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때요? 사진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좀 차분해지시나요? 저는 좀 그런 느낌이 들던데^ ^ 사진에 나와있는 한자는 식화선(熄火扇)이라고 읽어요. '화기를 꺼주는 부채'란 뜻이에요. 화기 많은 분들은 이 사진을 지긋이 바라보면 좋을 듯 싶어요. 실제 등(燈)을 바라보면 효과는 배가 될 것 같구요.

 

명상센터에 어울릴법한 이 등은 인사동에 있는 한 채식 식당에서 찍은 거예요. 이 식당은 칭하이라는 영적 지도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분이 운영하는 식당인데, 식당 곳곳에 이 영적 지도자의 소품들이 놓여있더군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식화선등도 이 영적 지도자의 작품이라고 나오더군요. 이를 알고 사진을 바라보니 왠지 더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았어요. 영적 지도자의 영성이 반영된 것으로 믿고 싶은 후광 효과겠죠? ^ ^

 

많은 영적 지도자들이 육식보다 채식을 강조하고 권장하는데 칭하이라는 분도 예외가 아니더군요. 많은 영적 지도자들이 채식을 강조하고 권장하는 이유는 채식이 건강 및 영성과 관련하여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그럴거예요. 만일 육식이나 잡식이 건강과 영성에 더 도움이 된다면 그것을 강조하겠지요. 이 식당 입구에는 채식이 의미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채식주의자였던 위인들의 사진을 걸어 놓았는데 우리가 잘 아는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브 잡스 그리고 플라톤의 사진도 있더군요. 듣기론, 히틀러도 채식주의자였다고 하던데 이 사람은 빼놓았더군요. 하하. 그러나 예외없는 규칙은 없는 법이니 이 때문에 채식주의(자)가 무시받을 이유는 없을 듯 싶어요.

 

채식에 명상을 곁들이면 화기는 더 많이 가라앉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점에서 채식을 팔며 식화선등처럼 은연중 명상을 유도하는 소품을 놓은 이 식당은 사실상 명상 센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좋은 식당 같아요. 이런, 본의 아니게 식당 선전에 채식 홍보까지… 죄송합니다~

 

 

한자를 살펴 볼까요?

 

은 火(불 화)와 息(쉴 식)의 합자예요. 불이 쉬다, 즉 불이 꺼졌다란 뜻이에요. 불꺼질 식. 熄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熄滅(식멸, 꺼짐), 終熄(종식)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戶(지게문 호)와 羽(깃 우)의 합자예요. 새의 깃처럼 양쪽에 달린 문이란 뜻이에요. 지금은 주로 부채란 뜻으로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문을 여닫듯 펄럭이며 바람을 내는 물건이란 의미로요. 부채 선. 扇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扇風機(선풍기), 扇動(선동)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채식이 좋은 줄 알면서도 실천을 못하는 이들이 많아요. 특히 청소년. 고기를 먹어야 균형진 영양을 갖출 수 있다라는 기치아래 일찍부터 어린이 집 유치원 그리고 초중등 학교에서 매 끼니 육식을 먹이니 거기에 입맛이 길들여져 채식을 기피하는 것 같아요. 맛을 경쟁하면 채식이 육식에 지지요. 고기가 지니는 주성분인 단백질은 식물성 단백질로도 얼마든지 보충이 가능하다고 해요. 이로 보면 건강과 영성에 좋은 채식을 권장해야 할텐데 반대인 걸 보면, 여기 -  균형진 영양을 위한 육식 권유 - 엔 다분히 정치 경제적 계산이 깔려있기 때문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청소년의 채식 기피는 그들 탓이 아니라 기성 세대의 그릇된 계산 탓이 아닐까 싶어요.

