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JTBC 뉴스 2017. 11. 3(금)자 방송 일부 캡쳐)
"선생님, 정치의 요체는 무엇인지요?" "배부르게 먹이는 것, 국방을 튼튼히 하는 것, 신뢰를 받는 것을 들 수 있겠구나." "부득이 하나를 빼야 한다면 무엇을 빼야 할런지요?" "국방을 튼튼히 하는 것, 그것을 뺄수 있겠구나." "하나를 더 빼야 한다면…." "백성을 배부르게 먹이는 거겠지. 자공아, 백성과의 신뢰는 빼고 더하고의 문제가 아니란다. 그것이 없으면 나라 자체가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지."
『논어』「안연」편에 나오는 자공과 공자의 대화예요. 공자의 답변을 들어보면 일반 사람과 반대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일반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죠: "국방이 튼튼해야 외적의 침입을 막을 수 있고 그래야 나라가 유지될 수 있지. 나라가 유지된 다음에야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신뢰? 물론 중요하지! 하지만 그것이 국방이나 경제 문제보다 우선시되기엔…." 공자는 역시 특별한 사람이에요. 일반 사람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보면. 그리고 그 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일견 나이브해 보이지만 실상과 일치하죠. 공자의 특별함은 그저 남과 다르기에 특별한 것이 아니라 사태의 본질을 꿰뚫는다는데에 특별함이 있어요. 꼭 들어맞는 예는 아니지만 최근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봐도 이를 징험할 수 있어요. 두 전임 정부가 끊임없이 추락하는 이유는 바로 '신뢰'의 상실 때문이죠. 이룬 업적도 있으련만 신뢰의 상실때문에 모두 물거품이 되버리잖아요?
신뢰의 중요성은 정치 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다 필요하죠. 부부사이도 신뢰가 무너지면 파경을 맞잖아요? 그런데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신뢰를 지킨다는게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죠. 더구나 우리처럼 굴곡진 현대사를 겪어온 사람들에겐 적당한 배신이 바람직한(?) 처세술처럼 여겨지기도 하죠.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신뢰를 지킨 사람들이 있어 감탄과 더불어 시샘을 받죠. 자신도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것을 이뤄낸 이에게 보내는 양가의 감정일 거예요.
이런 감탄과 시샘을 받는 인물 중에 손석희 씨가 있죠. 그가 이번 제 20회 심산상(心山賞)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수여 이유는 최순실 테블릿 피씨 보도로 촛불 시위를 촉발시킨 공이라는데, 이는 표면적인 이유이고 실제는 그가 보여준 언론인으로서의 신뢰성에 보내는 치하라고 할 거예요. 그의 대국민 신뢰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최순실 테블릿 피씨 소재처 안내죠. 건물 관리인이 타방송사 기자들에겐 안보여주고 JTBC 기자에게만 보여준 건 순전히 손석희 씨 때문이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손석희 씨가 얻은 신뢰는 하루 아침에 얻어진 것이 아니죠. 그가 MBC에 근무하면서 소신있는 방송을 위해 겪었던 어려움은 널리 알려져 있잖아요? 손석희 씨를 대하면 '신뢰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는 교과서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살아있는 교과서.
사진은 손석희 씨가 수상 기념으로 받은 액자예요. 지주반정(砥柱反正)이라고 읽어요. '굳건한 기개로 (그릇된 길을) 바른 길로 되돌려 놓다'란 뜻이에요. 지주는 '중류지주(中流砥柱)' 혹은 '지주중류(砥柱中流)'의 압축 표현으로 선비의 굳건한 기개를 상징하는 말이에요. 황하 중류 지점인 삼문협(三門峽)은 물살이 거세기로 유명한데 이 중류 지점에 산 모양의 돌출 바위가 기둥처럼 서있어요. 윗 부분이 숫돌처럼 평평해서 이 바위를 '지주'라고 명명했어요. 그런데 그 모습이 흡사 거대한 불의에 맞서는 선비의 굳센 기개처럼 느껴져, 후일 선비의 굳센 기개를 상징하는 말로 쓰이게 됐어요. 액자의 내용이 손석희 씨에게 잘 맞는 것 같아요. 손석희 씨의 굳건한 기개가 있었기에 팩트에 충실한 태블릿 피씨 보도가 가능했고 그 방송이 있었기에 촛불 집회가 이어질 수 있었으며 그것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부 탄생으로 이어졌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만일 최순실 테블릿 피씨가 타방송사에 들어갔다면 JTBC처럼 충실히 보도하기는 어려웠을 거예요. 그렇지 않나요?
한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砥는 石(돌 석)과 氐(근본 저)의 합자예요. 숫돌이란 뜻이에요. 石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氐는 음을 담당하면서(저→지)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숫돌은 어떤 물건의 밑에서 갈림을 당한다는 의미로요. 숫돌 지.砥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砥礪(지려, 연마), 金剛砥(금강지, 금강사로 만든 숫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柱는 木(나무 목)과 主(주인 주)의 합자예요. 집을 지을 때 핵심이 되는 나무, 즉 기둥이란 뜻이에요. 기둥 주. 柱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支柱(지주), 柱礎(주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反은 손[又, 手(손 수)의 변형]으로 물체를 뒤집어[厂] 놓았다란 뜻이에요. 뒤집을(돌이킬) 반. 反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反省(반성), 背反(배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正은 一(한 일)과 止(그칠 지)의 합자예요. 올바른 곳[一]에 머무른다란 의미예요. 바를 정. 正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正反合(정반합), 正直(정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손석희 씨에게 심산상을 수여한 성균관대는 기분이 좀 멋적었을 것 같아요. 성균관대의 재단은 삼성이에요. 그런데 알다시피 삼성은 손석희 씨 보도로 인해, 속된 말로, 피를 봤어요. 그런데 그 재단의 대학이 피를 보게 만든 이에게 상을 수여했으니 머쓱할 수 밖에요. 짐작컨대, 수상 대상자로 손석희 씨를 선정하기전 꽤 논란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을 수여한 것을 보면, 삼성의 눈치를 안봐도 될 만큼 삼성의 기세가 꺾인 것도 같고 또 그만큼 우리 사회의 풍토가 많이 유연해진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권이 바뀐 영향이겠죠? 이런 것을 가능케 한 공이 많은 부분 손석희 씨에게 있다고 하면 지나친 칭찬일까요?
여담 둘. 현재 지주는 삼협댐이 들어서서 그 몰골이 초라하다고 해요. 세월의 흐름에 따른 변화지요. 인정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하죠. 손석희 씨도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못하겠죠. 그러나 부디 그런 염려가 기우였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