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 다이어리  The Motorcycle Diaries
 
감독 : 월터 살레스
주연 :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로드리고 드 라 세나

얼마전 한국을 휩쓸었던 유행 중 하나는 체 게바라였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그의 초상화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거나 방에 그의 사진을 크게 확대한 포스터를 부쳐놓거나 시뻘건 장정본의 두텁기 그지없는 체 게바라 평전을 책꽂이에 꽂아두곤 했다지요. 그 중에는 체 게바라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조차 잘 모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는 소문이 있었지만요.
 
아무튼 그 체 게바라에 대한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체 게바라에 대한 동경과 존경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겐 귀가 솔깃한 소식이겠군요. 선댄스 영화제를 주창해 요즘 미국의 젊고 참신한 영화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로버트 레드포드가 제작했다니 더욱 구미가 당기지 않습니까?
 
그런데 영화는 20세기 최고의 혁명가 체 게바라를 말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그가 가슴 뜨거운 전사로 다시 태어나기 전 평범한 의대생이었던 20대 초반의 젊은 시절을 보여줍니다.
1952년 아르헨티나 청년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포데로사’라 이름붙인 한대의 모터사이클을 타고 라틴 아메리카 횡단여행을 결심합니다. 결연한 의지로 여행을 시작했지만 그들의 앞날은 험난합니다. 태풍을 만나고 치한으로 몰리고 소떼에 받혀 모터사이클마저 날라가죠.
 
하지만 정말 그들을 괴롭히고 분노케 한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8개월간 남아메리카 전역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동안 그들의 눈에 비친 것은 낙후한 정치와 불안한 사회, 일자리를 뺏기고 피폐하게 살아가는 민중들, 그들의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한 힘겨운 현실이었지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이제 막 진짜 세상에 갓 눈을 뜨며 후끈 가슴이 달아오르는 스무살 젊은이의 행적을 따뜻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20세기 역사상 가장 유명한 투사인 체 게바라, 그가 젊은 날 보고 느끼고 분노했던 것들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가슴 벅찬 경험이 될 것 같군요.
 
게다가 페루의 아퀴토스, 잉카문명이 꽃피었던 마추픽추, 아르헨티나의 떼무꼬, 아따가마 사막 등 남미의 내노라하는 절경들이 덤으로 따라오는 걸요. 따뜻하고 즐거운 두 젊은이의 여정에 따라 묻어나오는 남미음악도 한껏 감상할 수 있습니다.
 
아 한가지 더, 주인공 게바라를 맡은 배우는 평론가와 관객의 극찬을 받았던 영화 ‘이투마마’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준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입니다. 이 멕시코 출신 배우가 요즘 남미 최고의 스타라네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아모레스 페로스’,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나쁜 교육’에도 주인공으로 나왔지요. 영화 고르는 눈이 대단히 좋은 배우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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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선셋

 감독 : 리처드 링클레이터

주연 : 에단 호크, 줄리 델피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는 90년대에 선보인 다채로운 형식의 영화들 가운데서도 톡 튀어나오는 신선함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비엔나행 기차안에서 우연히 만난 선량하고 아름다운 두 젊은이가 낯선 이국의 거리를 거닐며 만 하루 동안 끊임없이 수다를 떨어대는 것만으로 두시간을 끌어갔던 그 영화를 기억하시나요? 영화의 말미 각자의 자리로 떠나는 남녀는 설레임과 안타까움에 6개월 뒤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었죠.
 
‘비포 선셋(Before Sunset)'은 그 두 젊은이의 재회를 그린 일종의 속편 영화입니다. 그럼 전편의 약속대로 6개월 뒤의 만남부터 시작하느냐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들의 재회는 9년만에 파리에서 우연하게 이루어집니다. 전작이 95년도에 제작되었으니 영화의 나이와 현실의 나이가 함께 흘러간 셈이네요.
 
9년이 지난 지금 두 사람은 세월의 무게에 눌려 조금씩 변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이런저런 삶의 곡절을 겪으며 지내다보면 9년이란 세월은 사람을 여러모로 변화시키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현재 제시는 9년전 셀린과의 만남을 소설로 써서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셀린은 파리에서 환경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엇갈렸던 두사람은 길은 파리의 한 서점에서 다시 이어집니다.
 
인생이 꽃피던 젊은 날 단 하루동안의 시간을 공유했던 제시와 셀린. 그들은 예전처럼 저녁 7시행 비행기가 떠날 때까지 파리의 뒷골목을 누비며 끊임없는 대화를 나눕니다. 사회, 환경, 문화를 망라하는 다양한 주제를 놓고 이지적이고 재기넘치는 수다를 떠는 두사람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과거의 추억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죠.
 
사실 6개월 후 비엔나에서 다시 만날 약속을 한 후 제시는 약속을 지켰지만 셀린은 할머니의 장례식 때문에 비엔나에 갈 수가 없었답니다. 만약 그 때 두사람이 약속대로 다시 만났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우리가 궁금해 하는 만큼 두 사람에게도 그것은 커다란 아쉬움일 테지요. 지나버린 세월과 현실의 차가움에 대한 미련과 회환이 큰 만큼 말입니다.
 
영화를 보기도 전에 너무 많이 얘기를 한다구요? 글쎄요. ‘비포 선라이즈’가 그랬듯이 ‘비포 선셋’ 역시 진짜 쏠쏠한 알맹이는 그들이 나누는 그 무수한 대화인걸요. 햇살이 낮게 비끼는 어스름한 저녁 무렵의 파리, 카메라는 로맨틱한 감정이 오가는 두 사람을 거의 실시간으로 차분하게 뒤따릅니다. 영화에서 묻어나는 따뜻함과 편안함은 9년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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