 

여담 둘. 당신은 채식주의자냐고 물어보고 싶으실 것 같아요. 아닙니다. 채식지향주의자일 뿐입니다. 칭하이라는 분을 추종하는 사람도 아니구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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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모토 세이초의 『구형의 황야』란 작품을 읽어 보셨는지요? 1964년 도쿄 올림픽이 열릴 즈음, 한 사내가 도쿄의 한 으숙한 숲에서 질식사한 시체로 발견돼요. 유일한 단서는 인근 연못에서 발견된 방명록. 경찰은 죽은 이와 살인자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방명록의 서명자들을 추적해요. 추적 중에 사망자의 신원을 알게 되고, 더불어 새로운 단서 하나를 얻게 돼요. 방명록의 서명 중에 이미 사망한 어떤 이의 필체와 유사한 서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예요(물론 서명에 쓰인 이름은 죽은 이와 전혀 다른 이름이죠). 이 사실은 방명록 서명자 중의 한 명인 어떤 여인을 조사하던 중 그녀와 함께 있던 여조카에게서 알게 된 거예요. 이 여조카는 방명록의 필체가 자신의 아버지가 예전에 사용하던 필체와 똑같다며 자신의 집에 걸려있는 아버지의 액자를 보여줘요. 그런데 이 여조카의 아버지는 이미 20년 전에 사망했어요. 그렇다면 그 동일한 필체의 서명은 누가 한 것이며, 그 방명록과 피살자와는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지…. 마쓰모토 세이치의 여타 추리소설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도 마쓰모토 세이초의 강렬한 사회의식을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한 살인 사건을 통해 전쟁과 평화 그리고 애국의 문제를 다루고 있거든요.

 

사진은 『구형의 황야』를 드라마화한 일드의 한 장면이에요. 바로 한 여인의 여조카가 경찰에게 소개한 자신의 아버지 작품이죠. 작품을 소개하며 아버지는 미불(米芾, 1051-1107, 북송의 서예가)의 작품을 즐겨 임서했다고 말해요. 이로 미뤄보면 이 작품은 미불의 작품을 임서한 것 같아요. 읽어 볼까요? 쾌제일천청연기 건범천리벽유풍(快霽一天淸淵氣 健帆千里碧楡風). '상쾌하게 개인 하늘 맑은 연못 기품이요, 먼 길 가는 돛단 배 바람 맞은 푸른 느릅나무로다'라고 풀이해요. 싱그러운 하늘과 상쾌한 바람에 떠가는 배를 그렸어요. 마치 우리 가요 '아, 대한민국'의 첫 소절을 연상케 하는 내용이에요. 하늘엔 조각 구름 떠있고 /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고….

 

그런데 이 액자의 내용은, 작품에서, 필체를 확인하기 위한 단순 소품이 아니라 주제를 담은 복선 기능을 수행해요. 『구형의 황야』 주인공은 2차 대전중 스웨덴에 파견되었던 외교관으로 그는 종전(終戰)을 통해 일본의 평화를 지키려고 노력해요. 하여 그는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 죽은 것으로 가장 - 연합군에 투신해요. 이 액자의 내용은 바로 주인공의 평화주의자로서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기에 복선 기능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어요. 평화로운 풍경을 쓴 액자는 곧 주인공의 평화지향 정신을 상징하는 것 이니까요.『구형의 황야』는 평화주의자인 주인공과 그의 행위를 백안시하는 군국주의자들과의 갈등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통해 전쟁의 종언을 통한 평화야말로 진정한 애국이고 이를 위해 남모르게 희생한 이들을 청안시(靑眼視)할 것을 호소한 작품이에요.

 

 

