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윤수 옮김 / 들녘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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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의 마지막을 덮은 시간, 시계는 정확이 새벽 1시 25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자리에 누우며 마지막으로 한 생각은 바로 '이 작품에 대한 오해를 거두어야겠다' 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오해했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2009년 국내 서점가를 뒤 흔든 작품이 과연 맞냐고 생각할 정도로 책 내용도 어이가 없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작가 미치오 슈스케는 독자들한테 친절한 작가가 결코 아닙니다.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고 본인 멋대로 이야기를 끌고 다닙니다. 갑자기 죽은 친구가 거미로 환생해 살인자가 누군지 가르쳐주지 않나, 3살짜리 애기가 거의 성인 수준으로 사건해결에 동참하지 않나...종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저를 참을 수 없게 한 것은 이건 추리소설이 아니라 무슨 사이코 드라마 같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이코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종국적으로 보면 미스테리에 대한 해법이 다르고 이야기 전개가 다를 뿐. 서서히 진실히 밝혀지는 순간이 다가오면 결국 나같이 비판적인 독자라 할지라도 어느새 미치오 슈스케의 화법에 빠져들고 맙니다.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고, 서서히 껌종이의 은박지가 벗겨지듯이 사건에 대한 전말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종잡을 수 없던 것들이 하나로 모일 때 나는 느꼈습니다. "아...이거 대박이구나"

미치오 슈스케는 사건묘사보다 심리묘사의 달인입니다. 이 작품이 처음에 이해가 되지 않는 이유는 나 스스로가 정상인의 시각에서 작품을 읽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주인공인 10살 소년인 미치오의 관점에서 읽어 나가야만이 모든 것이 이해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확신하고 도덕과 정의의 이름을 붙혀 ’이것이 맞는거야’ 라고 했던 모든 것들이 미치오의 시각에서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 작품에 대해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사실 일정부분 자신만의 세계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규범이 만들어낸 세계, 즉 법과 질서라는 이름으로 사회를 유지시켜나가기 위한 규범의 세계가 존재하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규범의 세계 속에서 잘 적응하려 살려고 하고(잘 적응하지 못하면 여러모로 피곤해 지므로...) 자신만의 세계 역시 이러한 규범의 세계 속에 투영시켜 거기에 반하지 않는 세계를 만들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회라는 조직의 돌연변이로 받아들여지는 이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들에게 공감하지 못하지만 이들은 자기만의 방법으로 주어진 과제들을 해결하려 합니다. 그것이 살인일지라도...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소설은 은근히 무섭습니다. 화자의 시선이 비상식적이기에 해법도 결말도 비합리적입니다.  우리는 이성의 굴레에서 벗어나면 무서움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요? 정상이 아니면 미친게 되는게 우리 세상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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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번째 밀실 작가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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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개인적으로 아리스가와 아리스나 아야츠지 유키토 같이 좌고우면하지 않고 자기 갈길을 가는 작가들이 좋습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본격이다." 이들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이러한 작가들의 주장이 항상 작품 전반에 걸쳐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도 사람인 이상 자신들의 작품세계가 갖는 한계에 대한 고민이 없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특히 이들의 추구하는 본격 추리소설이야말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과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장르이고,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한 작품, 한 작품을 창작할 때마다 기존 작품과 차별화되고 더욱 발전된 트릭을 만들어내야 하기에 참으로 어려운 장르라 생각됩니다. 독자들은 문학성은 제쳐두고 이 트릭이 말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분석하고, 범인의 동기가 강하고 약하고를 따지기 때문이죠. 정말 힘든 장르임엔 틀림없습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장편 <46번째의 밀실>에서도 이러한 작가의 고민이 작중에서 밀실소설가의 대가인 미카베 세이치의 말 속에서 약간 보이는 듯 했습니다. 지상의 추리소설에서 천상의 추리소설을 쓰고 싶다... 이것은 책 속에서도 결론을 내리고 못하듯이 지극히 추상적인 바램일 뿐인지도 모르지만 본격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의 마음을 어느정도 대변하는 대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작가 후기에서 밝히듯 이 소설 <46번째 밀실>은 지극이 지상의 추리소설의 입장에서 썼다고 하며 작품의 한계를 토로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는 다만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언젠가 천상의 추리소설을 쓸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문학성과 트릭이 절묘하게 조합되면서도 우리의 기억에 오래남는 명작을 말입니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서 논한다면 <46번째 밀실>은 그야말로 밀실에 대한 찬가와 비난, 냉소, 호의 등 모든 것을 담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작품은 철저하게 밀실 트릭을 지향하는 소설의 형태를 띄고 있으니 이것 또한 묘한 아이러니입니다.

