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적은 민주주의
가렛 존스 지음, 임상훈 옮김, 김정호 추천 / 21세기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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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대 대부분의 선진국은 민주주의 체제를 택하고 있으며 민주주의가 세계의 번영에 크게 이바지했다는데 이견을 달기 어렵다. 그러나 최근 민주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부유한 선진국에서조차 민주주의의 방향에 대한 비평의 목소리가 나오고 과연 민주주의가 기존의 방침을 고수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의 의견을 디딤돌 삼아 민주주의의 의미를 되새기고 국가의 번영을 위해 민주주의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에 대한 힌트를 얻고자 <10% 적은 민주주의>를 읽게 됐다. 


일부 학자들은 민주주의가 국부를 증대시키고 정부가 주도하는 대량학살의 위험을 감소시킨다고 말한다. 그러나 학자마다 민주주의를 정의하는 기준이 통일돼 있지 않고 민주주의의 정도를 평가하는데 이견이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효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저자 '가렛 존스'는 자신의 연구를 통해 민주주의와 경제의 상관관계는 유의미하지 않지만 민주주의와 평화의 관계는 연관성을 띤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한데 '가렛 존스'는 민주주의를 정의함에 있어 로버트 달(Robert Dahl) 교수의 의견을 따른다. 민주주의라고 평가받기 위해서는 다음의 조건들을 만족한다.

정치과정에 대한 효과적 참여
투표의 평등
공공의 이익과 합치되는 계몽화된 이해를 얻는 것
의제에 대한 최종적인 통제력을 행사하기(예: 투표)
거의 모든 성인을 포함하기 

위의 정의를 염두에 두고 현대 민주주의에 어떤 유형의 속박이 가해질 때,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를 고민한다.


경제학자 아트 래퍼(Art Laffer)가 고안한 래퍼곡선은 세율이 0에서 100으로 향할 때 세수는 뒤집어진 U자 형태를 보인다. 세율이 일정 지점을 넘는 경우 세수는 오히려 감소하다 세율이 100에 이르면 세수는 0에 수렴한다. 래퍼곡선의 가로축을 민주주의의 수준으로 삼고 세로축을 결과의 질로 대체하면 세율과 세수의 관계와 유사한 경향을 띠는 그래프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저자의 주장의 요체이다.

저자가 차용한 '민주주의 래퍼곡선'에 따르자면 민주주의가 일정수준에 이를 때까지는 경제를 성장시키고 시민의 이익을 증대시키지만 특정 지점을 지나게 되면 오히려 경제성장률과 시민의 이익은 저하된다. 민주주의도 한계효용의 법칙을 따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발전시키고자 할 때 소모되는 비용은 커지는 반면 효용가치가 저하된다.


정치인들이 공공의 선(이익)을 위해 움직인다는 착각은 순진한 기대에 불과하다. 정치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재선에 성공하여 자신의 지위를 이어가는데 있다. 연구들에 따르면 객관적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정책을 지지하던 정치가들도 선거 직전에는 다른 방향으로 선회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6년 임기의 상원이였던 힐러리 클린턴은 처음 4년은 자유무역을 옹호하는데 표를 행사했지만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후기 2년 동안은 보호무역을 옹호했다. 정치가들은 선거가 임박할수록 장기적 관점에서 경제 번영을 생각하는 정책보다 장기적으로 무익하거나 해가 될 수 있을지라도 선거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지지한다. 자유무역과 보호무역, 노동 시장의 자유와 규제, 환율 정책 등 대부분의 정책이 같은 맥락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정치인들의 보여주기식 태도와 표를 좇는 정책의 추진은 정치인의 임기와 연관이 깊고 정치인의 임기를 4년이나 6년 이상으로 연장하는 것이 발의된 정책의 질을 높이고 장기적으로 유익한 정책의 추진을 독려할 수 있다.(저자가 미국인이고 미하원의원의 임기는 2년이다.)


국가의 번영을 위해서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부여해야 한다. 중앙은행은 화폐를 유통하거나 금리의 변화를 통해 국가가 낮은 인플레이션의 안정된 경제상태를 유지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중앙은행이 정부에 의존하는 형태는 정부지도자들의 입맛에 맞는 경제정책을 따라 국가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 중앙은행의 장과 구성원들이 민주주의적 선출에 의존하지 않고 정부에 의해 구속되지 않으며 긴 임기가 보장되는 전문가로 구성될 때 효율적으로 가동되어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다. 


특정 기관이나 부서의 독립성이란 말은 선출직보다 임명직을 옹호하며 정치와 민주주의로부터의 거리를 의미한다. 중앙은행과 마찬가지로 사법부도 정치(민주주의)로부터 독립적이여야 한다. 사법부를 이끄는 판사들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되어 가능한 합법적인 판결을 내려야한다. 여기에 정치나 민주주의가 개입하면 판결은 일관성을 잃고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여 엉뚱한 길로 빠지게 된다. 사법부의 독립성은 경제적 자유(재산권의 안정성, 정부의 가벼운 규제, 적절한 수준의 국가 소유)를 불러와 국가의 번영을 예측하는 지표가 될 수 있다. 


