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사 치트가 너무 최강이라 이세계 녀석들이 전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만. 5 - J Novel Next
후지타카 츠요시 지음, 나루세 치사토 그림, 권미량 옮김 / 서울문화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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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진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싫으신 분은 빽 하세요.

 

 

 

 

괴물 같은 놈을 누가 지상에 풀어 놓았는가. '괴물 같은'이 아니라 괴물 그 자체인 주인공을 지상에 풀어놓은 것도 모자라 학교에 집어넣은 이유가 무엇일까. 어릴 적 주인공을 보살폈던 유모 '아사카'의 강력 추천이 있었기 때문에? 그럴리가요. 그녀(유모)는 어쩌다 면접을 보고 합격해서 애를 돌보는 유모가 되어 버렸지만 본직은 OL이거든요. 그러니까 어디에나 있는 평사원일 뿐 거대한 뒷세계를 움직이는 집단(이하 기관)에서 보자면 한낱 먼지 찌꺼기도 되지 않는 그런 존재이죠. 그렇담 주인공 요기리를 지상에 풀어놓고 학교에 입학 시킨 연유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어요.

 

기관은 그가 무서워서 지하 깊숙이 봉인해두고 유모만 붙여뒀을 뿐 지상과는 철저하게 격리를 해오고 있죠. 그런데 마음이 바뀌어서 주인공을 풀어 놨다? 그가 재채기만 해도 세계가 멸망할지 모르는데 한창 사춘기를 겪을 나이에 욕망과 아귀다툼이 판치는 학교라는 무대는 기름을 짊어지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행위나 다름없어요. 근데 독자가 아무리 궁금해해도 작가는 아직 이 연유를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외전을 통해서 조금식 그 연유를 밝히고 있기 한데 완전히 풀리려면 아마도 10권쯤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군요. 그래서 나름대로 필자가 유추해본 게 1권에서 언급했던 내용인데요.

 

주인공 요기리가 보는 세상은 타의(기관 내지는 마물)에 의해 꾸며진 허상이거나 세트(연극 무대) 혹은 꿈 속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죠. 이걸 반증하기라도 하듯이 이번 외전에서 주인공이 아기일 때의 장면이 등장합니다. 거기서 주인공을 지키던 여우 요괴의 말을 빌리자면 아기인 지금도 그의 힘은 방대해서 어쩌다 칭얼거리기라도 하면 세계는 멸망한다고 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고, 거기서 일어나는 주인공의 만행(?)은 이쪽 세계에 미치지 않으니 적어도 아기일 때만은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는 대목은 커서도 그러지 말라는 법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게 아닐까 했습니다. 물론 필자의 망상일 수 있으니 곧이곧대로 믿진 마세요.

 

참고로 악의만 없다면 주인공은 반응하지 않습니다. 이 또한 여우 요괴가 실증하고 있기도 하죠. 그를 결계에 가두고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얌전히 지내고 있는 걸 보면요. 물론 커서도 얌전해질지는 별개이긴합니다만. 어쩌면 주인공은 매트릭스의 세계를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인공은 네오가 되어 기계군단과 맞서서 싸우는 것일지도 모르죠. 사실 주인공 일행이 떨어진 이세계에는 어그레서라는 다른 세계에서 오는 침입자가 있어요. 그중에 로봇도 있으니 얼추 주인공이 네오역을 맡는다고 해도 아주 다른 말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주인공 요기리는 의욕이 없다는 것이지만요.

 

이번 이야기는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 현자들을 죽이고 현자의 돌을 입수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미 이전에 1개를 손에 넣었고 이번에 두 개를 더 손에 넣어요. 몇 개가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많으면 좋은 듯, 근데 이 말은 현자들의 씨를 말리겠다는 것과 일맥 상통합니다. 현자들은 어그레서를 맞이해 이세계를 지키는 첨병입니다. 현자들을 죽인다는 것은 곧 이세계 멸망을 뜻하죠. 하지만 얼핏 성녀 같은 현자라 여기지 싶지만 일단 현자들의 공통점은 쓰레기입니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내가 너희들을 지켜주니 내 마음대로 해도 되겠지? 같은 마인드를 가진 현자가 많다는 것이죠. 이건 일반인들에겐 재앙 그 이하는 아닌 것입니다.

