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한산성」보셨는지요? 병자년(1636) 청군의 침략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조선 조정의 대응을 그린 영화지요. 원작자 김훈의 맑고 굳세면서도 허무 냄새 짙은 문체처럼 영화 역시 그런 느낌을 주더군요.

 

 영화 초반에 보면 김상헌이 홀로 어부의 도움을 받아 언 강을 건너는 장면이 나와요(강을 건넌 뒤 어부를 죽이죠). 남한산성에 뒤늦게 합류한 것이죠. 조정 대신이 일거에 떠나지 못하고 뒤늦게 합류한 것을 보면 당시 인조의 피난 행렬이 무척 황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김상헌처럼 뒤늦게 남한산성에 합류하려 했던 대신들 중에 예조판서였던 조익(趙翼, 1579 - 1655)이 있어요. 하지만 조익은 김상헌처럼 남한산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강화도로 피신했어요. 청군의 경비가 너무 삼엄해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죠.

 

 사진은 조익의 사적비예요. '포저 조익 선생 사적비(浦渚 趙翼 先生 事蹟碑)'라고 읽어요. 예산군 신창면에 있는데, 추석 연휴에 우연히 방문했다가 찍었어요. 포저는 조익의 호예요.

 

 비문은 조순 전 서울시장이 썼는데, 사적비가 으레 그렇듯, 상찬 일색이더군요: "폐지의 위기에 직면한 대동법을 존속시키었"고 "청국의 굴기에 즈음하여서는 국방강화의 필요성을 예견하여 방비책을 주청하였"으며 "과거제도에 관하여도 강경제도(講經制度)의 폐단을 시정하고… 바꾸기를 건의하였"다. "불편부당의 정신을 견지하"여 "이회제 이퇴계 양현을 비방하는 일부의 논의를 적극 반박하였고" "이율곡 성우계 양현의 문묘배향에 대한 찬반양론으로 조정이 소연하였을 때… 양현의 배향 타당성을 적극 주청하다가 끝내 관직을 사임하였다." "의식주의 사치를 멀리하였고" "또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장유 최명길 이시백 선생 제공과는 소시부터 친한 사이였고 평소 김청음[김상헌] 선생을 경애하였지만 공론에 임하여는 사적인 친소에 관계 없이 공정한 견지를 떠나지 않았"다. "도학자 정치가로서는 아주 드물게 보는 섬세한 예술적 감각과 사물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이 있었다"

 

조익에게는 아킬레스건이 있어요. 바로 인조의 어가에 합류하지 못한 점이죠. 조익은 인조의 환도후 어가에 합류하지 못한 일로 인해 지탄을 받았어요. 이에 대해 사적비는 "병자호란등  내우외환의 혼란 속에서 선생의 관력도 여러번 좌절을 겼었"다라고만 적고 있어요. 아킬레스건에 해당하는 내용을 두루뭉실하게 적고 있는 것이죠. 조순 시장은 조익의 족손(族孫)이에요. 위와 같은 기술은 족손으로서 불가피한 기술이었을거란 생각도 들지만 사적비가 타인들에게 그 인물에 대한 감정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금은 아쉬운 기술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낯선 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는 氵(물 수)와 甫(남자미칭 보)의 합자예요. 물가에 인접한 땅이란 뜻이에요.  氵로 뜻을 표현했어요. 甫는 음을 담당하면서(보→포)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남자의 미칭(美稱)처럼 풍경이 수려한 곳이 해안에 인접한 땅이란 의미로요. 물가 포. 浦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浦口(포구), 浦項(포항)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氵(물 수)와 者(黍의 약자, 기장 서)의 합자예요. 사면이 물로 둘러싸인 작은 섬이란 뜻이에요.  氵로 뜻을 표현했어요. 者는 음을 담당하면서(서→저)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기장의 많은 낱알처럼 많은 물로 둘러싸인 섬이란 의미로요. 섬 저. '물가'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해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지요. 물가 저. 渚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渚岸(저안, 물가), 渚鷗(저구, 물가에 있는 갈매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羽(깃 우)와 異(다를 이)의 합자예요. 날개라는 뜻이에요. 羽로 뜻을 나타냈어요. 異는 음을 담당하면서(이→익)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한 몸에서 좌우 양쪽으로 다르게 펼쳐지는 것이 날개란 의미로요. 날개 익. 翼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左翼(좌익), 翼室(익실, 좌우쪽에 있는 방)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足(발 족)과 責(맡을 책)의 합자예요. 발자취란 뜻이에요. 足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責을 음을 담당해요(책→적). 蹟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史蹟(사적), 奇蹟(기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石(돌 석)과 卑(낮을 비)의 합자예요. 다음 세 가지 주 용도로 사용되던 키작은 돌을 가리키는 명칭이었어요: 제사에 쓰일 짐승을 묶어 놓음. 시간을 알기 위해 세워 놓음. 하관(下棺)시 보조 설치물. 돌기둥 비. 후에 기릴만한 인물이나 돌아간 이의 행적을 적는 돌이란 의미로 전용(專用) 됐어요. 전용 의미는 본뜻 세 번째 뜻(하관시 보조 설치물)에서 연역됐다고 볼 수 있어요. 비석 비. 碑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墓碑(묘비), 碑文(비문)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조익은 청군의 경비가 삼엄하기 전 인조의 어가에 합류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강화도로 피신시키려던 아버지를 도중에 잃어버리는(?) 바람에 시기를 놓쳤어요. 아버지를 찾아 강화도에 피신시킨 뒤 남한산성에 들어가려 했지만 이미 시기를 놓쳤던거죠. 근왕병(勤王兵)을 일으켜 청군을 격파하려 했지만 이도 실패했어요. 군사를 이끌던 장수가 전사했기 때문에 군대를 해산시킬수 밖에 없었거든요. 조익은 강화도로 피신하여 눈물의 나날을 보냈어요. 환도 뒤, 앞서 말한대로, 지탄을 받았지만 효행(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음)과 노력(근왕병을 일으킴)을 인정받아 지탄에서 벗어 낫지요. 여기에는 인조의 지지도 한 몫을 했던 것으로 보여요. 송시열이 지은 조익 비문에 보면 인조가 조익을 옹호하여 "그는 독서인(讀書人)일 뿐이지 않은가!"라고 했다는 대목이 나와요. 조익의 한계와 한계 내에서 애쓴 노력을 인정해줬던 것이지요.

