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리오·마키나 1 - 《뱌쿠단식》미나즈키의 재기동, JM 노벨
미사키 나기 지음, 레이아 그림, 구자용 옮김 / 제우미디어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르: SF판타지, 전쟁, 하렘, 왕따, 오토마타, 반전사랑이 세상을 구한다.


표지설명: 백은색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카논'과 중2병을 앓고 있는 듯한 '미나즈키'다.


스토리: 흡혈귀들이 자신들은 우월한 종자라며 전 세계를 상대로 쓸데없는 싸움을 건다. 인간보다 월등히 뛰어난 신체와 능력을 이용해 파죽지세로 인간 세계를 침략한다. 헬바이츠 공국은 대흡혈귀용 '뱌쿠단식' 오토마타를 만들어 대항한다. '뱌쿠단식'은 절망에 빠진 세계에 구세주가 될 것인가. 10년 후, 어째서인지 '뱌쿠단식' 오토마타들은 천하의 역적이 되어 있었다. '카논'은 오토마타 마니아다. 뱌쿠단식 오토마타에 흥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으로 인해 왕따를 당하는 중이다. 그의 곁에는 오토마타 '미나즈키'가 있다. 그는 왕따 당하면서도 대항하지 않는 카논을 못마땅해 하는데...


특징: 여론조작이 이렇게나 무섭다. 무생물 오토마타도 하렘을 꾸린다.


평가: 학자들이 괜히 로봇(이 작품에서는 오토마타)을 인간형태로 만들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다. 감정이입은 병까지 상사한다. 인간과 로봇의 경계를 구분해두지 않으면 윤리적으로 힘들어지는 건 인간이다. 이 작품은 그런 경계를 무너트린다. 인간은 결코 신(神)이 될 수 없다. 어설프게 신 행세를 했다가 어떤 꼴이 일어나는지 이 작품은 잘 보여준다. 인간은 인간답게, 로봇은 로봇답게.


이 작품의 핵심 포인트는 반전에 있다.



꽤 심한 스포일러 주의, 장문 주의



등장인물은 오토마타 기사를 꿈꾸는 '카논'과 그의 사촌 '미나즈키', 그리고 흡혈귀 공주 '리타'다 카논은 헬바이츠 공국에서 학살자로 경멸의 대상이 되고 있는 오토마타 '뱌쿠단식'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 이게 이 작품의 키포인트다. 그녀는 왜 학살자라고 정평이 나 있는 오토마타에게 흥미를 가지고 있는가. 이것으로 인해 그녀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중이다. 단순히 나와 달라서 괴롭히는 차원이 아닌 학살자의 대명사인 오토마타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그녀가 못마땅한 건 당연하다. 왜냐면, '뱌쿠단식'은 폭주로 인하여 대량의 인간을 살상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추종하는 인간이 좋게 비칠 리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두 번째 포인트가 있다. 흡혈귀들은 '뱌쿠단식'오토마타에 속수무책이었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쉽게 점령을 하였지만, '뱌쿠단식'을 보유한 헬바이츠 공국에서는 계속해서 패전을 거듭해야만 했다. 여기서 냄새가 난다. 적국의 비밀병기를 무력화 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물음을 던진다. 군의 수뇌부라면 모든 방법을 동원하려 할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는 거기에 초점이 맞춰진다. 흡혈귀들은 정공법으로 '뱌쿠단식'과 전투를 벌이는 것보다 자신들의 능력을 이용해, 가령 흡혈귀의 능력 중 하나인 '매료'로 운용주체를 공략하고 나아가 '뱌쿠단식'을 손에 넣어 인간들을 말살한 게 아닐까.


그리고 폭주하는 '뱌쿠단식'을 어쩌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협력을 뜻을 내비쳐 손을 잡는다. 그리고 얼렁뚱땅 '뱌쿠단식'을 처분하고 인간들에게 빚을 지운다. 그 결과 헬바이츠는 왕권제에서 공화국이 되고, 흡혈귀들이 정치의 중추에 자리를 잡는다. 군에도 흡혈귀들이 자리를 잡는다. 다른 나라를 침공할 때 꼭 정공법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적의 적을 만들고, 내부에서 무너트리면 피와 돈을 들이지 않고도 점령할 수 있다. 이렇게 헬바이츠는 공국으로 다시 태어나고 흡혈귀와 공존하는 나라가 되어 버린다. 아직도 세계는 흡혈귀와 전쟁 중이다. 그 전쟁 중인 나라가 헬바이츠 공국을 어떻게 생각할까.


시종일관 '뱌쿠단식'의 허점을 드러내면서 위 가설을 뒷받침한다. 령 전략급 병기를 조종하는 마스터의 인증이 너무나 허술하다. 칩에 마스터의 정보를 심어 삽입하는 부분에서 보안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래서 누구나 '뱌쿠단식'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소스코드 접근도 쉽다는 걸 피력한다. 이점을 흡혈귀들이 파고든 게 아닐까, 그런 흐름을 보여주며 다른 가설을 차단한다. '뱌쿠단식'의 오토마타가 천하의 역적이 된 이유, 흡혈귀는 정공법으로는 '뱌쿠단식'에 대항할 수가 없다. 그러니 다시 못 만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하다. 용사를 마왕으로 만들면 되는 것이다. 헬바이츠 공국은 대흡혈귀 전투용 오토마타 만드는 게 금지되었다.



