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볼라 밀리언셀러 클럽 107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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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가 <기리노 나쓰오>는 이제 미스테리계에서 어떤 일탈을 꿈꾸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이 작품 <메타볼라>는 미스테리 소설의 궤도를 이탈해 일종의 사회고발적인 인문 소설로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문학성을 따지자면 상당한 깊이가 있는 작품입니다. 특히 젊은 일본 청년들의 심리구조와 그들이 살아가야 하는 일본사회의 구조적인 모순, 그리고 가정해체의 단면, 오키나와와 일본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 등이 작가의 예리한 필력과 어우러져 무척이나 읽는 재미와 수많은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지배하는 것은 불편한 진실, 즉 사회고발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소설의 제목인 <메타볼라>는 작품 속에서 아무런 설명이 나오지 않아 무척 궁금했는데 찾아보니 건축용어인 메타볼리즘(Metabolism) 즉 사회를 생명체로 바라보는 건축학적 관점이라는 단어에서 착안해 작가가 만든 조어라고 합니다. 그 만큼 이 작품의 핵심은 개인과 사회의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주는데 있습니다. 작가는 그 다지 작품에 개입하지 않지만 연옥을 연상시킬 만큼 잔인한 현실을 묘사하는데 많은 부분을 치중하고 있습니다.

일본 청년들의 일탈과 심각한 실업문제 등 사회문제는 비단 이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그 심각성이 가슴 깊이 전해졌고, 삶을 거부하면서도 집착을 갖고 살아가는 이소무라 긴지와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고민없이 살아가는 아킨스의 삶과 아름답지 못한 결말도 인상깊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소무라 긴지의 캐릭터는 아무리 봐도 비호감이라 그의 행동에 결코 손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더군요.

이소무라 긴지의 되살아난 기억으로 서술되는 가정의 일탈부분은 왠지 가장인 나에게 일종의 경고를 하는 것 같아 가슴이 뜨끔 했습니다. 아무래도 가정을 책임진다는 사람은 더욱 각오를 굳게 다지고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어떤 무언의 교훈도 주는 것 같습니다.

또 한가지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가마다를 통해 보여준 오키나와와 일본 본도 이주민의 갈등에 관한 부분입니다. 오키나와는 원래 류큐왕국으로 우리나라와 같은 독립국이었습니다. 역사도 400년 이상되고 고려 삼별초나 조선시대 홍길동의 율도국 등과도 연관된 신비의 섬나라 였는데 1879년에 일본에 강제병합되고 맙니다. 

그런데 일본의 전쟁 패망 후에도 일방적으로 독립을 인정받지 못하고 그대로 일본 영토가 되고 말았죠. 이제는 세월이 흘러 일본의 한 현으로 인정하고 사는 것 같지만 아무래도 아직 독립운동 세력도 남아있고 본토 이주민들과 원주민들 사이에 갈등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이것 까지 담아내고 있을 정도니 작가의 사회를 바라보는 관찰력이 어느정도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당초 기대했던 흥미진진한 미스테리 소설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무척 실망했지만 작품 자체는 무척이나 시사점이 많고 읽는 재미도 뛰어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작품을 읽고 사회의 아픔, 이것이야말로 21세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공통의 문제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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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문
폴 알테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시공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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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알테르가 21세기에 쓴 이 추리소설 <네 번째 문>은 그야말로 서양의 딕슨 카, 애거서 크리스티에서부터 동양의 요코미조 세이시, 아리스가와 아리스와 같은 계열로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본격 추리소설의 흐름을 멋지게 계승한 보기드문 명작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자칫 한계마저 느껴지던 본격 추리소설이 이런 멋진 형태로 발전해 나갈 수 있겠구나 하는 기쁨마저 느꼈습니다.

이 소설은 피와 폭력, 변태성욕, 유아납치 등 듣기만 해도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소재들이 판을 치는 현 시대의 미스테리 소설들과는 완전 차별화되는 작품입니다. 

