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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편에서 이리가 ㅣ 오늘의 젊은 작가 53
윤강은 지음 / 민음사 / 2025년 10월
평점 :
저편에서 이리가
살고 싶은 마음은 어떤 이유로든 폄하될 수 없다.
온통 눈으로 뒤덮인 한반도는 세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온실 마을의 짐꾼인 유안, 한강 구역의 짐꾼인 화린은 우연한 기회로 친구가 된다. 한강 구역 출신의 군인인 기주는 오래 전 떠난 친구 태하가 돌아오기를 바라지만 태하가 돌아오기 전 대륙군이 쳐들어오며 전쟁이 발발한다. 군인인 기주는 대륙군이 더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지만, 자신이 구한 전 대륙군인 백건과 함께 도망치는 걸 선택한다. 전쟁 중 기주는 태하를 마주하게 되는데.. 태하는 어떤 모습으로 기주를 마주하게 될까? 그리고 전쟁이 일어난 후, 유안과 화린은 어떤 걸 택하게 될지, 기주와 백건은 무사히 도망치게 될지를 직접 읽어보며 알아보기를 바란다.
짧은 내용의 소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곱씹어보는 매력이 있다. 디스토피아 세계꽌에서 맞서 싸우다 죽는 인물들이 나오는 소설은 여럿 봤다. 각자만의 이유로 끝까지 싸움을 포기하지 않던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 각자의 이유가 참 아름답다. 그러나 신념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게 과연 쉬울까 하는 질문을 항상 하게 되었는데 이 작품은 다르다. 피할 수 없는 전쟁을 맞닥뜨렸을 때 등장인물들이 하는 선택이 흥미롭다. 도망친다. 살고 싶은 마음이 잘못된 걸까? 개똥밭을 구르더라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는 말처럼, 생존에는 이유가 없다. 책 뒤쪽에 이소 평론가님이 쓰신 것처럼 생존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살고 싶은 마음이 폄하되지 않는 게 참 좋았다.
이 책이 작가님의 데뷔작인데, 첫 소설인데도 인물들의 감정선과 모든 행동이 이해가 가고 다양한 주제들은 건드려서 여운이 남았다. 작가님의 다음 작품이 더 궁금해지는 책이다. sf에 입문하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p.52) 너무나 이상했다. 교관들은 실수하지도 도피하지 않는 자만이 끝까지 살아남고, 죽는다 해도 명예롭게 죽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오직 진군하는 자에게만 미래가 있다.’ 그러니 이런 결말은 너무나 이상했다. 부당했다. 부당하게 살아남았다. 이유를 알아내야 했다. 진군하지 않고 도망친 자가 살아남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