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 2
오에 겐자부로 지음, 김현경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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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54

다 잘되었다! 모든 인간에게 마침내 찾아올 것이, 그를 찾아왔다.​



요즈음의 더위만큼이나 뜨겁고 외로운 소설이다.

등장인물들도 외롭고 갈팡질팡 하는 나도 외롭다.

과거를 통해 오늘을 또렷이 경고하는 문학적 선구안도 외롭다.



멸망을 경고할 수밖에 없는 예민함은 경고의 대상이다. 인물들은 가진 것이 없으며 남길 것도 없으니 가장 먼저 뛰어나갈 수 있다.



어찌저찌 읽다보니 가장 큰 두 개의 줄기로 이해의 맥을 찾는다면 ㅡ 70년대, 냉전이 극에 달하고 자연재해와 인재(핵) 모두에 노출된 일본의 사회적 결핍자들을 중심으로 읽을 것인가. 혹은 소설의 마지막에 쓰인 '다 잘되었다'는 문구가 떠올리게 하는 성경 속 천지창조 후에 '보시기에 좋았더라'와 예수의 십자가 발언 '다 이루었다'를 엮어서 볼 것인가.



결핍자들로 이루어진 자유항해단 내에서도 장애인, 연소자, 어린 여성은 또다른 결핍이다. 특히, 이나코(미성년자다)는 성의 배출구이자 식모이자 (주인공 이사나의 자폐아 아들 진)의 계모이자 주요한 결정에서는 병풍 역할을 맡지만 소설은 여성을 대변하는 역할로서 작가의 여성 서사의 한계를 들여다보는 인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당대 일본 여성상의 폭력적이자 착취적 시선을 명확히 지적하는 서사적 비극으로 볼 것인가.








주인공인 '오키 이사나'의 이 이름은 가명이다. 본명은 언급되지 않는다. 가명을 사용하는 이유로 소설 초반에선 새로운 자아, 주체적 인생을 살기로 한 그의 선택으로 그려지지만 자유항해단에 귀속되고 이나코와 관계하고 핵셸터에서 자위대의 포위전에 갇혀 있으면서도 끝내 자신의 이름을 노출 시키지 않는 서사가 보여주는 것은 회피적인 태도다. 그리고 나는 저자가 이 모습을 결코 숨기지 않았음을 봤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의 형상은 아직 각기 외따로 존재해서 둥둥 떠다닌다.



다소 인정하기는 싫지만, 극단적인 냉전 국면이 파국을 예고하던 70년대의 모습이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기후변화에 의한 종말의 초읽기를 앞둔 무책임한 세계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 소설이 홍수의 징후로 짐작하는 폭력과 성적 기만, 탈진을 외면할 수만은 없게 된다.



*이 도서는 은행나무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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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널목의 유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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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정도서ㅣ

p102 - "매춘 손님이 자진해서 나설 리도 없고 말이지."
아라이가 잔에 얼마 남지 않는 버번을 단숨에 비우고 말했다.
"사진을 보여 준들 모두 '이런 여자는 모른다.'고 잡아떼겠지."

1994년의 어느 기차역에 유령이 출몰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유령의 정체를 쫓는 것이 큰 줄거리. 카바쿠라(캬바레 + 클럽)의 여성 종업원을 둘러싼 일본 사회의 맥락을 두드려보는 데에 소설의 목적이 있다.

'정체를 쫓는다'는 의미에선 미스터리 범주 안에 든다. 독자들의 흥미나 트릭의 테크닉보다는 사회파의 본령에 치중하는 편이다. 30년 전 술집 여성의 살인사건을 다루는 경찰행정이나 언론, 여론, 민심이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여러 군데서 주장한다.

다 읽은 후에는 재미보다는... 이제 60에 가까운, 충분히 성공한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왜 써야했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사철의 지상역의 건널목에서 상반신의 여성의 사진이 찍히고 여성 잡지 편집부에 전달 된다. 몇해 전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기자 생활의 끝물(?)인 프리랜서로 일하는 마쓰다에게 이 심령 현상을 조사해보라는 편집장의 제안.