 

여담 둘. 조익은 이따금 양명학자로 취급되기도 해요. 「대학곤득(大學困得)」,「용학곤득(庸學困得)」등을 통해 주자와 다른 견해를 제시한 점과 개혁적인 정책들을 많이 제시한 점 등을 그 근거로 들고 있죠. 하지만 이는 양명학을 혹호(酷好)하는 연구자들의 지나친 견해라는게 중론이에요. 조익이 개혁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었고 경학에 있어서도 주견을 갖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 양명학자로 취급한다는 것은 확실히 침소봉대의 견해인 듯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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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례없는 추석 황금 연휴가 얼마 안남았네요. 혹 추석 연휴에 해외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지요? 어쩌면 해외 여행을 계획하신 분 중에 사진의 장소를 가실 계획이 있으실지도 모르겠네요.

 

 사진은 중국 복건성에 있는 무이산(武夷山) 천유봉(天游峰) 표지석이에요. 천유봉시무이제일승지 위어육곡계북 위애용취 능운마소 구곡계산전세진수안저(天游峰是武夷第一勝地 位於六曲溪北 危崖聳翠 凌雲摩霄 九曲溪山全勢盡收眼底)라고 읽어요. 이렇게 풀이해요: "천유봉은 무이산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이다. 무이구곡(武夷九曲)중 육곡(六曲)의 시내 북쪽에 위치한다. 비취 빛을 띈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 위에 서면 구름을 뚫고 하늘을 만질듯 하다. 무이구곡의 전 시내와 산의 형세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천유봉이 있는 무이산, 중에서도 무이구곡은 옛 선비들이면 한 번 쯤 가보고 싶어했던 장소예요. 그들이 흠모했던 성리학자 주희(朱熹, 1130-1200)가 이곳에 무이정사를 짓고 학문을 탐구했거든요. 그래서 그럴까요? 무이산은 이런 평가까지 받고 있어요: "동주는 공자를 낳았고, 남송은 주희를 낳았다. 중국의 고문화는 태산과 무이산에서 나왔다(東周出孔子 南宋有朱熹 中國古文化 泰山與武夷)."

 

 무이구곡은 주희가 이름붙인 경승지예요. 일곡은 승진동(升眞洞), 이곡은 옥녀봉(玉女峰) , 삼곡은 선조대(仙釣臺), 사곡은 금계동(金鷄洞), 오곡은 무이정사(武夷精舍), 육곡은 선장봉(仙掌峰), 칠곡은 석당사(石唐寺), 팔곡은 고루암(鼓樓巖), 구곡은 신촌시(新村市)예요. 주희는 무이산 계곡 중 9.5Km에 달하는 구간에 이 구곡을 설정하고 이곳을 노래한 '무이구곡가'를 지었어요. 이 무이구곡가는 단순 서경시로 보기도 하지만, 도에 들어서는 단계를 풍경을 빌어 표현한 것으로 보기도 하지요.

 

一曲溪邊上釣船   일곡계변상조선   일곡 시냇가 낚싯배에 오르니

幔亭峰影蘸晴川   만정봉영잠청천   만정봉 그림자 맑은 내에 비치네.

虹橋一斷無消息   홍교일단무소식   홍교 한 번 끊긴 뒤 무소식

萬壑千巖鎖翠煙   만학천암쇄취연   만학천봉 안개속에 잠겼네.    <일곡(一曲)>

 

九曲將窮眼豁然   구곡장궁안활연   구곡 경치 끝날 쯤 눈 훤히 열리니

桑麻雨露見平川   상마우로견평천   평천의 우로젖은 상마가 보여라.

漁郞更覓桃源路   어랑갱멱도원로   어부여, 무엇하러 도원경 찾으오

除是人間別有天   제시인간별유천   이곳이 바로 별천지인데.       <구곡(九曲)>

 

일곡과 구곡의 내용을 읽어 봤는데 확실히 입도차제(入道次第)로 해석할 여지가 많아 보여요. 특히 일곡 시의 3, 4구는 유학의 도가 끊긴 상황을, 구곡 시는 유도 체득 이후의 경지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을 듯 해요. 어떤 해석이 더 적절할까요? 주희는 시 짓기를 매우 꺼려했다고 해요. 성정을 도야하는데 별반 도움이 안된다고 여겨서요. 그런 그가 이런 중의적 해석이 가능한 시를 지은 것을 보면 비록 시 짓기를 꺼렸지만 시재는 풍부했던 듯 해요.

