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의 마왕 1 - J Novel Next
마지마 분키치 지음, 토요타 사오리 일러스트, 김경훈 옮김 / 서울문화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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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르: 침략전쟁, 수탈, 지배에서 오는 인간의 존엄은 무엇인가 하는 철학적인 물음,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와 힘이 없는 애국자, 난세의 시대에 사람들은 영웅을 갈망한다, 그래서 등장한 마왕, 정통 판타지, 이세계물 아님.


표지 설명: 뭔가 북두의 권처럼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작중 세계관을 잘 나타내고 있다. 


스토리: '스노바'라는 나라가 있고, '코핀'이라는 나라가 있다. 둘의 조상은 같다. 근데 스노바는 옆 나라 코핀을 침공한다. 코핀은 매국노들 때문에 별다른 저항도 못해보고 왕족과 군대는 몰살 당한다. 스노바의 장군은 코핀을 야만인이라 정의하며 가혹한 통치를 시작한다. 일명 선민사상이다(모르면 검색해보자). 침략전쟁에 있어서 선민사상만큼 골 아픈 것도 없다는 걸 보여준다. 그 예로 스노바 장군은 마지막으로 남은 코핀의 왕족 루키나 왕녀로 하여금 굴욕적인 복종을 요구한다. 이 난세를 극복해줄 영웅은 나타날 것인가. 왕녀를 구하고 나라를 구할 영웅, 대초원 어느 귀퉁이에 머리가 하얀 청년이 살고 있다. 어느 날 청년의 집 근처로 이상한 투구를 쓴 여자애가 쫓겨온다. 여기서 마왕의 전설이 시작된다. 마왕? 영웅은?


특징: 힘이 없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이기면 장땡이다. 알량한 자존심을 세울 시간이 있으면 망명정부라도 세워라. 입만 산 위정자는 꼴불견이다. 내 여자를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 죽는다? <- 이게 이 작품의 최대 포인트.


장점: 거대종(거인?)이 있고, 용이 나오는 고대 시절을 바탕으로 하는 대서사시. 밝은 파스텔톤식 판타지가 아니라 고대 시절 전쟁으로 피폐해진 대지를 배경으로 하는, 하늘이 언제 푸르렀는지도 모를 우중충한 잿빛 세계를 기본 바탕으로 깔고 있어서 어딘가 몽환적이면서도 세기말적 분위기가 특징이다. 적어도 하렘은 아닌 거 같다. 근데 가능성은 있다. 그중에 유부녀도 포함이다.


단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루키나 왕녀가 불쌍하다.



스포일러 주의



기적은 없다. 영웅이라고 불린 사람들은 전부 죽어 버렸다. 아버지도 모두, 루키나 왕녀는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아무리 굴욕을 당해도 교섭을 이어가고자 하지만 스노바 장군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다. 태초에 거대종과 용과 인간의 싸움으로 이 대지는 피폐해지고 하늘은 구름으로 덮여 해(태양)을 본 지가 1천 년 전이다. 식물은 제대로 자라지 않고, 사냥감도 통제하며 잡아야 할 만큼 궁핍한 삶을 살아가는 코핀이라는 나라를 침공해서 스노바는 어쩌려고 하는 걸까. 저항은 용서가 되지 않고, 반란의 씨앗이 되는 거라면 아이도 죽이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마치 복수를 두려워하는 겁쟁이마냥.


흰머리 청년 '더스트'는 대초원 한 귀퉁이에서 쓰러진 나무 밑동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 그는 옛적 마왕이라 불리었던 어떤 인물을 연구하며 지내고 있었다. 하늘에선 여전히 비가 내린다. 땅에서는 해골의 손이 쉬고 있다. 어느 날 유적을 연구하던 그에게 낯선 여자애가 쫓겨온다. 머리엔 이상한 투구를 썼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이 땅에 어인 일일까. 모험가들에게 쭃겨온 그녀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한다. 그때 청년 더스트는 마술을 이용해 땅에서 쉬고 있던 해골로 하여금 그녀를 구하게 한다. 이것이 청년 더스트와 왕녀 루키나의 미래를 바꿀 거라는 걸 지금은 몰랐겠지. 여자애의 이름은 '애시'라고 한다. 



