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http://blog.naver.com/jbs4106/220027112950>
"선생님, 올 해가 칠순이신데 한 말씀 해주시죠?"
"뭐 대단한 삶이었다고 한 마디 하라는 것이냐? 부끄럽구나. 그리고 너희들이 매일 나의 삶을 보고 있는데 달리 또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저희가 선생님을 뵙기 이전의 삶이나 내면의 풍경은 알기가 어렵사오니 한 말씀 해주시면 후학들에게 큰 보탬이 될 듯 싶습니다."
"굳이 그렇게 청한다면 내 삶을 나이 별로 간결히 정리해 보마. 그러나,다시 말하지만 나의 삶은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신비화되기를 거부한다. 나는 조실 부모하고 일찍부터 가계를 책임져야 했지. 공부를 할 기회가 없었단다. 그러나 나는 열 다섯에 공부를 내 삶의 중심에 두었단다. 공부만이 나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그러나 나는 일정한 스승을 두기 어려웠다. 나의 신분과 경제 상황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하여 나는 나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있으면 누구에게라도 묻고 배웠지. 공부에 뜻을 두면 스승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단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로 나는 삼십이 되었을 때 내 삶의 지향점을 분명히 세우게 되었지. 사십이 되어서는 더 이상 다른 가치를 기웃거리지 않아도 되는 독립된 가치를 세울 수 있었고, 오십이 되어서는 내게 주어진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를 확신하게 되었단다. 육십이 되어서는 세상 그 어떤 편견과 가치를 대해도 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고, 칠십이 된 지금 나는 내 마음의 욕망이 지향하는 그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단다."
"과연 선생님다우십니다. 저희들은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삶이셨습니다."
"아아, 너희는 내가 그렇게 염려하는 나의 신비화를 끝내 버리지 못하고 있구나. 나를 도운 사람도 너희지만 나를 망칠 사람도 너희일까 염려되는구나. 다시 말하지만 나의 삶은 평범했다. 다만 다른 이들과 달랐던 점은 공부를 삶의 중심을 두었고, 먹고 사는 것을 삶의 중심에 두지 않았다는 것 뿐이다."
『논어』「위정」편에 보면 공자가 자신의 삶을 38자로 언급하는 내용이 나와요. "오십유오이지어학, 삼십이립, 사십이부혹, 오십이지천명, 육십이이순, 칠십이종심소욕부유구(吾十有五而志於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가 그것이죠. 그런데 공자의 이 38자 언급은,『논어』의 다른 구절들과 마찬가지로, 전후 맥락을 알 수가 없어요. 공자가 막연히 이 얘기를 한 것은 아닐텐데 말이죠. 하여 공자가 자신의 70회 생일 날 이 말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 말 그대로, 소설을 써봤어요. 공자의 38자 언급이 생의 말년에 언급된 것이 분명하니 그의 생일날 한 말이 아닐까 싶었던 것이죠(당시에 생일 축하라는 것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생의 말년이 되면 지나온 삶을 자연스럽게 되돌아보게 되죠. 그리고 그 삶에 대한 평가도 내려보게 되고요. 공자의 38자 언급은 그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이자 평가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사진은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생의 회갑 자작시예요. 선생이 살던 당시에 회갑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을테니 이 시에는 선생이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와 평가가 깃들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어요. 더구나 선생은 회갑 당시 병중[중풍]이었으니 이런 짐작은 더욱 타당성을 갖지요. 필시 삶이 길지 않으리라고 느끼셨을테니까요(선생은 회갑 후 4년 있다 돌아가셨어요).
怱怱六十一年光 총총육십일년광 순식간에 지나간 육십일년 세월
云是人間小刧桑 운시인간소겁상 이것이 인간의 삶이라 일러왔지.
歲月縱令白髮短 세월종령백발단 세월은 허연 머리 숱조차 없게 만들었지만
風霜無乃丹心長 풍상무내단심장 하많은 고초들 내 단심을 어쩌지는 못했네.