 

무이구곡가의 영향으로 과거엔 'ㅇㅇ구곡'이란 명칭과 'ㅇㅇ구곡가'란 아류 작품이 많이 지어졌어요. 대표적인 것이 송시열이 명명한 '화양구곡(華陽九曲)'과 이이가 지은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지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무이산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 자연 유산과 문화 유산이 함께 지정된 곳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한창 성수기인 5월에는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1주일에 7~8천을 헤아린다고 해요. 대나무를 베어 만든 뗏목을 타고 무이구곡을 관람하는 관광객의 행렬이 장관을 이룬다는군요. 그런데 관광 코스는 구곡에서 일곡으로 진행된다고 해요. 이게 순류라는군요. 일곡에서 구곡으로 진행하는 것은 역류라고 해요. 주희는 역류하며 무이산의 경치를 감상했던 것이지요. 시대의 조류를 거스른 학문을 했던 - 성리학은 주희 생전에 불온한 학문으로 지목됐어요 - 그답게 경치 감상도 역류를 택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는 㫃(깃발 언)과 汓(떠갈 수)의 합자예요. 깃발이 펄럭인다란 뜻이에요. 㫃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汓는 음을 담당하면서(수→유)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물체가 물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떠가듯 깃발이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린다는 의미로요. '놀다'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깃발이 펄럭이듯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여기저기 나돌아 다닌다란 뜻으로요. 놀 유. 游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游覽(유람), 游戱(유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위태롭다는 의미예요. 불구덩이에 빠진 사람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보기도 하고, 언덕 위에 위태롭게 서있는 사람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보기도 해요. 위태로울 위. 危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危險(위험), 危機(위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耳(귀 이)와 從(좇을 종)의 합자예요. 귀머거리란 뜻이에요. 耳로 뜻을 표현했어요. 從은 음을 담당하면서(종→용)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소리를 잘 못듣기 때문에 타인의 얼굴과 몸짓을 따라 상대의 의사를 파악하는 이가 귀머거리란 의미로요. '솟다'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귀머거리는 잘 못듣기 때문에 늘 귀를 쫑긋 세운다는 의미로요. 솟을 용. 聳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聳起(용기, 우뚝 일어남), 聳耳(용이, 귀를 쫑긋거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羽(깃 우)와 卒(하인 졸)의 합자예요. 암녹청색의 새[물총새]란 뜻이에요. 羽로 뜻을 표현했어요. 卒은 음을 담당하면서(졸→취)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하인(노비)들에겐 그들의 신분을 구분짓기 위해 특별한 색의 옷을 입혔는데 이처럼 물총새의 깃털 빛깔도 다른 새의 깃털 빛깔에 비해 특별하다란 의미로요. 물총새 취. 비취색 취. 翠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翡翠(비취), 翠陰(취음, 녹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冫(얼음 빙)과 夌(언덕 릉)의 합자예요. 얼음의 돌출 부분이란 뜻이에요. 冫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夌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얼음이 언덕처럼 돌출됐다란 의미로요. 얼음 릉. 범하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돌출된 얼음처럼 상대를 넘어선다는 의미로요. 범할 릉. 凌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凌駕(능가), 凌蔑(능멸)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手(손 수)와 麻(삼 마)의 합자예요. 양 손으로 비빈다는 뜻이에요. 手로 뜻을 표현했어요. 麻는 음을 담당해요. 비빌 마. 摩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摩擦(마찰) 撫摩(무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攵(칠 복)과 糾(얽을 규) 약자의 합자예요. 죄수를 쫓아가 붙잡는다는 뜻이에요. '거두다'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거둘 수. 收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收穫(수확), 收入(수입)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广(집 엄)과 氐(근본 저)의 합자예요. 한 곳에 정착하다란 의미예요. 广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氐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氐은 본래 땅 밑으로 곧게 뻗은 뿌리를 그린 거예요. 그처럼 한 곳에 뿌리를 박고 머무른다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해주고 있어요. 그칠 저. '밑'이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밑 저. 底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底邊(저변), 底層(저층)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무이산의 무이는 신선 이름이에요. 무이구곡가 일곡에 등장하는 홍교[무지개 다리]는 그가 다른 신선들을 초대하기 위해 놓은 다리예요. 이처럼 무이산은 본래 도교와 관련깊은 곳인데 주희가 거처한 이후론 유교의 영향권에 들게 됐어요. 주희의 영향력이 어떠했던가를 알수있지요.

 

여담 둘. 인터넷을 찾아보니 무이정사 앞에는 주희의 동상이 있더군요. 마치 도산서원에 퇴계의 동상을 세워놓은 것과 다를바 없는 격인데, 왠지 품격이 떨어져 보이더군요. 무이정사나 도산서원에선 그저 텅 빈 공간을 거닐며 주희와 이황의 정신 세계를 그려보는 것이 제 맛일듯 싶어요. 동상이나 시설물은 되려 이곳 관광의 맛을 떨어트리지 않을까 싶어요. 주희의 동상은 철거하는게 낫지 않을까 싶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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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이병욱 2017-10-10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찔레꽃님의 글에는 늘 정성과 박식함이 담겨있습니다!

찔레꽃 2017-10-13 11:32   좋아요 0 | URL
이렇게 상찬의 말씀을.... 감사합니다!

무심이병욱 2017-10-18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원래 저는 한글전용론을 지지하는 입장이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는 한자문화권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운명임을 깨달은 겁니다. 한자를 배척하는 순간부터 우리 문화의 손실을 감수해야 하거든요. 그렇다면 국한문혼용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찔레꽃 2017-10-19 08:50   좋아요 0 | URL
한글전용을 하되 한자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최선인 것 같은데 이는 이상인 것 같습니다. 한글전용이 대세를 이루며 한자 문맹을 만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 않나 싶어요. 국한문혼용이 중용적인 대안인데, 현실에서 지지를 받기란 너무 힘든 대안이지 않은가 싶습니다. 그저 안타깝게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어문 현실인 것 같아요.

김병문 2017-11-09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개인적으로 고전 한문과 일본어,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지만 디지털 시대에 국한문 혼용은 되려 시대에 역행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일본어 중국어로 스마트폰, 컴퓨터 자판 치는게 얼마나 비효율적이던지... 저는 차라리 교육은 수학 과학을 더 강화하고 한문은 미국에서 라틴어와 고대영어를 AP라하여 인문계열학과 진학할 학생 혹은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집중 이수시키듯이 미국의 방식으로 나가는게 낫다고 봅니다. 엔지니어,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비롯한 소위 STEM을 전공 할 학생들은 라틴어 혹은 한문을 갖고 씨름하기보다는 수학, 과학, 공학을 더 배우는게 낫다고 생각하구요. 다만 인문계열 진학할 학생들은 지금보다 한문 교육을 강화해야한다고 보고 있어서 인문계열 전공할 고교생들에 한해 한문을 필수 AP로 지정하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지금 정부 교육정책도 이쪽으로 잡고 있지만 한문은 찬밥신세다보니...

