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식당 3 - L Books
이누즈카 준페이 지음, 에나미 카츠미 그림, 박정원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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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드디어 검은 신(神) '쿠로'가 등장합니다. 지상을 파괴와 혼돈에 몰아넣은 것과 동시에 창조를 담당했던 '만 색(万色)의 혼돈'을 쿠로 포함 여섯 신(神,1)이 천년이나 걸쳐 싸워 물리친 게 3만 6천여 년 전, 지상에 다시 평화를 깃들게 한 이들은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지만 만 색의 혼돈이 사라진 이후에 태어난 지상 종족이 워낙 약해 죽음을 관장하는 자신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즉사할 수 있다는 걸 알아버린 쿠로는 달로 이주하여 그동안 사색에 잠겨 지내왔습니다. 무려 3만 6천여년이나요.

 

그렇게 오늘도 달에 떨어지는 운석을 헤아리며 보내던 어느 날 쿠로 앞에 문이 나타났습니다. 네코야 양식점으로 통하는 그 문이, 호기심이 발동하여 들어간 그곳에서 그녀는 발견합니다. 일생일대의 음식을, '치킨 카레'에 환장하게 된 그녀는 무려 100그릇이나 비워 버렸습니다. 그런데 돈은? 있을 리가 있나, 처음엔 실오라기도 걸치지 않았는데, 문제는 여기 네코야는 붉은 여왕이라 일 컬 여지는 적(赤) 색 신이 관할하는 곳으로 네코야에 해를 입힐만한 자가 있다면 그게 누가 되었든 배제해버리는 불같은 성격의 붉은 드래곤의 성역이라는 건 익히 알려져 있죠.

 

수만 년 전 같은 팀이 되어 눈앞의 적(enemy)을 물리친 동료라도 그건 옛날 일, 타이밍 좋게 나타난 적색 신과 마주한 쿠로, 일촉즉발의 기운이 감돕니다. 붉은 여왕 왈: 이 가게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무엇이냐? 쿠로 왈: 치킨 카레, 이로써 아무도 몰랐던 세계가 멸망할뻔한 사건은 간신히 일단락됩니다. 참고로 붉은 여왕은 '비프스튜'를 좋아 하는데 만약 쿠로가 비프스튜를 좋아한다고 했다면 세계 존망을 건 사생결단으로 이어졌겠죠. 붉은 여왕이 가져가는 비프스튜의 양은 정해져 있는데 여기에 쿠로가 꼽사리 끼면 붉은 여왕의 몫이 줄어들거든요.

 

여튼 그렇게 만나 그동안 못했던 화포를 푸나 했더니 쿠로가 먹은 100그릇 분량의 치킨 카레의 값을 치를 수 있냐는 붉은 여왕의 말에 쿠로는 '돈?'이라며 화폐 개념 따윈 개나 줘 버렸다는 반응, 그래서 무전취식은 예로부터 그릇 닦기라고 정해져 있듯이 여기에 취직해 갚으라는 붉은 여왕의 말에 선뜻 승낙하여 이렇게 쿠로는 네코야의 웨이트리스가 되었습니다. 일당은 치킨 카레, 그런데 얘가 한두 그릇 먹는 게 아니어서 네코야 점주 입장에서는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닌 듯합니다.

 

사실 위 쿠로가 등장하는 부분은 굉장히 짧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길게 풀어 놓은 것은 쿠로가 등장하는 장면 이외엔 거의 다 먹는 것에 할애되어 있기 때문인데요. 1권부터 쭈욱 그래왔듯이 늘 새로운 사람이 등장하여 자신의 세계에선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접하며 신세계를 경험하는 레퍼토리가 비슷비슷합니다. 한가지 다행인 건 늘 새로운 음식이 나온다는 것인데요. 물론 기존에 등장했던 사람들과 음식도 표현되곤 하지만 메인은 늘 새로운 음식과 사람들입니다.

 

이젠 세상을 떠난 시종장이 1주일마다 가져다주었던 몽블랑을 잊지 못해 사설탐정을 고용해 출처를 알아내려는 영주 부인, 적색 신을 섬기는 대신관 라미아(몬스터)의 인도로 처음 네코야를 방문한 젊은 남자 신관이 경험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나중에 대신관 라미아의 손녀와 결혼하게 된다는 조금은 황당한 에피소드라든지, 귀신에 쫓겨 들어간 네코야에서 널부러 자던 과객이라던지, 돈이 없어도 내쫓지 않고 늘 한결같이 응대해주는 네코야를 통해서 서로가 인연을 맺어 가는 등 조금은 훈훈하기도 한 소소한 에피소드가 눈을 즐겁게도 합니다.