그것도 아야츠지 유키토나 아리스가와 아리스 같은 작가들이 본격 추리소설의 매력을 있고자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일본에서 나온 작품도 아니고 프랑스에서 낯설은 작가(현지에서는 유명작가이죠^^)가 쓴 이 작품은 과거 존 딕슨 카 등이 구현했던 진정으로 추리에만 의존하는 추리소설 본연의 즐거움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스토리나 내용전개, 트릭, 등장인물, 깜짝 결말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어색하지 않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단순히 트릭이나 추리에만 의지하지 않고 21세기식 반전까지 적절히 배분해 추리소설 본연의 참 재미를 반감시키지 않으면서 독자들을 새삼깜짝 놀래키는 결말까지 선보여 재미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우선 이 소설의 배경과 등장인물들은 마치 어두컴컴한 연극무대와 그 등장인물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사건의 모티브는 약각 공포스러운 심령 현상에서 발생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치밀한 추리소설로 전개됩니다.

작가는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도대체 이 많은 트릭들을 과연 어떻게 해답을 내놓을려고 이러나 싶을 정도로 모든 사건마다 완벽한 밀실과 트릭을 설정합니다. 이러다 용두사미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말입니다. 딕슨 카의 <밤에 걷다>에서 너무도 완벽한 밀실을 설정한 반면 결말 부분에서 다소 실망했던 기억이 있었기에 그런 걱정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결말은 이러한 걱정을 말끔히 씻어줍니다. 거기에다 예상치 않은 반전까지...여운을 남기는 결말은 독자에 따라 상당부분 다른 해석이 가능한 여지마저 남겨 놓고 있습니다.

다시 생각해봐도 재미있고 읽어볼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추리소설을 읽은 것 같아 기분좋은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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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는 알고 있다 블랙 캣(Black Cat) 20
로라 립먼 지음, 윤재원 옮김 / 영림카디널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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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 쇼핑몰에서 두 자매가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30여년이 지나도록 범인이나 두 자매의 행방은 밝혀지지 않고, 사건은 미제사건이 되어가는 듯 합니다. 그러다 우연히 일어난 교통사고! 사고를 내고 현장을 이탈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게된 한 40대 여인이 자신이 바로 30년전 실종된 두 자매 중 동생 헤더라고 주장하면서 사건은 다시금 수면위에 떠오르게 됩니다.

30년전 벌어진 어린 자매의 실종사건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을 세련된 기법으로 엮어나가는 <죽은자는 알고 있다>는 시종일관 책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마력을 가지고 있는 소설입니다. 내용 자체는 의외로 잔잔한 편입니다. 미국 핵가족 사회의 균열 등을 논하고 있으나 미국 사회전반에 걸친 가정의 파괴에 관한 문제점은 이 작품에서는 그다지 전면에 나서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 작품의 매력포인트는 바로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는 과정과 그 진실에 이르는 과정 속에서 등장하는 여러 주인공들의 심리와 삶의 단편들을 차근차근 조명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건 발생 당일의 헤더, 사건 발생 후 미리엄과 데이브ㆍ헤더, 현재의 헤더ㆍ형사 인판티 등등 주요 등장인물은 사건일부터 현재까지 순서를 가리지 않고 등장하여 스토리의 무게를 더욱 강하게 형성해 줍니다.

감귤의 껍질을 까는 것 처럼, 한번에 모든 것이 보여지지 않고 한 부분, 또 한 부분 껍질이 벗겨지듯 진실의 단편들이 보이고, 마지막에는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반전과 허무한(결말이 허무하다는 것이 아님) 일로 벌어졌던 과거의 진실앞에 놀라움과 가슴아픔을 동시에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볼티모어가 좋아서 볼티모어를 배경으로 한 소설만 쓴다는 로라 립먼의 이 작품은 미스테리 수작으로 미스테리를 좋아하신 분은 꼭 한번 읽어보시는게 좋을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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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수사 미도리의 책장 8
곤노 빈 지음, 이기웅 옮김 / 시작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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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회는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시기는 다르지만 두 나라 모두 고도의 경제성장을 겪었고, 급작스러운 사회의 변화 속에서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만 했습니다.

