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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입니다만, 문제라도? 8 - L Books
바바 오키나 지음, 키류 츠카사 그림, 김성래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8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말한다는 게 좀 늦은 감이 있지만, 거미녀(이하 여주)가 미궁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과거(여주 입장에서는 현재)와 미래(반 친구들이 나오는 S 외전)를 교차 진행하던 타임 서술 트릭은 끝이 났습니다. 이후는 여주의 시각에서 마왕을 만나 분자 레벨로 분해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동맹 아닌 동맹을 맺고, 반 친구 소피아와 그녀의 종자와 함께 마족령으로 향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반 친구들을 만나러 미래로 가는 여정이라고도 할 수 있죠. 여주가 처음으로 만난 반 친구 소피아는 외전 S에서 '유고'편을 들어 엘프의 나라에 진격했던 인물이기도 한데요. 여기서 작가는 선생님을 이용해 이세계를 관리하는 관리자(신, 神)들의 인식을 나쁘게 표현함과 동시에 소피아를 관리자들 편에선 악당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진토 베기 악당인 '유고'편에 서게 했으니 이미지는 더욱 굳어지는 듯했죠. 참고로 엘프의 나라에 쳐들어 갔던 유고와 소피아의 이야기는 결말을 내지 않은 채, 마왕과 싸우고 어린 소피아와 마족령으로 떠나는 여주의 이야기로 넘어와버렸습니다. 아무튼 금기 10레벨이 되면 이세계의 이치를 보게 되고 관리자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 했었죠. 그런데 여주도 금기 10레벨을 찍어 이세계의 이치를 봤음에도 그녀는 관리자가 되고 싶어 하는 중인데요.
여주는 7권에서 UFO 폭탄을 흡수하고 최종 진화한 끝에 이세계 시스템(레벨, 능력치)에서 튕겨 나 거미의 범주를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상반신만 인간이었던 아라크네에서 이젠 다리까지 완전한 인간형이 되었죠. 물론 진짜 인간은 아닌 거 같고, 인간 형상을 한 무언가쯤 되겠군요. 관리자 아무개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신화를 이룩했다니까 관리자(신,神)쯤 되었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엘프들이 관리자들에게 반기를 드는 것과 선생님이 경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가 더욱 궁금해지죠. 그러니까 여주가 악당이 되겠다고 마음먹지 않은 이상(그런 표현도 없지만) 관리자들의 이미지는 재고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요점은 관리자들은 진짜 악당인가? 그런데 이번 8권에서 엘프 족장이 전생자들(반 친구들)을 대하는 태도는 무슨 실험 쥐 취급이고(사실 자신 이외엔 다 도구 취급 중), 관리자와 대립하는 족장에게 줄곧 가스라이팅 당한 선생님이 자신이 가진 출석부라는 능력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초조함(이건 필자 주관적 생각)과 선생이라는 입장을 버리지 못해 그저 아이들을 보호하려 관리자들을 매도하고 있는 거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게 했습니다.