낯선 한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는 忄(마음 심)과 夬(터놓을 쾌)의 합자예요. 마음이 흔쾌하다는 뜻이에요.  忄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夬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마음이 흔쾌하면 파안대소가 나온다는 의미로요. 쾌할 쾌. 快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爽快(상쾌), 愉快(유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雨(비 우)과 齊(가지런할 제)의 합자예요. 비가 그쳤다란 뜻이에요. 雨로 뜻을 표현했어요. 齊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齊는 본래 이삭이 패어 키가 고르게 된 모양을 그린 것인데,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멈추지요. 바로 이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멈췄다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해주고 있는 거예요. 개일 제. 霽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霽月光風(제월광풍, 도량이 넓고 시원함), 霽朝(제조, 비가 갠 아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양 언덕 안에 갇혀 맴도는 물을 그린 거예요. 연못 연. 본래 氵(물 수) 없이 표기했는데, 후에 氵가 추가 됐어요. 못 연. 淵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深淵(심연), 淵曠(연광, 깊고 넓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人(사람 인)과 建(세울 건)의 합자예요, 굳센다란 뜻이에요. 人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建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꿋꿋하게 서있어야 굳세게 보인다는 의미로요. 굳셀 건. 健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健實(건실), 健康(건강)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巾(수건 건)과 凡(汎의 약자, 뜰 범)의 합자예요. 돛이란 뜻이에요. 巾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凡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돛이 바람을 맞아 배가 떠간다는 의미로요. 돛 범. 帆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帆船(범선), 帆檣(범장, 돛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王(玉의 변형, 구슬 옥)과 石(돌 석)과 白(흰 백)의 합자예요. 옥과 흡사하며 푸른 빛[白, 순백색은 약간 푸른 빛을 띄죠]이 도는 돌이란 뜻이에요. 白은 음을 담당해요(백→벽). 푸를 벽. 碧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碧溪水(벽계수), 碧眼(벽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木(나무 목)과 兪(마상이 유)의 합자예요. 느릅나무란 뜻이에요. 木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兪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兪는 통나무로 만든 배란 뜻인데, 이렇게 배로 만들 정도라면 통나무가 커야겠죠? 그같이 덩치 큰 나무가 바로 느릅나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해주고 있어요. 느릅나무 유. 楡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楡莢雨(유협우, 늦봄에 오는 비), 楡塞(유새, 변방의 요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미불은 왕희지에 가장 근접한 서예가로 평가 받아요. 그의 서체는 힘이 있으면서도 유려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위에 임서한 작품은, 감식안이 부족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기풍이 느껴지질 않아요. 그래도 일본은 평소에 한자를 쓰기에 한자(문) 관련 소품을 설치할 때 글씨의 격이 심하게 떨어지진 않는 것 같아요. 이 작품도 그렇구요. 반면에 생활 주변에서 점차 한자가 사라져가는 우리나라에선 영화나 드라마 소품에 한자(문) 관련 소품이 등장할 때 민망할 정도로 글씨의 격이 떨어져요. 최근 '대장 김창수'를 보았어요. 감옥소장과 김창수가 체결한 문서 내용이 나오는데, 그 조잡한 글씨라니…. 그 체결 문서는 김창수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나름대로 중요한 소품인데 글씨를 그렇게 써 놓으니 옥의 티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생각컨대, 서예가에게 부탁하면 비용이 추가될까 봐 스텝 중 한 사람에게 부탁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영화 제작시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한자(문) 관련 소품은 꼭 서예가의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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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趙東一)이란 분이 있어요.『한국문학통사』의 저자로, 국문학계에서 유명한 분이죠. 국문학에 머물지 않고 동아시아 문학 및 세계 문학 나아가 학문 일반으로 연구의 외연을 넓혀온 것으로도 유명하죠. 대학에서 정년을 한 이후에도 정력적으로 활동하시는데, 최근 이 분의 책 - 동아시아 문명론 - 을 읽다가 재미있는(?) 대목을 만났어요. 좀 길지만 인용해보죠.

 

 

먹고 살기도 바쁜데 어느 겨를에 한문을 익히고, 영어 외에 다른 언어도 배운단 말인가 하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산업기술 근대화를 재촉하던 시기와는 달라지고 있어서, 생산활동에 직접 종사해야 하는 시간은 줄여야 하고, 그 대신에 문화활동을 늘려야 한다. 그래야만 실업자가 줄어들고, 문화생활의 혜택을 고루 나눌수 있다. 그런데 어떤 문화활동을 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다. 그 해답은 언어 학습이다. 언어 학습은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데 기여하는 소극적인 의의에서 음식, 관람, 여행, 스포츠 등보다 부작용이 적고 효과가 뛰어나다. 공연히 무엇을 만들어 불필요한 재화를 생산하지 않고, 여가를 소중하게 여기도록 하고, 정신을 윤택하게 하고, 세계를 평화롭게 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게 하는 문화활동 가운데 언어 학습만 한 것이 없다.