결국 이 사회는 소수의 엘리트가 다수의 대중을 이끄는 불합리한 구조로 정착되어가고 말죠. 그런데 아이러니칼 하게도 다수의 대중은 어떻게 해서든 소위 지도계층에 합류하기 위해 나름의 방법으로 안간힘을 씁니다. 어찌보면 민주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신분상승을 위한 정당한 노력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피눈물 나는 현실이지만요.

곤노 빈의 <은폐수사>는 엄밀히 말해 미스테리 소설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이 소설의 관점은 사건이나 살인자가 아니라 류자키라는 전형적인 엘리트 경찰을 통해 고찰하는 일본사회(현재 자본주의 사회를 대변하는 듯 보이는)의 여러가지 모습에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철저한 엘리트 의식에 얄미워 따귀한데 때려주고 싶을 정도지만 또 어찌보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원칙을 고집하는 주인공 류자키의 모습이 블랙 코미디를 연상시킬 정도로 재미있기도 합니다.

즉 류자키는 초 엘리트 의식 + 원칙주의자의 꼴통 성격만 모은 이 시대에 멸종된 공룡과 같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의 원칙은 왠지 모르게 신선한 감동이 들어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원칙을 저버리는 세상에 대해 통렬히 일격을 날리는 한 방의 역설적인 모습이라고나 할까요? 

소설 내에서도 별종이라고 불리는 그가, 현실세계에서 과연 저런 사람이 있기나 할까 싶을 정도인 것은 당연하겠지만, 뭐니뭐니 해도 자신이 믿고 있는 소신을 사건이건 가정이건 끝까지 밀어붙이는 그의 모습 하나는 굉장히 당당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작품은 더욱 재미있었던 것 같구요.

미스테리를 좋아하는 분이나 좋아하시지 않는 분이나 이 책은 모두 사랑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작가 <곤노 빈>의 뛰어난 필력이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는 것입니다. 부담없이 류자키의 정신세계로 출발해 보실 것을 권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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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베리의 마녀들 원더그라운드
존 코널리 지음, 문은실 옮김 / 오픈하우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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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시골길을 밤에 혼자 걸은 적이 있었습니다. 차를 타고 항상 지나다니던 길을 밤에 혼자 걸어가니 모든 사물들이 새삼 다른 느낌을 뿜어 냄을 느끼게 되더군요.

선선한 아침에는 시원스레 들릴 풀벌레 소리조차도 간담을 서늘케 만들 수 있다는 것,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고 밤마다 이곳저곳 조명을 요란스레 켜놓아도 밤의 어둠과 그 속에 숨어있는 공포는 결코 몰아낼 수 없다는 것을 새삼 알게되었습니다.

<언더베리의 마녀들>은 인간의 내면의 공포에서부터 초자연, 심령에 이르기까지 호러와 관련한 소재를 집약하고 있는 호러 단편집입니다. 주로 사람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초자연적인 존재, 즉 유령이나 심령현상, 전통이 만들어낸 괴물 등으로 인해 빚어지는 사건을 꽤나 리얼한 필체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마치 이 작품들을 읽고 있으면 이러한 초자연적인 현상과 괴기스러운 일들이 우리 일상에 언제나 동아리를 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책장을 덮으면 이런 현상과 좀처럼 조우하기 힘든 현실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죠.

작가의 미려한 분위기 묘사와 우리가 문화 자체로도 이질감을 느끼는 서양의 이상한 관습이 어우러져 우리에게 색다른 공포를 제공합니다. 영화로 바로 만들어도 꽤 잘 만들어진 공포영화로 탄생할 수 있을 만큼 완성도 또한 뛰어납니다.

다만 넘쳐나는 공포물로 어지간해서는 간 떨어질 일이 없는 독자들한테는 약간 심심할 수도 있습니다. 이 단편집은 공포로 사람을 얼어붙게 만드는 데 중점을 두진 않았습니다. 벽 틈새나 바닥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공포감, 이 단편집의 핵심 모티브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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