 

이번 3권에서 이전 1~2권과 조금 달라진 거라면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인연을 조금 더 중요시했다는 것이군요. 음식으로 이세계 침공하는 건 여전하지만 그것보다 쿠로의 등장이라던지 어느 요양 중인 황녀가 시종과 함께 디저트를 먹는 등 음식 앞엔 누구나 공평하다는 걸 역설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1~2권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여왔지만 3권에서는 조금 더 진전된 느낌이랄까요. 거기다 요염한 차림의 엘프라든지 19금에 근접한 이야기라든지 사람이 살아가는데 빠지지 않는 요소도 들어가 있기도 합니다.

 

그건 그렇고 위에서 필자가 이 작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단편적으로 언급했듯이 비단 이 작품만이 아니고 여타 이세계물을 보고 있자면 역시나 문화 침략이란 무섭구나 하는 걸 느끼곤 합니다. 네코야에서 내놓는 음식을 잊지 못해 1주일을 눈 빠지게 기다리는 모습이라던지, 심지어 몇 년을 기다린 소녀도 있고요. 던전과 같은 곳을 지나며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집착한다던지, 은화 1천 개도 아무렇지 않게 내놓으며 음식의 출처를 알아봐 달라는 영주 부인 등을 보고 있자면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음식에 국환 되지 않고 자신이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물을 기대하는 것이 뭐가 나빠할지도 모릅니다. 넓게 보면 새로운 것에 열광하여 밤새도록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는 판국에 이런 작품이 뭐가 나쁘냐고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순응되고 그것에만 묶여 있게 되고 그것 없이 살 수 없게 되었을 때를 생각해보면 뭐가 문제인지 답은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군요. 그래서 미국 등지에 보면 이런 문물을 멀리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고는 합니다만...

 

맺으며, 좌우지간 고작 엔터테이먼트의 한 장르를 가지고 너무 심각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군요. 돌이켜보면 한편으로는 좀 웃기기도 합니다. 비아냥이 아니라 우리도 살아가면서 새로운 것을 접할 때면 우와!! 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세계 사람들에게도 자신들이 접하지 못한 음식에 우와!! 할 수 있는 것이기에, 필자가 너무 현실적으로 들이미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네코야의 점주에 대한 복선이 조금식 풀리고 있습니다. 그의 할머니 '요미'의 출신에 관련된, 그리고 네코야가 이세계의 문과 연결된 게 우연이 아니라는 복선 등, 외에 쿠로의 귀여움이 많이 묻어나는 일러스트가 눈길을 끕니다. 카레빵을 먹으며 세상 다 가진 듯한 표정은 정말 좋았군요. 3만 6천여 년이나 사색에 잠겨 있어서인지 네코야에 와서는 생각하는 걸 그만둬버리고 조금 멍한 구석을 보여주는 모습이 조금은 귀엽게 다가옵니다. 한가지 아쉬운 건 작가가 크게 어필하지 않는다는 것이군요.


 

  1. 1, 금색, 적색(붉은 드래곤), 청색, 녹색, 백색, 그리고 쿠로가 담당하는 흑색, 이렇게 여섯 신(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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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향신료 3 - Extreme Novel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박소영 옮김, 아야쿠라 쥬우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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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전 마을에서 사기당해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간신히 추슬러 다음 마을로 온 로렌스와 호로, 여전히 호로는 로렌스 머리 꼭대기에 앉아 요망한 짓만 해대고 있습니다. 수백 년을 살아오며 남자의 생리를 잘 알고 있는 호로는 로렌스가 여자를 대하는데 면역이 없다는 걸 진즉에 알고는 귀여운 척, 가여운 척, 그러다 헤벌쭉 넘어오면 놀리고 로렌스는 울컥하지만 그때마다 자신에게 기대오며 아양 떠는 호로를 외면하지 못 하는데요. 그런 전형적인 민폐(?) 커플의 아름다운(?) 밀당은 보는 이로 하여금 흐뭇하게 합니다.

 

이번 3권에서도 호로의 귀여운 밀당은 보는 이로 하여금 흐뭇하게 합니다. 마부석 왼편에 앉아 로렌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며 오늘도 평화로운 여행길은 보장된 거나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는데요. 하지만 마을 상인 '아마티'를 만난 게 로렌스에게 있어서 최대의 불운, 생각해보면 그것은 늘 곁에 있었습니다. 만남과 이별, 일생 변변한 연애라곤 해본 적이 없는 데다 특별한 인연이 없이 만난 호로와의 관계에는 어딘가 모르게 틈이 있었다는걸, 마치 곪은 게 지금 터졌다는 것처럼 이별은 순식간에 찾아옵니다.

 

'뇨히라에서부터는 너 혼자서도 돌아갈 수 있지?'

