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칸방의 침략자!? 22 - L Novel
타케하야 지음, 원성민 옮김, 뽀코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7년 8월
평점 :
품절


                                   

 

사실 2천 년 묵은 응가는 22권의 부제목으로는 어울리지 않고 키리하의 고향 지저인의 세계 에피소드 때 붙였어야 마땅했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주인공 코타로가 클란과 함께 2천 년 전 포르트제로 갔을 때 일어난 쿠데타의 주역을 확실히 제거하지 않고 시공의 저편으로 날려버린 결과가 급진파 지저인과 마법국 포르사리아의 다크니스 레인보우라는 결과를 불러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주인공 코타로가 싼 똥은 아니지만 그때 확실하게 처리했더라면 지금 포르트제 해방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 것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죠.

 

그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106호실을 차지하기 위해 온갖 여자들이 쳐들어와서 싸워대는 아수라장을 거쳐 공통의 적으로 부상한 급진파 지저인과 다크니스 레인보우라는 강대한 적을 맞아 힘을 합치고 그러다 정들어서 서로의 어깨와 등을 빌리는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지금은 서로가 둘도 없는 동료가 되어 끈끈한 유대를 쌓았고요. 이 과정에서 참으로 특이한 것은 서로가 부대끼면서도 시기하지 않고 조롱하지 않고 남자 하나를 놓고 설전을 벌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연약함을 무기로 하지 않는, 죽음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맞서는 용기는 이 작품을 대표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뭐 어찌 되었든 주인공 코타로와 아홉 명 여자애들+유부녀 1명은 그동안 급진파 지저인->마야+에우렉시스->다크니스 레인보우를 거쳐 지금은 포르트제 해방을 위해 티아의 고향인 포르트제 성계에 왔습니다. 이들이 여기에 온 이유는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쿠데타 진압인데요. 포르트제 황제이자 티아의 어머니인 엘파리아는 날로 비대해지며 제어 불가능에 가깝게 변해가는 군을 견제하기 위해 군축에 나섰다가 강경파에 의해 실권, 즉 쿠데타로 쫓겨나게 되었고 이대로 놔뒀다간 암흑기로 접어들 포르트제를 구하기 위해 주인공 코타로와 아홉의 여자애들을 대동해고 다시 포르트제에 온 것입니다.

 

이것은 2천 년 전 청기사 전설의 현시대에서 재림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2천 년 전 막스판의 판박이라고 일컬어지는 반달리온에 의해 저질러진 쿠데타, 그리고 그걸 제지하기 위해 찾아온 코타로, 여정 또한 2천 년과 비슷하게 흘러갑니다. 사실 이런 부분은 흥미 본위에 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장 재미있었던 에피소드(외전 7.5, 8.5 포함 7~13권 사이)의 향수를 느끼게 하여 아련함을 선사하려는 것이겠죠. 거기에 영웅을 동경하는 인간의 선망을 간접적으로 자극함으로써 몰입도를 높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후반부 포르트제에서 황제보다 더 우대받는 코타로라는 청기사의 존재가 표면화되면서 두근 거림을 느끼게 해주기도 하였군요.

 

그런데 정작 본편(22권) 이야기는 제대로 하지 않고 왜 엄한 이야기만 주구장창 늘어놓고 있냐면요. 솔직히 쓸게 없습니다. 현재 일본에서 26권이 발매되었는데 아직도 본 이야기엔 접근하지 않았더군요. 그런 판국에 22권은 에필로그 축에도 끼지 못해요. 코타로 일행이 포르트제 성계에 진입하고 군에 발각되어 전투를 벌였던 게 21권까지 이야기고 이번 22권은 대기권 돌입 때 두 그룹으로 찢어진 이들이 다시 해우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물론 쿠데타군과 조우하여 전투를 벌이는 장면도 있지만 이 작품은 워낙 피 보는 걸 극도로 꺼려서 크게 이렇다 할 에피소드는 없습니다. 있다면 루스가 보여준 약간은 가슴 시린 연인을 바라보는 감정과 그 사람을 믿는 마음 정도랄까요.

 

그리고 시작되는 아니 재림하는 청기사의 전설은 조금은 마음을 설레게 했습니다. 이것은 이 작품의 전성기였던 7~13권(외전 7.5, 8.5 포함)의 향수가 한몫했지 않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분위기 어떤가를 물어보신다면 농익은 수박 같은 거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먹고자 하면 못 먹을 것도 없지만 대부분은 버리는 푸석푸석한 질감의 그것, 이 작품의 최대 포인트였던 기승전결은 진작에 갖다 버렸고 피 보는 걸 두려워하여 조금의 상처에도 야단법석 떠는 느낌이 강해졌습니다. 장면 설명 또한 하나의 주제로 몇 페이지나 할애할 만큼 장황해진 것도 오래죠.(마치 필자의 리뷰처럼..ㅠㅠ)

 

가장 극적으로 변한건 한때 강렬한 인상을 남겨 주었던 에우렉시스가 광대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9권인가 루스 에피소드 때 최고의 벅찬 감동을 선사했던 그는 코타로에게 연패를 당하고 마야를 만나면서 둥글어져 마치 드래곤볼의 베지터 같은 뾰족하면서도 둥굴해져선 나만의 이상적인 세계를 건설하겠다며 이번에 코타로를 도와주는 장면은 차라리 개그라고도 할 수 있었군요. 여튼 이놈 말고도 상황적으로 이야기들이 둥글둥글 해져선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 줄 몰라야 긴장감이라도 있을 텐데 다 같이 손잡고 쎄쎄쎄 하자는 것처럼 동화적인 분위기를 풍겨대니 적응을 못하겠습니다.

 

맺으며, 솔직히 말해서 22권을 정발해준 L노벨에게 무한한 존경을 표하고 싶을 지경입니다. 여타 출판사라면 진작에 절판되어 버렸을 것을 꾸준하게 내주는 것이 눈물 나게 고마울 지경이랄까요. 언제 어디부터 잘못되었는지 기승전결을 버리고, 긴장감을 버리고, 각오를 버리고, 비장함을 버린 끝에 우정 하나만 남았습니다. "어찌할 수 없는 적을 맞이하여 죽을힘을 다해 싸우고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기보다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서 자신의 뜻을 관철한다." 필자는 이것 하나만 바라보고 22권까지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이들에게선 더 이상 이런 느낌을 느낄 수 없었군요. 물론 찢어져서 개인플레이를 하고 다시 서로 죽일 듯이 싸워댄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머리카락 갯수도 알만큼(비유적) 서로를 이해하고 척하면 착하고 행동함으로써 더 이상의 긴장감과 비장함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군요. 이 작품은 이게 빠지면 팥 없는 찐빵이고 소 없는 만두격입니다. 그래서 이번 22권은 사실 읽는데 많은 고역이 뒤따랐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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