미나즈키는 부적합품이다. 10년 전 자신을 만들어준 어머니에게서 그런 말을 듣고 잠에 들었다. 깨어나 보니 조국은 흡혈귀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어머니는 8년 전 학살극에 휘말려 사망하고, 형제들은 모두 박물관에 전시되어 조롱당하고 있다. 그는 이제 유일한 '뱌쿠단식'이다. 그런데 대흡혈귀용으로 제조되어 전선에 서보지도 못하고 동결된 끝에 깨어나 보니 세상은 요지경이다. 그러니 그의 울분은 꽤나 컸을 것이다. 반항기를 겪는 아이처럼 자신의 주인인 '카논'에게 시시때때로 시비를 걸고, 그녀가 왕따 당한다는 걸 알면서도 도와주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 의의 상실은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 버렸다.


'뱌쿠단식'이 헬바이츠 공국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카논은 거기에 집착한다. 그것으로 인해 왕따를 당하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처음엔 뭐 이런 히로인이 다 있나 싶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진실이 드러나면서 매우 안타깝게 한다. 그녀는 자기 나름대로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뱌쿠단식'이 인간을 학살하는 건 있을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왜냐면, '뱌쿠단식' 오토마타 창조주 '하루미 뱌쿠단'이 그녀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반전이 일어난다. 미나즈키는 하루미 뱌쿠단이 남긴 유일한 오토마타다. 하루미 뱌쿠단은 왜 자신의 딸에게 미나즈키를 남겼을까. 이것을 풀어가는 게 이 작품의 묘미다.


그리고 8년 전 학살극의 진상이 드러난다.



이 작품의 단점: 필자의 주관적이지만, 흡혈귀 공주 '리타'의 싸구려 연애관으로 인해 좋은 소재를 다 갉아먹는다. 첫눈에 반한다는 걸 믿지 못하면 연애는 할 수 없다고는 하는데, 폭주하는 공사용 오토마타를 처리한 미나즈키에게 꽃여서 그가 다니는 학교에 전학하고, 그를 만나자마자 고백하는 등 제정신이 아닌 모습을 보인다. 그런 게 흡혈귀의 특징이라고 서술은 하고 있는데 서술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그걸 보는 독자는 학을 떼고 싸구려 이미지를 받아 버린다는 거다. 온갖 아양에, 딴에는 귀엽다고 표현한 장면들은 오글거리는 게 아니라 혐오에서 오는 닭살이 돋는다. 리타를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진상 스토커다. 이것이 작중에 상당한 분량으로 들어가 있다. 대체 이 내용이 필요한가라는 의문이 떠나질 않는다. 왜 평범한 연애를 못하냐고.


눈여겨볼 장면들: 주인공 미나즈키가 자신을 동결 시킨 어머니의 참뜻을 알아가고, 카논이 왕따를 당하면서도 '뱌쿠단식'에 집착하는 이유를 알아가는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미나즈키의 존재 의의는 흡혈귀 구축이다. 하지만 카논은 그(미나즈키)가 평범하게 살아줬으면 좋겠다고 한다. 이것은 초반에 발암으로 다가온다. 자신(카논)의 뜻을 상대(미나즈키)에게 강요하는데 이것은 상대의 마음을 무시하는 태도로 비춰진다. 근데 머리 좋은 사람이 이 작품을 읽으면 초반에 그녀의 진짜 뜻을 알게 된다. 인간을 학살한 '뱌쿠단식'과 평범하게 살아줬으면 하는 마음의 뜻이 무얼까.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뱌쿠단식'은 학살자가 아니라고.


맺으며: 이 작품의 묘미는 가설을 뒤집는 반전에 있습니다. 가령 '뱌쿠단식'이 학살자가 된 이유가 흡혈귀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하게 하고, 그 추측을 뒷받침하는 가설을 심어놓으면서 믿게 하고, 해답 편에서 진짜 흑막은 따로 있다라는 반전을 보여주죠. 요컨대 필자가 세운 가설은 낚였다는 의미. 이런 이야기들은 추리물에서 흔히 보는 소재이긴 합니다만. 가설과 단서를 워낙 치밀하게 심어 놓다 보니 중반까진 쉽게 속겠더라고요. 은상 받을만하다고 할까요. 그리고 캐릭터들의 변해가는 성격도 볼만하죠. 카논의 행동이 못마땅했던 미나즈키가 그녀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고 비로소 자신의 존재 의의를 찾아가는 대목이 인상적입니다. 카논도 주변이 온통 적 밖에 없는 현실에서 홀로 싸워갈 수밖에 없었던 마음에서는 분함이 묻어 나왔군요. 리타는 진상 스토커, 대체 왜 등장시켰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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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했더니 검이었습니다 8 - S Novel+
타나카 유 지음, Llo 그림, 신동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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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르: 이세계 전생 잘못해서 검이 되었습니다. 홀아비가 전하는 아이 양육하기, 말하면  덕후 냄새난다고 욕먹을 거 같은 고양이 귀, 노예에서 시작하는 고양이 종족의 희망으로 공주님, 종족과 부모의 유지를 이어받아 진화로의 여행, 그 끝에 다다른 진화, 밥은 먹고 다니냐?