마쓰다는 심령 현상의 진위를 영매사에게 의뢰하는 한편, 이리저리 탐문을 하고 인맥이 닿는 경찰에게도 부탁한다

마쓰다는 1년 전 역 근처에서 칼에 찔린 한 여성이 엄청난 피를 흘리면서도 역 선로까지 걸어가서 생을 다했다는 것을 알게된다. 현장에서 정신을 놓은 채 발견된 살해범은 수감 중.

이 여성은 가는 데마다 가명을 쓴 호스티스. 그래서 수사는 오리무중이었으며, 직업 때문에 수사에 대한 관심도 없었다

마쓰다는 잠시 룸메이트를 했다는 '에미'라는 호스티스를 찾게 되고, 그가 정치인과 연루된 야쿠자의 손에 걸렸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 이야기에 속도가 붙는다.

사람 목숨에 값이 다르다는 걸 매일 보는 요즘이라 더 신경 쓰이는 소설이다. 작년 10월 이전에 읽었다면 이렇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을 텐데.

#건널목의유령 #다카노가즈아키 #박춘상 #황금가지 #민음사 #미스터리 #일본추리소설 #일본미스터리 #책 #독서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bookstagram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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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분 사용법 - 불안을 다스리고, 자존감을 높이는 100가지 심리 도구
사샤 바힘 지음, 이덕임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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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정도서

p98 - 도구 24
이런 내용을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기록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종이에 적는 편이 학습 효과가 더 클 수도 있다. 내 손으로 적어 내려갈 때 그 모든 허튼소리가 내 펜, 즉 내 잠재의식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된다.

100가지나 되는 '내 기분 조절 도구'를 제안하늣 이 책의 탁월한 조언 중 하나가 '적으라'이다.

실천하고 있지는 않지만... 실천했었던 언젠가를 떠올려 보면(꺼내 보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게 해주거니와,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는 지나치게 감정이 과잉 됐다거나 소극적으로 대처했던 조각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탁월한 조언이 살아남지 못했던 것은... 시간이 없다. 이 상황을 복기할 시간이 있다면, 네고왕을 보며 잠시라도 기분을 끌어올리고 싶어요. 그래도 시간이 남는다면 적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나는 시간이 없는 걸까요, 사샤 바힘 씨?

아, 사실 그건 사샤 바힘 씨는 독일의 심리상담사이고, 나는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p.s. 기분을 관리하는 데에 100가지나 되는 도구가 필요한 자본주의 시대는 참으로 괴롭구나. #질들뢰즈 #장하준 #한병철 #그들이말하지않는23가지 #안티오이디푸스 #피로사회 #자기착취 아, 이건 내가 바껴야 해결 되는 게 아니라 사회가 바껴야 해... 투쟁 투쟁 투쟁!!! 😭😭😭

#내기분사용법 #사샤바힘 #이덕임 #어크로스 #심리상담 #심리도구 #abc시즌5 #acrossbookclub #어크로스북클럽 #책 #독서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bookstagram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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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끈을 놓기 전에 - 자살의 원인부터 예방까지, 25년의 연구를 집대성한 자살에 관한 모든 것
로리 오코너 지음, 정지호 옮김, 백종우 감수 / 심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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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8 - 자살은 사회적 열세의 맥락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잦고, 갑작스러운 상실감 또는 강한 스트레스를 주는 인생의 사건이 자살에 앞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지난 주에 읽었어야 했던 책인데... 가족 장례를 연이어 두 번을 치르고나니 스케줄도 붕뜨고, 죽음에 관한 책을 읽기가 어려웠다. 언제나 죽을 것을 생각한다는 나조차도 그러했는데, 저자가 책에서 말했듯이 정작 이 책을 통해 손 내밀고 싶은 사람들이 읽기가 어려울 거라는 말이 새삼 민낯에 데인 듯 스쳐갔다.

#자살 혹은 #자살학 을 다룬 대중서는 나오면 우선 반갑다. 자살유가족의 수기마저도 접하기가 어려운데, 전문가의 글이 아닌 이상 명확한 지점을 확인하기도 어렵다.

