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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원칙의 마법기사 1 - L Novel
히츠지 타로 지음, 토사카 아사기 그림, 송재희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2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노골적인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시간은 좀 지났지만 L노벨의 신작입니다. 작가의 전작은 '변변찮은 마술 강사와 금기교전(이하 변마금)'으로 집필력은 인정받고 있는데요.라고 해도 필자는 전작을 안 봐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정보 좀 찾아보니까 기본적인 플롯은 변마금과 유사한 흐름을 보여주고 있더군요. 근데 이 작품(옛 원칙)이 먼저인지 변마금이 먼저인지 좀 헷갈리는 게, 필자가 이 작품(옛 원칙)을 읽어본 바로는 이제 막 라노벨계에 발을 들이기 시작한 새내기 작가의 느낌이 풀풀 났다는 건데요. 일례로 사전 복선도 없이, 가령 마녀 '플로네'를 히로인들 앞에 갑자기 등장시켜서 사람 당황 시키는, 이야기 연결에서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더러 있어요. 그리고 밑에 따로 서술하겠지만 이야기 구성에서 좀 허술하다고 할까요. 주인공을 소환하는 부분과 적과 싸울 때 히로인의 반응, 덜떨어진 학급에서 학생들이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선, 주인공의 진짜 실력을 보고 태도를 손바닥 뒤집듯이 하는 학생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과(謝過)'가 없다는 것입니다.
리뷰를 쓰면서 필자의 안 좋은 버릇이 그 작품의 좋은 점 보다 단점을 지적하게 된다는 것인데요. 이번 리뷰도 보고 느낀 점 위주가 아니라 이 작품이 안고 있는 문제점 일부를 지적해 보고자 합니다. 그전에 간략하게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면, "전설의 시대 최강의 기사라고 평가받는 [야만인] '시드 블리체'가 사후 1천 년이 지나고 '왕자 앨빈'에 의해 소환되어 마법 기사 학교의 교관으로 취직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필자는 의문에 빠졌군요. 이게 뭔 소리야? 굳이 1천 년 전 전설의 기사를 소환해서 뭘 시킨다고? 뭐 기본적인 골자는 이렇다는 뜻인데요. '왕자 앨빈'은 자객에게 쫓기다 주인공 '시드'가 잠든 무덤에서 소환 의식을 거쳐 주인공을 깨우죠. 그리고 약속된 전개마냥 주인공은 자객을 물리치고 '앨빈'을 구해줍니다. 여기서 '페이트'의 서번트마냥 어디선 많이 본 계약을 보여준다는 것, 주인공은 '엘빈'의 기사가 되어 2년 동안 '앨빈'이 왕좌에 오를 때까지 보살피기로 하는 부분이 흥미 포인트입니다.
소개는 이 정도로 하고, 본격적으로 필자 주관적일 수 있는 단점에 대해 지적해 보고자 합니다. 우선 주인공이 자객으로부터 '앨빈'을 구해줄 때, 1천 년 전 전설의 기사의 현현이고, 자라오면서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주인공의 위대함을 들었으면서 그의 실력에 믿음을 가져야 되지 않을까요. 필자의 필터로 표현하면, '단검 하나로 자객에 맞서다니 님 미친 거 아님?'이런 느낌입니다. 뭐 주인공의 전설은 익히 들었지만 실력을 본 적 없으니 걱정은 되었겠죠. 그런데 간단하게 자객을 없앤 주인공에게 건네줄 말까지 잊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못 믿어서 미안하다는 말 말입니다. 근데 입을 쓰윽 닦네? 거기에 만난 지 5분도 안 돼서 눈에 콩깍지 끼이는데... 아니 앨빈은 왕자 아니었나? 이 작품은 BL인가? 숨기려면 제대로 숨기던가 등장하고 1분도 안 돼서 앨빈은 왕녀 같다라는, 대놓고 알려주는 건 또 뭔지 모르겠어요(허술한 설정). 그녀는 사정이 있어서 왕자로 지내고 있는데, 이게 주인공과 연결이 되죠.
두 번째 단점은 주인공이 앨빈의 부탁을 받아들여 마법 기사 학교의 교관으로 오게 되는 대목입니다. 주인공이 전설의 기사라고 밝혀졌는데도 믿는 놈 하나 없고, 되레 [야만인]이라는 이명에 발작 버튼이 눌린 '텐코'라는 히로인의 주도하에 주인공을 매몰차게 대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강X마라느니, 살인마라느니 온갖 나쁜 수식어는 다 갖다 붙여도 모자라는 주인공의 악행이 왜 붙었는지 이것도 하나의 복선일 거 같긴 합니다만, 전설이 그렇게 전해져 내래져 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을 겉으로 판단해서 개쓰레기 취급을 해대는 건 이것도 하나의 흥미 포인트라고 여길 수는 있으나, 괜히 패배자(주인공이 교관으로 있는 학급은 낙오자들로 구성) 심정으로 던전(작중 표현은 다름)에 들어갔다가 죽을 위기에 처하고 주인공이 구해줄 때 그의 압도적인 무력과 그의 인성을 보고 손바닥 뒤집듯 태세 전환(칭송 일변도)하는 건 좋다 이겁니다(사실 이게 진짜 어이없어요). 근데 험한 말 해서 죄송합니다! 같은 사과의 말은?