특징: 먼치킨의 교본, 하지만 무쌍은 없다(조금 있다), 위에는 위가 있듯이 언제나 강적이 출몰한다. 그걸 뛰어넘어서 강해진다. 그놈의 스킬창이 자주 출몰한다. 맥을 끊는다. 걸핏하면 카레가 등장한다. 편식은 좋지 않습니다.


표지 설명: 라이벌을 만난다. 꽤 강하다. 친구가 된다. 근데 지금  애비 어디에 있냐(이건 9권에서 설명).


스토리: 프란과 스승은 수인국으로 향한다. 프란이 진화할 수 있었던 계기를 제공해준 키아라를 만나고, 흑묘족 마을에 들려 흑묘족도 진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한다.




스포일러 주의, 장문 주의, 쓸데없는 설명 주의. 바쁘신 분은 ↑ 위에 것만 읽으셔도 됩니다.




울무토에서 진화를 이룬 '프란'은 진화의 단서를 제공했던 '키아라'라는 흑묘족을 찾아 수인국으로 향한다. 가다가 바다에서 에피소드 하나 뽑아 먹고, 드디어 수인국에 도착은 했는데 어째 분위기가 요상하다. 이전에는 걸핏하면 시비에 말려들곤 했는데, 이젠 마주치는 사람마다 겁먹고 피하기 바쁘고, 때론 경외의 눈길을 보내온다. 알고 봤더니 흑묘족이 진화한 케이스는 프란이 유일하다나. 그러다 보니 지레 겁먹고 피하는 중이다. 그것도 그거지만, 수인끼리는 상대가 진화한 상태라면 알아본다고 한다. 진화란 요컨대 초사이언 같은 거다. 손오공이 초사이언이 되었을 때 베지터는 꽤나 충격을 먹었었지.


그러니 진화를 못한 수인들은 진화한 상대를 넘사벽으로 취급한다. 진화했다는 건 그만큼 수라장을 헤처 나왔다는 소리고,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다. 괜히 시비 걸었다간 다리 잘리는 걸로는 끝나지 않는다. 특히 프란은 자신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면 주먹(칼)이 먼저 나간다. 울무토에서 무투대회를 통해 프란의 소문은 대륙을 넘어 수인국에도 퍼졌다. 흑뢰희라는 이명을 곁들여 이젠 숭상하는 수인들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나쁜 기분은 아니다. 이때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던가. 노예로 잡혀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끝에는 고기 방패가 되어 사라질 운명이었는데 스승(주인공, 검)을 만나 이렇게 진화를 이뤘다.


조금은 거드름 피울 만도 하겠건만, 그러지 않는 게 매력이라면 또 매력이다. 그녀의 무뚝뚝한 성격은 어디 못 간다. 아무튼 키아라를 찾아 수인국 왕궁에 찾아왔더니 그 당사자는 오늘 내일 중이다. 수십 년 전 납치되다시피 수인국으로 잡혀와 모진 고초를 겪고, 온건파 왕으로 바뀌면서 키아라의 입지도 조금은 올라갔지만 이미 나이는 황혼은 넘어선지 오래다. 프란처럼 젊었을 적에 진화의 조건을 찾아 얼마나 노력을 했던가. 이제 일어설 기력도 없는 그녀(키아라)가 진화에 성공한 프란을 봤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진화는 종족의 비원이다. 땅을 기는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종족의 지위를 끌어 올리기 위해 무던히도 진화를 꿈꿔왔었다.


자, 꺼져가는 촛불이 마지막 불꽃을 피우려 한다. 프란으로부터 진화의 조건을 들은 키아라는 마지막 생명을 불사르려 한다.

근데 아쉽게도 키아라의 이야기는 여기서 9권으로 넘어간다.



온건파 수인왕이 집권하면서 적어도 수인국에서의 흑묘족은 안정적으로 살고 있나 보다. 이왕 이곳까지 왔으니 동족에게 진화의 조건을 퍼트리고 싶은 프란이다. 흑묘족이 몰려 산다는 마을로 가다가  백발 꼬맹이를 만난다. 이름은 '메아'라고 한다. 메아가 놓친 사냥감을 프란이 잡아 버리는 바람에 일촉즉발이 된다. 그러게 왜 놓쳐가지곤이라고 정론을 들이밀자 메아는 찍소리 못한다. 근데 느닷없이 결투를 하자네. 애들은 싸우면서 친해진다고 하니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이렇게 또 새로운 인연을 만난다. 이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이 이것이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고, 이별은 새로운 만남을 의미하는 게 이 작품이다.


