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 - 신화학의 거장 조지프 캠벨의 ‘인생과 신화’ 특강
조지프 캠벨 지음, 권영주 옮김 / 더퀘스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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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자 조지프 캠벨은 '최고의 신화 해설자'로 불리는 신화종교학자이자 비교신화학자이다.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은 조지프 캠벨이 1958년부터 1971년까지 뉴욕시 쿠퍼유니언포럼에서 강연한 내용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신화는 여러 민족과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왔다. 신화는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상징이 되었으며 문명의 발전에 기여했다. 또한 인간 사회가 유지되는 구심점 역활을 수행함으로써 도덕과 화합, 활력, 창조력을 제공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신화를 '집단의 꿈'으로 인식하고 유아기의 억압된 충동이 표출된 것으로 여겼다. 신화란 무의식적이고 강박적인 공포와 망상이 표출된 현상이기 때문에 과학의 발전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칼 융은 신화의 이미지가 인간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했다. 신화를 올바르게 해석함으로써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를 습득한다면 그의 영혼은 온전하고 풍요로워진다고 주장했다. 신화는 내적 세계와 연결되기 때문에 칼 융의 주장에 따르자면 과학으로 대체할 수 없는 존재이다.   


세계의 여러 지역, 다른 전통을 가진 문화로부터 창조된 신화가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신화가 실제 역사가 아닌 허구에서 비롯됐음을 고려한다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신화들이 갖는 유사성은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 정신, 즉 보편적 상상력이 내재돼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동서양의 대표적 종교인 불교와 기독교의 신화도 유사성을 띠고 있다. 기독교가 에덴동산을 설정하고 그곳에 선악과 나무와 뱀을 등장시키듯, 불교는 세계의 중심에 세계수 나무와 뱀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그곳을 지키는 존재로써 기독교는 두 천사를, 불교는 두 수호자를 설정한다. 뱀과 나무 그리고 영생의 정원 이미지는 불교와 기독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신 이전에 존재했던 고대 수메르 문명이나 여러 원시부족의 미술과 의례에 나타나고 있다. 신화는 실제 일어난 사건의 기록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에서 탄생했기 때문에 다양한 신화가 유사성을 보이는 것이다.


신화는 의례를 동반한다. 신화가 상상의 산물일지라도 정신에 깃들면 실존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실존의 가치를 키우고 견고히 하자면 그에 걸맞는 격식(의례)을 필요로 한다. 동물, 식물, 대지, 천체, 인간 자체 등 인간의 숭배 대상은 달랐지만 각각에 맞는 의례를 치뤘고 의례를 통해 공동체의 정체성을 높이고 결속을 다졌다.


동서양의 신화와 문화는 세대를 거치며 다른 형태로 발전해왔다. 서양의 문화가 개인의 자아실현과 개성에 초점을 맞춰 성장한 반면, 동양의 문화는 개인의 욕구를 억누르고 사회가 제시하는 조건에 자신을 맞추는 것을 미덕으로 강조한다. 신화도 동서양이 다른 형태로 발전하는데 동양의 신이 순환의 고리를 관리 감독하는 입장에 서있었다면 서양의 신은 인간의 삶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세상을 만들고 죄를 벌하는 입장에 서있다. 서양의 신은 인간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반면 동양의 신은 인간에게 스스로의 내면을 살펴 해탈하라고 권한다.


사랑과 전쟁은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다. 신화적 사랑은 인간에게 재미와 감동 뿐 아니라 교훈을 주는 경우가 많다. 신화를 전쟁의 당위성을 부여하는데 이용해 신의 의지를 실행한다는 구실로 참혹한 전쟁에서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하기도 한다. 전쟁이란 결국 승자와 패자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데 이 때 신화에서 오는 믿음은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위로가 된다. 

신화는 의식과 무의식의 상징으로 구성되는데 의식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라 할 수 있고 무의식은 개인의 내면에 존재하는 힘이라 할 수 있다. 신화를 사용하는 방향에 따라 개개인의 내면을 다스리고 사회를 결집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고 잔혹한 범죄행위나 전쟁에 대한 면피도구가 될 수 있다. 