 

주인공 요기리는 힘에 취하지도 방사하지도 않지만 악의를 감지하면 자동 방어처럼 능력이 발휘되어 상대가 누가 되었든, 이젠 공간마저 죽이는 경지에 이르렀어요. 이번 이야기도 이런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을 못 알아본 떨거지들이 아무리 강해도 주인공이 '죽어'라거나 마음속에 말을 품어도 상대는 하직. 사실 이런 건 재미없어요. 너무나 강한 주인공 때문에 이세계 시스템에 간섭하는 존재라도 주인공 앞에는 그저 어린애 팔 비틀기에 지나지 않으니 재미있을 리 없죠. 그저 부조리한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주인공이 간섭해서 해결하는 카타르시스만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의 힘을 알아본 몇몇에 의해 주인공을 죽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연구라고 해야 할지 분위기가 잡혀간다는 것입니다. 그 첨병으로 흡혈귀이자 현자였던 '레인'이 가능성을 보여주었죠. 하지만 아직은, 그냥 빨리 현자의 돌을 줘서 현실로 돌려보내 버리는 게 이세계를 위한 일임에도 어째서 다들 호전적인지 원. 결국 또다시 현자는 쓰러지고 요기리와 토모치카는 다시 여행을 떠납니다.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그러고 보면 공간과 시공을 넘어서 단어가 되지 않는 무엇도 다 죽일 수 있는 주인공의 능력이라면 이세계 자체를 소멸 시켜버릴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러면 자기도 죽으려나? 오! 주인공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생겼군요.

 

아무튼 이세계에 있어서 주인공은 하등 도움도 안 되고 걸어 다니는 사신이나 다름없어요. 조그마한 악의라도 보이는 날에는 그냥 뭐, 이번엔 현자에게 볼일 있다고 그(현자)가 만들어 놓은 100층짜리 탑을 기어 올라가면서 거기에 상주하는 파이터들을 죄다 죽여 버려놓고 죄책감 하나 없이 악의를 보내오니 어쩔 수 없잖아. 상대도 날 죽이려 했으니 반격 당해도 할 말은 없긴 한데. 현자의 돌을 찾겠답시고 아무런 감정 없이 해부한다던지 어딘가 결여가 있는 게 분명해 보였군요. 이런 애를 원래 세계가 바라지 않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겠죠. 악의만 보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지만 세상사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이치...

 

맺으며, 위에서 재미 있니 없니 해놨지만 희한하게 이세계 먼치킨은 경멸하면서 이 작품은 은근히 보게 되더군요. 평소 같으면 나무야 미안해를 수백 번을 말해도 모자를 내용이긴 한데 눈을 잡아당기는 뭔가가 있습니다. 하루 만에 다 읽을 정도로(보통 필자는 한 권 읽는데 며칠 걸림) 몰입도가 좋았다랄까요. 하지만 내용은 잘 생각나지 않는 아이러니. 아마도 하렘이면서 하렘 같지 않은 상황이라던가 주인공도 딱히 그걸 바라지도 않고 히로인도 튀지 않는 게 주효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뭣보다 이야기가 정체되지 않는다고 할까요. 아무리 강한 적이라도 장황한 상황을 연출할 분위기라도 주인공의 '죽어' 한마디면 다 해결되고 다음으로 넘어가니 오히려 시원할 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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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에이티식스 3 - Run through the battlefront - 하, Novel Engine
아사토 아사토 지음, 시라비 그림, 한신남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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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권에서 핵심이 되는 스포일러와 3권의 스포일러가 들어가 있습니다. 싫으신 분은 빽 하세요.

 

 

 

 

세상에 악의에 물들지 않은 순수하게 착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세상 부조리를 못 본 체하지 않고 불행한 사람들을 도와주려 하죠. 그게 죽어서 좀비가 된 사람이라도요. 흔히 판타지 세계에서 성녀라 칭송받는 이들은 살이 너덜너덜해지고 뼈가 보이고 눈이 튀어나와 무참한 모습으로 우우~ 거리며 걷는 그들을 보다 못해 힐을 걸어줍니다. 힐이란 게임 용어로서 다친 사람을 치료해주는 축복의 효과 중 하나죠. 하지만 좀비는 언데드(어둠) 계열로써 축복은 좀비에게 있어서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자신이 행한 선의가 이렇게 때론 타인에게는 악의로 다가오기도 오기도 하죠.

 

상대가 바라지 않는 선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동정심을 즐기는, 그 선의는 물이 증발해 죽어가는 열대어를 불쌍하다는 이유로 민물에 넣는 만행과도 같습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돼지들의 나라에서 버림받아 죽음을 각오하고 [레기온] 지배 영역을 돌파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연방'에 도착한 주인공 신과 동료 4명 그들에게 쏟아지는 선의라는 동정심, 내일이라는 미래가 없던 이들에게 내려진 무한이라는 시간의 미래가 그들에게 주어졌지만 그들은 다시 전장으로 돌아갑니다. 왜, 최후의 순간까지 마지막까지 싸우는 긍지 말고는, 모든 걸 빼앗긴 그들에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그들에게 연방은 돌아오지 못할 명령을 내립니다.

