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고 - 미군정기 윤박 교수 살해 사건에 얽힌 세 명의 여성 용의자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1
한정현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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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정도서

p77 - "다 듣지는 못했지만, 얼핏 듣기로 선주혜 씨가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내가 아무리 빨갱이로 낙인찍혀 남조선에서 살 수 없게 된다해도 너에게 몸을 바치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식의 협박으로 몇 명의 조선 여인들을 죽게 한 것이냐'라고요."

작가의 전작인 #나를마릴린먼로라고하자 와 이어진 소설로 읽었다.. 그리고 이번 책에서도 저자는 생존자와 떠난 자를 성(性)과 이름을 교차하여 드러낸다.

남은 자는 떠난 자의 이름을 지고 살아가지만, 소설에서도 말했던 바(p182) 낙관, 세계는 더디더라도 진보한다는 낙관을 심어놓는다.

미군정기 남조선 첫 선거날, 여성 유권자를 후려치는 조선남의 폭력에서 시작한 소설은 여성 검안의 연가성(연가희)이 문학 교수 윤박의 살해 사건을 조사하면서 진의를 드러낸다.

여성 셋(윤선자, 선주혜, 현초의)이 용의자로 지목되지만 사실 범인은 미군.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남성 권력자의 폭력 피해자를 악마화하는 부조리와 미군정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조작이 겹친 데서 소설은 시작한다.

이 소설이 추리소설의 면모를 띄는 것은 이 이면에서 벌어진 진상이 무엇이냐를 조사하는 것이 하나요, 검안의 연가성과 친우(?)인 권운서의 관계와 더불어 이들에게 내재한 성평등주의와 소수자성이 역사에서 왜 배제되는가를 구조적으로 쌓아내는 것이 둘째다.

미군정기라는 혼란한 시기에 식민지 잔재, 성불평등, 소수자 혐오, 극우독재 정권의 정치성 등의 틈바구니에서도 말려죽이지 못한, 살아 숨쉬고자 하는 생명력, 어떤 순간의 제스쳐들.

결국 이 땅을 떠나야만 가능했던 것들이기도 함을 보여주는 (한정현의 여러 소설들의) 결말부는 사실 #광장 보다 절박한 존재의 증언으로 들린다.

불확실하지만 한번이라도 자유롭게 살아보고자 하는 선택을 포기하지 않는 낙관.

p.s. 베란다 청소를 하며 배수구를 봤는데, 폭우 때 위층에서부터 쏟아지는 이것저것이 통과하면서 뭐가 틈새에 쌓였는지 더운 날씨가 겹쳐 싹이 자라고 있었다. 소설의 끝에 이게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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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 개정판 잭 매커보이 시리즈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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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지역 유력지의 살인사건 전문기자인 잭이 경찰인 형의 자살 소식을 전하러 온 동료 경찰의 방문을 받으며 시작한다.

장르소설은 보통 자극(비극)적인 사건으로 독자의 주의를 환기하며 시작하고, 이 비극을 얼마나 끈끈하고 '안전'하게 끌고가느냐가 몰입도의 핵심인데, 물론 능숙하다. 반전의 포인트도 절묘한 데가 있다.

p602
"PTL 네트워크라는 이름이죠."
레이철의 얼굴에 놀란 표정이 떠올랐다.
"주님을 찬양하라(Praise the Lord)?"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우리는 그게 프리틴 러브(Pre-Teen Love, 열 살 이하 어린이들에 대한 사랑)의 약자라고 보고 있어요."

형의 자살의 의심스런 점을 발견한 잭은 재수사를 이끌어내는데, 탐사 과정에서 비슷한 경찰 자살사건들이 미국 전역에서 여러 차례 발생 했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결국 FBI가 사건에 개입하게 되고, 물과 기름 같은 기자와 수사관이 한 배에 올라타 '에드거 앨런 포'의 시구를 흔적으로 남기는 '시인'을 뒤쫓게 된다.

'92년도에 데뷔한 작가가 '96년도에 낸 책이니, 작가작인 욕심은 물론이거니와 20년도 더 지난 지금 개정판으로 읽어도 악력이 충분하다. 동시에 온라인의 소아성애자들이 이제나 저제나 변태적 도착증을 '취향'이나 '개성'으로 여기며 활보하고 다니며 서로를 격려한다는 데서 끔찍한 평행세계를 마주보는 것 같다.

몇 가지를 환기하게 된다.

소설 속 소아성애자와 공권력의 직무유기자들처럼 각각 따로 떨어져 있는 듯 보이는 썩은 점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서 약자와 개인들을 사냥하며 희희낙락 거리는지.

작가가 어떻게 이야기를 후속작으로 이어갈 수 있었는지. 그리고 아직 읽지도 않은 후속작의 존재만으로 그 인간들이 얼마나 징그러운지.

발로 뛰는 탐정소설의 성실함이 성실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 집요하고 추잡스러운 변태들.

#시인 #마이클코넬리 #thepoet #michaelconnelly #김승욱 #rhk #알에이치코리아 #랜덤하우스코리아 #미국소설 #해리보슈 #탐정소설 #책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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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전트 러너
존 르 카레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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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정도서

p348 - 당신이 뭔데? 기껏 스파이 주제에. 당신이 신의 사자라도 되는 줄 알아? 이 망할 놈의 세상이 당신 거야? 변태 새끼처럼 배드민턴으로 잘생긴 남자들을 홀리고 다녀놓고. 그렇게 꼴려 쫓아다니더니, 이제와서 러시아 스파이로 몰아? 꼴린 놈을 받아주지 않았다고?

물론 우아하다.