아무튼 흑묘족이 몰려 산다는 마을에 도착은 했는데... 그동안 흑묘족이 얼마나 박해를 받고 살아왔는지 잘 보여준다. 사람들이 하나같이 패기는 없고 상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비굴한 모습에서는 그 옛날 천하를 호령했던 흑묘족의 긍지는 찾아볼 수가 없다. 이게 다 자업자득이지만 선조가 저지른 일을 후손이 죗값을 치르는 것도 참 뭐 같은 상황이다. 며칠을 여기서 묵으며 잠깐 흑묘족을 돌보기로 하는데 이야기가 이렇게 온화하게 끝나지 않는 게 또 이런 작품의 매력이다. 주인공(혹은 히로인)이 가는 곳마다 사건이 일어나는 전매특허를 이 작품도 가지고 있다. 즉, 흑묘족 마을을 향해 뭔가가 다가온다.


이제까지의 싸움은 애들 장난 수준이다. 먼치킨이지만 먼치킨이 아닌 게 이 작품의 특징이랄까. 수인국을 전격적으로 침공하는 옆 나라의 대규모 공세는 프란과 스승을 사지로 몰아간다. 사실 내 알 바 아니다. 같은 흑묘족이라고 해도 생판 모르는 타인이다. 무시하고 도망가면 그만이다. 애초에 프란도 스승을 만나 성장을 하였다지만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한 생활을 해왔다. 그러니 여기서 도망친다고 해서 누가 손가락질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완고하고 무뚝뚝하고, 적에겐 가차없지만 지켜야 할 사람이라고 인식하면 버리지 못하는 게 프란이다. 진군해오는 대군을 맞아 프란과 스승은 흑묘족 마을 사람들이 무사히 피난할 시간을 벌고자 한다.


맺으며, 기승전결이 아쉽군요. 7권에서도 바다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로 몽땅 채우더니, 이번에도 미적미적 거리다 결국 8권에서는 이야기를 매듭 못 짓고 9권으로 넘어가 버립니다. 이제 거의 결말만 남았는데, 무슨 광고 후에 뵙죠도 아니고... 그나저나 프란이 수인국에 오지 않았다면 수인국은 멸망했을지도 모르는 시추에이션이라니 얼마나 인제 부족에 시달리는 거냐라고 되뇌지 않을 수 없었군요. 위에서 무쌍은 없다고는 했습니다만. 프란과 스승이 대군을 맞아 싸워대는 모습은 영락없이 먼치킨 무쌍은 무쌍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군요. 하지만 모험가 등급에 맞는 실력이라는 작중 설정은 잘 지키고 있다는 게 특징이자 매력입니다. 


가령 모험가 A등급이라면 이 정도 실력이라는 걸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까요. 그러니 프란이 싸우는 대목에서도 C등급이지만 본 실력은 A등급에 맞먹는다는 걸 잘 표현하고 있죠. 참고로 프란은 A등급 실력이지만 A등급으로 승급을 하지 않는 이유가 B등급 시험에서 지위 능력을 인정받아야 되는데 프란은 이 능력이 없어서... 설명 조금 더 첨언하자면, 이 작품에서 모험가 A등급은 국가 전략급 병기 취급한 명만 있으면 다른 나라의 침공을 억제할 수 있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아만다(하프엘프, 프란의 부모를 키운) 한 명만으로 옆 나라 침공을 억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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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의 마왕 1 - J Novel Next
마지마 분키치 지음, 토요타 사오리 일러스트, 김경훈 옮김 / 서울문화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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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르: 침략전쟁, 수탈, 지배에서 오는 인간의 존엄은 무엇인가 하는 철학적인 물음,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와 힘이 없는 애국자, 난세의 시대에 사람들은 영웅을 갈망한다, 그래서 등장한 마왕, 정통 판타지, 이세계물 아님.


표지 설명: 뭔가 북두의 권처럼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작중 세계관을 잘 나타내고 있다. 


스토리: '스노바'라는 나라가 있고, '코핀'이라는 나라가 있다. 둘의 조상은 같다. 근데 스노바는 옆 나라 코핀을 침공한다. 코핀은 매국노들 때문에 별다른 저항도 못해보고 왕족과 군대는 몰살 당한다. 스노바의 장군은 코핀을 야만인이라 정의하며 가혹한 통치를 시작한다. 일명 선민사상이다(모르면 검색해보자). 침략전쟁에 있어서 선민사상만큼 골 아픈 것도 없다는 걸 보여준다. 그 예로 스노바 장군은 마지막으로 남은 코핀의 왕족 루키나 왕녀로 하여금 굴욕적인 복종을 요구한다. 이 난세를 극복해줄 영웅은 나타날 것인가. 왕녀를 구하고 나라를 구할 영웅, 대초원 어느 귀퉁이에 머리가 하얀 청년이 살고 있다. 어느 날 청년의 집 근처로 이상한 투구를 쓴 여자애가 쫓겨온다. 여기서 마왕의 전설이 시작된다. 마왕? 영웅은?


특징: 힘이 없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이기면 장땡이다. 알량한 자존심을 세울 시간이 있으면 망명정부라도 세워라. 입만 산 위정자는 꼴불견이다. 내 여자를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 죽는다? <- 이게 이 작품의 최대 포인트.


장점: 거대종(거인?)이 있고, 용이 나오는 고대 시절을 바탕으로 하는 대서사시. 밝은 파스텔톤식 판타지가 아니라 고대 시절 전쟁으로 피폐해진 대지를 배경으로 하는, 하늘이 언제 푸르렀는지도 모를 우중충한 잿빛 세계를 기본 바탕으로 깔고 있어서 어딘가 몽환적이면서도 세기말적 분위기가 특징이다. 적어도 하렘은 아닌 거 같다. 근데 가능성은 있다. 그중에 유부녀도 포함이다.