이 작품의 두 번째 장점: 혼자서 다 해 먹는 먼치킨은 없다. 그놈의 스테이터스 창도 없다. 마법은 있지만 대규모 술식은 없다. 먼치킨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겐 입에 안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게 매력이다.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는 절망감이 있다. 나라와 백성을 지키기 위해 저마다의 정의가 충돌하며 누가 선인지 분간 시키는 묘미가 있다. 사람의 존엄은 어디서 오는가 하는 철학적인 물음이 있다. 가령 '나라를 잃더라고 핍박을 받더라도 살아만 있으면 언젠가 빛을 볼 날이 올 것이다'와 '억압받고 개돼지 취급 당하며 인간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마음마저 박살 내버리는 삶에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인가'라는 물음이 있다. 죽더라도 자유를 쟁취할 것이냐. 살아서 굴욕을 당할 것이냐의 물음이 있다. 


왕녀 루키나는 일방적인 선택을 강요 당한다. 굴욕적인 조건이 걸리고 항복을 선서하며 벌레처럼 바닥을 기라고 한다. 저항은 무의미,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문득, 옛날 일이 떠오른다. 왕녀인 자신에게 당돌한 진언을 마다하지 않던 머리가 흰 소년을. 그 소년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면 분명 이 국난을 타개할 비책을 제시했을 것이다. 고대 시절 코핀이라는 나라에는 마왕이라고 불렸단 사내가 있었다. 죽어버린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금단의 마술에 손을 대어 마왕으로 낙인찍히고 추방되었던 사내. 세월이 흘러 그 마왕의 업적을 연구하는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은 사상 두 번째 마왕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추방되었다.


흰머리 청년은 '애시'라는 여자애를 만난다. 애시는 용을 신(神)으로 숭배하는 나라를 찾아와 용의 실물을 보고자 한다. 애시의 부모는 스노바라는 나라에서 용이라는 신을 주제로 한 논문을 발표했다가 처형 당한다. 자신들만의 용이 유일신이라 떠받드는 나라에서 타국의 용신은 이단으로 치부하는 걸 간과한 것이다. 부모의 마지막 업적인 용에 관련된 걸 찾아 애시는 코핀으로 온다. 코핀의 하늘에는 비를 관장하는 용신이 있고, 백성들로부터 숭배받고 있다. 마지막 소원인 것처럼 애시는 거기에 매달린다. 자기 목숨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그리고 스노바 군은 해선 안 될 짓을 저지른다. 애시는 죽다가 살아난다. 그리고 정신줄을 놓아버린다.


흰머리 청년은 분노한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애시는 한솥밥을 먹었던 사이다.


맺으며, 이 작품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기적은 없다.'를 들 수가 있군요. 희망이 되는 싹은 처음부터 잘려 나갑니다. 지배자에게 있어서 피지배자들에게 절망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잘 보여주고 있죠. 희망의 싹을 없애고, 자신들의 최고 정점인 왕녀로 하여금 굴욕적인 모습을 보이게 한다. 그렇게 해서 의지를 꺾는다. 통제에 있어서 이것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는 걸 보여준다고 할까요. 그럼에도 루키나 왕녀의 꺾이지 않는 마음은 참 절절하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소리만 치는 왕녀가 사실 꼴불견이기도 하고, 어릴 때부터 왕족에 어울리는 근엄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 속칭 바지사장 취급 당하는 모습은 안타깝게도 합니다.


흰머리 청년 '더스트'와 이상한 투구의 '애시'의 관계도 눈여겨볼만합니다. 위기에 처한 애시를 구해주고 이후 줄곧 같이 살면서 애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애시는 더스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장면 장면들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게 또 이 작품의 묘미가 아닐까 싶었군요. 그러다 난세는 이들에게 손을 뻩치게 되고, 애시가 말려들면서 빡친 더스트가 마왕이 되어 가는... 이 작품은 루키나 왕녀의 시각과 더스트와 애시의 시각으로 진행이 됩니다. 그리고 시냇물이 만나 강을 이루듯 이야기를 합쳐지죠. 이걸 절묘하게 역어 가는 작가의 실력이 좋아요. 전체적으로 보면 카타르시스나 큰 흥미를 끌만한 소재는 없는데 치밀한 구성이 이목을 집중시켜 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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