 

어디에 이런 자신감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로렌스는 호로가 자기를 떠나지 않을 거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습니다. 언제까지고 같이 여행할 것이라고, 그래서 '아마티'에게 호로를 맡겨 마을을 돌아다니게 한 게 화근의 시초가 아니었나 합니다. 호로에게 한눈에 빠져버린 아마티, 이런 사정을 알면서도 호로가 자신을 떠날리 없다는 마음으로 이제 한 곳에 정착하여 자신의 가계를 내고 싶은 그는 그만 실언을 하고 맙니다. '다음 마을부터는 너 혼자 가'라고...

 

이전 마을에서 사기당해 빈털터리가 된 그는 자신의 가게에서 더 멀어져 겉몸이 달아 있었습니다. 그때도 '너만 없었다면'이라며 호로의 마음에 똥물을 끼얹어 놓고 또다시 너와의 인연은 별 거 아니라는 것마냥 아무렇지 않게 이별의 말을 입에 담는 로렌스를 바라보며 호로는 애써 태연한척하지만 마침 도착한 편지 한 통에서 호로가 그토록 찾던 고향이 이제 없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모든 게 끝나고 맙니다.

 

뼈에 사무치는 외로움과 순식간에 찾아온 이별

 

몇백 년이나 인간에게 속아서 풍작의 신으로 깡촌 마을에 묶여 있어야 했던 호로는 외로움을 무척이나 심하게 탑니다. 호로가 요망한 짓으로 로렌스를 들었나 놨다 하는 것도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숨기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것처럼 고향에 돌아가면 이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 그것이 무너졌을 때 천하의 호로도 망가져 버립니다. 이미 두 번이나 너와의 인연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을 들어버렸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고향 찾기도 사실 로렌스가 심심풀이로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더해져 사태는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로렌스는 요이츠에 대한 정보를 모으며 이미 그녀의 고향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고 호로와의 관계를 생각해 그동안 쭈욱 비밀로 하고 있었는데요. 여행을 하면서 몇 번이나 실언으로 호로의 마음에 실금을 그렸던 것이 멸망한 고향의 이야기로 단순에 그 틈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거기에 그동안 가슴에 품고 있었던 서운함도 단숨에 폭발하여 로렌스와의 관계는 파탄 나버리고 그가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는 분개함이 더해져 나를 좋아해 주는 '아마티'와 결혼하겠다는 호로

 

떠나고 나서야 비로써 느끼는 소중함, 그동안 당연히 옆에 있어줄 거 같았던 호로가 이젠 없습니다. 자신의 실언과 행동을 뒤늦게 깨닫고 비로써 자신이 바랐던 건 무엇인지 알아가는 로렌스는 아마티를 상대로 호로를 되찾기 위해 상인으로써의 능력을 발휘하여 위험한 도박에 나섭니다. 언제부턴가 가슴 한켠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걸, 떠나고 나서야 깨달은 어리숙함은 로렌스를 더욱 성장하게 하는 계기가 되겠죠. 그전에 아주 당연히 언제까지고 곁에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자만심에 대한 천벌의 시작은 덤

 

맺으며, 이것은 호로와 앞으로 계속 여행하고 싶고 고향이 없어졌다는 것에 좌절하지 않게 하기 위한 로렌스 나름대로 배려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실언은 정말로 문제지만 이것은 여자에 대한 면역도 없는 데다 지식도 없고 뼛속까지 상인 기질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반응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걸 모를 리 없는 호로는 그저 허망함을 달랠 길 없어 로렌스에게 화풀이를 한 것이고 로렌스는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 몰라 호로가 바라는 대답을 내놓지 못해 사태를 키워 버린...

 

없어지고 나서야 소중함을 알아가듯이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일들에 대한 현실을 자각하며 비로써 호로가 자신에게 무엇인지 알아가며 그녀가 바라는 '너에게 나는 무엇인가'의 진정한 대답을 해주며 비온 뒤 땅이 더 굳어지는 것처럼 이들의 관계가 더 욱 단단해지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좀 훈훈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작가의 필력이 대단해서 이들의 파탄 나고 봉합하는 장면을 참 리얼하게 표현했더군요. 읽으면서 모처럼 가슴 두근거림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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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4 - 마유즈미는 자신을 향해 내민 손을 잡지 않는다, NT Novel
아야사토 케이시 지음, 이은주 옮김, kona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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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참 불쌍한 남자가 있습니다. 평범하게 학교생활을 만끽하던 어느 날 남자의 친구는 따분하다는 듯 행한 일련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남자의 인생은 지옥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남자의 주변 친구들은 다 죽어 버렸고 남자를 쫓아다녔던 여자애는 죽어서 도깨비가 되어 남자의 뱃속에 들어앉아 버렸습니다. 하지만 친구 하나 잘못 사귀어서 인생이 지옥으로 변한 남자는 친구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남자는 사기를 당한 사람이 잘못이라는 것처럼 성모 마리아 같은 심정으로 삶의 목표를 사람 구하는데 평생을 보내려 했습니다.