聽貧已覺換凡骨 청빈이각환범골 가난을 수용하니 범인 경지 벗어낫고
任病誰知得妙方 임병수지득묘방 병에 초연하니 묘방이 필요없네.
流水餘生君莫問 유수여생군막문 유수같은 남은 인생 그대는 후일을 묻지마소
蟬聲萬樹趂斜陽 선성만수진사양 나무 가득한 매미 소리 석양따라 저물듯 할 터이니.
짐작대로 선생은 시에서 자신의 지나온 삶을 회고하며 평가를 내리고 있어요. 공자처럼 전 생애를 차례대로 언급하진 않지만, 그와 유사한 면을 볼 수 있어요. 공자가 삶의 중심을 공부에 두었듯, 선생은 삶의 중심을 '단심'에 두었어요. 여기 단심은 두말 할 나위없이 조국의 독립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자 거기에 희생하려는 마음이며 일제와의 모든 타협을 거부하는 지조라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단심으로 일관한 선생은, 공자가 공부를 삶의 중심에 놓고 생의 말년에 '종심소욕불유구'의 경지를 달성한 것처럼, 노래(老來)의 질고(疾痼)와 가난을 넘어서 삶을 자연의 일부로 여기는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어요. 공자가 '종심소욕불유구의 경지에서 자신의 삶을 충분히 의미있었던 것으로 여겼을 것처럼, 선생 역시 짧은 인생에서 한눈 팔지 않고 시대의 요구와 부름에 응답했던 자신의 삶을 충분히 의미있었던 것으로 여겼을 거예요.
공자나 선생 모두, 세속적으로 보면, 그리 행복한 인생이었다고 보기는 어렵죠. 사실 '뜻'만 세우지 않았다면 두 분 모두 세속적으로 행복하게 살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러나 일부러 가시밭 길을 자처해 걸었죠. 그게 한 번 뿐인 인생에서 더 의미있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예요. 그래서 그럴까요? 선생의 시를 읽으면 절로 이런 질문을 하게 되요: "나는 과연 내 삶의 종착역에서 내 삶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낯선 한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怱은 본래 悤으로 표기해요. 怱은 속자예요. 悤은 心(마음 심)과 囱(굴뚝 총)의 합자예요. 사태가 급박하여 정신없고 바쁘다란 의미예요. 心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囱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담해요. 굴뚝을 빠르게 빠져 나가는 연기처럼 정신없고 바쁘다란 의미로요. 바쁠 총. 怱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怱怱(총총, 대단히 급하여 허둥지둥하는 모양), 怱急(총급, 썩 급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刧은 力(힘 력)과 去(갈 거)의 합자예요. 떠나는[去] 상대를 겁박하여[力] 못가게 한다란 의미예요. 겁박할 겁. 불교에서 사용하는 시간 단위의 의미로도 사용해요. 겁 겁. 위 시에서는 이 의미로 사용됐죠. 이 경우 겁은 산스크리어 kalpa를 음역한 거예요. 매우 긴 시간이란 의미예요. 매우 짧은 시간은 ‘찰나(札剌)’라고 하죠. 찰나는 산스크리트어 Ksana의 음역이에요. 刧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永劫(영겁), 劫奪(겁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桑은 뽕나무의 모습을 그린 거예요. 아래 부분은 줄기와 뿌리, 위 부분은 가지와 잎을 그린 것이지요. 뽕나무 상. 桑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桑田碧海(상전벽해), 桑葉(상엽)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縱은 糸(실 사)와 從(좇을 종)의 합자예요. 느슨하다란 의미예요. 糸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실은 당기면 팽팽해지지만 놓아두면 느슨해지기 때문이죠. 從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좇는다는 것은 한결같이 따른다는 의미인데 실은 놓아두면 한결같이 느슨해진다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해 주고 있어요. 늘어질 종. ‘가령, 비록’ 등의 의미로도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가령 느슨하게 한다면~’ ‘비록 느슨하게 할지라도~’의 의미로요. 縱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放縱(방종), 縱令(종령: 비록, 가령, 설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髮은 髟(머리털드리워질 표)와 犮(拔, 뽑을 발)의 합자예요. 머리털이란 의미예요. 髟로 뜻을 표현했어요. 犮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물체를 뽑을 때 위로 잡아 올리듯 그같이 머리털이 위로 솟구쳐 자란다는 의미로요. 털 발. 髮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毛髮(모발), 斷髮(단발)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聽은 耳(귀 이)와 德(덕 덕)의 약자와 壬(아홉째천간 임)의 합자예요. 