단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루키나 왕녀가 불쌍하다.



스포일러 주의



기적은 없다. 영웅이라고 불린 사람들은 전부 죽어 버렸다. 아버지도 모두, 루키나 왕녀는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아무리 굴욕을 당해도 교섭을 이어가고자 하지만 스노바 장군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다. 태초에 거대종과 용과 인간의 싸움으로 이 대지는 피폐해지고 하늘은 구름으로 덮여 해(태양)을 본 지가 1천 년 전이다. 식물은 제대로 자라지 않고, 사냥감도 통제하며 잡아야 할 만큼 궁핍한 삶을 살아가는 코핀이라는 나라를 침공해서 스노바는 어쩌려고 하는 걸까. 저항은 용서가 되지 않고, 반란의 씨앗이 되는 거라면 아이도 죽이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마치 복수를 두려워하는 겁쟁이마냥.


흰머리 청년 '더스트'는 대초원 한 귀퉁이에서 쓰러진 나무 밑동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 그는 옛적 마왕이라 불리었던 어떤 인물을 연구하며 지내고 있었다. 하늘에선 여전히 비가 내린다. 땅에서는 해골의 손이 쉬고 있다. 어느 날 유적을 연구하던 그에게 낯선 여자애가 쫓겨온다. 머리엔 이상한 투구를 썼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이 땅에 어인 일일까. 모험가들에게 쭃겨온 그녀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한다. 그때 청년 더스트는 마술을 이용해 땅에서 쉬고 있던 해골로 하여금 그녀를 구하게 한다. 이것이 청년 더스트와 왕녀 루키나의 미래를 바꿀 거라는 걸 지금은 몰랐겠지. 여자애의 이름은 '애시'라고 한다. 



이 작품의 두 번째 장점: 혼자서 다 해 먹는 먼치킨은 없다. 그놈의 스테이터스 창도 없다. 마법은 있지만 대규모 술식은 없다. 먼치킨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겐 입에 안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게 매력이다.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는 절망감이 있다. 나라와 백성을 지키기 위해 저마다의 정의가 충돌하며 누가 선인지 분간 시키는 묘미가 있다. 사람의 존엄은 어디서 오는가 하는 철학적인 물음이 있다. 가령 '나라를 잃더라고 핍박을 받더라도 살아만 있으면 언젠가 빛을 볼 날이 올 것이다'와 '억압받고 개돼지 취급 당하며 인간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마음마저 박살 내버리는 삶에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인가'라는 물음이 있다. 죽더라도 자유를 쟁취할 것이냐. 살아서 굴욕을 당할 것이냐의 물음이 있다. 


왕녀 루키나는 일방적인 선택을 강요 당한다. 굴욕적인 조건이 걸리고 항복을 선서하며 벌레처럼 바닥을 기라고 한다. 저항은 무의미,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문득, 옛날 일이 떠오른다. 왕녀인 자신에게 당돌한 진언을 마다하지 않던 머리가 흰 소년을. 그 소년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면 분명 이 국난을 타개할 비책을 제시했을 것이다. 고대 시절 코핀이라는 나라에는 마왕이라고 불렸단 사내가 있었다. 죽어버린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금단의 마술에 손을 대어 마왕으로 낙인찍히고 추방되었던 사내. 세월이 흘러 그 마왕의 업적을 연구하는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은 사상 두 번째 마왕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추방되었다.


흰머리 청년은 '애시'라는 여자애를 만난다. 애시는 용을 신(神)으로 숭배하는 나라를 찾아와 용의 실물을 보고자 한다. 애시의 부모는 스노바라는 나라에서 용이라는 신을 주제로 한 논문을 발표했다가 처형 당한다. 자신들만의 용이 유일신이라 떠받드는 나라에서 타국의 용신은 이단으로 치부하는 걸 간과한 것이다. 부모의 마지막 업적인 용에 관련된 걸 찾아 애시는 코핀으로 온다. 코핀의 하늘에는 비를 관장하는 용신이 있고, 백성들로부터 숭배받고 있다. 마지막 소원인 것처럼 애시는 거기에 매달린다. 자기 목숨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그리고 스노바 군은 해선 안 될 짓을 저지른다. 애시는 죽다가 살아난다. 그리고 정신줄을 놓아버린다.


흰머리 청년은 분노한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애시는 한솥밥을 먹었던 사이다.


맺으며, 이 작품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기적은 없다.'를 들 수가 있군요. 희망이 되는 싹은 처음부터 잘려 나갑니다. 지배자에게 있어서 피지배자들에게 절망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잘 보여주고 있죠. 희망의 싹을 없애고, 자신들의 최고 정점인 왕녀로 하여금 굴욕적인 모습을 보이게 한다. 그렇게 해서 의지를 꺾는다. 통제에 있어서 이것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는 걸 보여준다고 할까요. 그럼에도 루키나 왕녀의 꺾이지 않는 마음은 참 절절하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소리만 치는 왕녀가 사실 꼴불견이기도 하고, 어릴 때부터 왕족에 어울리는 근엄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 속칭 바지사장 취급 당하는 모습은 안타깝게도 합니다.