 

남자의 이름은 오다기리 츠토무, 친구의 이름은 마유즈미 아사토(이하 하사토), 그리고 그 중심에 마유즈미 아자카(이하 마유즈미)가 있습니다. 강력한 이능력을 가진 여자만 대를 잇는 당주가 될 수 있고 우대받는 집안에서 남자로 태어나 당주가 되기 위해 여자로 살아야 했던 아사토, 어느 날 남자라는 게 뽀록나 여동생 아자카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쫓겨나야 했던 아사토, 쫓겨나기 전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자신을 몰아붙인 어머니를 죽이는 것, 그리고 현재 그는 동생마저 증오하며 죽이기 위해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는데요.

 

사실 오다기리는 아사토가 저지르던 동생 살해 계획의 재료에 불과했습니다. 주변에서 불가사의한 죽음을 보여주며 동생을 끌어내 죽이려 했지만 좀처럼 동생은 흥미를 보이지 않았죠. 남매의 싸움에 휘말려 오다기리는 강제로 도깨비를 배에 심어야 했고 마유즈미는 다 죽어가던 그를 거둬들여 그의 배에서 도깨비가 나오려 할 때마다 봉합해주며 상처를 치료해주고 있었습니다. 결국 아사토의 계획대로 차근차근 동생의 주변을 고사 시켜가던 때에 오다기리가 마유즈미의 곁에 있게 되자 그를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죠.

 

문제는 평범남 오다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능력이 펼쳐지는 세계에서 팔이 잘리면 피를 흘리고 배에 구멍이 나면 죽는 고통을 느끼고 공포를 체험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남매의 싸움에 휘말려 죽어가는 일반인을 구하고자 노력하는 것뿐, 하지만 아무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위선자처럼 사람들을 구하겠노라 노래를 부르며 쫓아다니지만 언제나 한발 늦어 모두가 죽어갑니다. 그의 친구도, 자기를 따르던 여자도 모두, 그러다 겨우 현실을 직시합니다. 아무도 구할 수 없다는걸요.

 

이 모든 건 아사토에 의해 일어난 비극, 아니 '아자카'라는 이능력을 가진 여자애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이 나은 마유즈미 가(家)에 의해 일어난 비극입니다. 당사자인 마유즈미도 알고 있지만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당주가 되었지만 자신의 운명을 거스를 경우 다음 세대를 태어나게 할 자궁을 빌려주는 여자로 전락할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저 마스코트같이 오도카니 서 있을 뿐, 여튼 그녀는 누구에게도 손을 내밀어 주지 않습니다. 오빠 아사토가 자신의 이목을 끌기 위해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호수에 빠져 아무리 발버둥 쳐도 물가로 나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오다기리는 모든 걸 내려놓고 그저 편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조차 마유즈미는 그를 외면합니다. 방바닥에서 죽기만을 기다리는 오다기리의 잠겨진 집 문을 뜯고 들어와 하는 말이 '너의 뱃속에 있는 도깨비를 내가 가져도 될까?' 뭐 이런 천하의 머리에 꽃 꽂은 X을 보았나 싶었을 겁니다. 사실 여기까지가 마유즈미가 보여주는 무관심의 궁극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아비를 잃은 도깨비가 세상으로 나와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는걸, 그리고 관심병이 도진 오다기리에겐 당근보다 채찍이 필요하다는걸요. 결국 이런 것입니다. 개뿔 가진 것 없는 주제에 사람을 사람을 살리겠다고 설치더만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네? 같은, 나서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있는 마유즈미에게 사사건건 시비나 털던 주제에 여기서 좌절하고 뒹굴 거리고 있냐? 같은, 지 잘난 맛에 설치던 그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방법이 틀려먹은 게 아닐까 하며 상황은 오다기리에게 천벌을 내립니다.

 

아사토와 엮인 후 주변 모두가 죽어가는 상황에서 아무리 발버둥 처도 구할 수 없었던 사람 중에 유일하게 단 한 사람을 구해낸 적이 있습니다. '시라유키' 당주가 되기 위해 혀가 뽑힌 소녀, 마유즈미에 미치진 못하지만 강대한 이능력을 가진 그녀는 집안을 배신한 오빠를 상대로 처절한 싸움 끝에 오다기리의 도움으로 살아 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사토가 개입된 거 같은데 필자의 기억력은 붕어 머리 수준이라서 정확하게는 모르겠고 하튼 시라유키는 소심한 자/살을 꿈꾸는 오다기리를 구하고자 아사토에게 싸움을 걸었습니다.