 

 

국문학자이고 교수 출신이기에 하는 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나름 음미할만 한 언급인 것 같아요. 특히 "언어 학습은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데 기여하는 소극적인 의의에서 음식, 관람, 여행, 스포츠 등보다 부작용이 적고 효과가 뛰어나다. 공연히 무엇을 만들어 불필요한 재화를 생산하지 않고, 여가를 소중하게 여기도록 하고, 정신을 윤택하게 하고, 세계를 평화롭게 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게 하는 문화활동 가운데 언어 학습만 한 것이 없다."란 대목은 좋은 제안이란 생각이 들어요.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으면, 좋은 곳을 가보지 않으면, 몸을 멋지게 가꾸지 않으면 왠지 시대에 뒤떨어진 듯 한 느낌을 갖게 만드는 요즘 시류에 일침을 가하는 것 같아서요. 제가 그럴 처지나 욕구가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요. ^ ^

 

사진은 아내가 인근 홍성의 용봉산(龍鳳山)에 갔다가 찍어 온 거예요. 소나무의 모습이 특별하여 한시를 한 수 지어 봤어요. 운과 평측만 겨우 맞췄을 뿐 시어가 성글고 내용의 함축미도 없어요. 그래도 지어놓고 보니 괜시리 흐뭇해요.

 

 

臥松 와송    누운 소나무

 

 

詰屈橫蒼碧   힐굴횡창벽     이리저리 뒤틀린 모습으로 창공에 누웠나니

危奇未嘗逢   위기미상봉     위태롭고 기이한 모습 일찌기 만나본 적 없어라

潛垂堅拔訓   잠수견발훈     조용히 견인불발의 교훈을 전해주나니

孰對一凡松   숙대일범송     뉘라서 일개 평범한 소나무로 대하리

 

 

한시를 짓는 일도 조동일 교수가 말하는 '의미있는 시간 보내기로서의 외국어 배우기'의 한 행태라고 할 수 있을 듯 해요. '여가 활동으로 한시를 지어봅시다!'라고 하면, 대부분 뜨악한 눈으로 바라볼 것 같아요. "내가 어떻게 그 어려운 한시를..." 이런 생각이 들어서겠지요. 그런데 한시 짓기는, 제 경험으로 봤을 때,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다만 작품의 수준이 문제일 뿐이지요. 수준을 따지지 않고 일단 한시를 지어보겠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그 생각 자체로 이미 한시 짓기는 50%이상 달성된 거예요. 그 다음 문제는 한자와 평측 및 운을 맞추는 것인데, 꼭 어려운 한자를 사용해야 좋은 시라는 편견을 버린다면 한자 문제는 해결돼요. 평측과 운은 다음 소개하는 싸이트의 '근체시 평측 자동검색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해결할 수 있구요(회원 가입해야 다운로드 가능).

 

 

 

 

한 가지 더 문제되는 것이 있다면 어법인데, 한문은 기본적으로 '주술목' 구조란 것을 염두에 두면 돼요. 여기에 5자로 된 구는 2자 3자로 끊어 읽게 리듬을 맞추고, 7자로 된 구는 4자 3자로 끊어 읽게 리듬을 맞추면 금상첨화죠. 이런, 가장 중요한 것을 빠트렸네요. 시상(詩想). 시상을 처음부터 한시로 표현하긴 어려워요. 먼저 한글로 시상을 옮기고 이를 다시 한시로 바꾸는게 편해요.

 

어때요? 한 번 지어볼 만 하겠다는 생각 들지 않으세요? '의미있는 시간 보내기로서의 한시 짓기', 한 번 시도해 볼 만한 취미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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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JTBC 뉴스 2017. 11. 3(금)자 방송 일부 캡쳐)

 

 

"선생님, 정치의 요체는 무엇인지요?" "배부르게 먹이는 것, 국방을 튼튼히 하는 것, 신뢰를 받는 것을 들 수 있겠구나." "부득이 하나를 빼야 한다면 무엇을 빼야 할런지요?" "국방을 튼튼히 하는 것, 그것을 뺄수 있겠구나." "하나를 더 빼야 한다면…." "백성을 배부르게 먹이는 거겠지. 자공아, 백성과의 신뢰는 빼고 더하고의 문제가 아니란다. 그것이 없으면 나라 자체가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지."

 

『논어』「안연」편에 나오는 자공과 공자의 대화예요. 공자의 답변을 들어보면 일반 사람과 반대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일반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죠: "국방이 튼튼해야 외적의 침입을 막을 수 있고 그래야 나라가 유지될 수 있지. 나라가 유지된 다음에야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신뢰? 물론 중요하지! 하지만 그것이 국방이나 경제 문제보다 우선시되기엔…." 공자는 역시 특별한 사람이에요. 일반 사람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보면. 그리고 그 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일견 나이브해 보이지만 실상과 일치하죠. 공자의 특별함은 그저 남과 다르기에 특별한 것이 아니라 사태의 본질을 꿰뚫는다는데에 특별함이 있어요. 꼭 들어맞는 예는 아니지만 최근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봐도 이를 징험할 수 있어요. 두 전임 정부가 끊임없이 추락하는 이유는 바로 '신뢰'의 상실 때문이죠. 이룬 업적도 있으련만 신뢰의 상실때문에 모두 물거품이 되버리잖아요?