25년을 연구했다는 저자는 친구 둘을 자살로 떠나보낸 자살 생존자이기도 하다. 자살 연구를 추천해준 교수와 한 친구. 친구는 전문가로 활동하던 시기에 떠나보냈기에 무력감과 상실감이 더 컸다고 한다.

이 책은 '왜'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골몰한다.

준비된 자살이든 충동적이거나 충격에 의한 자살 모두 하나의 이유, 하나의 원인만으로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접근과 예방시스템이 필요하고, 누구도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안전 계획을 준비해야 함을 강조한다.

여기에 더해 유가족, 생존자를 위한 사후 조치까지.

저자가 영국인이다보니 대책이나 방안이 영국의 의료체계에 맞춰져서 제시된다. 자살률 영예의 1위인데도 불구하고 정신건강을 방치하고 있으며, 자살에 대한 편견도 내버려 두는 한국의 한국인으로서 이 제언들의 맥락에 한숨만 쉬게 될 뿐이다.

저자는 자해와 자살을 동료 연구자의 표현을 빌려 '고통의 울부짖음(p126)이라고 여러번 강조하고 지적한다.

어차피 이 책의 모든 세세한 사례와 꼼꼼한 지적을 다 기억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중에 몇 가지만 꼽는다면,

- 자살은 사회적 열세의 맥락에서 발생한다
- 기분이 좋을 때 자살 행동이 발현되기 더 쉽다
- 안전 계획(긴급 상담, 지인 등)을 준비한다
- 안부를 먼저 묻는다
- 자살자나 유가족을 탓할 수 없다.

#마지막끈을놓기전에 #로리오코너 #정지호 #whenitisdarkest #roryoconnor #푸른숲 #심심 #심리학 #자살예방정책 #심리학 #책 #독서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BOOKSTAGRAM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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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노린 음모
필립 로스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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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6 - 미국에서 가장 파랗고 가장 푸르고 가장 새하얀 모든 것 위에 시커먼 하켄크로이츠가 찍혀 있었다.


이 소설은 1940년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3연임에 실패하는 바람에 미국이 2차 대전 참전을 하지 않게 되는 가상의 1940~1942년을 배경으로 한다.

2004년 발표되고 이후 트럼프 당선으로 극우주의, 선동과 파시즘 정권을 예견하며 그 양상을 치밀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격찬 받았다는데... 국가의 '주체성 상실'과 '집권 1~2년만으로도 파괴적 분열'을 촉발한다는 데서 현재의 한국과 더 가깝게 느껴진다.

p443 - '우리의 미국 지방장관'

'일본의 한국 총독'

정확하게 겹치는 이 당혹감.

p491 - 아버지는 저항을 선택했고, 랍비 벤겔스도르프는 협력을 선택했고, 몬티 삼촌은 자기 자신을 선택했다.

최초의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한 찰스 린드버그가 대통령이 되고 그는 친나치, 중립, 비참전을 모토로 삼는다.

일곱살의 필립 로스는 친나치를 표방하는 린드버그 정권 하에서 유대인인 그의 가족(부모, 형, 사촌형, 이모, 삼촌)들 각자가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견지하는 가운데서 두려움을 느끼는데...

대개 소설은 현재 사회를 배경으로 각기 다른 인물을 투입해 썼다면, 이 소설은 가상의 사회를 자전적 인물(들)을 통해 분석하고 예견하고 있다.

이 기이한 사실감, 현장감, 그리고 익숙함.

소설만이라면 '필립 로스'의 소설치고는 흥미진진하고 그답게 무서우리만치 미국적 현실감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어서 즐겁게 읽었겠지만... 불안한 긴장감이 옥죄는 듯하기도 하다.

물가는 적당히 견딜만큼 오르는 듯하지만 도처에서 폐업을 하고, 방파제 역할을 했던 단체나 기관들이 줄줄이 목숨줄을 위협받고 있으며, 말도 안되는 말들이 하나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저자의 견해에 따른다면 대공황을 건넌 미국이 극우정권의 분열(분리)주의를 버티는 마지노선은 2년이다.

1년만에 3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소금을 구하기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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