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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피니트 덴드로그램 3 - 초급 격돌, S Novel+
카이도 사콘 지음, 타이키 그림, 천선필 옮김 / ㈜소미미디어 / 2017년 7월
평점 :

쪼렙의 몸으로 고수도 힘들다는 필드 보스<UBM>를 쓰러 트리고, 어제는 길드와 나라도 어찌하지 못했던 [고즈메이즈]라는 산적들을 소탕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잡혀있던 애들도 해방하면서 일약 스타까지는 되지 않았지만 여러 사람들과 길드 등에 눈도장을 찍기엔 충분했고요. 겸사겸사 '누구는'이라 쓰고 게임하는 유저 대부분이 죽어라 노력했는데도 얻지 못했던 언데드 한정 먼치킨 같은 스킬도 입수했습니다. 어딜 가나 주인공 보정은 빠질 수가 없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원래 같으면 상당한 고수라도 포기하거나 힘들었을 일을 거침없이 해냈으니까요.
뜬금없지만 이 작품을 3권까지 읽고 느낀 점을 써보자면, 게임이면서 게임 같지 않은 설정이 마음에 들었고, 메이든 타입 네메시스의 귀여움에 또 한 번 마음에 들어서 적지 않은 가격에도 이 작품을 선택해 왔지만 역시 일러빨이었던건가 싶은 게요. 수채화나 먹물체(?)같은 거침없으면서도 절도 있는 일러스트가 상당히 인상적인 게 이 작품의 매력이어서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게 특징이기도 하죠. 그러나 결국 이게 다라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요즘같이 이세계 전생하면서 대번에 먼치킨이 되는 주인공의 홍수 속에서 역경을 이겨내는 주인공이라는 클리셰는 어떻게 보면 돋보이기는 했습니다만...
자기보다 강한 상대와 싸워 이긴다 같은 정형적인 클리셰는 그렇다 칩시다. 판타지 세계에서 이것이 정석이니까요. 사실 요즘같이 이세계로 전생하면서 단박에 강해져서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는 것보다 죽도록 고생하고 성장해가면서 뭔가를 얻었을 때의 충족감은 보는 이로 하여금 더 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도 해주기도 하죠. 이 작품의 주인공 '레이 스탈링' 또한 그러합니다. 쪼렙 이면서 겁도 없이 <UBM>이라는 고수도 쩔쩔맨다는 필드 보스를 쓰러 트리고 길드와 나라도 어쩌지 못했던 [고즈메이즈] 산적단을 토벌해서 잡혀있던 아이들을 해방하는 등 게임 시작 한 달 만에 눈부신 활약을 하면서 모험이라면 이래야지 같은 정석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그러나 판타지 정석같이 고생해서 성장한다와는 조금 다른,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 상당합니다. 애가 싸워서 이겨도 민숭민숭한 느낌만 들어요. 박진감이 없어서 그런가 작가가 상황적 설명을 제대로 못해서 그런가 이기긴 이겼는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같은 느낌만 들어서 읽다 보면 매우 당황하게 됩니다. 그래서 2권 때 [고즈메이즈] 산적단과 싸울 때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고 3권이 발매되면 이거 구매해야 되나 망설일 정도로 필자에겐 심각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래도 좀 나아지겠지 하고 3권을 구매했더니 이번엔 340페이지 중 반은 주인공과 상관없는 초급(고수)끼리의 대결로 할애하고 나머지 반은 외전으로 때워 버리는 통에 이 작품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뭘까 하고 필자는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이전부터 주인공이 속한 알터 왕국을 집어삼키려는 드라이프인지 드리프트인지하는 옆 나라의 공작을 조금식 그려왔고 이번에 크게 그리고는 있다는 건 알고는 있습니다만, 여튼 알터 왕국은 이미 트라이프인지 드리프트인지 하는 나라와 3년 전인가 하튼 몇 년 전에 터진 전쟁의 결과로 국토의 반을 잃어버렸습니다. 여기엔 알터 왕국의 삽질도 한몫하였지만 분위기를 보면 침략 당한 나라의 슬픈 이야기로 미화되어 주인공인 레이는 두 나라 간 전쟁이라는 격랑에 휘말려 가는 모습입니다. 이번 에피소드는 그 전초전에 해당하고요. 결국은 뭐 나라를 구하는 구국의 영웅의 시작점이 아닐까도 싶지만 이제 와 어떻게 되든 필자하곤 상관이 없습니다. 이번 3권에서 하차할 거니까요.
이 작품의 문제점을 들라면 끝도 없습니다. 나라를 집어삼키기 위해 암투와 음모가 판치는 격랑 속에 휩쓸려가는 주인공이라는 성장물이긴 한데 그리는 과정이 참으로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습니다. 긴장감이 없어요. 드라이프인지 드리프트인지 하는 옆 나라는 공작조를 보내 자기 나라를 집어삼키기 위해 암약하고 있는데 멍청한 알터 왕국은 그에 대항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 무능함을 대표하고, 그러다 어? 어? 하며 당황하는 건 일반 국민들, 거기에 마침 주인공이 있네? 빤히 보이는 약속된 장면은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거기에 서글서글한 만둣집 사장님은 알고 보니 무림 초고수였다는 외전의 이야기는 궁극의 스파이스를 뿌려댑니다.
이 작품 작가의 필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게 음모와 암투가 판치는 장면에서는 작가가 정보 수집의 한계 때문인지 상황적 설명을 해야 될 구간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어물적 넘어 가버리고 비교적 설명이 쉬운 스킬 습득 과정, 그리고 그 스킬의 효용성과 대미지 설명은 정말로 길게도 써 놓았습니다. 이거 꼭 알아야 돼? 같은 머리카락 잡고 고민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군요. 여기에 복선이랍시고 싸구려 멘트 들어갑니다. 같이 뜬금없이 '저건 설마?' 같이 자기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과정과 단서를 던지지 않고 자기만 아는 복선을 던져요. 댕그러니 캐릭터 하나 잡아 놓고 마치 누군지 알겠지? 모르면 말고 같이 내용물이 뭔지 모를 상자 하나 던져놓고 거기에 고양이가 들었으니 동조해줘라고 합니다.
맺으며, 읽다 보면 굉장히 불편합니다. 대충 흘러가는 이야기는 알겠는데 작가가 마이웨이성이 강해요. 독단적인 스킬 입수 과정과 대미지 설명은 그렇다 치더라도 단서와 과정은 제공하지 않으면서 상황적인 장면만 던져놓고 추리를 하라니까 미칠 노릇입니다. 뭐 필자만 그렇게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지만요. 물론 가다 보면 해답 편을 내놓기도 하는데 이걸 두고 북 치고 장구 친다고 할 정도로 이게 해답 편? 그럴 줄 알았다는 같은 싸구려 느낌이 매우 강합니다. 음모와 권모술수가 판치는 격랑 속에서 사람들을 위해 분연히 일어서는 힘없는 주인공을 그리려는 건 알겠는데 밸런스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는 느낌이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