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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숲 변두리의 꼬마 마녀 02 - S Novel+ ㅣ 숲 변두리의 꼬마 마녀 2
야나기 지음, 히하라 요우 그림, 현노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10월
평점 :

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팔려가듯 이웃 나라에 도착한 미샤(여주). 여행 중간에서 만난 동족 미란다 덕분에 마음에 안정은 찾았으나 이제 13살짜리가 머나먼 이국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엄마에게 배운 대로 약사의 길을 걸을까 아님 원래 예정대로 이국의 왕의 첩이 되어 새장에 갇힌 삶을 살아갈까. 1권에서 잔혹 동화로 비유했던 이야기 제2탄입니다. 엄마를 죽인 아빠의 본처와 그 자식(이복 언니)은 별다른 처벌은 받지 않았습니다. 본처는 오히려 자기 딸(이복 언니)이 마음을 더 다쳤다며 피해자라 주장하고 있죠. 여주 엄마와 싸워서 그런 게 아니라 눈에 거슬린다고 계단에서 밀어 사망케한, 명백한 과실이 있음에도요. 여주는 눈앞에서 엄마를 잃었고, 슬퍼할 겨를도 없이, 비명횡사한 엄마를 묻어줄 겨를도 없이 본처의 농간에 이웃 나라에 팔려 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의아한 점은, 작가는 분명 숲의 백성(여주 엄마가 속한 종족)을 괴롭히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하였다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여주의 엄마의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괴롭히고, 숲으로 쫓겨나게 한끝에 사망케한 본처와 그 자식은 왜 가만히 두느냐죠. 이게 이 작품의 발암적인 요소로 작용합니다(일단 1권 한정).
더욱 문제는 여주의 아빠죠. 본처와 첩(여주 엄마)의 사이를 균형 있게 케어하지 않은 점, 다쳐서 정신이 없었다지만 깨어나서 여주의 엄마가 본처 자식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딸(여주)이 본처의 농간에 이웃 나라에 팔려가게 되었는데도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았다는 것이죠. 두 번째 발암적인 요소가 됩니다. 그렇다면 아빠의 성격은? 개차반이라면 불쌍한 여주라며 동정이라도 할 텐데, 정상인 범주라는 것에서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전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쩌면 여주를 신데렐라로 키우기 위한 사전 포석인가? 그렇다면 이 작품의 장르는 무엇인가를 묻는 연속이 이번 2권의 느낌이었군요. 여주는 협상한 끝에 이웃 나라에 국빈으로 대우받는 걸로 되었습니다. 사실 거의 인질로 잡혀가는 꼴이었는데, 국빈 대우에서 이웃나라가 여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나타내고 있는 사항이기도 하죠. 하지만 여주의 정체가 숲의 백성이고, 잘만 구슬리면 쓸모가 있을 거라는 타산이 깔려 있기도 합니다. 숲의 백성 모두 몇 세대나 앞선 의술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 의술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여주, 여주가 평범한 일반이었다면 이웃 나라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겠죠.
자, 그러면 이웃 나라에 온 여주는 무엇을 하는가. 여기서 필자는 이 작품의 장르가 무엇인지 상당히 궁금해졌습니다. 판타지 기반인 건 알겠는데, 그래서 여주는 의술을 펼쳐 사람들을 구하나? 약사의 혼잣말의 마오마오처럼 약에 미쳐 살아가는 걸까? 그런 건 없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1권은 여주를 신데렐라로 키우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면, 2권은 신데렐라가 되어 만인에게 사랑받는 이야기를 주로 보입니다. 그런데 만인에게 사랑받으려면 뭔가를 해야 하잖아요? 의술을 펼치든, 꼭 의술이 아니어도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든지. 그런 건 거의 없어요. 그냥 왕성에서 지내는 이야기만 보여주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아랫 마을에서 평민 아이들과 놀러 다니고, 왕의 여동생이 아프다 해서 진찰하러 가 봤더니 꾀병이고, 그런 일상입니다. 약초에 관련한 건 구색 맞추기로 조금씩만 언급되죠. 작가가 약초에 대한 지식이 없나? 현실 약초라도 좋으니 조사해서 약효 등을 서술하면 좋을 텐데 그런 건 거의 없어요. 1권에서 고생했으니까 이제라도 편히 살라는 듯한 대우를 받는 이야기만 보여줍니다. 사실 여주는 서자라도 공작가의 여식이고 그 대우를 받아 마땅하였음에도 못 받았으니 여기서라도 받으라는 듯한 이야기를 보여주죠.
맺으며: 그래서 장르가 상당히 꼬입니다. 약사라는 기반을 깔고 있음에도 거의 살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놀러 가고, 도서관에서 책 읽기 등 일상생활만 주야장천 보여주죠. 종국에는 무도회라는 파티에도 나갑니다. 파티에 나가려면 드레스가 필요하고, 춤도 배워야 하죠. 약사 관련 이야기에서 이게 꼭 필요한가 같은 생각을 들게 하는 부분이었군요. 결국 약사는 그저 앞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장치(현재 지위 같은?)에 지나지 않은 것입니다. 여기서 이해할 수 없는 건 엄마가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아빠에게 버림받다시피 했음에도 도서관에서 책 읽기 삼매경 등 자신의 처지를 별로 생각하지 않는 행보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물론 분위기 처지는 이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빌런(아빠의 본처라든지)이 단죄를 받았고, 엄마의 묘가 정식으로 만들어졌다는 등 뭔가 구원받았다는, 클리셰적이지만 그런 클리셰 하나 없는 구성을 어떻게 봐야 할까 싶은. 인간관계도 억지로 끼어 맞추기식, 가령 이웃 나라의 왕은 적은 나이가 아님에도 여주를 이성으로 의식한다든지(여주 나이 13세), 이런 걸 위해 사전 포석을 깔아가는 이야기 등이 솔직히 작의적이어서 집중이 되지 않았습니다. 일단 여주는 공작가의 여식이라는 점에서 왕과 이어져도 이상할 건 없지만, 그런 분위기로 몰아가는 속칭 따뜻하게 바라봐 주자 같은 닭살 돋는 전개는 도통 적응이 되지 않았군요. 작가는 위계라는 질서를 모르는 걸까요? 약사의 혼잣말이 왜 그리 인기를 끄는지 새삼 알게 되는 게 바로 이런 부분이죠. 약초에 대한 조사와 위계에 따른 질서를 철저히 보여주며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관계를 절묘히 풀어내는 능력. 비슷한 장르이면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 그저 아이들이 꿈꾸는 동화를 바란다면 본 작품(숲 변두리의 꼬마 마녀)도 괜찮긴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