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의 하극상 제5부 : 여신의 화신 5 - 사서가 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V+
카즈키 미야 지음, 시이나 유우 그림, 김정규 옮김 / 길찾기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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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글이 좀 깁니다.





배은망덕이라는 건 이걸 두고 하는 말일까요. 구 베로니카 파벌이 숙청 당할 때 아이들만이라도 살려 달라는 로제마인(여주)의 청이 받아들여져 살아났으면 그렌젤을 박으며 충성을 다해도 모자랄 판에 괴소문을 퍼트리는 행위는 무엇인가. 그것도 빌프리트라는 어엿한 약혼자가 있음에도 페르디난드(남주)와 불륜을 저지르는 거 아니냐는, 이번 5부 5권은 검은 머리 시키들은 거두어들이는 게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이제 로제마인도 나이를 먹어 언제까지고 아이의 모습으로 있을 수 없다는 의견이 곳곳에서 나오기 시작하는데요. 요컨대 규수(閨秀)가 되었으니 처신 잘하라는 것이죠. 여기까지라면 몸가짐만 조심하면 끝이지만, 이 소문을 진정시키고 와이프(로제마인)를 감싸야 될 빌프리트가 그 소문의 선두에 서서 널리 퍼트리고 있다는 것. 이 시키도 원래라면 유폐되어 죽을 때까지 햇빛 한 점 못 볼 운명이었는데 로제마인의 변호로 살아났으면 그녀의 편이 되어야 하건만 삐져서 말도 안 하는 상황이죠. 페르디난드(빌프리트에겐 삼촌)와 살갑게 지내는 와이프(로제마인)를 보고 있자니 배알이 꼬여버린 것입니다. 사실 로제마인은 신식이라는 마력이 폭주하는 병으로 인해 죽을뻔하였으나 페르디난드의 보살핌 덕분에 살아났죠. 생명의 은인에다 수년간 귀족의 삶 등, 앞으로 살아가기 위한 지식의 길라잡이까지 해준 그에게 정이 더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빌프리트는 정치적인 입장으로 묶인 것일 뿐 남사친보다 못한 존재. 그러니 소중함이라는 무게를 저울에 올린다면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자명할 것입니다. 로제마인 입장에서 빌프리트는 그저 아는 동생뻘쯤 될 뿐이었죠.



왕족의 의뢰로 중앙 신전에서 성결식 등을 치르고 서고에서 고어를 현대어로 번역하는 등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냅니다. 그리고 사건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죠. 그동안 여러 사람들에게서 제발 튀는 행동 좀 하지 말라고 그렇게 들었건만 붕어 3초 기억력인지 돌아서면 잊어버리곤 사고를 처댔는데 이번에는 그 스케일이 무척이나 커집니다. 로제마인의 영지만이 아니라 왕족들도 대규모 숙청으로 인해 인력이 줄어버려 마력이 부족해져 나라 운영이 힘든 상황이고(바보 아님?), 왕의 증거(구르트리스하이트라는 책)를 보유 못한 현 왕은 진정한 왕으로 추대 받지 못하는 상황이죠. 현 왕은 그렇다 치고, 차기 왕은 무조건 왕의 증거인 구르트리스하이트를 보유해야만 하는데 이게 어디 처박혀 있는지 찾을 수가 없는 겁니다. 이 구르트뭐시기만 손에 넣으면 평민도 왕이 될 수 있다네요? 여기까지 읽으신 분은 감이 잡히겠죠. 그렇습니다. 로제마인이 획득하게 되죠. 이제 그녀는 왕족, 나아가 차기 왕? 근데 좋아하기는 아직 이릅니다. 세상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죠. 평민도 왕이 될 수 있다며? 장난해?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구르트뭐시기가 있는 곳에 가기 위한 단서는 다 모으게 했으면서 정작 알맹이는 왜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데? 같은 상황이 연출됩니다. 자, 이제 로제마인을 먼저 줍는 사람(왕족)이 차기 왕이 되는 겁니다. 왕족만이 구르트뭐시기를 손에 넣을 수 있고, 로제마인은 죽 쒀서 개준 꼴이 되어 버렸죠. 근데 로제마인은 왜 구르트뭐시기를 손에 넣으려 했는가, "그저 읽고 싶어서". 필자의 뇌피셜이 아니라 진짜로 언급되는 부분입니다. 취미 때문에 나라의 미래를 좌지우지.



아무튼 로제마인의 입장에서는 이 기회를 어떻게 살려야 할까. 로제마인은 왕의 증거인 구르트뭐시기가 있는 문 열쇠(진짜 열쇠는 아니고 비유 하자면)를 가지게 되었죠. 양도는 불가능합니다. 다만 이 열쇠를 끼워 돌릴 수 있는 사람은 왕족 한정이죠. 열쇠는 복수로 존재해서 왕족도 로제마인이 걸어온 길을 따라 걷는다면 열쇠를 얻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인쇄와 책에 목숨을 걸고 있는 로제마인을 따라 하기엔 벅차죠. 책을 위해서 죽기보다 싫은 약을 먹어가며 필사적으로 신(神)들을 향해 기도를 올렸거든요. 이게 몇 년이나 누적되었고 이에 신들이 감명받아 거의 프리 패스로 그녀에게 열쇠를 줘버린, 이걸 왕족이 몇 년을 따라 하라고? 사실 현재 마력 부족으로 나라가 붕괴 직전에 있다는군요. 그래서 마력 덩어리인 로제마인 확보에 열을 올리는 상황인데 여기에 몇 년이나 기도를 올리라고? 겉몸이 달아가는 왕족. 왕의 증거인 구르트뭐시기가 눈앞에 있는데 줍지를 못하니 미치고 환장합니다. 로제마인에게 이 상황은 바라 마지않는 최고의 기회로 다가오죠. 로제마인은 페르디난드 처우와 맞바꿔 협상에 나섭니다. 사실 로제마인에게 있어서 페르디난드는 이세계에 떨어지고 친가족 이외에 가장 정을 붙이고 기댈 수 있는 나무였죠. 그걸 빼앗아 간 데다 아렌스바흐에서 불합리를 당하고 있으니 왕족에 대한 이미지는 곱창 난 상태고, 이걸 무기로 해서 왕족에게 불경에 가까운 조건을 내걸어가는 게 이번 5부 5권에서의 핵심 흥미 포인트가 됩니다.



