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바바라 몰리나르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작가는 독자의 이해를 바라지 않고, 독자는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위로를 받는다.

 

어릴 적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이라는 작품을 본 적이 있다. TV에서 지나가듯 나온 작품이었는데, 흘러내리는 시계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나는 한 번도 시계가 흘러내린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이 화가는 그 옛날에 어떻게 이런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충격이었다.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은 달리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의 신선함을 다시금 맛보게 한 작품이다. 초현실주의를 글로 쓴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단편소설집이지만,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보다 온전히 책을 느끼려 노력한 책이다. 머리가 없는 남자를 사랑하는 여성, 손이 잘린 걸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남자 등 다양한 인물이 나오지만 인물들의 이름은 한정적이다. 이름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짧은 분량의 책이지만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이해하지 못한 나를 글에 남겨두고 작가는 다음 글로 넘어가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기 바쁘다. 작가는 독자의 이해를 바라지 않기에, 작가의 의도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페이지를 넘겼다. 그런데도 답답하지 않았다. 이해하지 못한 건 그대로 남겨두어도 괜찮다는 응원을 받은 것 같달까. 글에 작가의 고독함과 불안감이 고스란히 실려 있어 차마 이해까지는 바랄 수 없다는 그 체념이 들어간 것 같기도 하다.

 

12월 마지막 주에서 1월 첫째 주로 넘어가는 그 어수선한 분위기, 무얼 했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혼란스러운 연말과 잘 어울리는 책이라 내년 이맘때쯤에도 재독하고 싶은 책이다. 누구에게 추천해야 할지 한참 고민해봤지만, 대상을 특정하기 어려운 책이다. 다만, 연말에서 연초로 이어지는 그 기간에 우울감을 느끼는 분들은 이 책을 읽어보시길 바란다. 책의 내용을 이해하긴 어렵지만 다 읽고 나면 그런 우울감은 나만 겪는 게 아니라는 묘한 안도감이 찾아오기에 한 번쯤은 읽어보셨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렁이는 음의 밤
최지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렁이는 음의 밤

 

음악에 담긴 추억이 일렁이는 밤에 읽기 좋은 책.

 

일렁이는 음의 밤은 제목대로 밤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고요하게 읽기 좋은 책이다. 짧은 분량의 책이라, 자기 전에 한 꼭지씩 읽으며 글 말미에 실린 아티스트의 음악을 들어보면 좋을 듯 하다.

 

음악에는 향수가 있다. 어떤 음악을 들을 때면, 그 시절로 돌아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얼마 전 MMA 시상식에서 엑소가 나와 으르렁무대를 할 때, 2013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 때 내가 좋아했던 사람을 그 마음 그대로 보는 기분이었다.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지만, 그 때 내가 좋아했던 마음만큼은 진짜였기에 그 시절을 회상하며 추억에 젖었다. 한동안은 엑소의 무대가 또 유튜브 알고리즘에 뜨겠지. 이처럼 음악에는 향수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각 음악에 담긴 작가님의 추억을 엿본 느낌을 받았다. 몰래 엿보기보다 허락을 받고 찬찬히, 함께 그 기억을 거닌 듯하다. 지나간 추억은 잊혀진 듯해도 음악을 통해 한순간에 나타난다. 그리고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지나간 시절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 얼굴도 모르는 작가님이지만, 책을 읽으며 곡에 담긴 작가님의 추억을 공유받은 느낌을 받았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책에 나온 음악들을 순서대로 들으며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내게 특별한 기억이 담긴 음악이 있는 사람도, 앞으로 그런 기억을 만들어가고 싶은 사람에게도 이 책을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편에서 이리가 오늘의 젊은 작가 53
윤강은 지음 / 민음사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편에서 이리가

 

살고 싶은 마음은 어떤 이유로든 폄하될 수 없다.

 

온통 눈으로 뒤덮인 한반도는 세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온실 마을의 짐꾼인 유안, 한강 구역의 짐꾼인 화린은 우연한 기회로 친구가 된다. 한강 구역 출신의 군인인 기주는 오래 전 떠난 친구 태하가 돌아오기를 바라지만 태하가 돌아오기 전 대륙군이 쳐들어오며 전쟁이 발발한다. 군인인 기주는 대륙군이 더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지만, 자신이 구한 전 대륙군인 백건과 함께 도망치는 걸 선택한다. 전쟁 중 기주는 태하를 마주하게 되는데.. 태하는 어떤 모습으로 기주를 마주하게 될까? 그리고 전쟁이 일어난 후, 유안과 화린은 어떤 걸 택하게 될지, 기주와 백건은 무사히 도망치게 될지를 직접 읽어보며 알아보기를 바란다.