찔레꽃 2018-02-08 12:33   좋아요 0 | URL
폭넓은 생각을 갖고 계시군요. 한자와 한문은, 아시겠지만, 혼용되어 쓰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차이가 있지요. 지금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인문이나 자연 계열과 상관없이, 한자 교육이 아닌가 싶어요. 일상어나 학문 용어에 사용되는 어휘의 상당수가 한자어이기 때문이지요. 한글 전용이냐, 국한문혼용이냐는 그 다움 문제인듯 싶어요. 이치상으로는 국한문 혼용이 맞지 않나 싶어요. 배운 한자를 일상에서 경험해야 잊지 않고 활용이 되는데 그럴라면 국한문 혼용이 바람직한 표기 방법이죠. 하지만 이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컴퓨터 입력이 대세인 상황에서 국한문 병기는 번거로운 일이기 때문이죠. 한글전용 표기는 어쩔수없는(?) 대세인 듯 싶어요. 한문 교육은 님께서 언급하신대로 추진하는게 좋은 방향인 듯 해요. 인문학에서 고전에 대한 소양을 빼면 남는게 없으니까요. 우리의 경우 그 고전은 한문 고전이 대다수를 차지하니 인문계열 학생들이 한문 소양을 갖춰야 할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듯 해요.
 

 

<사진 출처: http://tip.daum.net/question/82923916>

 

 

"글은 기운을 중심으로 삼는다. 기운의 맑고 탁함엔 바탕이 있나니, 이는 인위적 노력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文以氣爲主 氣之淸濁有體 不可力强而致)."

 

중국 고전 문학 비평의 효시로 알려진 조비(曺丕, 187-226)의 『전론(典論)』「논문(論文)」 일부예요. 흔히 문기론(文氣論)으로 알려진 내용이죠. 문기론은 쉽게 말하면 사람의 타고난 기질이 글에 드러난다는 이론이에요. 이는 순수한 문학론이라기 보다는 문학과 의학이 결합된 이론이라고 볼 수 있어요. 기질은, 신체 상태에 관한 것으로, 의학 분야에 속하기 때문이죠.

 

기질은 다양하죠. 조비는 청탁으로 대분(大分)했지만, 조선의 이제마는 사상(四象)으로 대분했죠. 이제마의 분류는 기질 보다는 체질로 불리는데(사상 체질), 체질과 기질은 같은 의미예요. 둘 다 몸 상태와 관련있으니까요. 문학 작품을 기질(체질)과 관련지어 살펴보는 것은 작품을 풍부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 싶어요.

 

위 사진은 소동파(1037-1101)의 '동란이화(東欄梨花)'란 시예요. 봄 날 난간에서 화사한 배꽃을 보고 쓴 시지요. 이 시를 이제마의 사상체질과 관련지으면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사상체질은 태양, 태음, 소양, 소음이에요. 태양인은 강하고 적극적이며 타인과의 교류에 능하고 다혈질이죠. 태음인은 매사에 신중하고 위엄이 있으며 인내심이 강하고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죠. 소양인은 열정적이고 다정하며 이해타산에 관심이 없고 솔직담백하죠. 소음인은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으며 생각이 치밀하고 침착하죠.

 

 

梨花澹白柳深靑 이화담백유심청     배꽃은 희고 버들은 푸르니

柳絮飛時花滿城 유서비시화만성     버들개지 휘날릴 때 배꽃은 만발하네.

惆悵東欄一株雪 추창동란일주설     슬프구나! 동란에 핀 한 그루 흰 배꽃이여!

人生看得幾淸明 인생간득기청명     인생에서 몇 번이나 이 깨끗한 꽃을 볼 것인가?

                                                    <번역 인용: http://m.blog.daum.net/thddudgh7/16543453>

 

 

시인은 지금 화사한(깨끗한) 배꽃을 보고 있어요. 그런데 이 화사한 배꽃을 보면서 즐겁고 행복해 하기보다는 외려 슬픔에 차있어요. 인생에서 화사한 배꽃을 볼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을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정말 인생에서 화사한 배꽃을 볼 기회가 많지 않을까요? 그렇진 않을 거예요.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볼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여기 화사한 배꽃을 볼 기회가 많지 않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건 아마도 인생에서 화사한 배꽃처럼 삶의 환희를 맛보는 때가 많지 않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걸 거예요. 그러기에 화사한 배꽃을 보면서 슬픔을 느낀 것이지요.

 

짐작컨대 시인은 소음인에 가까운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소음인은 걱정과 생각이 많죠. 걱정과 생각이 많다보니 화사한 배꽃을 보면서도 거기에 몰입하지 못한 채 굳이 삶을 연계시키고 나아가 긍정적인 면 보다는 부정적인 면을 더 부각시키고 있어요. 밝게 쓸 수 있는 시를 어둡게 썼다고나 할까요? 만약 태양인이 화사한 배꽃을 봤다면 이와 정반대의 시를 썼을 거예요. 배꽃 자체에 몰입하거나, 인생을 연계시킨다고 해도 긍정적인 면을 더 부각시켰을 거예요.

 

기질과 문학 작품을 연계시키는 건 문학작품을 풍부하게 이해하기 위한 것이지, 결코 작품의 우열을 평가하기 위한 것은 아녜요. 위 작품도 소음인의 기질이 농후한 작품이란 것 뿐이지 결코 작품 수준이 낮다는 것은 아니지요. 문학 작품과 지은이의 기질을 묶어서 논하는 건 오래된 비평법이지만 현재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문학과 의학이 결합됐다는 점에서 통섭을 지향하는 시대와 잘 어울리지 않나 싶어요.