물론 이것도 소피아를 '유고'편에 서게 해서 관리자와 더불어 악당 이미지를 심어준 것처럼 작가의 블러프일 수도 있겠고, 알고 봤더니 관리자들은 진짜 악당이 맞을 수도 있겠죠. 여주는 사실 일반적인 선악 개념보다는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면 그게 누가 되었든 퇴치하니까 이게 그녀의 선악 기준이고, 그녀는 관리자들이든 인족이든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 이상 아무래도 좋다는 성격이니까요. 근데 사실 이번 8권에서 선생님은 진짜로 관리자들이 전생자들을 희생 시킨다고 믿고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것보다 선생이라는 책임감에 짓눌려 강박증에 가까운 집착을 보이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고유 능력인 출석부에 아이들이 언제 죽는지는 나오지만 누구에 의해 죽는지는 나오지 않고 있는 것에서 진짜로 관리자들에 의해 희생되는지도 의문이죠. 물론 완결 난 이 시점에서 이 추리가 무슨 소용인가 싶긴 합니다만. 이번에는 소피아를 막무가내로 납치하려 하고, 다른 전생자 납치하려다 실패하여 죽게 하는 등, 결코 선생님과 더불어 엘프는 좋은 이미지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만. 그리고 여주 일행을 습격하려는 엘프 족장의 거짓말에 놀아나는 것에서 어쩌면 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사설이 너무 긴데, 한 번쯤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걸 써 봤습니다만. 제대로 정리된 것 같지도 않군요. 요점은 관리자들은 악당인가? 일단 넘어가고, 이번 8권에서는 UFO 사건 이후 신화를 이루며 거미가 아니게 됨과 동시에 힘을 잃어버린 여주가 2년이나 지났는데도 여전히 힘을 찾지 못해 고생하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차에 짐짝처럼 실려가며 멀미로 죽을 고생을 하고, 소피아는 제법 키가 커졌습니다. 참고로 그녀는 진조 흡혈귀입니다. 흡혈귀인 것도 있고, 전생자 특전에 여주가 아직 쌩쌩할 때 받았던 훈련과 마왕의 어드바이스, 인형 거미와의 대련으로 레벨은 1이면서 엄청 강해졌습니다. 갓난아기 때부터 여주와 동고동락했지만 모녀의 유대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실 여주는 방임주의에 가깝고, 오히려 인생의 어드바이스 해주는 마왕을 더 찾는다고 할까요. 지금은 마족령을 항해 산맥 하나를 넘어야 하는데, 여기서 뜻하지 않게 또 한 명의 전생자(반친구)를 만나게 되죠. 고블린으로 전생한, 용사 이후 새로운 주인공급이 그녀들을 가로막습니다. 이 고블린도 여주만큼이나 빠른 진화를 하고, 그 바탕엔 인간들에 의해 가족을 잃었다는 슬픔과 강제로 동족 포식을 해야만 했던 증오가 맞물려 최악의 버서커로 성장하는, 아무런 힘이 없는 여주는 절체절명의 위기는 맞아 갑니다.
맺으며: 사실 이번 8권은 이세계로 전생한 고블린(반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꽤 강렬하죠. 고블린으로 태어났다고 자신과 동족을 혐오하는 것보다 순응해 살아가고, 여동생을 끔찍이 아끼고 능력을 각성 시켜 마을에 보탬이 되려 노력하는 게 흥미롭죠. 그것을 인족들에 짓밟히고, 그에 대한 증오에 먹혀 정신이 망가져가는, 이번 8권은 이로써 엘프 다음으로 인족도 여주 입장에서는 퇴치의 대상이라는 전초전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 먹을 것을 갖다 바치고, 토지신 취급하며 신성시해준 인족도 있지만 그들은 전쟁에 휘말려 다 죽어 버렸으니. 물론 고블린이 지금 처한 현실을 여주는 아직 모르고 있으니 섣부르게 이렇다 저렇다 할 단계는 아니긴 합니다. 이 고블린의 이야기는 아직 진형형이고, 엘프 족장 다음으로 향불(장례식 때 쓰는 그 향불)을 제대로 맞게 해주었으니 여주가 힘을 되찾는다면 한 번쯤 진짜로 죽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도 듭니다. 다만 7권보다는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이야기를 쭉쭉 늘리는 통에 기승전결이 마려운 건 여전합니다. 350여 페이지나 쓰고도 결말을 내지 않는 건 대체. 4권인가 5권인가 외전 S에서 같은 편먹고 나오니까 결말은 낼 거 같긴 합니다만. 아무튼 여전히 인형 거미녀들은 귀엽고 개성 강하고, 소피아는 시종을 향한 츤데레가 얀데레로 진화하고, 여주는 방구석에서 뒹굴뒹굴, 힘을 잃어 그토록 경계했던 마왕에게 기대야 하는 입장 등 소소한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선생님은 본격적으로 아이들 납치에 나서는 등 앞으로 여주 일행과 충돌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