 

지내다 보니 고향이고 지나보니 연민을 느낀다고 하였던 가요. 유일하게 구해주었고 구원받았던 시라유키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소심한 자/살을 그만두고 마유즈미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오다기리에게서 처음부터 이랬으면 좋았잖아!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마유즈미는 움직이지 않았겠죠. 하지만 슬슬 결판을 내야 될 시기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는 손을 내밀어 주지 않습니다. 단서를 제공할 뿐, 그런데 단서를 찾아 돌아오던 길 오다기리의 눈에 비친 건 산산조각 난 마유즈미의 시체였으니...

 

인간이 되다만 인간이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시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모든 사단을 일으킨 아사토를 재끼고 오다기리는 대지에 우뚝 설 수 있을 것인가, 궤변에 궤변이 난무하고 지 잘못도 아니면서 모든 걸 끌어안으려는 볼썽 사나운 모습을 더 이상 안 보겠다는 것마냥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 모든 시작점이 된 아사토와 오다기리의 싸움, 마유즈미가 없는 상황에서 오다기리는 승산이 있나? 이계로 끌려가 뱃속의 아이 '우카'를 순산한(?) 오다기리의 운명은, 엄청 시리어스하고 재미있어지네?는 개뿔...

 

맺으며, 이전까진 소소한 개그라던가 정말로 피가 보일 정도로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였는데요. 하지만 이번 에피소드는 오다기리가 아사토라는 장애물을 뛰어넘어 진정한 인간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인지라 그의 내면적인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 자칫 무미건조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사람의 내면의 표현이 꽤나 훌륭합니다. 필자에겐 남정네의 이야기 따위 관심이 없어서 그저 흘려 읽었지만요. 어쨌건 그래서 오다기리는 인간이 되었나? 모르겠습니다. 제 버릇 어디 가나요.(1)

 

그동안 누구에게도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던 마유즈미는 사실 손을 내밀어 준다기보다 등을 떠밀어 주며 앞으로 나아가길 바랐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느낌이 곳곳에서 감지되었습니다. 그래봐야 마유즈미 주변은 오다기리뿐이지만요. 하지만 사실 오다기리를 이용해 오빠를 치려고 했으니 성모 마리아 같은 인종은 되지 못하긴 합니다. 그래도 모든 사람은 구하지 못해도 곁에 있는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것마냥 오다기리를 챙기는 모습에서 냉혈한은 아닌 듯하였고요.


 

  1. 1,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오다기리는 인간입니다.
    여기서 인간 만들기란 성장하다의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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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침역 : 클로즈드 에덴 1 - Enemy of Mankind - 상, L Novel
이와이 쿄우헤이 지음, 시라비 그림, 김장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우리에게 무시우타로 유명한 이와이 쿄헤이의 신작입니다. 전작인 무시우타는 초반이 절판이 되어 이젠 구할 수가 없어 필자는 끝끝내 접해보지 못했군요. 전작의 명성을 익히 들어왔던지라 이 작품도 기대를 갖고 구입을 하였는데요. 아직은 1권이라서 그런지 많은 복선이 깔리고 캐릭터들의 성격이 정립되어 가는 수순이다 보니 크게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그려가는 부분은 상당히 세밀하며 아픈 과거를 가슴에 품은 채 잃어버린 연인과 가족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 등은 높은 점수를 주고 싶군요. 그 외에는 전형적인 라이트 노벨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심도 있는 이야기는 최대한 피하고 주 독자층인 청소년의 입맛에 맞게 역경을 딛고 영웅을 지양하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일러스트레이터 '시라비'작가가 보여주는 일러스트는 굉장히 각이 잡혀 있습니다. 캐릭터들이 군더더기 없이 잘 표현되어 있어요.

 

주 이야기- 어느 날 전조도 없이 나타난 보라색 연기로 뒤덮인 도쿄, 넓이가 특정되지 않은 보라색 연기로 원통 형태의 태두리가 생겨난 도쿄 중심부에 EOM이라 불리는 미지의 생명체 '하멜른'이 강림하여 수백만의 거주민을 학살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후 <도쿄 액습>이라 불리는 미증유의 대재앙에서 주인공 '아카즈키 렌지'는 두 살 연상의 연인 '오사토 유이'를, 히로인 '유미이에 카나타'는 친동생을 잃어버렸습니다.