 

낯선 한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幺幺(작을 요)(지킬 수)의 합자예요. 은미하고 위태로운 곳을 지킨다는 의미예요. '몇'이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은미하고 위태로운 곳은 많지 않다란 의미로요. 몇 기. 幾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幾何(기하), 幾日(기일, 며칠 몇 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忄(마음 심)과 周(두루 주)의 합자예요. 만족스럽지 못한 마음이란 의미예요. 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周는 음을 담당하면서(주 →추)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두루 만족하려면 일일이 살피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신의 뜻과 불합(不合)하여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의미로요. 실심할 추. 惆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惆然(추연, 실망하여 슬퍼하는 모양), 惆惋(추완, 슬프게 한탄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忄(마음 심)과 長(긴 장)의 합자예요. 원망하며 슬퍼한다는 의미예요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長은 음을 담당하면서(장→창)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오래가는 감정이 원망하고 슬퍼하는 감정이란 의미로요. 한탄할 창. 悵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悔(창회, 원망하고 후회함), 望(창망, 슬퍼하면서 바라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氵(물 수)와 詹(넉넉할 담)의 합자예요. 물이 요동친다는 의미예요. 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수량이 넉넉할 때 물이 요동친다는 의미로요. '맑다'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요동치던 물이 고요해졌다는 의미로요. 맑을 담. 澹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澹(담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모양), 泊(담박, 욕심이 없고 마음이 꺠끗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糸(실 사)와 如(같을 여)의 합자예요. 헌 솜이란 의미예요. 이 솜은 목화의 솜이 아니고 못쓰게 된 실로 뭉친 솜이란 의미예요. 糸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如는 음을 담당하면서(여→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못쓰게 된 실로 뭉친 솜은 진짜 솜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하다는 의미로요. 솜 서. 絮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纊(서광, 솜), 繒(서증, 솜과 명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위 사진은 시와 그림이 전혀 어울리지 않아요. 시의 소재는 이화(梨花)인데 그림은 난초와 나비를 그렸기 때문이죠. 사진은 인터넷에서 우연히 찾았어요. 여담 둘. 탈초는 '처음새'란 블로거의 도움을 받았어요. 그림 출처에 가면 이 블로거의 탈초와 시 번역처 안내가 나와요. '처음새'란 블로거는 한문 내공이 상당한 분 같아요. 지식IN 에서도 활발히 활동하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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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http://blog.naver.com/jbs4106/220027112950>

 

 

"선생님, 올 해가 칠순이신데 한 말씀 해주시죠?"

 

"뭐 대단한 삶이었다고 한 마디 하라는 것이냐? 부끄럽구나. 그리고 너희들이 매일 나의 삶을 보고 있는데 달리 또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저희가 선생님을 뵙기 이전의 삶이나 내면의 풍경은 알기가 어렵사오니 한 말씀 해주시면 후학들에게 큰 보탬이 될 듯 싶습니다."

 

"굳이 그렇게 청한다면 내 삶을 나이 별로 간결히 정리해 보마. 그러나,다시 말하지만 나의 삶은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신비화되기를 거부한다. 나는 조실 부모하고 일찍부터 가계를 책임져야 했지. 공부를 할 기회가 없었단다. 그러나 나는 열 다섯에 공부를 내 삶의 중심에 두었단다. 공부만이 나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그러나 나는 일정한 스승을 두기 어려웠다. 나의 신분과 경제 상황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하여 나는 나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있으면 누구에게라도 묻고 배웠지. 공부에 뜻을 두면 스승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단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로 나는 삼십이 되었을 때 내 삶의 지향점을 분명히 세우게 되었지. 사십이 되어서는 더 이상 다른 가치를 기웃거리지 않아도 되는 독립된 가치를 세울 수 있었고, 오십이 되어서는 내게 주어진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를 확신하게 되었단다. 육십이 되어서는 세상 그 어떤 편견과 가치를 대해도 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고, 칠십이 된 지금 나는 내 마음의 욕망이 지향하는 그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단다."

 

"과연 선생님다우십니다. 저희들은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삶이셨습니다."

 

"아아, 너희는 내가 그렇게 염려하는 나의 신비화를 끝내 버리지 못하고 있구나. 나를 도운 사람도 너희지만 나를 망칠 사람도 너희일까 염려되는구나. 다시 말하지만 나의 삶은 평범했다. 다만 다른 이들과 달랐던 점은 공부를 삶의 중심을 두었고, 먹고 사는 것을 삶의 중심에 두지 않았다는 것 뿐이다."

 

『논어』「위정」편에 보면 공자가 자신의 삶을 38자로 언급하는 내용이 나와요. "오십유오이지어학, 삼십이립, 사십이부혹, 오십이지천명, 육십이이순, 칠십이종심소욕부유구(吾十有五而志於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가 그것이죠. 그런데 공자의 이 38자 언급은,『논어』의 다른 구절들과 마찬가지로, 전후 맥락을 알 수가 없어요. 공자가 막연히 이 얘기를 한 것은 아닐텐데 말이죠. 하여 공자가 자신의 70회 생일 날 이 말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 말 그대로, 소설을 써봤어요. 공자의 38자 언급이 생의 말년에 언급된 것이 분명하니 그의 생일날 한 말이 아닐까 싶었던 것이죠(당시에 생일 축하라는 것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생의 말년이 되면 지나온 삶을 자연스럽게 되돌아보게 되죠. 그리고 그 삶에 대한 평가도 내려보게 되고요. 공자의 38자 언급은 그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이자 평가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사진은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생의 회갑 자작시예요. 선생이 살던 당시에 회갑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을테니 이 시에는 선생이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와 평가가 깃들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어요. 더구나 선생은 회갑 당시 병중[중풍]이었으니 이런 짐작은 더욱 타당성을 갖지요. 필시 삶이 길지 않으리라고 느끼셨을테니까요(선생은 회갑 후 4년 있다 돌아가셨어요).