페르디난드가 가 있는 아렌스바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다시금 구 베로니카 파벌의 준동, 숙청 때 죽은 줄 알았던 구 베로니카 파벌 귀족 몇몇이 살아 있고, 그들의 집에서 마력을 튕겨내는 천이 발견되면서 불안한 전운을 감돌게 하죠. 이 세계는 마력으로 사람을 지키고, 영지를 지키고, 땅을 기름지게 합니다. 이 마력을 무력화하면 그 근간이 흔들리게 되죠. 마력 덩어리이자 폭주하면 주변이 초토회 되는 로제마인을 무력화할 수도 있습니다. 대대로 아렌스바흐(구 베로니카 파벌 본거지)는 에렌페스트(로제마인 영지)를 눈에 가시로 여기고 있으니 조만간 큰일 나갔다는 느낌이 들었군요. 그러나 지금은 왕족의 구르트뭐시기 찾는 것에 더 중점을 둡니다. 대대로 이것을 가진 자가 왕이 되어 왔고, 이것이 없는 왕은 정당한 왕이 아니라고 공공연히 떠드는 사람들도 있는 형편입니다, 왕족이면서 마력이 부족해 나라 운영이 곱창 나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아직 미성년인 로제마인에게 부탁하는 처절함이 있죠. 그러다 코 꿰여 된통 이용당하는 왕족이 웃기기도 한데요. 물론 그런 로제마인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왕족도 있고요(옛날에 기껏 도와줬더니 뒷통수 치려는 중). 아무튼 페르디난드를 정말로 좋아하면서 자각이 없는 로제마인이 그를 구하기 위해 왕족과 협상해가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아렌스바흐의 영애(페르디난드 약혼녀)가 왕족에게 불경을 저지르는 바람에 약혼자인 그도 숙청 대상이 되었거든요. 이를 막으려고 로제마인은 발품을 팔지만 녹록지가 않습니다. 해결 방법은 그녀가 왕족의 사람이 되어 구르트뭐시기를 손에 넣고 차기 왕의 정당성을 세우는 수밖에는...



맺으며: 그저 책이라면 그게 무엇이 되었든 읽고 싶어 환장한 로제마인이 어쩌다 왕의 증거 구르트뭐시기의 단서를 얻게 되고 바로 앞까지 도달하게 되는 이야기의 최종 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리뷰에선 거의 언급 안 했지만 꾸준히 복선으로 나왔었죠. 왕족이 그렇게 찾아 헤맸던, 하지만 책이 모셔진 방에는 왕족만 만들어 갈 수 있어서 열쇠가 있어도 못 들어가는 로제마인과 왕족은 기도가 모자라 못 들어가는 어처구니없는 시추에이션인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5부 5권에서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를 그립니다. 근데 여기서 필자는 낙동강 오리알을 보았죠. 바로 로제마인의 약혼자 빌프리트. 스포일러라서 자세히 언급은 힘들지만 로제마인 약혼자인 빌프리트가 제일 불쌍하게 되었습니다. 이건 다음 권 리뷰에서 언급해 보도록 하고요. 점점 메인 빌런으로 치고 올라오고 있는 페르디난드 약혼녀는 머리가 쭉정이로 되어 있는지 신전에서 차기 왕으로 선택되었다며 왕족에게 불경을 저질러 가는 게 또 하나의 포인트입니다. 로제마인처럼 절차 밟아가며 열쇠(참고로 열쇠는 비유적입니다)를 얻어야 된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는 게 희극이죠. 그로 인해 숙청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덩달아 그녀의 약혼자인 페르디난드도 연좌제에 묶이게 되면서 로제마인은 겉몸이 달아갑니다. 결국 페르디난드를 살리기 위해 많은 걸 포기해야만 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지고지순을 엿볼 수 있었군요. 그리고 제3왕자가 로제마인에게 푹 빠져서 뭔가 저지르는 게 아닐까 하는 두근거림도 있습니다. 애도 약혼녀가 있으면서 바람피우려는 중이죠. 아무튼 그동안 인쇄와 책의 이야기가 주류였다면 지금부터는 정치적인 역학 관계에 묶인 인간관계에 중점을 두는군요. 가령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로제마인의 페르디난드에 대한 열정이 과부하 걸릴 정도로 열을 올려 가는 게 특징입니다. 하지만 가족 그 이상의 관계는 아니라고 억지로 선을 긋고 있어서 보는 이들을 답답하게 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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