좋은 가르침[德]을 듣고[耳] 수용한다는 의미예요. 壬은 음을 담당해요(임→청). 들을 청. 聽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聽聞(청문), 傍聽(방청)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覺은 見(볼 견)과 學(배울 학) 약자의 합자예요. 잠에서 깨다란 뜻이에요. 見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잠이 깨어 눈을 뜨고 사물을 인지한다란 의미로요. 學은 음을 담당해요(학→각). ‘깨우치다’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잠에서 깨듯 무지몽매한 상태를 벗어난다는 의미로요. 깨우칠 각. 覺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覺醒(각성), 覺悟(각오)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換은 扌(손 수)와 奐(빛날 환)의 합자예요. 교환한다는 의미예요. 扌로 뜻을 표현했어요. 교환할 때는 주로 손을 사용하기 때문이죠. 奐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교환은 서로에게 이익이 되어 좋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해주고 있어요. '빛나다'에는 좋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어요. 바꿀 환. 換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交換(교환), 換腐作新(환부작신, 썩은 것을 바꾸어 새것으로 만듦) 등을 들 수 있겠네요.
任은 人(사람 인)과 壬(클 임)의 합자예요. 일을 맡고 있다는 의미예요. 人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壬은 음을 담당해요. 맡을 임. 任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任務(임무), 赴任(부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妙는 女(여자 녀)와 少(적을 소)의 합자예요. 나이 어린 여자, 즉 소녀란 의미예요. '아름답다' '좋다'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소녀는 순진하고 수려하기에 아름답고 좋다란 의미로요. 예쁠 묘. 묘할 묘. 妙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妙齡(묘령), 奧妙(오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蟬은 虫(벌레 충)과 單(홑 단)의 합자예요. 매미란 뜻이에요. 虫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單은 음을 담당하면서(단→선)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여름 한 철 크고 우렁찬 소리로 우는 곤충이 매미란 의미로요. 單에는 '크다'란 의미가 내포돼 있어요. 蟬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翼蟬冠(익선관, 귀인이 쓰는 모자), 蟬殼(선각, 매미 허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趂의 본래 글자는 趁이에요. 趂은 속자예요. 趁은 좇아간다란 의미예요. 走(달릴 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좇을 진. 趂(趁)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趂來(진래, 따라붙음), 趂船(진선, 배를 탐)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斜는 斗(구기 두)와 余(나 여)의 합자예요. '흘리다'란 뜻이에요. 斗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구기(국자)로 뜰 때 흘렸다는 의미로요. 余는 음을 담당해요(여→사). '기울다'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흘리는 것은 똑바로 뜨지 못하고 기울게 뜬데서 비롯됐다는 의미로요. 흘릴 사. 기울 사. 斜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傾斜(경사), 橫斜(횡사, 가로 비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이 사진은 인터넷에서 우연히 찾았는데, 처음 접했을 때 약간 놀랐어요. 글씨가 많이 흐트러져서요. 지사의 면모를 지닌 선생에게서 나올 법한 글씨가 아니라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이 작품이 회갑 자작시라는 것을 알고 '그럴수도 있겠다'란 생각을 하게 됐어요. 당시 선생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병중이었기 때문이죠. 견결한 정신과 달리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힘든 육신으로 어렵게 붓을 움직였을 선생을 생각하니, 새삼 마음이 짠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