 

 

怱怱六十一年光   총총육십일년광   순식간에 지나간 육십일년 세월

云是人間小刧桑   운시인간소겁상   이것이 인간의 삶이라 일러왔지.

歲月縱令白髮短   세월종령백발단   세월은 허연 머리 숱조차 없게 만들었지만

風霜無乃丹心長   풍상무내단심장   하많은 고초들 내 단심을 어쩌지는 못했네.

聽貧已覺換凡骨   청빈이각환범골   가난을 수용하니 범인 경지 벗어낫고

任病誰知得妙方   임병수지득묘방   병에 초연하니 묘방이 필요없네.

流水餘生君莫問   유수여생군막문   유수같은 남은 인생 그대는 후일을 묻지마소

蟬聲萬樹斜陽   선성만수진사양   나무 가득한 매미 소리 석양따라 저물듯 할 터이니.

 

 

짐작대로 선생은 시에서 자신의 지나온 삶을 회고하며 평가를 내리고 있어요. 공자처럼 전 생애를 차례대로 언급하진 않지만, 그와 유사한 면을 볼 수 있어요. 공자가 삶의 중심을 공부에 두었듯, 선생은 삶의 중심을 '단심'에 두었어요. 여기 단심은 두말 할 나위없이 조국의 독립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자 거기에 희생하려는 마음이며 일제와의 모든 타협을 거부하는 지조라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단심으로 일관한 선생은, 공자가 공부를 삶의 중심에 놓고 생의 말년에 '종심소욕불유구'의 경지를 달성한 것처럼, 노래(老來)의 질고(疾痼)와 가난을 넘어서 삶을 자연의 일부로 여기는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어요. 공자가 '종심소욕불유구의 경지에서 자신의 삶을 충분히 의미있었던 것으로 여겼을 것처럼, 선생 역시 짧은 인생에서 한눈 팔지 않고 시대의 요구와 부름에 응답했던 자신의 삶을 충분히 의미있었던 것으로 여겼을 거예요.

 

공자나 선생 모두, 세속적으로 보면, 그리 행복한 인생이었다고 보기는 어렵죠. 사실 '뜻'만 세우지 않았다면 두 분 모두 세속적으로 행복하게 살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러나 일부러 가시밭 길을 자처해 걸었죠. 그게 한 번 뿐인 인생에서 더 의미있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예요. 그래서 그럴까요? 선생의 시를 읽으면 절로 이런 질문을 하게 되요: "나는 과연 내 삶의 종착역에서 내 삶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낯선 한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은 본래 悤으로 표기해요. 怱은 속자예요. 悤은 心(마음 심)과 囱(굴뚝 총)의 합자예요. 사태가 급박하여 정신없고 바쁘다란 의미예요. 心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囱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담해요. 굴뚝을 빠르게 빠져 나가는 연기처럼 정신없고 바쁘다란 의미로요. 바쁠 총. 怱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怱(총총, 대단히 급하여 허둥지둥하는 모양), 急(총급, 썩 급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힘 력)(갈 거)의 합자예요. 떠나는[] 상대를 겁박하여[] 못가게 한다란 의미예요. 겁박할 겁. 불교에서 사용하는 시간 단위의 의미로도 사용해요. 겁 겁. 위 시에서는 이 의미로 사용됐죠. 이 경우 겁은 산스크리어 kalpa를 음역한 거예요. 매우 긴 시간이란 의미예요. 매우 짧은 시간은 찰나(札剌)’라고 하죠. 찰나는 산스크리트어 Ksana의 음역이에요.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永劫(영겁), 劫奪(겁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뽕나무의 모습을 그린 거예요. 아래 부분은 줄기와 뿌리, 위 부분은 가지와 잎을 그린 것이지요. 뽕나무 상.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桑田碧海(상전벽해), 桑葉(상엽)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실 사)(좇을 종)의 합자예요. 느슨하다란 의미예요. 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실은 당기면 팽팽해지지만 놓아두면 느슨해지기 때문이죠.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좇는다는 것은 한결같이 따른다는 의미인데 실은 놓아두면 한결같이 느슨해진다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해 주고 있어요. 늘어질 종. ‘가령, 비록등의 의미로도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가령 느슨하게 한다면~’ ‘비록 느슨하게 할지라도~’의 의미로요.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放縱(방종), 縱令(종령: 비록, 가령, 설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머리털드리워질 표)(, 뽑을 발)의 합자예요. 머리털이란 의미예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물체를 뽑을 때 위로 잡아 올리듯 그같이 머리털이 위로 솟구쳐 자란다는 의미로요. 털 발.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毛髮(모발), 斷髮(단발) 등을 들 수 있겠네요.