 

신뢰의 중요성은 정치 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다 필요하죠. 부부사이도 신뢰가 무너지면 파경을 맞잖아요? 그런데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신뢰를 지킨다는게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죠.  더구나 우리처럼 굴곡진 현대사를 겪어온 사람들에겐 적당한 배신이 바람직한(?) 처세술처럼 여겨지기도 하죠.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신뢰를 지킨 사람들이 있어 감탄과 더불어 시샘을 받죠. 자신도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것을 이뤄낸 이에게 보내는 양가의 감정일 거예요.

 

이런 감탄과 시샘을 받는 인물 중에 손석희 씨가 있죠. 그가 이번 제 20회 심산상(心山賞)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수여 이유는  최순실 테블릿 피씨 보도로 촛불 시위를 촉발시킨 공이라는데, 이는 표면적인 이유이고 실제는 그가 보여준 언론인으로서의 신뢰성에 보내는 치하라고 할 거예요. 그의 대국민 신뢰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최순실 테블릿 피씨 소재처 안내죠. 건물 관리인이 타방송사 기자들에겐 안보여주고 JTBC 기자에게만 보여준 건 순전히 손석희 씨 때문이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손석희 씨가 얻은 신뢰는 하루 아침에 얻어진 것이 아니죠. 그가 MBC에 근무하면서 소신있는 방송을 위해 겪었던 어려움은 널리 알려져 있잖아요? 손석희 씨를 대하면 '신뢰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는 교과서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살아있는 교과서.

 

사진은 손석희 씨가 수상 기념으로 받은 액자예요. 지주반정(砥柱反正)이라고 읽어요. '굳건한 기개로 (그릇된 길을) 바른 길로 되돌려 놓다'란 뜻이에요. 지주는 '중류지주(中流砥柱)' 혹은 '지주중류(砥柱中流)'의 압축 표현으로 선비의 굳건한 기개를 상징하는 말이에요. 황하 중류 지점인 삼문협(三門峽)은 물살이 거세기로 유명한데 이 중류 지점에 산 모양의 돌출 바위가 기둥처럼 서있어요. 윗 부분이 숫돌처럼 평평해서 이 바위를 '지주'라고 명명했어요. 그런데 그 모습이 흡사 거대한 불의에 맞서는 선비의 굳센 기개처럼 느껴져, 후일 선비의 굳센 기개를 상징하는 말로 쓰이게 됐어요. 액자의 내용이 손석희 씨에게 잘 맞는 것 같아요. 손석희 씨의 굳건한 기개가 있었기에 팩트에 충실한 태블릿 피씨 보도가 가능했고 그 방송이 있었기에 촛불 집회가 이어질 수 있었으며 그것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부 탄생으로 이어졌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만일 최순실 테블릿 피씨가 타방송사에 들어갔다면 JTBC처럼 충실히 보도하기는 어려웠을 거예요. 그렇지 않나요?

 

한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는 石(돌 석)과 氐(근본 저)의 합자예요. 숫돌이란 뜻이에요. 石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氐는 음을 담당하면서(저→지)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숫돌은 어떤 물건의 밑에서 갈림을 당한다는 의미로요. 숫돌 지.砥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砥礪(지려, 연마), 金剛砥(금강지, 금강사로 만든 숫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木(나무 목)과 主(주인 주)의 합자예요. 집을 지을 때 핵심이 되는 나무, 즉 기둥이란 뜻이에요. 기둥 주. 柱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支柱(지주), 柱礎(주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손[又, 手(손 수)의 변형]으로 물체를 뒤집어[厂] 놓았다란 뜻이에요. 뒤집을(돌이킬) 반. 反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反省(반성), 背反(배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一(한 일)과 止(그칠 지)의 합자예요. 올바른 곳[一]에 머무른다란 의미예요. 바를 정. 正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正反合(정반합), 正直(정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손석희 씨에게 심산상을 수여한 성균관대는 기분이 좀 멋적었을 것 같아요. 성균관대의 재단은 삼성이에요. 그런데 알다시피 삼성은 손석희 씨 보도로 인해, 속된 말로, 피를 봤어요. 그런데 그 재단의 대학이 피를 보게 만든 이에게 상을 수여했으니 머쓱할 수 밖에요. 짐작컨대, 수상 대상자로 손석희 씨를 선정하기전 꽤 논란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을 수여한 것을 보면, 삼성의 눈치를 안봐도 될 만큼 삼성의 기세가 꺾인 것도 같고 또 그만큼 우리 사회의 풍토가 많이 유연해진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권이 바뀐 영향이겠죠? 이런 것을 가능케 한 공이 많은 부분 손석희 씨에게 있다고 하면 지나친 칭찬일까요?