 

2년 후, 렌지와 카나타는 [레이더,raider]가 되었습니다. 대재앙으로부터 간신히 혼란을 수습하고 딛고 일어선 일본은 그 근원지를 <크리티컬 에어리어>라 칭하고 지금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곳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는데요. 하지만 가족을, 연인을 잃어버린 많은 사람들은 <스폿>이라는 <크리티컬 에어리어>로 들어갈 수 있는 장소를 찾아내 불법으로 침입하는 걸 서슴지 않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런 사람들을 통칭 레이더라 부르게 되었으며 정부는 불법으로 간주하고 막고 있지만 역부족

 

그런데 모든 레이더가 연인을, 가족을 찾기 위해 가는 것은 아니라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걸맞은 꿀꿀한 이야기도 보여줍니다. 재물을 탐닉하기 위해, 다른 레이더를 죽이기 위해, 그래서 항간에서는 레이더에 대한 소문은 좋지만은 않습니다. 렌지와 카나타는 주변 사람들에게 비밀로 하며 오늘도 <크리티컬 에어리어>로 발을 들이는데요. 이들이 레이더로 활동한 시간도 벌써 1년하고 8개월이 지났습니다. 모든 걸 거부하는 극한의 세계 <크리티컬 에어리어> 거기엔 EOM이라는 통상적인 공격이 통하지 않는 미지의 생명체가 있습니다.

 

서바이벌, 인간을 거부하는 곳 <크리티컬 에어리어> 극한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카나타가 연예인으로 활동하며 벌어들인 수입으로 군대 뺨치는 장비로 무장하고 있지만 한순간의 방심이 생사를 가르는 통에 늘 긴장을 연속입니다. 이 부분이 참 디테일 있게 표현했더군요. 폐허 속을 나아가면서 서로가 맡은 포지션을 소홀히 하지 않으며 서로가 등을 맡기고 때론 '크립티드'나 EOM과 조우하여 격렬하게 싸우기도 하고 패배하여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기도 하면서도 목숨만은 부지했다는 안도감...

 

작품 내용 중 상당 부분이 이런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들통나면 사생결단으로 전투에 임해야 되는 크립티드나 EOM에 들키지 않기 위해 숨죽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괜스레 손에 땀이 나기도 합니다. 그러다 좌절을 겪기도 하지만 내일이 있기에 또 이들은 도전을 합니다. 이 모든 사태의 근원이 되는 EOM '하멜른'을 무찌르고 연인을, 가족을 되찾기 위해... 그러나 이것만 있으면 곧 재미 없어진다는 걸 작가도 인지했는지 복선을 깔기 시작합니다.

 

전조도 없이 나타난 보라색 연기와 EOM은 구 종인 인류를 멸절 시키고 새로운 종의 탄생을 알리기 위한 사전 포석일까 하는 복선을 주인공 렌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렌지의 연인 '유이'를 쏘옥 빼닮은 히마와리와의 조우는 그 가설은 더욱 신빙성을 얻어 갑니다. 2년전 <도쿄 액습>때 렌지와 같은 장소에 있다가 재앙에 휘말렸다가 살아난 이름 모를 어떤 소녀, 지금은 히마와리로 불리며 정부기관인 구무청에 소속되어 렌지와 적대하는 관계에 놓인 그 소녀는 처음 만난 렌지를 잊을 수 없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전대미문의 아포 칼립스를 맞이하여 인류가 맞서 싸워 나간다는 이야기지만 실상은 주로 레이더와 <됴코 액습>이라 불리는 대재앙을 관할하는 '구무청'이라는 정부기관과 구역 싸움입니다. 정식으로 허가받아서 <크리티컬 에어리어>를 탐색하는 구무청과 <스폿>이라는 장소를 이용해 불법적으로 에어리어로 침입하는 레이더가 서로 상생하긴 애초부터 글렀죠. 거기다 레이더는 희생자들의 재물까지 손대고 있는 판이었으니 세간의 평도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흥미로운 건 등장인물 간의 감정적인 대립이 볼만 합니다. 다들 뾰족합니다. 성격이, 어딘가 다들 모났습니다. 누군가를 헐뜯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것마냥 시건방진 말만 늘어놓습니다. 아픔을 이해하려는 배려보다 겉모습으로 판단하여 그 사람을 평가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난 성격으로 사람을 찌르면 죽을 거 같은 상황 속에서도 누군가는 손을 내밀어 주기도 합니다. 그것이 '오사토 유이'라는 것에서 이 작품의 향방은 정해진거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래서 파탄은 예정된 거나 다름없다는 것처럼 차분하게 렌지와 카나타에게 다가옵니다. 오사토 유이를 빼닮은 '히마와리'의 등장으로 사태는 격랑 속으로 흘러가는데요. 무엇보다 우선으로 '하멜른'을 쓰러트린다. 오로지 이것만을 위해 1년 8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준비해온 것들이 렌지에 의해 파탄이 나기 시작합니다. 연예인 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입과 불법적으로 스폰서를 맺으며 모든 것을 쏟아부은 카나타에게 있어서 가족인 친동생을 구하기는커녕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는 미래가 확정되어 버렸습니다.