 

사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여기지도 않았지만, 연방은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사거리 400km에 800mm 구경을 자랑하는 레일건을 탑재한 레기온의 등장으로 인류는 패배를 직감합니다. 누군가는 해야 될 파괴 임무를, 그 임무를 공화국이 마지막에 그들에게 명령했던 돌아오지 못할 임무를, 사람 제일주의로 내세웠던 연방이 그들에게 내립니다. 선의라는 동정심, 잃어도 아깝지 않은 것, 레기온 지배 영역을 한 달가량 걸쳐서 돌파해온 너희들이라면, 잃을 것이 없는 너희들, 지킬 것이 없는 너희들에게 딱 맞는 임무, 괴물이라 칭송하며 이들을 다시 사선으로 집어넣는 연방은 되려 자신들이 괴물이 되고자 합니다.

 

형을 그렇게 보내고 삶의 낙을 잃어버린 '신'은 임무를 받아들입니다. 돌아오지 못할 임무,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될 임무. 그게 우리가 된다고 해서 나쁘다는 고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너희들은 에이티식스니까, 레기온 지배 영역을 돌파해온 괴물이니까. 잃을 것도 없고 지킬 것도 없으니 너희들이 딱 맞다'라는 선의 뒤에 숨은 악의는 그냥 공화국과 마찬가지로 멸망해버리면 좋을 것을이라는 감정을 낳게 합니다. 어디에도 안주할 땅도 없고, 어디에도 자신들의 긍지를 알아주는 사람도 없다. 그저 좀비에게 힐을 걸어주는 성녀들만 있을 뿐, 이제는 쉬어도 좋다는 말은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긍지마저 빼앗으려 드는 행위라는 걸 자각하지도 못한 채...

 

이전에 언급했던 제국 마지막 여제(女帝) 프레데리카의 싸움도 종막을 향해 달려갑니다. 신에게서 자신의 가신 '키리'를 엿보았던 그녀는 레일건에 쓰인 두뇌가 자신의 가신이라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습니다. 이전에 언급했나 모르겠는데 [레기온]은 살아있는 사람의 두뇌를 중추신경으로 쓰고 있습니다. 사람이 가진 생각과 기억과 능력과 지혜를 가진 로봇 [레기온], '엄마~'라는 문장이 가져온, 1권에서 이걸로 허를 찔러 주었죠. 정말로 도서 읽다가 소름 돋기는 이 작품이 처음이었습니다. 사거리 400km에 구경 800mm 레일건 레기온을 움직이는 중추 신경에 쓰인 키리라는 두뇌, 이것은 또 다른 주인공 신을 자처하며 주인공 신에겐 뛰어넘지 않으면 안 되는 벽으로 다가와요.

 

연방을 위시한 주변국이 힘을 합쳐 레기온 군단을 끌어들이는 대규모 양동 작전을 시작으로 신은 동료 4명(+프레데리카)과 보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전장에 몸을 던집니다. 목적이 없는 삶, 이 싸움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자신은 또다시 살아남아서 미래로 가는 걸까. 아무것도 없는 미래. 먼저 간 동료들의 진혼곡을 틀어주는 것처럼 망령들이 내뿜는 포격과 처절한 전투 속에서 신은 삶의 목적을 찾기 위해 '키리'와 대적합니다. 그리고 그 끝에, 그 너머에 기다리고 있는 건... 결말을 말하고 싶은데 이거 진짜 스포일러라서 아깝지만 패스해야겠군요. 이걸 알아버리면 3권을 읽을 의미가 없는지라... 

 

맺으며, 쓰고 싶은 건 많은데 글이 길어지니 마무리 지어야겠군요. 이 작품을 요약하자면 형이라는 굴레를 벗어난 주인공이 삶의 목적을 잃고 흘러가면 흘러가고 그러다 죽으면 그만인, 동료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나만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에 혹사를 하게 되고 그러다 오직 그 혹사만을 목적으로 나아갈려는 그를 주변에서 케어해주는 그런 이야기라는 느낌을 받았군요. 왜 말이 두루뭉술하냐면 의외로 독해력을 요구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 40% 정도는 못 알아 들었어요. 작가가 방언 비슷하게 글을 풀어 놓은 데다 '하늘에서 춤춘다'가 맞는 부분인데 '하늘을 춤춘다' 같이 문장을 애매하게 해놓은 구절이 많아서 이해하는데 상당히 힘이 들었군요.

