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나 아렌트 - 세계 사랑으로 어둠을 밝힌 정치철학자의 삶, 국립중앙도서관 사서추천도서 ㅣ 누구나 인간 시리즈 1
알로이스 프린츠 지음, 김경연 옮김 / 이화북스 / 2019년 9월
평점 :
196.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악의 평범성’이란 단어로 우리에게 그래도 잘 알려진 한나 아렌트의 전기를 읽어보았습니다. 누군가의 일생을 전기라는 형식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그 사람의 삶을 정확히 바라보는 방법인지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이 책은 매우 흥미진진하고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의 삶을 한 줄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20세기의 초반과 중반의 세계사와 만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헐리우드 식의 영웅 스토리를 가지긴 했지만 가까이서 그를 들여다본다면(적어도 이 책에서만큼은) 세계사 굴곡을 함께 겪은 철학자가 아닐까 합니다.
부유한 유대인의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국가인 독일과의 부조화속에 유년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어머니의 절대적인 보호아래를 벗어나 하이데거와의 인연은 그를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 스스로가 말한 단순한 생존의 시간을 넘어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와 하이데거의 불꽃같은 사랑 그리고 평생에 걸친 인연은 그의 삶의 한 부분을 규정지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또한 하이데거를 통해 만나게 되는 야스퍼스와의 인연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평생 그의 든든한 후원자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
책을 읽다 보면 그는 참 강한 여자였다고 생각이 듭니다. 고생을 모르고 자란 어린시절에서 반전되어 유대인의 박해를 경험했고 미국으로 건너간 초기에는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며 그가 경험하지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삶에 대해 항상 사유하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 그리고 토론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그것이 결국 타인들과 세상에 인정을 받게 되어 그녀는 세상에 알려졌고 세상은 그녀를 여성 정치철학자로 인정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시대는 변하지만 그 사회에서 발생되는 문제 그리고 그에 대한 해결방안도 때로는 그대로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그녀가 2차대전 책임에 대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오늘날 우리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 커튼이 내려지면 ‘우린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고 외치는 속물들의 합창을 듣게 될 것이다. ”
그의 명저인 [전체주의의 기원]을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는 그 책에 대한 아주 간단한 개요만을 이야기하고 있네요. 그녀는 이 책에서 히틀러와 역사상 폭군에 대한 비교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역사적인 폭군들은 그 잔학성과는 별도로 그 동기를 찾아볼 수 있었는데 히틀러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인데요.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의 건전한 판단력이 완전한 무의미성과 대면하게 된다. 이 절대적 무의미성이 가장 끔찍하게 훈련되는 곳이 바로 강제 수용소였다. (중략) 역사적 과업의 이름으로 대량 학살을 자행하는 이런 시도는 한나 아렌트에게 너무 끔찍한 일이며 모든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근본악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근본악의 본질은 인간이 처벌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다는 데 있다.>
그는 사회의 굵직한 문제들과 마주했다. 세계 대전 중의 히틀러에 의한 유태인 학살, 미국에서 행해졌던 소위 “빨갱이 몰이”인 매카시즘, 그리고 월남전에 이르기까지 그는 세상의 모순에 대해 논쟁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그래서 대중은 열광했고 때로는 유대인들은 그녀에게 유대 민족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세상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찰과 사유에서 나오는 세계에 대한 자신의 손내밈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그녀가 결정적으로 사회와 격렬하게 반응했던 이야기는 서두에서 말했듯이 바로 하인리히에 대한 재판에 대해 쓴 글이 아닐까 한다. 잡지[뉴요커]에 실린 보고서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 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이 보고서는 발간되자 마자 유대인들의 극렬한 반대와 비판에 부딪혔습니다. 그녀에게 이 보고서의 두 가지 점에서 공격이 가해졌는데 첫 번째는 보고서에 유대인 평의회의 제3제국에서 나치협력에 대한 이야기였고 두 번째는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아이히만의 진술을 통해 유대인 공동체의 수장들이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데 일정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절망적인 상황속에서 마지막 남은 것을 구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나치와의 협력을 했다고 항변했지만 한나 아렌트는 이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더 나쁜 일을 막기 위해’ 적들과 타협한다는 것은 저항의 형식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을 진정시키고 이미 상대의 게임 규칙을 받아들였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교활한 전략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같은 나치의 지령을 받았지만 루마니아와 덴마크에서 일어난 일들을 예로 들면서 단호하고 연대적인 저항이 존재한다면 다른 가능성이 존재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두 번째로 한나 아렌트는 아돌프 아이히만을 영혼 없는 괴물로 내세우는 데 반대했습니다. 그를 그런 식으로 악마화한다면 비록 악마적 위대함일지라도 그에게 적합하지 않은 어떤 위대성을 부여할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요. 아렌트는 재판을 지켜보면서 아이히만이 악마적인 동기나 의도도 없이 악마적인 행위를 저질렀다고 판단을 한 것 같습니다. 그의 행위가 근본악이 아니라는 말은 바로 이런 점을 간파한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사실 악은 깊이가 없으며 또한 마성도 없습니다. 악이 전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것은 바로 버섯처럼 표피에서 무성하게 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깊은 곳에 있는 것은 선이며 언제나 선만이 근본적인 것입니다.” 후에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어쩌면 사유 자체가 사람이 악행을 못하도록 하거나 또는 바로 악행에 맞서는 소질을 부여하는 조건 가운데 하나일 수 있지 않을까?" 아이히만은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그녀의 삶을 따라가면서 그녀에게 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담배연기와 가시가 무성한 사람이라 생각이 들지만 담배 연기의 자욱함과 그 가시에 찔려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용기만 있다면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열고 자신의 심장까지 내어주는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이른 나이에 심근경색으로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그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고 어느 정도는 목표를 달성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이 책은 한나 아렌트라는 여성 철학자에 대한 일생을 다루고 있지만 그녀가 활약한 시대의 흐름을 움직인 사람들을 함께 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 - 실존주이 철학자 하이데거와 야스퍼스는 물론이고 평론가 발터 벤야민, 첫남편이었던 저널리스트 귄터 안더스, 두 번째 남편이자 항상 등을 기댈 수 있었던 사람이었던 하인리히 블뤼허, 소설가 매리 매카시, 생태철학자인 한스 요나스, 시온주의 대부였던 쿠르트 블루멘펠트까지 시대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재미도 있습니다. 이 책을 덮고 아렌트의 저서인 <인간의 조건>과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 도전해봐야겠습니다.
이번에 커튼이 내려지면 ‘우린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고 외치는 속물들의 합창을 듣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