 

이 작품이 19금이었다면 지금쯤 카나타는 AV에 출연하고 있지 않을까 할 정도로 내몰리게 되는데요. <크리티컬 에어리어>를 탐색하기 위해 조달한 장비와 훈련에 필요했던 트레이너 고용비를 모두 카나타가 부담하고 있었는데 한순간 눈이 돌아간 렌지에 의해 졸지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카나타, 이 부분은 정말 책을 짚어 던지기도 했군요. 유이와 쏙 빼닮은 히마와리와의 조우는 렌지가 그동안 필사적으로 찾으려 했던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말의 동정과 이해는 갔습니다만...

 

맺으며, 적을 만나 싸우고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역경을 이겨내며 앞으로 나아가는, 그러다 좌절도 겪고 다시 일어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통쾌한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상처가 되는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일도 벌어지고, 한편으로는 자기가 싸지른 똥을 치우려는 듯 상처를 내고 마데X솔을 발라주기도 하고, 북 치고 장구치고, 병 주고 약주고 하는 일이 참 많이도 일어납니다.

 

그러다 결국은 인류의 적은 EOM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메시지를 넌지시 던지기도 하는데요. 아직은 조그마한 뉘앙스에 지나지 않았는데 보통 이런 아포 칼립스의 상황 이면에는 반드시 자칭 진화의 단초를 제공한다는 명분이랍시고 어깨에 힘이 들어간 인간들의 개입이 있기 마련인데 이 작품에서도 이런 느낌이 느껴지기도 했군요.

 

어쨌건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감정적인 대립은 볼만했지만 그 외에는 크게 여타 작품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월한 형님 밑에 열등한 동생이 보여주는 능력물이라는 클리셰도 동반하고 있고요. 기모(밥맛)를 외치는 여동생 아사히는 오빠인 렌지를 벌레보듯 여기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렌지를 걱정한다던지하는 여동생 포지션 클리셰라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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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세계에서 부여마법과 소환마법을 저울질한다 3 - S Novel
요코츠카 츠카사 지음, 신동민 옮김, 마냐코 그림 / ㈜소미미디어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어느 날 전조도 없이 이세계로 전이된 사립 학원(중,고등부)의 학생들은 추악한 오크떼를 맞이하여 생사의 기로에 놓이게 된 이래 2일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2일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는데요. 카즈히사는 아리스와 타마키를 비롯해 오크에게 유린 당하고 있던 중등부를 해방해 많은 여학생들을 구해 냈습니다. 하지만 여느 영웅물이나 일반 모험물처럼 해피한 상황은 아니었는데요. 남학생들을 비롯해 남자들 대부분은 이세계로 전이되자마자 오크들에게 무참히 죽임을 당했고, 여학생들도 대부분 오크들에게 강x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이젠 카즈히사의 연인이 된 중등부 여학생 아리스도 그가 아니었다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짓을 당할뻔하였고요. 역시 카즈히사의 연인이 된 타마키는 숨어 있다가 그에게 구출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미아(중등부 여학생)와 시키(고등부 여학생)가 합류를 하였고, 엑스트라 여학생 다수가 참여를 하였습니다. 이는 카즈히사가 구해낸 학생들의 숫자는 학원 특성상 몇백 명이나 되는 학생들 중 극히 일부분일 뿐이었습니다. 대부분은 끔살을 당하고만 것이죠. 이 작품은 아포칼립스와 시리어스가 공존하는 세계입니다.

 

하지만 마냥 당하고만 있으라는 것이 아닌 RPG 게임처럼 시스템이 존재했고 학생들은 이대로 당하고만 있는 것이 아닌 오크를 죽여 경험치를 얻어 레벨업을 할 수 있는데요. 주인공 카즈히사는 자신을 괴롭히던 일진 시바를 죽이려 파놓은 함정에 오크가 걸려 죽으면서 레벨업을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누구보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빨라 적극적으로 오크를 섬멸하며 저항세력을 만들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자신을 괴롭히던 일진 때문에 오히려 누구보다 빠른 기회를 얻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씁쓸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카즈히사는 레벨업을 하며 거점으로 마련한 중등부로 오크가 떼로 밀려오면서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고, 다른 건물에 살아남은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기도 했습니다. 그 와중에 덧없이 죽어간 학생을 봐야만 했고, 오크에게 강X 당하고 마음이 무너진 아이들도 봐야 하는 등 지옥이 있다면 여기가 지옥이라는 것마냥 처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져만 갔습니다. 하지만 생지옥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 복수를 다짐하는 여학생들이 늘어나면서 차츰 전력 면에서 우세해지기 시작하며 이제 공수 교대가 시작됩니다.

 

그쯤 일진 시바가 이끄는 고등부가 부각되기 시작하는데요. 아포칼립스적 재앙에서 살아남기 위해 협력해도 모자랄 판에 자신만의 세력 구축에 열을 올리던 시바는 그렇지 않아도 얼마 남지 않았던 학생들 무리를 사욕에 휩싸여 궤멸로 이끄는 등 천하의 개쓰레기 인증하며 곱게 죽지 못할 것이라는 플래그를 세워 가던 중 드디어 카즈히사는 시바와 마주하게 됩니다. 아픈 과거를 떨쳐 내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바를 넘지 않으면 갈 수 없다는 걸 카즈히사는 알고 있었는데요.