 

어쨌건 또다시 요약하자면 상처받은 영혼을 제대로 된 길로 인도한다는 그런 이야기일 겁니다. 어릴 때부터 전쟁 밖에 모르고 자란 아이들에게 현실을 들이대며 쉬어라고 해봐야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좀비에게 힐을 거는 거나 다름없다는 의미도 있는 거 같았고요. 결국은 걸레질하는 시어머니에게서 걸레를 빼앗지 말라는 격언처럼 그것밖에 모르고 살아온 사람에게 그걸 빼앗는 건 또 다른 차별이자 억압이 될 수 있다는 뭐 그런 의미?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선의와 동정심만 강요하고 그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상한 놈으로 치부해버리죠. 주인공 신은 그게 싫었던 게 아닐까 하는... 여담으로 엔딩 부분은 누구나 바랐던 이상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꽤나 감동적으로 다가와서 정말 힐링이란 이런 건가 싶었습니다. 스포일러라서 뭔지 쓰지 못하는 게 안타깝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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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능력은 평균치로 해달라고 말했잖아요! 8 - S Novel+
FUNA 지음, 아카타 이츠키 그림, 조민정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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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심각한 스포일러가 들어가 있을지 모르고, 칭찬보단 악평이 들어가 있을 겁니다. 싫으신 분은 빽 하세요.

 

 

 

 

 

이세계로 전생해서 이쪽에서 살았던 기억보다 전생에서의 기억이 더 강했던 게 원인일까요. 자신의 집안 사정과 영지에 대한 미련이 희박하여 가능하다면 영지를 팔아서 호의호식하고 싶었던 '마일'은 영지가 어떻게 되든, 나라가 어떻게 되든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세계를 유랑 중이었어요. 좀 더 아빠는 쓰레기라도 엄마에 대한 추억이라도 풀어 놓던가 해서 아련한 마음이라도 들게 해주면 좋으련만 어디서 멍멍이가 짖나 싶을 정도로 무관심했죠. 이세계에 각성할 때부터 신에게 받은 힘이 있으면서 아버지가 집안을 찬탈한다는 걸 알면서도, 어렴풋이 아버지가 엄마를 죽인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고 있으면서도 도망치기에 바빴던 그녀...

 

그래서 사실 기대하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좋은 기억이라곤 하나도 없는 곳, 자신을 돌봐 주었던 사람들(메이드)도 다 떠나버린 지금은 타지 같은 그곳에 옆 나라 제국이 침략을 시작해요. 마일은 그래도 자신이 태어나고 8년 동안 살았던 고향인데 못 본 채 할 수는 없었어요. 게다가 아직 그 영지의 정통 후계자이고 자작이라는 귀족 계급도 있는지라 다른 건 몰라도 죄 없는 영지민을 외면하진 못하였죠. 착해도 너무 착한, 그녀는 친구들과 함께 영지로 급히 돌아가게 돼요. 자, 인간과 고룡의 딱 중간 보통 마법사를 기준으로 해서 6800배의 힘을 가진 마일이 자신의 영지에 쳐들어온 이웃 국가에 맞서 어떤 싸움을 벌일까.

 

우선 알아둘 건 이 작품은 개그와 중2병으로 먹고살아갑니다. 이거 빼면 시체나 다름없어요. FUNA 작가 특유의 악마 기질도 간간이 보여주긴 하는데 이 작가의 다른 작품 금화 8만 개와 포션빨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기댈 건 개그와 중2병 밖에 없어요. 그런 판국에 진지해진다는 건 있을 수 없어요. 이걸 뭐에 비유해야 가장 적합하다는 소리를 들을까요. 제국의 5천의 정예 군대를 맞이해서 한낱 헌터(모험가) 나부랭이 4명하고 영지군 300명으로 무슨 영화 300을 찍는 것도 아니고, 진지 빨 건덕지가 없는 겁니다. 사실 '한낱'이라고 폄하하긴 했지만 마일의 경우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녀 하나만으로도 사실 상황 종료 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그래가지곤 재미없다는 듯이 개그로 나가기로 정해 버려요. 사실 이런 흐름에 불만을 가져서는 안 되겠죠. 오히려 먼치킨 주인공 하나로 적군 = 떼죽음 연출을 하는 게 뭐가 재미있겠어요. 아무튼 이 애들 심성은 어찌나 착해 빠졌는지 적군은 우리 쪽 영민을 막 죽였을지도 모르는데 이 애들은 적군이라도 사람이고 이 시대의 하급 군졸들은 징집되어 온 농민들인데 죽이는 건 불쌍하다는 둥, 성모 마리아 납셨습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FUNA 작가가 사랑하는 여신 강림 이벤트, 어쩌면 이렇게 세 작품 다 비슷하게 설정을 잡아 놨는지 참 날로 먹어도 유분수지 같은. '마일'의 여신화, 너 님들에게 천벌을~ 하지만 멀뚱히 쳐다보는 적군들...