 

여담 둘. 현재 지주는 삼협댐이 들어서서 그 몰골이 초라하다고 해요. 세월의 흐름에 따른 변화지요. 인정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하죠. 손석희 씨도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못하겠죠. 그러나 부디 그런 염려가 기우였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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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을 때 아름답다.

 

 오래 전, 문득 떠오른 말이에요. 괜찮은 말인것 같아 친구에게 이 말을 했더니, 돌직구를 던지더군요. "아닌 것 같은데? 별똥별은 제자리를 벗어나기에 더 아름답잖아?" 당시 뭐라고 응수했는지는 기억이 안나요. 지금 응수를 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 같아요. "별똥별의 이탈은 그것 자체가 별똥별의 제자리 아닐까? 그래서 아름다운 것 아닐까?" 너무 억지일까요? ^ ^

 

 아포리즘은, 제 경험으로 보면, 일종의 초월이나 비상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싶어요. 알게 모르게 오랫동안 곰삭혀 생각했던 것들이 임계점을 넘어섰을 때 나온 것 아닌가 싶은거죠. 그렇기에 아포리즘은 적실(的實, 실상에 잘 들어맞음)한 경우가 많죠(제 경우는 빼고요. ^ ^)

 

 사진은 "욕지미래 선찰이연(欲知未來 先察已然)"이라고 읽어요. "미래를 알고자 한다면 먼저 이미 그러한 것[과거]을 살펴보라"는 뜻이에요. 『명심보감』「성심」편에 나오는 아포리즘이에요. 아마도 이 말을 한 이는 '미래'에 대한 생각을 오랫동안 자신의 내부에서 곰삭혀 왔다가 토설했을 거예요. 그러나 이 말은 본래 아포리즘이 아니라 전후에 어떤 말이 있는데 『명심보감』의 저자가 전후 맥락을 자르고 해당 부분만 인용했을 수도 있어요. 그렇긴해도 이 말을 접하는 사람은 저간의 사정을 알 수 없으니, 결국은 이도 아포리즘이 되는 셈이에요.

 

 이 아포리즘은 일반적으로 '미래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도의 의미로 이해될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이해의 배후엔 '성공적인 미래'가 상정되어 있는 것 같구요. 그런데 이 아포리즘엔 '성공적인 미래'가 상정되어 있지 않아요. 그저 냉정히(?) 말하고 있을 뿐이죠. 미래를 알고자 하는가? 과거를 살펴보라!

 