사실 '텐코'라는 히로인은 그녀가 살아온 과거의 어떤 일로 인해 강박증 비슷한 걸 앓고 있어서 앨빈에게 집착하는 경향을 보임과 동시에 그녀(앨빈)와 가까이 지내는 주인공에게 열등감(내가 앨빈을 지켜야 하는데)과 질투라는 꽤나 다사다난한 성격이라는 파격적인 캐릭터라 할 수 있어요. 그런 텐코는 그나마 후반에 가서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기라도 하는데, 낙오자들로 구성된 블리체 학급의 학생들은 뉘우침은 고사하고 되레 먹이 받아먹는 새끼 새가 되어 주둥이 벌리고 먹이만 떨어지길 바라는 그런 행태(욕할 땐 언제고 갑자기 칭송이 하늘을 찌름)를 보여 참 이런 작품도 다 있구나 하는 걸 느꼈군요. 뭐, 어디서 굴러먹던 말뼈따귀인지 모를 주인공이 갑자기 나타나서 내가 니 애비다라는 것마냥 1천 년 전 전설의 기사다라고 해봐야 믿을 놈 하나 없는 건 사실 현실적이긴 합니다. 그럼 그걸 증명했을 때 무례하게 굴었던 점은 사과해야 인지상정이 아닐까요? 하나같이 부정적인, 사람 믿지 못하는 게 유행인가 싶더라고요.
설정은 물론 접하는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니 뭐라 못하겠는데, 필자가 지적하는 건 믿음과 사과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믿음' 부분은 상대가 뭐라 말하는 걸 곧이곧대로 바로 믿었다간 다단계 사기에 빠질 수도 있으니 사람을 쉽게 믿어선 안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다단계 사기 칠 이유가 없죠. 그러니 자신들(앨빈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을 인도하고 목숨을 구해줬다면 자신의 행동(인신공격)에 대한 반성은 있어야 하잖아요. 이 작품은 그런 게 없어요. 이게 참 크게 느껴지더군요. 메인 히로인 '앨빈'도 그래요. 나라가 왕족은 다 나가리 되었고 혼자 남아 풍전등화라는 설정으로 인한 막다른 골목이라는 심정은 이해하나, 자기가 설립한 클래스의 아이들이 주인공을 못 믿고, 가지 말아야 될 장소에 간다는데도 말리지 않는 등 카리스마는 전혀 없고, 그런 주제에 주인공을 향한 의존증은 날로 심각해져만 가고, 자신의 정체(여자라 밝혀지면 곤란)를 숨기려 입막음을 위해 옷까지 훌렁 벗으려는 등 진짜 여러 가지 의미로 참 대단한 작품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맺으며: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글이 길어져서 반에 반도 언급 못했군요. 일단 믿음과 사과를 떠나서 기본적으로 보면 열등반 학생들이 주인공을 만나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적대 세력도 물론 나오고요. 주인공이 가르치는 열등반 아이들은 이세계 전생물처럼 생각의 전환을 통해 수련을 하고 그들만의 능력을 키워가며 자신들을 얕보는 무리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해주는, 이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그런 이야기인데요. 사실 이런 설정은 한 물 간 줄 알았습니다만, 그래서 변마금이 먼저인지 이 작품이 먼저인지 헷갈렸군요(물론 변마금이 먼저). 사실 이것을 제외한다면 의존증 앨빈과 강박증 텐코라는 개성 강한 캐릭터는 흥미요소로 다가옵니다. 나라는 위기에 빠졌는데 귀족들은 자기들 이익만 챙기고 내 편은 아무도 없는 절망(앨빈 편), 앨빈을 지켜주고 싶은데 힘이 부족해 어떻게 할 수 없는 절망(텐코 편), 그 속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장면들은 진짜 좋았습니다.
리뷰를 이대로 끝내기엔 뭔가 허전하기에 좀 더 언급해 볼까 합니다. 사실 이 작품의 주인공만큼 불쌍한 캐릭터도 없다는 느낌입니다. 싸움밖에 없는 인생을 살다가 겨우 영면에 들었는데 1천 년 후에 무슨 프랑켄슈타인처럼 번개 맞고 깨어나 보니 이전에 섬겼던 왕의 후손(앨빈)이 말하길 '제발 좀 싸워줘요!' 전설의 시대에 충분히 싸웠고 이제 좀 쉬게 해줘도 되지 않을까 하는 배려의 마음보다 등을 떠미는 후손이라니, 거기다 속된 말로 자기(앨빈)는 성장할 생각은 없고 '나의 기사님'이라는 핑크빛 머리로 주인공을 이용할 생각만 잔뜩. 그러고 보면 이 작품에서 배려도 찾을 수가 없군요. 후반에 주인공이 희생이란 무엇인가를 몸소 보여줌으로써 '앨빈'은 겨우 정신 차리긴 합니다만. 신작에 있어서 1권이 가지는 의미는 대단히 큽니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 새가 처음 보는 존재를 엄마로 인식하듯 1권은 향후 그 작품에 대한 이미지를 고착화 시키는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 중인 필자로서는 이 작품의 1권이 가지는 이미지는 그리 좋지만은 않았군요. 개성 강한 히로인들은 둘째 치더라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