 

어쨌거나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쳐서 퇴각하는 옆집 제국 군대, 원래는 뒤쫓아가서 영지민의 복수라도 해줘야 하잖아요. 사실 마일의 영지민은 그렇게 큰 피해는 받지 않았지만 마일의 영지에 쳐들어 오기 위해 들린 옆쪽 백작가의 영지는 초토화되어 버렸어요. 아무리 영지가 달라도 같은 국민이고 같은 사람인데 적군은 살려주고 같은 국민이 고통받은 건 난 몰라. 쫓아가서 혼내준다기보다 식당을 차려 퇴각하는 제국 군대를 상대로 밥장사를 시작합니다. 뜬금없죠? 이전부터 돈 독이 올라 있긴 했지만 여길 분기로 해서 아주 그냥 제대로 돈 독이 오르기 시작합니다. 아니 그전에 아무리 힘이 있다지만 퇴각하는 군대를 상대로 여자애들이 장사를 한다는 건, 이 작품이 얼마나 건전하고 개그 일색인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할 수 있어요.

 

위선인가 착함인가, 적들은 내 목숨을 빼앗으려 드는데 되받아 치면서 적을 죽이지 않는다. 알이 먼저인가 닭이 먼저인가. 내가 살려준 이 적(에너미)을 여기서 놔줬을 때, 개과천선하면 다행이지만 어딘가에서 똑같은 짓을 저지르면 그땐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도 내가 막을 수 있을까?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어쩌면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을 수 있음에도 죽이거나 깜빵에 처넣지 않고 놔준다는 행위. 그렇다고 이 사람도 생명인데 우리가 죽일 권리가 있을까? 같은 물음. 작가는 한가지 간과하는 게 있습니다. 죽일 작정으로 덤벼오는 적은 자신도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죽임을 당해도 할 말이 없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 할 수 있어요.

 

2002년작 인지 2004년작 인지 헷갈리는데 스파이더 맨에 보면 피터 파커가 도둑인지 강도인지를 놔주게 되면서 큰 희생을 치르게 되죠. 물론 이 작품에서 희생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습니다. 작가는 뭐가 옳은지 같은 답을 내놓지 않아요. 마치 정답을 외면하는 듯한 누구에게나 정의는 있고 그 정의가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는 건 각자에게 맡겨둔다는 듯 흐지부지 시켜버리죠. 그래서 필자는 답답한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근데 뭐 사실 이 작품 자체가 몇 번이나 언급하지만 개그에 중2병으로 먹고살다 보니 적군이라고 그렇게 나쁜 놈으로 표현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답답함을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맺으며, 가볍게 읽기엔 정말 좋은 작품입니다. 복선은 좀 나오지만 그렇게 추리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먼치킨이지만 먼치킨이라고 광고하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여자들만 구성된 파티를 노리고 어떻게 좀 해보겠다고 접근하는 남자들도 없고, 정말 클린 그 자체입니다. 뭐 초반엔 좀 있긴 했습니다만. 아무튼 실패와 좌절 그리고 패배를 모르는, 한가지 불만이 있다면 이런 부분이죠. 고룡과의 싸움에서 한번 패배 직전까지 가긴 했지만 뭐 진심이 된 마일 앞에선 나뭇가지 꺾듯이 되는 게 이쪽 바닥의 조무래기 입장이다 보니... 차라리 일러스트레이터의 실력을 믿고 귀여움으로 승부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더군요. 수인 소녀 파릴의 경우를 보더라도요. 그런데 동글동글 귀엽던 마일이 이번부터 홀쭉이가 되어버리는 등 일러스트도 변화를 맞아가고 이야기는 평지에서 맴돌기만 하는데... 이번엔 진짜로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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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아트 온라인 프로그레시브 6 - J Novel
카와하라 레키 지음, abec 그림, 김준 옮김 / 서울문화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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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하면서 NPC가 주어진 알고리즘을 넘어서서 인간과 똑같은 사고방식으로 대화를 걸어온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예전 지금은 생각 안 나는 미국 영화에서 이런 주제가 있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알고, 인간의 마음을 가졌고, 인간과 똑같이 행동하는 로봇에게 인권을 줘야 할까? 단지 프로그램 되어 있을 뿐인데? 참고로 스티븐 스필버그의 2001년작 AI는 아닙니다. 이 작품은 보다가 말아서 뭘 뜻하는지는 필자는 잘 몰라요. 하지만 의미는 어느 정도 알 거 같아요. 프로그램된 로봇이라도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인간의 말을 유창하게 하고 인간의 마음을 가졌다면 보호받아 마땅하다는 의미를 어렴풋이 느꼈었죠.