 

(귀 이)(덕 덕)의 약자와 (아홉째천간 임)의 합자예요. 좋은 가르침[]을 듣고[] 수용한다는 의미예요. 은 음을 담당해요(). 들을 청.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聽聞(청문), 傍聽(방청)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볼 견)(배울 학) 약자의 합자예요. 잠에서 깨다란 뜻이에요. 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잠이 깨어 눈을 뜨고 사물을 인지한다란 의미로요. 은 음을 담당해요(). ‘깨우치다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잠에서 깨듯 무지몽매한 상태를 벗어난다는 의미로요. 깨우칠 각.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覺醒(각성), 覺悟(각오)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손 수)(빛날 환)의 합자예요. 교환한다는 의미예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교환할 때는 주로 손을 사용하기 때문이죠.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교환은 서로에게 이익이 되어 좋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해주고 있어요. '빛나다'에는 좋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어요. 바꿀 환.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交換(교환), 換腐作新(환부작신, 썩은 것을 바꾸어 새것으로 만듦)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人(사람 인)과 壬(클 임)의 합자예요. 일을 맡고 있다는 의미예요. 人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壬은 음을 담당해요. 맡을 임. 任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任務(임무), 赴任(부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女(여자 녀)와 少(적을 소)의 합자예요. 나이 어린 여자, 즉 소녀란 의미예요. '아름답다' '좋다'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소녀는 순진하고 수려하기에 아름답고 좋다란 의미로요. 예쁠 묘. 묘할 묘. 妙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妙齡(묘령), 奧妙(오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虫(벌레 충)과 單(홑 단)의 합자예요. 매미란 뜻이에요. 虫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單은 음을 담당하면서(단→선)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여름 한 철 크고 우렁찬 소리로 우는 곤충이 매미란 의미로요. 單에는 '크다'란 의미가 내포돼 있어요. 蟬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翼蟬冠(익선관, 귀인이 쓰는 모자), 殼(선각, 매미 허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의 본래 글자는 趁이에요. 趂은 속자예요. 趁은 좇아간다란 의미예요. 走(달릴 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좇을 진. 趂(趁)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來(진래, 따라붙음), 趂船(진선, 배를 탐)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斗(구기 두)와 余(나 여)의 합자예요. '흘리다'란 뜻이에요. 斗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구기(국자)로 뜰 때 흘렸다는 의미로요. 余는 음을 담당해요(여→사). '기울다'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흘리는 것은 똑바로 뜨지 못하고 기울게 뜬데서 비롯됐다는 의미로요. 흘릴 사. 기울 사. 斜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傾斜(경사), 橫斜(횡사, 가로 비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이 사진은 인터넷에서 우연히 찾았는데, 처음 접했을 때 약간 놀랐어요. 글씨가 많이 흐트러져서요. 지사의 면모를 지닌 선생에게서 나올 법한 글씨가 아니라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이 작품이 회갑 자작시라는 것을 알고 '그럴수도 있겠다'란 생각을 하게 됐어요. 당시 선생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병중이었기 때문이죠. 견결한 정신과 달리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힘든 육신으로 어렵게 붓을 움직였을 선생을 생각하니, 새삼 마음이 짠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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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7-09-18 15: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렇네요. 저도 한용운 님위 글씨라고 해서 다시 한번 쳐다봤습니다. 대교약졸 쯤으로 생각해야 하려나 했는데 님의 해설을 보니 그럴듯 해서 고개를 주억이고 갑니다.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 살랑 부는데 잘 지내시나요?^^

찔레꽃 2017-09-18 16:57   좋아요 2 | URL
양철나무꾼님 한결같은 은은한 격려 덕분으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 ^ 환절기라 몸살기가... 양철나무꾼 님도 건강 유의하셔요~
 

"조선은 제도 개선에 관한 일본의 충고를 받아들인다. 일본은 조선의 독립과 영토보전을 보증한다. 영토보전에 위험이 있는 경우 일본은 필요한 조치를 취하며,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일본은 전략상 필요한 지점을 수시로 사용할 수 있다. 조선은 이 조약과 상반되는 협정을 제3국과 체결하지 않는다."

 

"첫째, 일본 정부는 일본 외무성을 통하여 한국의 외교관계 및 그 사무 일체를 감독 지휘하고, 외국 재류 한국인과 그 이익도 일본의 외교 대표자나 영사로 하여금 보호하게 한다. 둘째, 한국과 다른 나라 사이에 현존하는 조약을 실행할 임무는 일본 정부가 맡고,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는 국제적 성질을 띤 어떠한 조약이나 약속을 맺지 못하도록 한다. 셋째, 일본 정부의 대표자로 서울에 1명의 통감을 두어 자유로이 황제를 알현할 권리를 갖게 하고, 각 개항장과 필요한 지방에 통감 지휘하의 이사관을 두게 한다. 넷째, 일본과 한국 사이에 현존하는 조약 및 약속은 이 협약의 조항들에 저촉되지 않는 한 계속 효력을 가진다. 다섯째, 일본 정부는 한국 황실의 안녕과 존엄을 유지할 것을 보증한다."

 

외교관은 자국의 존엄과 이익을 지키는 첨병이죠. 최근 언론에 불거진 해외 공관원의 성추태는 외교관으로서는 치명적인 행위를 저지른 거라고 볼 수 있어요. 대한민국의 존엄은 물론 차후에 있을수 있는 이익을 상실케 한 행동이었으니까요. 존엄을 잃은 나라에게 어느 나라가 이익을 안겨주겠어요. 존엄을 지켜도 이익을 안겨줄지 말지인데. 해외 공관원들에게 높은 월급과 여러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그만큼 힘든 임무를 잘 수행하라는 뜻일텐데 임무 수행은 뒷전이고 헤택만 받아 챙기는 공관원들은 깊이 반성해야 할 거예요.

 

각설. 자국의 존엄과 이익을 지켜야 하는 외교관은 야누스가 되어야 할 듯 싶어요. 세련된 말과 행동 속에 철저히 계산된 이익을 가지고 상대를 대해야 하는게 외교니까요. 외교관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자국에게는 천사가 되고 타국에게는 악마가 되야 제 몫을 해낸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양국에서 둘 다 칭송받는 외교관이 있다면 그(녀)는, 냉정하게 말하면, 자신의 임무를 제대로 해낸 외교관이라고 보기 어려울 거예요.