그렇다면 냉정한 이 아포리즘을 이렇게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미래의 성공과 실패를 알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과거의 성공과 실패를 살펴보라. 상황이 유사한데 과거에 성공했다면 미래에도 성공할 것이다. 상황이 유사한데 과거에 실패했다면 미래에도 실패할 것이다." 성공이나 실패는 학습되는 것이기에 과거에 성공한 일은, 유사한 경우, 미래에도 성공할 가능성이 크고, 과거에 실패한 일은, 유사한 경우, 미래에도 실패할 가능성이 크죠. 이는 개인이나 집단 모두에 적용될 듯 싶어요. 과거의 예를 하나만 들어볼까요? 은나라 마지막 임금 주(紂)때 그의 폭정을 만류하던 신하들이 입에 침이 마르고 닳도록 경계한 말이 '은나라의 전대인 하(夏)나라의 마지막 임금 걸(桀)을 생각하라!'는 것이었죠. 그러나 결국 주(紂)는 은나라를 망치고 말았어요. 유사한 경우, 전대의 실패는 후대에 동일하게 반복된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사례지요. '욕지미래 선찰이연'은 성공과 실패는 유사하게 재현된다는 것을 냉정하게 알려주는 아포리즘이지 결코 '성공적 미래'를 도와주기 위한 따뜻한 아포리즘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한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은 欠(빠질 결)과 谷(골짜기 곡)의 합자예요. 채워지지 않은 욕구란 뜻이에요. 欠로 뜻을 표현했어요. 谷은 음을 담당하면서(곡→욕)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물이 쉽게 채워지지 않은 골짜기처럼 쉽게 채워지지 않는 욕구란 의미로요. 하고자할 욕. 欲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欲求(욕구), 欲望(욕망)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矢(화살 시)와 口(입 구)의 합자예요. 화살처럼 대상에 대해 정확하고 예리하게 말할 수 있을 만큼 대상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에요. 알 지. 知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認知(인지), 知能(지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본래 屮(싹날 철)이 중첩된 글자와 木(나무 목)이 합쳐진 모양이었어요. 오래된 나무에 잎사귀가 무성하다란 의미였지요. 지금은 본래 의미와는 따르게 '아니다'란 뜻으로 사용하고 있죠. 동음을 빌미로 뜻을 가탁해 사용하다가 본래의 의미는 상실되고 가탁된 의미가 본의미처럼 사용되고 있는 것이지요. 아닐 미. 未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未完(미완), 未久(미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본래 보리를 그린 거예요. 그런데 보리는 춘궁기에 요긴한 곡식이었기에 신이 보내온 선물이라 여겨 '오다'란 뜻으로도 사용되다 이 뜻으로 굳어졌어요. 보리를 뜻하는 글자는 來에 夕을 더하여 麥(보리 맥)으로 표기하게 됐지요. 올 래. 來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本來(본래), 去來(거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之(갈 지)의 변형(글자 상단 부분)과 人(사람 인)의 변형(글자 하단 부분)이 합져진 글자예요. 남들보다 앞서 간다란 의미예요. 먼저 선. 先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先頭(선두), 先後(선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宀(집 면)과 祭(제사 제)의 합자예요. 높은 곳에서 살펴 본다란 의미예요. 宀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祭는 음을 담당하면서(제→찰)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제사지낼 때 매우 조심스런 태도를 가지듯이 그런 자세로 살핀다란 의미로요. 살필 찰. 察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觀察(관찰), 警察(경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무릎 꿇은 사람의 모습을 그린 것이에요. 여기서 의미가 확장되어 '그치다' '이미' 등의 뜻이 나왔어요. 이미 이, 그칠 이. 已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已往(이왕), 已降(이강, 已後(이후)와 동일 의미)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犬(개 견)과 月(肉의 변형, 고기 육)과 灬(火의 변형, 불 화)의 합자예요. 개고기로 번제(燔祭, 태워서 지내는 제사)를 올린다는 의미예요. 지금은 이 의미를 燃으로 표기하고, 然은 주로 '그러하다'란 뜻으로 사용하죠. 이 경우는 동음을 빌미로 뜻을 가탁한 거예요. 불탈 연. 그러할 연. 然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自然(자연), 茫然自失(망연자실)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과거의 실패와 성공이 미래에 동일하게 반복된다면 과거를 알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렇겠지요. 그러나 알고 맞이하는 것 하고 모르고 맞이하는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을 거예요. 이런 차원에서라도 과거를 알 필요는 있을 것 같아요. 비록 실패가 예견된다 할지라도 말이지요. 알고서 맞이한 실패는 그렇지 않은 경우와 비교해 아무래도 충격이 덜할테니까요. 그리고 부족하나마 어느 정도 대비도 할 수 있을테니 말이지요.

 

여담 둘. 사진은 인사동에서 찍었어요. 인사동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죠. 높은 임대료로 인한 전통 가게들의 철수와 국적 불명의 값싼 제품의 난무를 주요인으로 들더군요. 이번에 가보니 실감하겠더군요. 인사동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요?

 

여담 셋. 격언 경구란 말이 식상해서 아포리즘이란 말을 써보았어요. 조금 신선한 맛은 있는데 역시 좀 어색하네요. 다음부터는 격언 경구란 말을 다시 써야 겠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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