 

짧은 내용의 소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곱씹어보는 매력이 있다. 디스토피아 세계꽌에서 맞서 싸우다 죽는 인물들이 나오는 소설은 여럿 봤다. 각자만의 이유로 끝까지 싸움을 포기하지 않던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 각자의 이유가 참 아름답다. 그러나 신념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게 과연 쉬울까 하는 질문을 항상 하게 되었는데 이 작품은 다르다. 피할 수 없는 전쟁을 맞닥뜨렸을 때 등장인물들이 하는 선택이 흥미롭다. 도망친다. 살고 싶은 마음이 잘못된 걸까? 개똥밭을 구르더라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는 말처럼, 생존에는 이유가 없다. 책 뒤쪽에 이소 평론가님이 쓰신 것처럼 생존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살고 싶은 마음이 폄하되지 않는 게 참 좋았다.

 

이 책이 작가님의 데뷔작인데, 첫 소설인데도 인물들의 감정선과 모든 행동이 이해가 가고 다양한 주제들은 건드려서 여운이 남았다. 작가님의 다음 작품이 더 궁금해지는 책이다. sf에 입문하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p.52) 너무나 이상했다. 교관들은 실수하지도 도피하지 않는 자만이 끝까지 살아남고, 죽는다 해도 명예롭게 죽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오직 진군하는 자에게만 미래가 있다.’ 그러니 이런 결말은 너무나 이상했다. 부당했다. 부당하게 살아남았다. 이유를 알아내야 했다. 진군하지 않고 도망친 자가 살아남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다 - 인권의 길, 박래군의 45년
박래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다

 

우리가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기 위해 피하지 말고 읽어야 하는 책.

 

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다는 인권 운동가로 한평생 살아오신 박래군 선생님이 인생을 회고하시면서 쓰신 책이다. 그냥 읽으면서 계속 울컥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삼키며 끝까지 두 눈 똑바로 뜨고 읽어야겠구나, 하는 책이었다. 유가족 협회가 왜 생겨났는지, 왜 국가적 참사는 계속 반복되고 있는지, 왜 노동자들은 정당한 대가와 쉴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지 끝없는 질문을 하며 읽었다. 사실 읽으면서 많이 고통스러웠다. 내가 알지 못했던, 알지만 제대로 깊게 알지는 못한 곳곳에서 많은 인권 유린과 탄압이 이루어진 걸 알게 되며 현실의 참혹함을 다시금 일깨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었다. 끝까지 읽어야 우리가 왜 이런 현실을 알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읽으면서 음악극 태일이 떠올랐다. 내게는 전태일 열사가 역사 속의 인물이지만, 박래군 선생님께는 이소선 어머니의 자녀이자 동지다. 그냥 추상적인,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내 옆에서 숨쉬고 있던, 실제 사람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어야 이 싸움을 끝낼 수 있을까.. 절망하시면서도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그 마음이 전해져 많이 울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잘 몰랐던 공장 노동자들과 함께 한 시위, 쌍용 해고에 맞선 시위, 학생 운동 등 정말 많은 투쟁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운동들의 원인과 전개 과정들을 낱낱이 알게 되었는데, 미디어가 정말 편향되었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굳이 찾아보지 않는 이상 누가 기사로도 뉴스로도 상세한 내용을 내보내지 않았던 운동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많은 노동자들은 단식 투쟁을 하고 올해 9월 즈음에는 노동자 한 분이 분신 투쟁을 했다는 기사를 봤다. 그러나 뉴스 한 줄이 나가지를 않았다. 사람이 죽었는데, 뉴스에도 나오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단순한 투정을 부리는 게 아니라 내가 제대로 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투쟁을 하고 시위를 한다. 내가 태어난 이 나라에서 제대로 살고 싶다는 게 그렇게 큰 소망은 아니지 않나.