작품에 사용된 트릭은 역시나 기발하다고 느껴집니다. 그러나 기상천외하다고까지는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아마 트릭 매니아시라면 작품을 읽고 있는 도중에 이미 트릭을 간파할 수도 있을 정도의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범인은 굳이 트릭의 정체를 밝히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즉 본격 추리소설로서의 위치는 중간 정도. 그렇게 재미없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지 뛰어나지도 않고 딱 중간 정도의 수준입니다.

서두에도 말했지만 이 작품에서 흥미를 끄는 것은 본격 추리소설작가가 본격에 대해 어떠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진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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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피 블랙 캣(Black Cat) 13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지음, 전주현 옮김 / 영림카디널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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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고 덮은 시간...밖에는 장맛비가 쉴새없이 내리고 있습니다. 오전 11시인데도 불구하고 집안에 불을 다 켜놓고 책상앞에 앉아 있자니, 왠지 아이슬란드에 있는 레이캬비크나 노르드미르, 후사비크 같은 지명이 떠오르며, 내가 그곳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곤 합니다.

저주받은 피... 이 작품의 제목이자 스토리 전체를 한 마디로 요약한 이 말처럼, 이 작품은 너무나도 슬프고, 가슴 아픈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은퇴한 노인이 살해된 단순한 살인사건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마지막 종착역에서는 눈물이 핑돌정도로 가슴아픈 이야기의 결말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작가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은 인생에서는 실패자이지만 뚝심의 형사반장 에를렌두르 시리즈를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일군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은 이른 바 경찰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총과 살인이 난무하는 미국이나 유럽의 작품과 그의 작품은 마치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그는 아이슬란드 인이고 그의 작품에 나오는 사건 모두 아이슬란드에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유럽에서도 한참 떨어져 있는 외딴 섬나라...인구는 30만에 불과한 이 나라에서의 사건이라 해봤자 고작 단순 살인이나 마약범죄...작품에서도 아이슬란드식 사건 이라는 말이 자주 나올 정도로 고요한 나라입니다. 하지만 작가 아날루드는 이런 환경 속에서도 아이슬란드를 배경으로 하는 경찰 소설을 써서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작품을 다 읽은 지금, 저는 그가 성공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주받은 피>에서 그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범인이 누구이냐가 아닙니다. 왜 그러한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범인이 범죄를 일으키게 된 데까지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담담하게 기술해 나갈 뿐, 하지만 독자는 왠지 모르게 그의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고 맙니다.

주인공인 에를렌두르는 형사지만 무슨 명탐정도 아니고, 이혼남에 딸은 마약쟁이인 인생 자체가 별볼일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도 눈치재지 못한 인간적인 정의감으로 사건 해결을 위해 주력합니다. 그가 밝히고자 하는 것은 범인이 아닌, 바로 '진실'자체인 것입니다.

진실에 다가갈 수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장을 넘기고 싶은 충동과 넘기고 싶지 않은 충동 말입니다. 마지막까지 다 읽은 순간, 눈을 감고 생각했습니다. 이 소설은 참으로 가슴 아픈 스토리라고... 나의 가슴 속에는 안타까움이 마구 교차되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정말 생소한 나라를 배경으로한 명작 미스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 내용을 떠나서도 색다른 문화를 접하는 설레임도 조금은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반드시 읽어봐야 할 명작이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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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망치 - 2005년 일본추리작가 협회상 수상작 블랙 캣(Black Cat) 10
기시 유스케 지음, 육은숙 옮김 / 영림카디널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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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 유스케 하면 대부분의 독자들이(저를 포함해서) 백이면 백 <검은집>을 떠올릴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영화화 되서 나름 흥행했던 작품이었죠. 저는 책도 영화도 아직 안 읽어 보았지만 꽤 뛰어난 작품이었다는 평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굳이 장르를 매기자면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호러소설이라고 했던 것 같구요.

