계로부터 독립된 공간을 점유하는 집, 공간을 초월해 한 곳에 2ㅡ3일 머문 후 전혀 다른 곳으로 전이되는 집. 일 년이면 백 곳이 넘는 정해진 위치를 순회하는 집. 소수의 사람들만 그 집을 볼 수 있으며 들어갈 수 있다. 그 집이 점유한 공간은 적어도 한 사람은 남기를 허용한다. 그 집에 남은 마지막 사람은 외부를 지각할 수 있지만 외부로 넘어갈 수  없다. 자신이 탈출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집으로 불러들인 후 자신이 먼저 빠져나가야 한다. 이런 집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내가 그 집의 주인공이라면 어떨까.


무고한 누군가를 유혹해 나의 자리를 대신할 희생양으로 삼게 될까 아니라면 운명으로 여겨 겸허히 받아들일까. 만약 그 시간이 일 년 가량으로 정해져 있고 바통을 받아 줄 후보자가 기다리고 있다면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다.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그동안 미뤄왔던 책들을 싸들고 들어가 읽고 싶다. 



환상은 밤에 자란다

그건 아주 중요한 점이야. 본인만 보느냐 남들도 보느냐 하는 것은. (177페이지, 주인공의 친구가)

그는 죽을 때까지 그의 독방에 같히고 나는 죽을 때까지 나의 독방에 갇혀 있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저렇게 한심한 대사를 뱉어낼 수 있는 것이다. (206페이지, 과거 연인의 고민을 듣고)

초능력이라고 표현해야 할 남다른 능력을 가진 소녀, 리오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창조해 보여줄 수 있다. 단지 보여주는 것일 뿐 물체의 성질을 실재로 바꾸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가 바꿔 보여준 것들에 두려워하고 행복해하고 위안을 얻기도 한다. 리오는 자신의 능력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그녀의 능력을 원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잠시 인생을 생각해보면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어떤 의미였고 현재 나와 무엇을 주고받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철학자들의 깊은 고뇌를 따르지 못하지만 플라톤이 남긴 '동굴의 우상'은 우리가 삶을 관조하는 태도에 대한 가르침을 남긴다. 우리가 보는 것은 보편하게 실존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만든 현상에 불과한가. 내가 진실이라 믿는 바가 과연 올바른 것인가에 대한 의문 또한 항시 주어지는 것 같다.  




오래전 '로빈 쿡' 소설을 한창 읽던 때가 생각났다. 매니아라고 말하긴 부족하지만 나 또한 '로빈 쿡'의 팬이었다. 흥미를 갖고 수십 편의 '로빈 쿡'을 읽었는데 그의 작품들에 담긴 공통된 성질, 객관적이며 전문적이고 개연성이 훌륭한, 그리고 대부분 죄인의 전모가 밝혀지는 투명한 결론 등이 나를 자극했다고 생각한다.


<가을의 감옥>에 담긴 저자의 성향에서도 많은 독자들을 매혹할 것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겨우 세 편을 접했을 뿐이지만 공통적으로 구체적 상상력의 구현, 거리감을 둔 성실한 묘사, 그리고 주인공에 나를 이입하는 가정(만약 나라면)의 개입 등이 존재한다. '쓰네카와 고타로'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런 공통된 감흥을 느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리고 이 감흥은 나를 비롯힐 많은 사람들에게 몰입된 상상과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라 예상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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