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일(趙東一)이란 분이 있어요.『한국문학통사』의 저자로, 국문학계에서 유명한 분이죠. 국문학에 머물지 않고 동아시아 문학 및 세계 문학 나아가 학문 일반으로 연구의 외연을 넓혀온 것으로도 유명하죠. 대학에서 정년을 한 이후에도 정력적으로 활동하시는데, 최근 이 분의 책 - 동아시아 문명론 - 을 읽다가 재미있는(?) 대목을 만났어요. 좀 길지만 인용해보죠.

 

 

먹고 살기도 바쁜데 어느 겨를에 한문을 익히고, 영어 외에 다른 언어도 배운단 말인가 하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산업기술 근대화를 재촉하던 시기와는 달라지고 있어서, 생산활동에 직접 종사해야 하는 시간은 줄여야 하고, 그 대신에 문화활동을 늘려야 한다. 그래야만 실업자가 줄어들고, 문화생활의 혜택을 고루 나눌수 있다. 그런데 어떤 문화활동을 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다. 그 해답은 언어 학습이다. 언어 학습은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데 기여하는 소극적인 의의에서 음식, 관람, 여행, 스포츠 등보다 부작용이 적고 효과가 뛰어나다. 공연히 무엇을 만들어 불필요한 재화를 생산하지 않고, 여가를 소중하게 여기도록 하고, 정신을 윤택하게 하고, 세계를 평화롭게 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게 하는 문화활동 가운데 언어 학습만 한 것이 없다.

 

 

국문학자이고 교수 출신이기에 하는 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나름 음미할만 한 언급인 것 같아요. 특히 "언어 학습은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데 기여하는 소극적인 의의에서 음식, 관람, 여행, 스포츠 등보다 부작용이 적고 효과가 뛰어나다. 공연히 무엇을 만들어 불필요한 재화를 생산하지 않고, 여가를 소중하게 여기도록 하고, 정신을 윤택하게 하고, 세계를 평화롭게 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게 하는 문화활동 가운데 언어 학습만 한 것이 없다."란 대목은 좋은 제안이란 생각이 들어요.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으면, 좋은 곳을 가보지 않으면, 몸을 멋지게 가꾸지 않으면 왠지 시대에 뒤떨어진 듯 한 느낌을 갖게 만드는 요즘 시류에 일침을 가하는 것 같아서요. 제가 그럴 처지나 욕구가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요. ^ ^

 

사진은 아내가 인근 홍성의 용봉산(龍鳳山)에 갔다가 찍어 온 거예요. 소나무의 모습이 특별하여 한시를 한 수 지어 봤어요. 운과 평측만 겨우 맞췄을 뿐 시어가 성글고 내용의 함축미도 없어요. 그래도 지어놓고 보니 괜시리 흐뭇해요.

 

 

臥松 와송    누운 소나무

 

 

詰屈橫蒼碧   힐굴횡창벽     이리저리 뒤틀린 모습으로 창공에 누웠나니

危奇未嘗逢   위기미상봉     위태롭고 기이한 모습 일찌기 만나본 적 없어라

潛垂堅拔訓   잠수견발훈     조용히 견인불발의 교훈을 전해주나니

孰對一凡松   숙대일범송     뉘라서 일개 평범한 소나무로 대하리

 

 

한시를 짓는 일도 조동일 교수가 말하는 '의미있는 시간 보내기로서의 외국어 배우기'의 한 행태라고 할 수 있을 듯 해요. '여가 활동으로 한시를 지어봅시다!'라고 하면, 대부분 뜨악한 눈으로 바라볼 것 같아요. "내가 어떻게 그 어려운 한시를..." 이런 생각이 들어서겠지요. 그런데 한시 짓기는, 제 경험으로 봤을 때,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다만 작품의 수준이 문제일 뿐이지요. 수준을 따지지 않고 일단 한시를 지어보겠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그 생각 자체로 이미 한시 짓기는 50%이상 달성된 거예요. 그 다음 문제는 한자와 평측 및 운을 맞추는 것인데, 꼭 어려운 한자를 사용해야 좋은 시라는 편견을 버린다면 한자 문제는 해결돼요. 평측과 운은 다음 소개하는 싸이트의 '근체시 평측 자동검색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해결할 수 있구요(회원 가입해야 다운로드 가능).

 

 

 

 

한 가지 더 문제되는 것이 있다면 어법인데, 한문은 기본적으로 '주술목' 구조란 것을 염두에 두면 돼요. 여기에 5자로 된 구는 2자 3자로 끊어 읽게 리듬을 맞추고, 7자로 된 구는 4자 3자로 끊어 읽게 리듬을 맞추면 금상첨화죠. 이런, 가장 중요한 것을 빠트렸네요. 시상(詩想). 시상을 처음부터 한시로 표현하긴 어려워요. 먼저 한글로 시상을 옮기고 이를 다시 한시로 바꾸는게 편해요.

 

어때요? 한 번 지어볼 만 하겠다는 생각 들지 않으세요? '의미있는 시간 보내기로서의 한시 짓기', 한 번 시도해 볼 만한 취미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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