흰머리 청년 '더스트'와 이상한 투구의 '애시'의 관계도 눈여겨볼만합니다. 위기에 처한 애시를 구해주고 이후 줄곧 같이 살면서 애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애시는 더스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장면 장면들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게 또 이 작품의 묘미가 아닐까 싶었군요. 그러다 난세는 이들에게 손을 뻩치게 되고, 애시가 말려들면서 빡친 더스트가 마왕이 되어 가는... 이 작품은 루키나 왕녀의 시각과 더스트와 애시의 시각으로 진행이 됩니다. 그리고 시냇물이 만나 강을 이루듯 이야기를 합쳐지죠. 이걸 절묘하게 역어 가는 작가의 실력이 좋아요. 전체적으로 보면 카타르시스나 큰 흥미를 끌만한 소재는 없는데 치밀한 구성이 이목을 집중시켜 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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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블린 슬레이어 6 - SL Comic
카규 쿠모 지음, 쿠로세 코우스케 그림, 김성래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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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하수로 대전투도 막바지에 접어듭니다. 단순히 고블린만 있는 줄 알았더니 왜 앨리게이터(악어)가 있고, 고블린 챔피언(맞나 가물하네)이 있냐고요. 고블린 개떼 러시로 계속해서 궁지에 몰리면서도 타개책을 찾아내는 고블린 슬레이어. 이 타개책이라고 내놓은 방법이 무모하기 짝이 없는 게, 그와 같이 다니면 목숨이 몇 개나 있어도 모자랄 판입니다. 그동안 그의 전적은 화려하기 이를 데가 없어요. 동굴에서 고블린들을 질식사(내지는 너구리 몰이) 시킨다며 불을 놓는데 이게 팀킬도 될 수 있다는 걸 간과하질 않나. 그래서 엘프녀는 금지 시키죠. 할 수 없이 수몰 시키는데 이것도 팀킬, 엘프녀 이마에 실핏줄이 생깁니다. 이것도 안 되나? 그러면 이번엔 폭파 시킵니다. 엘프녀 이마에 생긴 실핏줄은 터져 버립니다. 뭐, 어쩌라는 건지. 그는 이번엔 새로운 타개책을 내놓아요.


물, 불, 폭파가 안 되면 생매장은 어떤가?


왜? 이번엔 네가 바라는 물, 불, 독, 폭파를 안 썼다만?


너, 웃는 얼굴로 맞아본 적 없지?



스포일러 주의



곰곰히 생각해보니 대도시 지하수로에 이만큼이나 되는 고블린 떼가 있는 게 수상쩍습니다. 마신의 수하로 보이는 뭔가(다크엘프)가 있는 거 같기도 하고요. 이 정도 되면 모험가가 아니라 군을 파견해야 함에도 어째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게 누가 손을 썼나? 그래서 검의 처녀에게 따지죠. 애초에 검의 처녀의 의뢰였고, 고블린 몇 마리만 있을 줄 알았는데 이거 저승 갈뻔한 대사건이었던 말이지요. 엘프녀와 여신관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박살 나기 일보 직전까지 갔었고. 근데 생각해보면 답은 나와 있었죠. 이전에 검의 처녀가 자신의 과거를 고블린 슬레이어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눈이 망가진 이유도. 그리고 밤만 되면 도시에서 여자들이 죽어나가는 사건이 연속으로 일어났으니 단순한 고블린 몇 마리의 소행으로 치부하기엔 뭔가가 있었더랬죠.


밝혀지길, 결국은 검의 처녀는 자기 트라우마를 이기지 못해 아무것도 알리지 않은 채 고블린 슬레이어 파티를 지하수로에 밀어 넣은 것. 사실 검의 처녀는 이 작품에 있어서 안타까운 악녀의 포지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외전에서 보면 사람들에게 갈굼 당하고, 여차여차해서 파티를 짜고 모험가를 하다가 고블린에게 안 좋은 일을 당하게 되어 버렸죠. 이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고블린의 고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게 되었고, 이번에는 자신이 해야 될 일(검의 처녀는 마신을 쓰러트린 실력자이자 금등급)임에도 너라면 날 구해줄 수 있을까? 하는 심정으로 고블린 슬레이어를 냅다 발로 뻥 차버리곤 시치미를 뚝. 살아돌아온 그에게 고블린을 없애도 나의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하소연. 정말 세상 피곤하게 만드는 능력 하난 뛰어난 게 검의 처녀란 말이죠.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당사자가 아니면 그 고통을 모를 테니까. 고블린 슬레이어는 그런 그녀를 다독여주지 않습니다. 상냥한 말을 해주지 않습니다. 다만 고블린이 나온다면 없애주겠다고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검의 처녀 당사자가 아니면 모르겠지요.  



인간관계에 있어서 무뚝뚝하고 건성건성이었던 고블린 슬레이어가 조금식 변해갑니다. 타인을 칭찬할 줄 알게 되었고, 남의 말을 들을 줄 알게 되었고, 남의 마음을 헤아려줄 줄 알게 되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축제에 같이 가자고 하는 접수원 누님의 말에 예전 같으면 마다했을 그가 긍정의 말을 내놓은 것에서 그의 성격이 많이 둥글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군요. 