 

위 내용은 한일의정서(1904)와 을사늑약(1905) 주내용이에요. 대한제국을 일본의 병참기지화하고 외교권을 박탈하여 사실상 일본의 손아귀에 넘어가게 한 조약들이죠. 이 조약들을 성사시키는데 실실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주한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林權助, 1860-1939)예요. 일본에겐 천사같은 외교관이고 우리에겐 악마같은 외교관이죠. 인정하긴 싫지만, 외교관의 본질에서는 훌륭한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이들 조약이 우리에게 일본이란 국가에 대해 '존엄'이란 인식을 안겨주진 못한 것이기에 이 점에서는 그가 최선을 다했다고 하기 어렵지만 자국에서는 우리와 상반된 인식을 할 수도 있으니 이 점 - 국가의 존엄 수호 - 에서도 역시 자국 외교관으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이 악마같은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이 우리 나라 남산에 있어요. 당연히 우리가 세운 것이 아니고 일본이 세운 것이죠. 물론 해방 이전에요. 현재 동상은 남아있지 않고 동상 명석(銘石)만 남아 있어요. 위 사진이 바로 이 명석이에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거꾸로 되어 있어요. 명석 옆에 해설판이 있는데 욕스러움을 기리기 위해 거꾸로 세워놓았다고 써 있더군요. 치욕의 역사를 기억함과 동시에 하야시라는 인물 나아가 일본 제국주의에게 치욕을 안겨주기 위해 일부러 거꾸로 세워놓았다는 의미겠지요. 한자는 '남작임권조상(男爵林權助君像)'이라고 읽어요.

 

하야시는 자기 배반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에요. 그랬기에 조선을 병합하는데 더 열심(?)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일제강점기 일제의 앞잡이들이 일본인들보다 때론 더 조선인에게 가혹하게 한 것처럼 말이죠. 자기를 배반한 자는 '염치'를 상실했기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인간이 되죠. 하야시 집안은 본래 구막부 출신으로 메이지 유신 이후 중앙정부에 끝까지 저항했던 집안이에요. 조부와 부친이 전투중 사망했죠. 하야시 역시 어린 나이에 전투에 참여했구요. 그러나 후일 그는 집안의 신조와는 다른 길을 걷게 되요. 물론 여기에는 곤궁해진 살림과 지인의 도움이 있었어요. 한 번 변심한(?) 이후 그는 철저하게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요. 중앙정부의 충견이 된 것이죠. 그가 택한 길은 외교관의 길이었어요. 그는 조선 공사를 비롯해 영국 이태리  청나라의 공사를 역임했고 말년에는 천황의 자문기관인 추밀원의 일원이 되었죠. 남작은 조선 병합을 성공시킨 공으로 받은 작위였구요. 그의 변심(?)이후의 삶은 충견으로 일로매진한 삶이었어요. 이런 그였기에 조선 병합에 더더욱 매진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봐요. 자기를 배반하지 않은 사람은 타인의 삶에 존중감을 갖죠. 자기를 배반한 사람은 그와 반대구요. 자기를 배반한 하야시는 일본(인)을 위해서라면 조선(인)의 병합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조선(인)에 대한 존중감이 있을리 없으니까요. 물론 당시 일본의 다른 외교관이 왔어도 조선 병합은 추진되었겠지만 그래도 자기를 배반한 하야시와는 조금은 다른 마음으로 진행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하야시는 1939년에 죽었지만 해방 이후에도 우리 역사에 악영향을 끼쳤어요. 고종 당시 정치범으로 사형 판결을 받았던 이승만을 그의 주청으로 고종이 특별 사면했거든요. 만일 그의 주청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은 이승만이 아니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이승만 정부의 온갖 추잡한 정치 행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이승만의 공을 얘기하는 사람도 많지만 과가 공보다 훨씬 많죠. 4.19 혁명으로 하야한 것이 그 명백한 증좌이죠. 이런 이승만을 구해낸 게 하야시였으니 하야시는 정말 우리에겐 악마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어요.

 

한자를 두어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은 본래 참새 모양의 술잔을 그린 거예요. 이 술잔은 제사와 외교시에 사용하던 것이었어요. 후에 벼슬이란 뜻이 추가되었죠. 음이 동일해서 차용한 거예요. 혹은 제사와 외교에서 이 술잔을 사용한 자들이 주로 벼슬아치였기에 벼슬이란 뜻으로도 사용하게 된 것으로 보기도 해요. 벼슬 작. 爵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爵位(작위), 公爵(공작)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公侯伯子男(공후백자남)은 본래 주나라 때 제후에게 내린 벼슬 이름이에요. 公이 가장 높고 男이 가장 낮은 직위이죠.

 

은 본래 나무의 한 종류인 黃華木(황화목)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후에 권세라는 의미로 전용되었어요. 음이 동일해서 차용한 거예요. 木이 뜻을 담당하고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권세 권. 權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權勢(권세), 權力(권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力(힘 력)과 且(祖의 약자, 조상 조)의 합자예요. 온 힘을 다하여 돕는다는 의미예요. 力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且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어려움을 당했을 때는 조상님에게 제사를 지내며 도움을 구한다란 의미로요. 도울 조. 助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扶助(부조), 助力(조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人(사람 인)과 象(코끼리 상)의 합자예요. 사람들이 코끼리에 관한 말을 듣고 상상한 코끼리의 모습은 실제 모습과 비슷하다는 의미예요. 이런 의미를 줄여서 '형상'이라고 사용하죠. 형상 상. 像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想像(상상), 銅像(동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야시라는 말의 어감이나 우리에게 저지른 죄악을 생각하면 그 인물이 왠지 얍삽하게 생겼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간혹 사극같은데서 등장하는 하야시란 인물도 그렇게 그려졌던 것 같구요. 그런데 실제 사진을 보니 웬걸 두덕두덕하니 덕스럽게(?) 생겼더군요(아래 사진 참조. 위키피아 사진 인용). 성격도 매우 사교적이었다고 해요. 섣부른 어감이나 생각만으로 인물의 외모를 예단하면 안되겠다는 것을 새삼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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