우아하게 크고 작은 곡선 도로를 회전하고, 시종 긴장을 유지하게 만드는 기술적 암시들은 재치있다. 가볍게 넘어가는 작전의 발걸음에서도 대가임을 증명하는 스파이의 요령이 섬세하고 풍부하게 담겨있다.

p22 - 《스펙터》 지난 호를 들고 있으라는 지시였는데, 재고를 도매상에 반품한 후라 지역 도서관에서 한 부 훔쳐야 했다.

이제 내일 모레면 쉰이고 은퇴를 자연스레, 여유있게 내다보는 내트는 다 허물어져 가는 분국 '헤이븐'의 분국장으로 발령받는다.

영국이 뭔데? 기껏 영국 주제에. 영국이 신의 사자라도 되는 줄 알아? 이 망할 놈의 세상이 영국 거야?

클럽에서 만난 배드민턴 도전자 에드가 쏟아놓는 브렉시트에 관한 불만과 사표를 낸 정보국 부하 플로렌스가 뱉어내는 촌철살인(!)의 농담반진담반의 악담을 모아놓으면, 88세의 저자가 저무는 시대에 활약했던 영국 정보국 기획전문 고급요원(agent runner)이자 남편과 양육자와 사회의 일원인 내트를 통해 '빛났었었던 영국'이 정작 지켜야 하는 이상으로서의 현실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내트가 마지막에 내리는 결정, 작전이 혼자가 아닌 부인 프루와의 합작이어야만 했다는 것은 감상 넘어 어떤 감회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p.s. 슈베르트 송어

#에이전트러너 #존르카레 #agentrunninginthefield #johnlecarré #조영학 #rhk #알에이치코리아 #도서협찬 #첩보소설 #스파이 #책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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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아말 엘-모흐타르.맥스 글래드스턴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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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p223 - 그리하여 이 실에서 저 실로 미끄러져 이동한다. 그녀 주위에서 도시들이 피어나고 썩어 간다. 별들이 숨을 거둔다. 대륙이 이동한다. 모든 것이 시작되고 모든 것이 종말을 거둔다.

시간의 가닥을 타고 시공간을 넘어 작전을 수행하는 '레드'와 '블루'는 각자의 진영을 대표하는 전사인 동시에 호각을 다투는 라이벌인 서로만이 알아볼 수 있는 편지를 작전 지역에 남기는데...

나무의 깊은 데서 시작하는 나이테, 찻잔 속 찾잎, 천의 매듭, 청구서의 잉크 자국, 용암의 빛이 언어가 되고 편지가 되는 극적인 은유로서의 이 장치만으로도 소설은 아름답고 충만하다.

우람한 나무의 나이테가 자라는 시간 동안 그 겹겹에 쓰여진 편지는 상상만으로도 깊은 영감에 사로잡힌다. 인간 시대가 뚫고 온 수많은 사건들과 수천 개의 시간선은 잃기도 하고 갖기도 한 무수히 많은 시대의 경우의 수를 가리키며, 그 시간선에 레드와 블루가 서로에게 남긴 서신의 형태는 인간이 공명해온 자연의 아우름을 길어올린다.

p - 나는 하늘을 길게 가르며 불로 글씨를 쓸 거야. 너의 상승에 어울리는 곤두박질이 되도록.

SF의 '시간 전사'들이 타임 패러독스를 관통하고 진영을 초월해서 사랑을 이루는 이야기는 낭만적이지만, 다소 순식간에 진도(?)가 나간다. 그리하여 이 소설이 약간이나마 짧아진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당신들은이렇게시간전쟁에서패배한다 #아멜엘모흐타르 #맥스글래드스턴 #장성주 #황금가지 #thisishowyoulosethetimewar #amalelmohtar #maxgladstone #sf소설 #로커스상 #휴고상 #네뷸러상 #책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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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소녀들
팜 제노프 지음, 정윤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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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p463 - "여자 요원들은 공식 직함이 없잖아요."

1944년 런던 특수작전국의 엘레노어는 여성으로 구성된 작전팀을 건의하고 재가를 얻는다.

1946년 뉴욕의 그레이스는 기차역 벤치 아래서 누군가 놓고 간 가방에서 열두 명의 소녀들, 앳되면서 전투복을 입은 여성들의 사진을 보게 되고, 자기도 모르게 사진을 들고 사무실에 도착한다.

p228 - "그건 사진의 소녀들이 모두 죽었다는 뜻이예요."

이민자들을 돕는 프랭크와 일을 하는 그레이스는 그 가방이 엘레노어, 엘레노어 트리그라는 여성의 것임을 알게 되는데...

2차 대전의 격전이 벌어지는 속에서 프랑스로 잠입한 여성 특수요원들의 자취를 그린다는 데서, 여성을 부속품으로 취급해온 역사를 다시 써 온 #라듐걸스 #체공녀강주룡 #키르케 같은 작품들과 큰 궤를 같이 한다.

소설만으로 이 '팀'이 실재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전시에 노동자로 전장의 간호사나 암호 분석가, 스파이, 레지스탕스, 저격수로 활동해온 여성의 역사는 분명히 존재한다.

같은 역할, 더 열악한 조건에서 산화한 여성의 임무와 역사를 또다른 여성이 발굴하는 소설의 구성은 저자의 전작이나 진보하는 역사의 발자취를 증언하는 그 자체로서 의미있으나, '로맨스'를 피하지 못하는 서사는 다소 아쉽다.

물론 로맨스 그 자체를 직업인으로서의 사명과 분리하는 그레이스의 결정은 바뀌어가는 시대에 부합하지만, 그레이스가 미스터리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로맨스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때... 역시 조금 아쉽다.

#사라진소녀들 #thelostgirls #pamjenoff #팜제노프 #정윤희 #잔출판사 #도서출판잔 #잔 #미국소설 #제2차세계대전 #미스터리 #책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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