민주주의의의 시초로 여겨지는 아테네의 참정권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참정권은 시민권을 지닌 소수의 성인 남자에게만 주어졌으며 이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수준의 지혜를 갖추었음을 전제하고 있다. 프랑스혁명으로부터 2세기가 넘게 지나는 동안 민주주의의 성장은 참정권의 확대와 연결되어 진행됐고 그로인해 현대민주주의 하의 참정권의 범위는 매우 넓어졌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참정권의 평등은 신성불가침의 것인지 의문이 나올 수 있다. 연구들은 학력에 따라 정치에 대한 관심과 이해수준이 다르다는 것과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들은 전문가의 견해와 반대되는 정책을 지지하는 경향이 높음을 보여준다. 몇몇 나라들은 지적장애가 있거나 정신 건강상의 문제가 있는 자들의 투표권을 배제한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는 물론 그 사람들이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시민은 합당한 권리를 영위하게 해주는 정부를 원한다. 그런 정부를 꾸리기 위해서는 현명한 통치자를 필요로한다. 이것은 유권자에게 현명한 통치자를 선발하기 위한 지적 수준이 필요함을 방증한다. 과거 신문과 텔레비젼에 의존했던 정보의 전달은 온라인 매체로 대체되고 있다. SNS(social network service) 등을 통한 무분별한 정보의 방출은 진실과 거짓이 혼합된 형태로 나타나 순진한 시민들을 선동하는 용도로 악용될 수 있다. 정치인들 또한 메신저와 SNS로 사람들을 선동하기도 하는데 어떤 정보를 맞아 그것의 진위여부와 장단점을 파악하는 것은 유권자들에게 필요한 덕목이며 이를 위해서는 유권자들의 지적 능력이 높아야 한다. 


현대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가 아닌 대의 민주주의 형태이다. 시민에 의해 선출된 정치인이 의회에 모여 정책을 입안하고 결정한다. 소수의 정치인은 이타적 마음으로 공공의 이익에 복무하겠지만 다수의 정치인은 자리 보전 혹은 다음 단계로의 승진이 주된 관심사이다. 정치인들은 선심예산(특정 정치인에게 도움이 되도록 표적 지출을 하는 것)을 써서 로그롤링(logrolling, 의원들이 각자가 지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서로 짜고 돕는 것)을 지원한다. 즉 서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정책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치인을 선출한 시민들은 이 사실에 경악할 수 있겠으나 이런 로그롤링을 통해 정치 집단이 장기적으로 자리잡게 되면  오히려 국가에 필요한 중장기적인 정책이 성립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은 아이러니라 할 수 있겠다. 유권자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이 정치적 거래가 되려 국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정책을 창출해내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누구나 인정하는 선진국이다. 최저소득, 기대수명, 경제성장 면에서 세계의 선두그룹에 속함에도 민주주의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않는 독특한 국가이다. 정치는 인민행동당(People's Action Party) 1당 체제와 마찬가지고 정부가 언론을 장악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민주주의 점수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현저하게 낮지만 기근이나 대량 학살을 불러올 정도로 심각하진 않다. 수치로 환산하자면 부유한 민주주의 국가들에 비해 대략 50%가량 모자란 민주주의 수준을 갖고 있다. 어떻게 싱가포르는 반(半)민주주의로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따른다. 


상가포르의 부상을 논함에 있어 리관유(Lee Kuan Yew, 1959부터 1990까지 집권)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리콴유는 '선출된 정부는 이 정부를 선택한 국민만큼만 훌륭할 수 있다'고 말했고 국민의 수준이 낮은 상태에서는 일반적 민주주의 체제를 고수하기 보다 국민의 수준을 높여줄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리콴유는 독재에 가까운 권력을 행사하며 싱가포르의 경제수준과 시민들의 지적 수준을 끌어올렸다. 


현재 싱가포르는 국민과 정치인은 똑똑하고 상당히 독립적인 사법체계를 갖고 있으며  중앙은행은 유권자들과 격리돼 있고 엘리트 정치인들의 임기는 상당히 길다. 인민행동당은 현실적으로 효과적인 정치를 지양하는데(보여주기 식의 정치가 아닌), 이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민주주의와 다른 모습이다.


국가와 사회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래퍼 곡선에서 가장 합리적인 지점이 어디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단순히 민주주의를 발전시킨다고해서 번영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현대민주주의를 일부 양보함으로써 더 나은 미래를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인 '가렛 존스'는 정치인들의 긴 임기, 중앙은행과 사법기관의 독립성 유지, 그리고 지식이 많은 유권자에게 유권자의 권리를 조금 더 양도함으로써 더 큰 번영을 누릴 수 있다고 밝힌다.


주권자들에게 최고의 권력을 주는 것보다 그들에게 최상의 성과를 줄 수 있는 것이 더 이상적일 수 있음을 견지해야 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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