그래서 인지 제 생애 처음으로 읽는 기시 유스케의 작품 <유리망치>도 왠지 이런 호러적인 분위기가 가미된 추리소설이지 않을까 선입견을 가졌었습니다. 표지도 그랬구요. 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은 지금 이 소설이야말로 진정한(군더더기 없는) 추리소설이라는 평가를 내려 봅니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추리소설은 아닙니다만 80% 이상은 본격 추리소설, 20%정도는 사회파 추리소설의 형태를 띄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무엇보다도 살인사건은 밀실에서 벌어집니다. 용의자 외에는 도저히 다른 사람이 범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밀실, 그것도 현대적인 감시카메라와 경비시스템, 강화유리로 무장된 빌딩 최고층에서 벌어진 살인. 그야말로 작가는 모든 면에서 독자에게 도전하는 듯한 살인무대를 설정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 변호사 준코와 방범전문가(실은 도둑에 가깝죠) 에노모토는 콤비를 이루어 한사람은 추리를 한 사람은 물리적 트릭을 깨기위해 작품 내내 쉴새없이 도전합니다. 수많은 도전과 좌절 끝에 두 사람이 이르는 결말은....

이 작품의 백미는 두번 세번 읽어보고 머릿 속으로 구성을 일일히 해보지 않으면 이해가 잘 되지 않을 정도로 잘 갖추어진 물리적 트릭에 있습니다. 너무 복잡해서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생각나기도 합니다만 너무도 완벽한 무대를 설정해 놓은 댓가로 작가는 독자를 납득시키기 위해 정말 복잡한 트릭을 해답으로 제시합니다.

마치 최신 열쇠를 도저히 풀지 못하자 전문가가 나서 피킹하는 법을 아주 자세히 설명한다고 할까요? 여기서 이 작품의 호, 불호가 나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떤 이는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끄덕끄덕이겠지만, 또 어떤 이는 이렇게 복잡하게 머냐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어 버릴 것만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일본 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이니만큼 읽는 재미는 무조건 보장되며, 진정한 물리트릭에 빠져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권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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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구혜영 옮김 / 창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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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행, 용의자X의 헌신 등등등등...말이 필요없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현재 일본 미스테리 소설계를 대표하는 작가라는데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근데 불량 리뷰어인 저는 이상하게도 연이 닿지 않아 이 작가의 작품을(심지어 영화도) 한번도 접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평소 이러한 사실이 알게 모르게 부담이 되어, 꼭 한번 작품을 읽어봐야 겠다고 벼르던 중 고른 것이 역시 작가의 데뷔작이자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인 이 작품이었습니다. 

방과후..애프터 스쿨(많이 들어본 이름이네요)...제목부터 끌리더 군요.

작품 자체는 기대치가 좀 커서였는지 아니면 이런 류의 미스테리 소설을 많이 접해봐서인지 그다지 임팩트가 강하다고는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요즘 일본 미스테리 소설에서 심심치 않게 보여지는 살해동기의 문제는 책장을 덮고 아무리 이해해 보려고 해도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이 책대로라면 정말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제 명대로 살기 위해서는 꺼진 불도 다시보자는 말 처럼 남한테 사소한 것이라도 상처입히지 않고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좀 아쉽습니다.

이 작품이 진가를 발휘하는 곳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을 노린 결과 였는지 몰라도 무척이나 감탄스러운 트릭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 본격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트릭과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아니 도리어 앞서나가는 트릭입니다. 게다가 그런 훌륭한 트릭이 초석 트릭이라니...

그의 다른 작품을 빨리 읽어봐야 이것이 히가시노 게이고 식 미스테리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현상인지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찌 되었건 간에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 본격 추리소설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여고생의 감수성을 그대로 읽어내려간 작가의 천재성(이것은 지금 많이 발휘되고 있습니다만)이 돋보이고, 100% 범인 찾기에만 몰두한 것은 아니지만 작품의 상당부분은 결국 범인이 밝혀지는 의외의 반전과 뜻밖의 결말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이러한 트릭을 극대화 시키고, 요코미조 세이시 식의 본격 추리와 음울한 공포 분위기를 넣었으면 꽤나 집중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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