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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 패러독스 - 여성폭력은 결국 남성의 문제다
잭슨 카츠 지음, 신동숙 옮김 / 갈마바람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표지부터 강렬하다. 앞을 가로 막고 있는 두 손.
절박함, 간절함, 긴박함..
익숙하지 않은 책 제목 역시 궁금증을 자아낸다.
마초 패러독스(Macho Paradox)
이에 대해서 책 서두에 친절히 설명해주고 있다. 남성성을 의미하는 스페인어인 마초의 긍정적, 부정적 의미와 패러독스라는 단어를 결합해서 이 책의 요점을 전달하고 있다. 대개의 남성들이 성차별주의에 대해서 반대의견을 내기보다는 남자들의 무리에 밀려나지 않기 위해 여성을 폭력적으로 대하거나 침묵을 방관하는 현실과 자신의 강인함을 드러내기 위해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들은 '강한 남자'가 아니라 치료를 받아야할 '환자'라고 말하고 있다.
여성폭력은 결국 남성의 문제다
여자인 내 입장에서는 놀랍지도 않은 말이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에 나오는 성범죄 사건들을 보면 당연하지도 않은 일에는 분명한 것 같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의 저자가 남자라는 것이다. 대개는 이런 문제에 대해 열을 올리는 사람은 여자들이었다. 하지만, 정작 남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책 초반에 나왔던 질문에서 그 차이를 극명하게 느낄 수 있다.
여러분은 성폭행을 당하지 않기 위해 날마다 스스로를 지키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습니까?
남학생들은 농담인지 진담인지 헷갈려면서 당황해하면서, 심지어 웃음을 터뜨린다.
반면, 여학생들은 너도나도 손을 번쩍 든다. 나 역시 생각해 보았다.
'너무 밤늦게 다니지 않기', '어두운 골목은 되도록 가지 않기' ,'옷차림을 조심한다.', '오해삼을 행동은 삼간다.' 등등
그냥 무의식적으로 하던 행동들이었는데, 이렇게 생각해보니, 이것들이 나 자신을 그런 위험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행동들이었던 것이다. 여러가지 사건 이후 여성안심귀가서비스 같은 공공서비스가 생겼지만, 실질적으로 와닿지는 않는다.
미디어에서 나오는 입에 담기도 힘든 성범죄들이 꼭 뉴스에서만 나오라는 법은 없다. 대부분의 가해자는 남성이고, 피해자는 여성이다. 물론 요즘, 역차별이라는 것도 이슈가 되곤 하지만, 절대 다수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다. 그것은 과거부터 오랜시간 지속되어 오던 것이다. 그것이 바뀐지는 고작 한세기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내가 과거가 아닌 지금 태어난 것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여전히 성범죄는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고, 그 흉악함은 날이 갈수록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사건이 터질 때만 시끌시끌하고, 그에 대한 법적 제재는 내가 피해자라고 생각하면 부족하기 그지 없다. 처벌을 받는다고 해도 송두리째 빼앗겨버린 피해자의 삶을 누가 보상할 것인가. 돈이든 뭐든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일이다. 대개 성범죄가 일어나면, 가해자의 잘못도 잘못이지만, 그런 위험에 본인을 노출한 피해자인 여성에게도 잘못이 있지 않냐는 일부 비판은 피해자에게 또 하나의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된다. 이러한 집단적인 인식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다.
이에 저자는 성폭력은 문화의 산물이며,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들의 문제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남성들이 이 문제에 대해 먼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고, 여성들과 협력하여 미래 세대들이 우리와 같은 문제를 겪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의 TED 강연이 있어서 그것도 찾아봤는데, 매우 격앙된 어조로 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전달하고 있다.
여자이지만, '페미니즘'은 나와는 먼 단어라고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페미니즘'은 좋은 어감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나도 세상이 만들어놓은 인식을 함께 하고 있었다. 책 속에서 나오는 '페미나치'라는 말은 이런 인식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자라고 해서 집이나 학교에서 차별받은 기억은 거의 없기에, 와닿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나, 내가 여자로서 사회에 나와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세상은 아직도 남성 위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스스로는부정하고 싶지만, 예기치 않은 순간 체감할 때가 있다.
일할 때는 여자남자 할 것 없이 잃는 것 같다가도, 남자들의 무의식적인 말들에서 내가 여자임을 느낀다.
왜 남자들은 그런 발언들을 서슴치 않고, 이의를 제기하는 나에게 '너무 예민한 거 아냐?'라는 반문을 던질까? 그럴 때마다 화가 난다. 내가 지금 듣고 있는 말들과 대우는 당신의 딸이나 여동생 등 가까운 사람들 또한 사회에서 겪고 있거나, 곧 겪을 일들이라고 분명하게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나라는 개인 하나가 내 주변의 모든 남자들에게 이런 말들을 하고 설득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사회적인 인식 변화가 있기 전까지는 나만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여자'로 인식될 뿐이다.
반대로, 성차별에 반대하는 남자들은 같은 남성들로부터 '게이'가 아니냐는 말들을 들을 수 있다.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정작 자신들은 이런 성범죄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1% 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이 피해자가 된다고 생각하면 어떤가. 이러한 사건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다소 무거운 주제였지만,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남자와 여자가 함께 마주해야 하고, 협력해 나가야 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여자이지만, 그릇된 시각에서 성범죄를 바라본적은 없는가 생각하게 되었다. 평소에는 남녀 평등의 교육을 받고, 그런 문화 속에서 자라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내가 어렸을 땐 여전히 남아선호사상이 남아 있었고, '여자가.....해선 안된다. ' '여자는 ...행동해야 한다.' 라는 말을 종종 듣곤 했었고, 지금도 가끔 듣는다. 그러한 말들은 여자가 남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해야하는 행동들로 보인다. 이러한 교육과 문화는 성범죄의 위험을 더 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주장처럼 이런 생각들을 남자들과 공유하며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도 있고, 나아가 남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행동한다면, 뉴스에 나오는 그런 흉악한 사건들이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물론, 여자들도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
본디 '마초'라는 말은 용기, 용맹, 명예, 정직, 긍지, 겸손, 책임 같은 품성을 겹비하고 남들의 존경을 받는 남자들을 일컬었다고 한다. 머지 않은 미래에 '마초'라는 말이 본래의 긍정적인 의미를 되찾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