 

이렇게 필자 머리에 쥐나는 걸 감수하면서 AI에 대해 썰을 푸는냐 면, 이번 에피소드에서 키리토와 아스나가 만나는 NPC들이 딱 그짝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NPC란 주어지거나 심어진 알고리즘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잖아요. 그러나 아인크라드의 NPC들은 AI의 사고를 가졌다는, 게임상에 퍼진 방대한 유저 데이터를 분석해 보다 인간에 가깝도록 진화해가는 모습을 조금은 소름 돋게 표현 해놨어요. 사실 지금 시대의 게임들도 초보적인 AI를 가진 NPC가 많이 있긴 합니다. 한번 퀘스트 한 유저를 알아본다던지 같은, 근데 이것도 심어진 알고리즘에 반응하는 것일 뿐, 그 이상은 아니죠.

 

요컨대 이 유저가 특정 NPC를 도와줬을 때 서버에 그 데이터를 저장해두고 다시 그 NPC에 간다면 이전 데이터를 불러와 반응하는 수준, 그러나 작가는 여기서 몇 단계 더 나아가 프로그래머가 심어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서 반응하는 것이 아닌 NPC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을 하고,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를 판단해서 최적의 답을 도출해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는 것입니다. 태생은 틀리지만 22층에서 출몰하는 '유이'의 전초전 같은 성격이랄까요. 데이터 쪼가리일 뿐인 유이가 인간과 똑같이 사고하고 감정도 가진, 작가는 본편에서 NPC 범주에서 벗어난 유이라는 비이상적인 상황을 리얼리티 있게 풀어 놓으려는 듯 아주 작정하고 진화하는 AI를 다루고 있어요.

 

이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유저는 NPC라고 머리는 이해해도 어느 순간 인간으로 취급해버리는 일이 벌어지죠. 아스나는 3층부터 같이 행동하는 다크 엘프 키즈멜(NPC)에게 남다른 애정을 보이고 있고, 이번에 신캐릭터 '미이아'는 키즈멜 보다 한층 더 진화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당근 아스나는 덥석 물어 버리죠. 인간과 AI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예전에 어떤 만화에서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인간과 똑같이 감정을 가지고 사고하는 로봇과 사는 사람들은 결혼을 하지 않아 인류는 곧 멸망할 거라는, 판타지로 치면 엘프와도 같은 거려나요. 언제 죽을지도 모를 방대한 시간을 살아가는 엘프는 자손 보존 욕구가 희미하다는 설정.

 

아무튼 간에 1층부터였나 집요한 PK 집단의 괴롭힘을 받아왔던 키리토, 이번에도 PK 집단의 암약으로 인해 키즈멜이 소속된 다크 엘프 진영은 졸지에 폴른 엘프들의 공격을 받아 궤멸이라는 원래 시스템에는 없는 재앙을 맞이해가고 키리토와 아스나는 친구 키즈멜이 속한 다크 엘프 진영에서 필사적으로 폴른 엘프들을 막아 가요. 사실 PK 집단의 난입으로 퀘스트가 꼬여버리긴 했지만 전체적인 이야기는 3층부터 시작된 시스템적 퀘스트의 일부에 지나지 않아요. 공격하는 무리가 있으면 방어하는 무리도 있고 정의의 편에 서서 도와주는 착한 주인공과 히로인이라는 클리셰에 해당되어서 사실 큰 이야깃거리는 없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감은 과연 레키 작가답다 할 정도로 매우 수준급인데요. 가령 키리토가 다크 엘프 진영에서 적이 생각도 못한 곳에서 쳐들어오지 않을까 요새를 살피며 추리하는 부분은 알고 보면 별거 아닌데 이걸 긴장감 높이며 읽게 하는 작가의 능력이 좋다 할 수 있어요. 필자는 말주변이 없어서 이 느낌을 제대로 전달할 수는 없지만 점수를 준다면 10점 만점에 10점을 줄 수 있습니다. 뒤로 가면서 PK 집단의 암약과 폴론 엘프의 할약으로 궁지에 몰려버린 키즈멜이라던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에피소드를 읽는데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읽으면서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긴 참 오랜만이었다고 할까요.