 

사람이라면 당연히 바랄 수 있는 꿈인데, 그 꿈조차 제대로 펼치기 어려운 이들이 너무나도 많다. 어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우주여행을 떠났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 기사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달았다. 우주는 가더라도 서울 지하철은 못 탈 거라고. 서울교통공사는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는 게 불법이라 생각하고, 시위대를 탄압하며 휠체어를 탄 사람은 시민이 아니라 생각하기에 끌어낸다. 모두가 비판하지만 눈을 막고 귀를 막으며 입을 닫는다.

 

도대체 지하철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게 왜 그 많은 인력을 동원해서 사람들을 탄압하는 것보다 어려운 건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전장연은, 많은 인권 운동가들은 지금도 그 싸움을 이어간다. 질 걸 알면서도 투쟁을 이어간다. 언젠가는 바뀐 미래가 올 것을 알기에. 우리는 함께 해야 한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내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알기 위해서. 인권 운동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추천하지만, 인권 운동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이 책을 꼭 읽어봤으면 한다. 현실을 똑바로 보고 함께 살아갈 사회를 위해 같이 노력했으면 하기에, 모든 이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자의 기분 - 한문학자가 빚어낸 한 글자 마음사전
최다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자의 기분

 

시의적절한 단어를 사용하여 나의 감정을 내가 알아채고 스스로 어루만지기.

 

우리나라 단어 7-80센트 이상이 한자로 이루어진 한자어인데, 막상 우리는 한자를 공부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상황에 알맞은 단어를 사용하기보다, 좋다 나쁘다 힘들다 같은 쉬운 단어들로만 상황과 기분을 묘사하는 게 대부분이다.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도 정말 많지만, 우리는 기분이 좋다 나쁘다 기쁘다 정도의 간단한 단어로만 내 기분을 나타낸다. 전 세대에 걸쳐 자신의 기분을 이모지로 나타내거나, 단순한 단어로만 말한다. 내 상황과 기분에 정확한 단어를 사용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기분이 왜 안 좋은지 생각하기 보다, ‘그냥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상황을 무마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갈등을 해결하기보다 회피하고 인간 관계가 좁아지는 상황이 많아진다. 그런 상황에서 작가님은 한자를 사용하여 내 기분을 나타낼 단어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우울감이 좀 해소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자의 기분은 각 한자의 의미를 간단하게 풀어내며, 20개의 한자를 12부로 나눠서 각 주제별로 어울리는 한자에 관한 산문들을 엮은 책이다. 각 한자와 관련된 작가님의 일화를 풀어내는데, 한자 하나하나에 이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며 읽었다. 그냥 에세이로 풀어쓸 수도 있는데, 그게 아니라 한자에 어울리는 상황을 뽑아서 글로 풀어내 어떤 단어이고 어떤 한자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어서 아는 한자도 새롭게 보이는 재미를 느끼며 산문집을 읽었다. 책은 한 번 읽으면 그 자리에서 끝내야 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한자의 기분은 출근해서 하루에 한 쪽씩 읽어 나가는 재미를 느낄 법한 책이다. 꼭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내가 마음에 드는 쪽을 펼쳐 읽으면서 천천히 완독하는 성취감을 느끼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에세이가 아니라 산문집인 한자의 기분’.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기분을 느끼는 사람, 덜 외롭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기분을 말해줄 정확한 단어를 찾는 것만으로도 덜 외로울 수 있다는 작가님의 따스한 시선을 직접 느껴보시길 바라며 서평을 마무리한다.

 

46) 어둠 속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불을 밝혀주는 마음과, 어둠을 비집고 들어오려는 한 톨의 빛이라도 막아주는 마음. 두 마음은 같은 모양의 사랑이리라. 사랑은 분홍이나 빨강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흑과 세상 만물을 비추는 백으로부터 번진다.

 

62) 나에게 그런 세심의 이식은 곧 내가 한껏 어지럽힌 집을 청소하는 일인 것 같다. 청소하면서 닦아내 말갛게 된 마음은 나도 모르는 구석 자리에 꽁꽁 잘 숨겨두어야 한다. 그래야 또 생활이 너저분해지고 나면 뽀얗게 씻겨 한동안 나를 잘 운영할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

 

194) 나의 사랑은 나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것. 마찬가지로 너의 사랑은 너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고, 그러니 누군가가 나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알 방법은 마음을 꺼내어 드러낸 그 사람의 표현을 통해서뿐이다.번역되지 못한 사랑들은 마음 곳곳에서 어긋난 채로도 하염없는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