신화는 문화와 상호적으로 작동한다. 신화가 문화의 발전 방향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문화가 신화에 깃들기도 한다. 현존하는 모든 생명체는 자연적으로 타고난 본능을 지닌다. 탄생 후에는 해당 사회가 갖는 질서에 따라 자신을 적응시켜 나간다. 특히 인간은 다른 종에 비해 미성숙한 존재로 태어나기 때문에 후천적으로 익히는 사회질서가 인간의 삶에서 지배적 위치를 가진다. 내외부로부터 지속적으로 주어지는 자극(신호)은 인간으로 하여금 반응을 요구하고 반응의 성향은 대부분 사회질서에 의존한다. 신화는 인간의 삶과 동떨어져 존재한다기 보다 '문화적으로 조건화되어 발산되는 신호의 구성체'로 볼 수 있다. 이런 패턴이 세대를 거듭해 진화할 때 문화적으로 결정된 신호에 대해 인간의 신경계에 문화적으로 각인된 반응을 초래하게 된다(생득적해발기구 - IRM, Innate Releasing Mechanism). 


현대인의 삶에 있어 신화가 제시하는 이상향이 없다는 것은 이미 증명이 되었다. 그러나 신화는 인간의 문화에 깃들어 상보적으로 성장해왔고 부모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건전한 신화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유발하고 부정적 에너지를 통제하는 신호로써 자녀세대가 발전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신화가 올바르게 작동하면 인간은 우주에 대한 경외감과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당대의 지식과 과학 그리고 신화를 접할 이들에 부합하는 세계관을 선사하고, 개인이 속한 사회의 도덕질서와 사회규범을 승인하고 각인하며 정신적 균형을 심어주어 인생을 바로 살 수 있게 도와준다


과학의 시대를 살고있는 우리와 우리의 후손에게 신화는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여러차례 언급한 바와 같이 신화는 허구의 상상물을 넘어 인류의 지혜와 인류 문화를 쌓아올린 주춧돌이었다. 신화는 사회에 맞게 진화할 것이며 진화의 방향은 특정 민족에 국한되지 않고 개인의 내면을 비추어 일깨워주는 형태를 취할 것이다.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은 여러 지역의 신화를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신화의 배경과 내용은 간략히 서술하면서 그 신화가 갖는 의미를 전달하는데 집중한다. 특히 동서양의 신화가 보이는 차이가 어떻게 문화의 차이로 이어지는가를 사회와 개인의 차원에서 살피고 있다. 저자 '조지프 캠벨'은 물질주의가 만연해 인스턴트 문화가 득세하고, 고전적 문화는 퇴보하는 사회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그는 신화와 그에 걸맞는 의식은 인류 문명의 발달과 함께 세대를 거듭하며 복잡해지고 정교해졌으며 문화을 발전을 이끌었음에 주목한다. 신화는 인류에게 종교적 의미를 넘어 가치관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신화에 깃든 선조들의 지혜를 이해함으로써 개인과 공동체의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여긴다.


르네상스 시대와 근현대를 거치며 과학이 종교를 대체하리라는 믿음이 컸던 시기가 있었고 심지어 신화와 종교의 붕괴를 예상한 학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신화와 종교는 단지 진실에 기반한 믿음이라기보다 인간 사회를 하나로 묶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더불어 문화를 만든다. 급변하는 사회와 물질만능주의에 젖어든 세계는 반동적으로 어느 때보다 신화와 종교의 역활을 필요로 하고 있다.


<다시, 신화를 만나는 시간>은 서유럽과 동양의 신화 뿐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근동과 인도의 신화 그리고 소수민족의 신화를 두루 다루고 있다. 신화에 대한 상식의 폭을 넓히고 신화가 현대인에게 제시하는 내면의 추스림에 대한 철학적 의미를 되새기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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