맺으며, 여신관의 놀라는 모습이 귀엽고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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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어문 제국 이야기 1 - S Novel+
모치츠키 노조무 지음, Gilse 그림, 현노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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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굳이 판타지일 필요가 있었나 싶은 판타지,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는 착각계, 착각에서 오는 개그, 캐릭터가 귀여운 역하렘 여성향, 권위주의에 빠져살다 단두대에 목이 걸려 죽은 녀의 미래 개혁, ​그냥 보따리 싸서 도망가면 되지 않을까 하는 조금 엉성한 이야기.


표지 설명: 저리 먹고 살이 안 찐다.


포인트: 캐릭터 일러스트가 귀엽다. 특히 클로에. 


단점: 남자가 읽으면 변태 & 오타쿠(오타쿠는 그나마 양반이 아닐까) 소리 들을 수 있다. 어째서인지 등장인물들 이름 외우기가 힘들다.


스토리: 참회(懺悔)하자. 인생 2회차를 맞은 왕녀가 1회차 때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매우 강한 스포일러 주의, 어찌 된 일인지 글이 어마 무시하게 길어짐. 읽기 싫으신 분은 윗쪽 ↑만 읽으셔도 됩니다.




여긴 티어문 제국, 귀족은 백성들을 괴롭혀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 끼에 일반 직장인의 월급 한 달 치를 쓰든 말든 니들이 뭔 상관이냐. 백성들의 고혈이나 다름없는 세금을 좀 낭비했다고 뭐가 잘못인데. 그러니 돈 좀 낭비하고 심심풀이로 백성들을 좀 괴롭혔다고 혁명을 일으켜 나라를 전복 시키다니 너무 한거 아닌가 싶다. 황녀 '미아'는 지하 감옥에서 의문에 잠긴다. 내가 뭘 잘못한 것일까. 어제까지만 해도 난 인싸였는데 말이지. 오늘은 거죽 떼기 하나 걸치고 "돼지도 안 먹는 개사료를 밥이라고 던져주는 간수가 죽도록 밉다(요건 일부 각색)".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하 감옥에서 찬물로 몸을 닦고 죽도록 추운 겨울을 겪으며 드디어 밖으로 나가나 싶었다.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건 광장에 마련된 단두대. 그리고 그녀는 죽었다.


"황월 토마토를 맛이 없다며 남기는 행동이 죄임을 깨달은 것은 먹을 것이 없어진 뒤..."


눈을 떠보니 인생 2회차다. 앞으로 몇 년 뒤에 또다시 단두대가 기다린다. 죽도록 싫다. 개도 안 먹을 죽도록 맛없는 밥도 싫고, 차가운 물로 몸을 닦는 것도 싫고, 한기에 몸이 얼어버릴 거 같은 겨울도 싫다. 더욱 싫은 건 목이 잘리는 것. 이걸 회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래를 바꾸면 되는 것.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하기 전의 자신의 과거를 돌아본다. 제국의 과거를 돌아 본다. 거기서 시사하는 건 무엇인가를 발견해내는 거다. 답은 자연스레 떠올려진다. 왕족이라고 아랫사람들을 하대하지 않는다. 세금을 낭비하지 않는다. 역병이 돌아 민심이 흉흉해지는 걸 막는다. 사람은 잘못으로부터 깨달음을 얻는다.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열거해보니 한마디로 쓰레기, 맛없는 황월 토마토를 내놓은 전속 요리사가 미웠다. 지하 감옥에서 먹은 황월 토마토는 전속 요리사가 해준 요리보다 맛이 없었다.


아랫사람들을 괴롭힐 때는 몰랐다. 자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상대에겐 상처가 된다는걸. 허투루 쓴 세금이 백성들의 고혈이라는 걸. 지하 감옥에 투옥되고서야 깨닫는다.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그래서 2회차 때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 그것만이 미래 단두대행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에. 우선해야 할 일이 있다. 모두가 떠나버린 자신의 곁을 끝까지 지켜줬고, 차가운 지하 감옥에서 유일하게 온기를 나눠줬던 덜렁이 메이드를 전속 메이드로 삼는다. 끝까지 기울여져가는 제국의 재정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때론 황녀인 자신에게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단 안경잡이도 부하로 거둔다. 이것은 보은이다. 1회차 때 모두가 떠나버린 자신의 곁을 지켜준 것에 대한 소소한 보은. 


이 걸음은 미래를 바꾸기 위한 매우 소중한 첫걸음이다.


....는 너무 진지한 게 아닐까 싶다. 사실 이 작품은 착각을 기반으로 한 개그물이다. 황녀인 '미아'가 미래 단두대를 피하기 위해 자신이 걸었던 길을 되짚어 가며 잘못을 바로 잡아가는 이야기다. 여기서 개그가 되는 건, 황녀 '미아'의 행동이 주변에 오해를 낳고, 그 오해는 부풀려져 그녀를 성녀로 승화 시킨다는 것이다. 미아는 그저 미래에 단두대만 피하면 된다. 그러니 단두대 행에 연결되는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속마음을 숨기고 애둘러 말했을 뿐인데 주변은 그걸 확대해석한다. 미래에 혁명이 일어나는 원인 중 하나인 재정이 빵꾸나는 걸 막아야 한다. 안경잡이에게 제국의 피폐해지는 재정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상담하고 재건을 도와 달라는 요청을 하는데 이걸 안경잡이는 확대해석해서 그녀야말로 올바른 지도자라며 추켜 세운다. 


