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만지다 - 삶이 물리학을 만나는 순간들
권재술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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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을 받아보고 표지를 손바닥으로 여러번 쓸어보았다. 속표지를 보고 머리말을 보고 챕터를 확인하면서 책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리, 우주의 진리를 찾는 학문을 소개하는 책의 표지가 너무 서정적이고 포근한 느낌을 줘, 리뷰의 첫머리에 적지 않을 수 없었다. 


색깔이 맘을 흔든 것과 별개로 물리에 대한 토막지식이라도 배우고자 읽는 책이기에 내용을 찬찬히 읽어나갔다. <우주를 만지다>는 총 4개의 챕터(별 하나 나 하나, 원자들의 춤, 신의 주사위 놀이, 시간여행)로 구성돼었으며 각 챕터는 열 개 남짓의 소주제를 포함한다. 우주의 광대함을 논하고 현대 물리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이론과 물리학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현대 물리학이 다다른 수준을 설명한다. 


소주제는 우주의 생성과 변화, 원자, 양자역학, 상대성 이론 등 사람들이 궁금해 할만한 것들로 이뤄졌으며, 먼저 해당 소주제에 대한 물리적 지식을 쉽고 편하게 전달한 후 그 지식이 갖는 학술적 의미를 부연설명한다. 소주제에 대한 과학적 영역의 설명이 끝나면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여담이 이어지고 마지막에 해당 주제를 모티브로 한 '시(詩)'를 삽입해 놓았다. 어쩌면 저자 권재술이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물리적 지식이 아닌 각 후반부에 놓인 철학적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우주의 광대함과 초연함을 전하는 부분에서 겸손을, 광학과 양자역학을 전하는 부분에서 진리와 실존의 의미을, 그리고 물리법칙의 견고함을 전하는 부분에서 질서를 생각하게 됐다.  


자칫 어려울 수 있는 주제에 대한 편안한 설명도 빠짐없이 등장한다. 교단에 선 저자가 학생의 이해를 돕기 위해 노력하듯 이해하기 쉬운 예로 어려운 주제를 쉽게 풀어 놓는다. 예를들어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설명하는데 다음의 예시를 사용한다. 

어머니가 딸이 무엇을 먹고 싶은지 알기 위해서 "무엇을 먹고 싶니?" 이렇게 물었다고 하자. 아이는 원래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었는데 그러면 야단맞을 것 같아 "우유!"라고 대답해 버린다. 그러면 어머니가 딸의 마음을 제대로 알아낸 걸까? 아니다. 관찰 행위 자체가 그 대상을 교란해서 실상과는 다른 것을 관찰하게 한 것이다. 이런 교란을 적게 하려면 아주 미약하게 관찰해야 한다. 그 사람에게 가까이 가지도 말고 말을 걸지도 말고 아주 몰래 관찰해야 한다. 그러면 관찰 대상을 교란하지는 않지만 실상을 알기는 더 어려워진다. 관찰을 약하게 하면 실상을 알기 어렵고, 관찰을 강하게 하면 관찰 행위 자체가 대상을 교란해서 실상을 바꾸어 버린다. 이래저래 그 사람의 실제 상태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원리를 설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저자는 이어지는 소주제에서 불확정성의 원리를 인간의 삶과 연결짓는다. 인간의 미래는 정해지지 않은 상태인 고로 양자 중첩의 상태이다. 그러나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고 행하게 되면 이는 양자역학에서 관찰자가 관찰 행위를 통해 개입한 것처럼 특정 결과를 만든다. 즉 선택의 기록이 남겨지는 것이다. 수없이 많은 미래의 가능성이 선택이라는 행위를 통해 하나의 과거로 남게 된다. 이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선택의 연속이며 수많은 꿈을 포기해 나가는 과정임을 말해주고 있다.   


책의 후반부로 가면서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이 주를 차지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물리학과 달리 양자역학이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는 것은 너무 심오해 보였다. 온전한 이해는 못하더라도 해당 주제에 등장하는 인물과 그들이 남긴 업적의 의미(진정한 이해가 아닌 대략적인 개요일지언정)를 되새겨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게 됐다.  


현대물리학이 다루는 영역은 플랑크 길이부터 광년까지 불가해한 범위이다. 너무나 작거나 너무나 커서 확인이 불가한 영역을 초월해 그보다 훨씬 더 작거나 훨씬 더 큰 범위까지 다루는 것이다. 아마도 인간은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도 우주의 크기를 관측할 수 없으며 소립자의 크기도 직접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관념적으로 그려낼 수 있을 뿐이리라. 그러나 우주의 진리를 찾아 온 힘을 쏟는 과학자들의 노고가 헛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과학자들이 지성의 영역을 확장해 한 발 한 발 나아간 것이 우리 인류가 걸어온 길이며 앞으로 걸어갈 길이라 여기기에 <우주를 만지다>를 읽으면서 그분들에 대한 존경을 느낀다. 





권재술의 <우주를 만지다>를 읽으며 두 권이 책이 떠올랐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리사 랜들의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우주의 탄생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변천과 인류의 지적성장에 대해 설명하며, 리사 랜들의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는 현대물리학이 다루는 거시 및 미시세계에 대한 지식을 전해준다. 두 권 모두 내게는 감동적이었고 언제고 다시 읽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다. <코스모스>는 잊어버린 내용을 복습하는 마음으로,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는 이번에는 완독하고 싶다은 마음으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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