 

그리고 중반을 넘어서면서 PK 집단의 난입으로 꼬일 대로 꼬여버린 퀘스트를 풀어가던 중 사고하는 NPC 미이아를 만난 키리토와 아스나의 이야기는 저 위에서 언급한 사고하는 AI 부분이라 할 수 있어요. NPC임에도 인간과 똑같이 행동하고 자신이 위치하는 구역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미이아의 행동에서 프로그램과 인간이라는 경계를 애매하게 하죠. 본편에서는 거의 없었던 이런 흐름, 작가는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위해 이런 사고하는 AI를 넣었을까. 유이의 출연에 대한 이질감을 줄이고 납득 시키려는 사전 포석치곤 본편하고 시간적 괴리감이 장난 아닌지라 이건 아닌 거 같고...

 

맺으며, 최대한 스포일러 없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그렇게 큰 이야기는 없어요. 인간처럼 진화하는 NPC와 PK 집단의 암약 그리고 퀘스트를 위해 연을 맺었지만 정이 들어버린 키즈멜을 도와주는 주인공과 히로인, 이렇게 요약할 수 있죠. 그 과정에서 로봇이라도 인간과 친구가 될 수 있고 만들어진 존재라도 함부로 죽이는 건 죄악이라는 의미를 찾기도 했습니다. 친구라는 기준은 탄생의 기준이 아니라 얼마만큼 서로를 이해하고 있느냐가 아닐까 하는 의미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군요. 작가의 필력이 이번 6권을 위해 1~5권은 버린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별 아닌 내용임에도 작가의 필력으로 질을 수준급으로 올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죠. 뜬구름 잡는 이야기인 건 알고 있어요. 필자의 저주스러운 필력이 이러니 어쩌겠습니까. 종합적으로 점수를 주자면 10점 만점에 9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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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사는 기도하지 않아 2 - Extreme Novel
스도 렌 지음, 니리츠 그림, 정혜원 옮김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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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번 이야기는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내용입니다. 글이 길어 피곤해 하시는 분들을 위해 요약하자면 정체에서 벗어나 성장을 바라는 노예와 타인이 휘두르는 힘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백설공주가 세상 밖으로 나아가기 위한 몸부림을 그리고 있다 할 수 있어요. 그 중간에 끼인 주인공 라자루스의 고생은 덤이고요. 그러다 보니 이번 1권은 도박사와 노예 소녀의 만남이라는 신선한 소재여서 리뷰 쓰는 것에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거에 비해 이번 이야기는 이후 이들이 서로에게 다가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보니 여느 로맨스나 계급물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참고로 계급물이란, 귀족과 평민이나 우리로 치면 마님과 돌쇠의 관계를 말합니다. 사실 종이 다른 종족간 맺어지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죠. 또한 계급이 다른 사람끼리 맺어지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은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요. 그렇다면 이 작품의 주인공인 라자루스와 히로인 릴라도 맺어지는 걸까? 하는 물음엔 '글쎄요.' 밖에 말을 할 수가 없어요. 릴라는 라자루스가 아니었다면 귀족에게 팔려가 죽도록 밤일만 하다가 창관에 팔리는 것으로 인생의 끝을 봐야 했을 겁니다. 그런 시궁창 같은 인생에서 끄집어 올려준 게 라자루스였죠. 그런데 구해줬다고 호감으로 이어질지언정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어질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무얼까. 릴라는 자신을 구해줌으로써 라자루스가 얼마나 피해를 보고 있는지 잘 알고 있어요. 결국 고향과 같은 제도에서 쫓겨나다시피 여행길에 오른 것도 다 그녀 때문이죠. 여행길에 들린 마을에서 노예(릴라)를 대리고 있다는 이유로 여관은 이들을 문전박대 합니다. 어딜 가도 마찬가지, 결국 여기서도 자신은 족쇄밖에 되지 않는다는 마음을 품어 버려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마음에 솔솔 부풀어 오르죠. 버려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거기에 그녀의 마음에 쇄기를 박듯 여행길에 들린 마을의 지주(땅 주인) 대리 '이디스(참고로 여자)'와의 만남은 릴라를 더욱 파국으로 내쫓기 시작합니다.

 

좋아한다 = 자신을 필요로 해준다.는 동의어일까요. 릴라는 라자루스를 만나 행복이 무엇인지 고찰합니다. 노예의 삶에서 벗어난 지금, 괴로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현재, 차가우면서도 한번 테두리에 들어온 건 버리지 않고 길러주겠다는 듯한 포근함을 보여주는 그의 등을 바라보며 지금의 자신은 행복할까?를 자기 자신에게 물어갑니다. 하지만 행복과는 거리가 먼 자신의 가치를 떠올리는 그녀, 자신 때문에 많은 것을 잃어버린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무얼까. 그렇게 골머리를 앓아가던 그녀를 아랑곳하지 않고 라자루스를 꼬시기 시작하는 이디스를 바라보는 릴라의 마음은 타들어가기만 합니다.

