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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향신료 5 - Extreme Novel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박소영 옮김, 아야쿠라 쥬우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08년 6월
평점 :

더 이상 이보다 나쁜 관계가 없을 것처럼 파탄 직전까지 내몰렸던 로렌스와 호로는 테레오 마을에서 간신히 상처를 봉합하고 다시 여행을 떠나 지금 레노스라는 마을에 왔습니다. 호로의 고향에 대해 계속 정보를 모으기 위해 도착한 레노스에서 새로운 장사의 냄새를 맡은 로렌스는 일생일대의 도박에 나서고 호로는 그가 잘만 되면 그토록 염원했던 가게를 차릴 수 있다는 걸 알고는 기꺼이 로렌스가 하고자 하는 도박에 몸을 던지는데요.
그 도박이란 호로라는 담보를 상회에 맡기고 돈을 융통하여 모피를 구입하는 것, 로렌스는 여 상인 에이브를 협력자로 만나 그의 조언에 따라 호로를 저당 잡히고 돈을 융통하여 대규모 모피 사업에 뛰어듭니다. 하지만 사람 잘 되는 꼴을 못 보는 게 이 작품의 특징인지라 잘 될 것만 같았던 사업은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것처럼 암초를 만나게 좌초하기 시작합니다. 어째서 이들은 매번 사기당하고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배우는 게 없을까 싶을 정도로 애잔한 이야기가 펼쳐지는군요.
어쨌건 이들의 관계가 파탄 직전에서 겨우 상처를 봉합할 수 있었던 것은 마X카솔을 발라서 그런 건 아니고 로렌스가 주워 담지 못할 말을 뱉은 것을 억지로 주워 담을 수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이건 사실 말로 주워 담았다기보다 몸으로 때웠다는 게 옳겠죠. 테레오 마을에서 자기도 모르게 제물이 되어서 죽을뻔한 상황에서도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호로의 뜻을 관철해준 것, 히스테리에 가깝게 몸부림치는 호로를 버리지 않고 곁을 지켜준 것, 그리고 제일 크게 작용한 것은 로렌스가 내미는 손의 따스함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호로는 로렌스의 마차에 숨어든 자신을 내치지 않고 보살펴 주고, 옷을 사주고(), 먹을 것을 사주고, 다친 몸으로 악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듯 앞으로 나서고, 그렇게 여행을 하며 말 동무가 되어주고, 자신의 고향을 찾기 위해 상관도 없는 길을 같이 걸어가 주는 그에게서 수백 년 동안 이보다 따스했던 것은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녀는 말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여행을 끝내자'라고... 물고기는 사람 손의 온기에 못 견디고 화상을 입는다고 하죠. 잡은 물고기를 방생한답시고 몸통을 만지며 바늘을 빼 다시 강으로 바다로 돌려보내지만 물고기는 사람 손의 온기에 화상을 입고 죽는다고 합니다. 낚싯바늘 때문에 생긴 상처 때문이 아니라...
호로는 물고기와 같은 존재입니다. 로렌스는 사람의 손에 해당하고요. 호로는 무서웠습니다. 그의 온기가, 호로와 로렌스는 시침과 분침이 같이 출발할지언정 결국은 따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근데 사실 이건 별거 아닙니다. 이것은 둘 다 인지하고 있고 각오도 하고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헤어짐은 필연이라는 것을요. 그래도 호로는 누군가가 곁에 있어줬으면 했습니다. 그런 외로움을 극도로 많이 타는 호로가 왜 이별을 선택했을까, 호로는 로렌스의 따스함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화상을 입고 죽어갈 바엔 여기서 사람 손이라는 온기에서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결국 호로는 온기가 식었을 때의 무서움을 두려워했습니다. 요컨대 무관심이 두려웠던 것이죠. 부부가 오랜 관계 끝에 권태기가 찾아오는 것처럼 다 읽고 나서 뭐 이런 걸로 고민하는 걸까 할 정도로 호로는 권태기가 찾아오는 걸 무서워했던 것인데요. 사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그녀에게 있어서 권태기는 또 다른 외로움의 시작이었던 것, 사람은 언제까지고 초심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의 관계가 계속해서 똑같이 유지되리라는 보장은 없는, 같이 붙어 있어도 그저 무덤덤히 말이나 나누는 동료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관계가 되지 않을까 이게 가장 두려웠습니다.
참 바보 같은 일이죠. 인연이라는 게 그리 쉽게 끝나는 것이 아님을 호로는 알지 못하고 있었던, 요컨대 호로는 권태기에 들어서면 서로에 식상하여 다들 찢어지는 게 아닐까 겁을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땐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것을 모른 채 말이죠. 이 작품은 그런 호로에게 한 발짝 나아가게 합니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는 것처럼, 현대의 연애 지침서 같아서 얼굴이 좀 붉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였군요. 온기라는 상처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 온기를 받아들이라는 것처럼, 로렌스는 다시금 호로에게 손을 내밀어 봅니다.
사실 여 상인 에이브와의 에피소드는 딱히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로렌스와 호로의 관계를 계속해서 이어주는 다리 역할에 지나지 않아요. 서투른 사랑을 조언하듯 주변에서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들이 그의 등을 떠밀고 결국은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어 둘이 있어 행복해라는 엿 먹어 같은 상황을 연출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도 합니다. 결국 눈물을 보이고야 마는 호로, 그녀는 화상을 입을지언정 그의 손을 놓지 못하겠다는 마냥 히끅 히끅 거리며 로렌스의 손을 잡는 장면은 어설퍼도 이렇게 어설플 수가 있을까 싶기도 하였습니다.
이로써 장장 세 권에 걸친 이들의 상처 봉합기는 끝을 고했습니다. 결국은 이런 거죠. 로렌스는 그저 호로의 고향을 찾아주고 자기 갈 길을 갈려 했으나 어느 순간 그녀가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고 그래서 손을 내밀어 주게 되었습니다. 호로는 그의 손길에서 온기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바랐던 건 온기가 아니라 외로움을 달래줄 그 무언가,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온기가 열기를 띄기 시작했고 그녀는 그게 무서웠습니다. 온기가 꺼지는 날을요. 결국은 이들의 관계가 파탄 직전까지 가게 된 원인은 문득문득 로렌스가 내비쳤던 차가운 손길에서 호로가 자신의 미래를 엿봤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맺으며, 실로 난해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현실에서 이들처럼 연애하라면 죽어도 사양이군요. 뭔 연애를 이렇게도 어렵게 풀어 놨는지 사람이 너무 똑똑해도 살아가는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무미건조한 삶을 두려워한 풋풋한 사랑 이야기지만 그걸 풀어가는 과정은 옛 고문서를 보는 듯하였군요. 좀 쉽게 가자고요. 결국 이렇게 될 거면서...
- 1, 정확히는 호로가 멋대로 사고 돈은 로렌스가 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