 

하지만 여기까지 오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전날에 아리스가 시바에게 납치된 줄도 모르고 그와 같이 있는 걸 목격 후 심한 좌절을 겪어만 했는데요. 한마디로 자격지심과 섣부른 오해가 그를 몰아세우는 등 모험물의 틀을 깨는 모습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러다 자포자기한 그를 타마키가 일으켜 세워 주면서 다시 일어서고 아리스를 탈환하기 위해, 숙적이자 만인 공통의 적 시바를 쓰러트리기 위해 그는 지금 대지에 섰습니다.

 

이세계로 전이되기 전엔 공포의 대상이었던 시바, 이를 갈며 레벨업 작업을 했던 카즈히사에게 그는 상대가 되지도 않았고 그냥 엑스트라로 전락하고 맙니다. 마치 흔직세의 나구모처럼 덧없는 인생이야 같은 도를 터득하는 일이 벌어지고만 것이죠. 그러고 보면 이 작품은 흔해빠진 직업으로 세계 최강이라는 작품과 비슷합니다. 갖은 고생으로 누구보다 빠른 레벨업으로 힘을 손에 넣고 자신을 가로막는 건 무엇이든 배제하는, 그러나 자신의 품 안에 들어오면 그게 누가 되었든 반드시 보호해주는, 그래서 지금은 약 서른 명에 가까운 여학생들이 그의 곁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흔직세의 나구모처럼 참지도 않습니다. 비록 가상 세계(1)에서 몸을 섞는 것뿐이지만 하렘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기도 한다는 것인데요. 여기서 참 알다가도 모를게 살아남기 위해서라지만 자신은 뒤에서 부여마법(버프)을 걸어주고 소환 마법으로 소환수로 싸울 뿐 전위가 되어 싸우지 않으면서 여자들에겐 싸우는 방식과 스킬 구성을 짜 맞춰주며 전위에 내세우고 있어서 주인공은 솔직히 좋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이용하고 있다는 것, 그런 그에게 홀딱 빠져서 2일 만에 몸 섞는 걸 주저하지 않는 히로인들...

 

어쨌든 카즈히사는 평생 트라우마가 될 거 같았던 시바를 뛰어넘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겐 이제 새로운 챕터가 다가옵니다. 왜 우리들이 이세계로 전이되었고, 왜 오크들에게 유린 당해야만 했나, 그리고 그들(오크)은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가 하는 철학적인 이야기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조금식 그 해답을 찾아가는 도중 많은 여학생들이 어디로 납치되었나 하는 장면도 보게 되는 등 철저하게 아포칼립스적인 상황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로...

 

맺으며, 이세계 전생물과 아포칼립스적인 요소를 절묘하게 잘 섞어 놨습니다. 오크에게도 같은 인간 남자들에게도 유린 당하는 여학생들, 지옥 같은 상황에서 살아남아 독기 밖에 남지 않은 여학생들(아쉽게도 엑스트라), 그 모든 과정은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이자 사람이 모든 걸 잃게 되면 눈에 뵈는 게 없어진다는 것도 잘 표현하고 있어서 씁쓸하게도 합니다. 그 와중에 호적에 아직 잉크도 마르지 않았을 중등부 여학생들과 몸을 섞는 등 윤리관은 얻다 팔아먹었는지 모를 상황을 웃프게 합니다. 카즈히사는 살아남기 위해 여학생들을 이용하고, 여학생들은 그런 그에게 기댑니다.

 

그래서 읽다 보면 사람이 살아가면서 놓지 말아야 될 뭔가가 끊어지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아무리 픽션이라지만 이래도 되나 싶은 장면도 더러 있습니다. 3권은 좀 덜했긴 합니다만, 어쨌든 초반에 죽을 정도로 개고생 했지만 이젠 빠른 레벨업으로 인해 이제 오크와 파워가 역전되는 파워 인플레가 일어납니다. 2일 만에 이렇게 진도가 나가도 되나 싶은 게요. 작가가 완급 조절에 실패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들이 겪어야 했던 일련의 일들의 진상을 밝히는 대목으로 서둘러 넘어갔지 않나 하는... 후반부는 급전개랄까요. 


 

  1. 1, 레벨 업하면 자칭 정신과 뭐시기 방처럼 흰색으로된 방으로 이동하는데 거기는 현실과 단절이 되어 있어서 흰색의 방에서 무엇을 하던 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않음, 그러니 몸을 섞어도 현실로 돌아오면 그런 일 없었다는 것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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