 

이 타들어가는 감정은 좋아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일까? 참 미묘합니다. 하지만 그녀가 메이드를 거느리고 있는 지주(땅 주인)인 이디스와 라자루스가 결혼하게 되면 자신을 필요 없게 된다는 생각에 미치게 됨으로써 사모한다는 마음보다는 자신(릴라)을 필요로 해줬으면 하는 마음 그 이상은 아니라는 걸 이 작품은 서술하기 시작하죠. 결국엔 답을 찾지 못하고 릴라는 노예 때의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버립니다. 그만큼 그녀는 궁지에 몰려 있다고 할 수 있는 대목이어서 참 가슴 아프게도 하는데요. 그렇담 그녀가 이렇게 방황하고 있는데 라자루스는 뭘 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소재에서 처음엔 늘 주인공이 문제로 다가오죠.

 

머나먼 중앙아시아에서 팔려온 것도 모자라 귀족 취향에 맞춰 개조되어야만 했던 그녀(릴라)가 품었던 만년설 같은 마음, 그걸 녹여준 사람에게 이끌리는 건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남자. 자신 때문에 있을 곳을 잃은 남자. 그러나 그거에 대한 보답을 해줄 수 없는 자신. 마음이 망가져 가는 것도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제도에 있을 수 없어 여행을 떠난 라자루스를 따라 그녀도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가슴 두근거려야 할 여행길, 하지만 그녀의 마음 한켠엔 자신은 필요 없는 존재라는 어두운 감정이 자리하기 시작하죠. 이것은 있을 자리, 발밑이 불안정한 그녀의 위태로움을 표현하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릴라의 마음만 절절하게 표현된 건 아니고 새로운 히로인 '이디스'의 등장에 포커스를 절반 맞추고 있기도 합니다. 부모님을 여의고 어린 나이에 넓은 땅을 물려받아 지주가 되었지만 시기가 여성이 경제나 사회에 참여하는 걸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기던 시절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보니 그녀의 처지는 딱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거길 비집고 들어와 그녀의 약혼자 행세를 하는 변호사의 악질적인 행위로 인해 이디스는 점점 궁지에 몰려 가죠. 그 궁지를 타파하기 위해 죽음까지 불사하던 그녀(이디스)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라자루스에게 매달려 위기를 극복해 갈려는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두 개의 마음이 하나의 에피소드에 들어가 있다고 할까요. 자신을 필요로 해줬으면이 아니라 자신의 발로 자신의 가치를 알리려는 릴라의 마음과 시대적으로 여자의 힘으론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디스의 마음이 혼재해 있다 할 수 있어요. 그 중간에 끼여 '아무래도 상관없어'만 외치며 외면만 해가던 라자루스의 극적인 마음의 변화는 한편의 드라마와 같고요. 근데 극적인 변화라고 해도 후반부 해답 편에 이르러서는 능구렁이 같은 놈이었구나 하게 해주지만요. 사실 라자루스는 릴라를 끔찍하게 아껴주고 있어요. 그렇지 않다면 그녀와 같이 여행을 떠난다는 선택지는 없었을 테니까요.

 

맺으며, 언뜻 보면 라자루스를 사모하는 릴라라고도 할 수 있는데 한 번도 그런 표현이나 장면이 없어서 참 애매한 이야기였습니다. 필자에겐 그저 노예로써 자신을 좀 더 필요로 해줬으면 하는 릴라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군요. 노예 소녀에게 있어서 행복이란 무엇일까. 그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돌아봐 줌으로써 비로써 노예 소녀는 행복을 느껴간다? 이야기는 이내 그런 건 틀렸다고 서술하기도 합니다. 행복이란 그런 게 아니라고, 자신의 손으로 잡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서술하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이야기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한번 녹아버린 눈은 다시 원래 형태로 돌아가지 못한다.' 이렇지 않을까 했습니다.

 

녹아버린 눈은 강물이 되어 흐를 뿐이죠. 라자루스에게 구입된 뒤로 릴라는 강물이 되어 허우적거리며 떠내려갈 뿐 강가로 벗어난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할 수 있어요. 이번 이야기는 그런 릴라가 강가로 올라서는 그런 느낌입니다. 자신을 필요로 해줬으면 하는 생각을 버리고 자신의 발로 그 필요한 자리를 만들어 간다는 생각, 그리고 그녀는 불안정한 발판에 발을 내디뎌 걸어가죠. 이디스는 사실 들러리입니다. 그 흔한 위기에 빠진 소녀 역을 맡으며 주인공 보고 구해주세요. 같은 가시덩굴에 둘러싸인 성에 갇힌 공주 같은 역할 그 이상은 아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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