그만큼 제국은 이미 썩을 대로 썩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그냥 미아가 단두대를 피하려면 재정을 튼튼하게 만들어둘 필요가 있기 때문인데 안경잡이는 그녀의 썩은 속마음을 알리가 없다. 그니까 그녀는 애초에 진짜로 제국의 재정을 걱정하는 건 아니다. 자신이 살기 위해 걱정하는 것뿐. 문제는 자기가 안 하고 안경잡이에게 일을 떠넘긴다. 1화차 때 안경잡이가 일을 제법 잘 해줬거든사실 단두대 황녀의 인생 1회차 때 벌인 잘못을 반성하여 잘못을 바로 잡아가는 이야기라고는 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미아가 자신의 안위를 위하는 게 주된 내용이다. 그 행동으로 인해 주변이 오해하고 그녀를 추켜 세운다. 가령 또 이런 일이 있다. 혁명이 일어나는 두 번째 이유가 되는 역병 창궐을 초기에 막고자 행동에 나서는데, 그런 행동이 주변에 어떻게 비칠까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본질은 그녀의 안위지만(주변은 그녀의 속마음을 모른다), 역병을 막아서 결과적으로 백성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일로도 연결이 되니까. 그녀의 본질이야 어떻든 일단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건 틀림이 없으니 오해할 만도 하다는 게 특징이다. 여기에 지니고 있는 물품까지 내놓으며 재정에 보탬이 되라고 하는데, 이걸 두고 그녀는 거의 성녀급이 되어 버린다. 실상은 그 물품은 버려도 아깝지 않은 물건이다. 그녀의 속은 시커멓다 못해 썩었다. 그리고 혁명이 일어나는 세 번째 이유가 되는 아랫사람 하대하는 걸 당연시 여기는 풍조에서 그녀는 반란에 가까운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제국의 상위 귀족들은 하급 귀족들이나 평민을 괴롭혀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여긴다. 괴롭힘당하는 어떤 하급 귀족을 구하게 되면서 그녀는 또다시 성녀가 된다.


황녀인 그녀는 상위 귀족들의 정점이다. 당연히 아랫사람들을 괴롭히는 입장에 서 있지만, 그녀는 괴롭힘당하는 하급 귀족을 구해준다. 괴롭힘은 미래 혁명이 일어나는 세 가지 이유 중 가장 큰 원인이 된다. 그만큼 제국에서 아랫사람 괴롭힘이 만연하다는 것이고, 황녀가 아랫사람 구해준다는 건 현재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 사실은 기껏 아군으로 만들어둔 덜렁이 전속 메이드에게 밑 보이지 않기 위함이라는 타산이 깔려 있는데 주변은 알리가 없다. 지금은 아군을 한 명이라도 더 만들어 두어야 하니까. 문제는 지금 구해준 하급 귀족이 미래 혁명을 일으킨 주모자 중 하나라는 것. 일이 참 재미있어진다. 자신을 단두대에 올린 장본인을 구해주게 된 그녀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 거기에 성녀 다운 말까지 내뱉어 놓으니 주모자는 구세주를 넘어 사이비 교주를 만난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학원 라이프, 그녀의 미래개혁은 계속된다. 인맥도 많이 만들고, 남친도 만들고... 이럴 바엔 그냥 보따리 싸서 야반도주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녀는 매우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만나는 여 캐릭터들이 귀엽다. 남 캐릭터는 별로다. 성격도 이상하고... 아무튼 노력한다. 근데 복선을 보니 미래는 바뀌지 않을 거 같다.



뜬금없지만, 글이 길어지고 시간도 시간이라서 이만 줄이고자 합니다. 아직 반도 못 썼는데, 이건 필자의 나쁜 버릇이라고 할까요. 무아지경이 되면 끝도 없이 써 내려갑니다. 장신 차리고 보면 몇 시간이 지나 있고, 글은 오만상 길어져 있고... 이번 티어문은 사실 이렇게 길게 쓸 만큼 작품성이 뛰어난 건 아닙니다. 주된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래를 바로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인데요. 이 과정이 역경을 이겨내고 얻어내는 결과물이 아니라 행동을 하다 보니 얻어걸리는 그런 부류죠. 상대가 알아서 착각을 해주니 이쪽은 편하게 일을 처리해 나간다고 할까요. 그래서 딱히 긴장감이 높은 것도 아니고 크게 유쾌한 부분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점수를 주자면 10점 만점에 6점 정도. 점수가 낮은 이유는 인맥을 만들기 위해 이웃 나라 왕자를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대목이 억지성이 매우 컸기 때문이군요. 이 작품이 19금이었다면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몸까지 내놓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영혼 없는 대시는 은근히 짜증을 불러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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