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진실되게 구하면 비록 적중하지 못한다 해도 본래의 목표에서 그리 멀어지지는 않는다. 자식을 길러본 뒤에 시집가는 사람은 없다(心誠求之 雖不中 不遠矣 未有學養子而后嫁者也)."

 

『대학(大學)』「제가치국(齊家治國)」장에 나오는 한 대목이에요. 평범한 말이지만 비범한 뜻을 담고 있어요.

 

사람은 대개 미지의 미래에 공포를 느끼죠. 이는 첨단 기술이 세상을 지배하는 오늘 날도 마찬가지예요. 과거에 비해 예측 가능성이 높아 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공포감이 잔존하죠. 현재도 이러하니 과거는 오죽했겠어요?

 

미지의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과거의 인간이 찾아낸 방법 중에 '성(誠)'이란 가치가 있어요. 외부적 대책이 아닌 내부적 대책이죠. 『대학』의 저 구절은 이 내부적 대책을 비근한 예로 설명한 거예요. 자식을 낳고 기른다는 것은 미증유의 경험이에요. 공포감이 엄습하죠. 그러나 보통 결혼한 여성이라면 이 미증유의 사태를 별 탈 없이 해결해내요.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걸까요? 『대학』의 화자는 그것을 성으로 보고 있어요. 진실된 마음이 출산과 양육이란 공포스런 문제에 해답을 제시해 주기에 별탈없이 사태를 해결한다고 본 것이지요.

 

나아가 이 성은 집안과 국가를 경영하는데도 적용될 수 있다고『대학』의 화자는 말하고 있어요. 집안과 국가에 닥치는 미지의 공포도 저 어머니의 성과 같은 자세만 있으면 능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거지요. 비근한 사례를 들어 치가 치국의 요체를 말하고 있는 인용구가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겠지요?

 

사진은 '오늘도 성실(誠實)'이라고 읽어요(벌교에 갔다가 찍었어요). 성실은 『대학』에 나온 성과 대차 없어요. 비석은 꼬막 정식을 파는 집 앞에 세워져 있는데, 처음엔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음식점과 성실이 무슨 상관이 있나 싶어서요. 하지만 생각을 달리하니 이해가 될 듯 싶더군요. 음식점도 미래를 낙관하기 어려운 사업 중의 하나이죠. 이 음식점 주인은 그간의 어려움을 성실로 해결하지 않았나 싶어요. 하여 이 비석을 세워놓고 앞으로도 문제가 생기면 성실로써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거예요.

 

오늘도 성실, 이 음식점 주인에게 성실은 신의 지혜를 빌어오는 주문이 아닐까요? 

 

한자를 공부해 볼까요?

 

誠은 言(말씀 언)과 成(이룰 성)의 합자예요. 언행이 일치하여 진실하단 의미예요. 言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成은 음을 담당해요. 정성 성. 誠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誠心(성심), 誠意(성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實은 宀(집 면)과 貫(꿸 관)의 합자예요. 집에 돈꾸러미[貫]가 가득하다란 의미예요. 실할 실. 實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充實(충실), 實證(실증)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성실이란 가치는 요즘 왠지 빛바랜 가치처럼 느껴져요. 모든 것이 기계화 속도화 되다보니, 인내와 노력을 요구하는 듯한 성실은 시대와 안맞는 가치 같다는 생각이 드는거죠. 하지만 이는 피상적인 느낌이나 생각이에요. 성실은 여전의 우리의 마음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아니 점해야 하는 가치라고 생각해요. 첨단 기술이 빚는 초대형 사고가 성실과 반대되는 안일과 방심에서 비롯되는 것을 보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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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모두 신이 되죠. 귀신. 하지만 귀신, 하면 왠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존재처럼 느껴지죠. 그런데 사람들이 가까이 하고 싶은 귀신도 있죠. 수호신. 이들에게는, 그 귀신의 승락 여부와 관계없이, 제물을 바치며 자신들의 안녕을 기원하죠.

 

한 때는 똑같이 사람의 육신을 가진 존재였는데, 죽은 뒤 한 쪽은 꺼려지는 존재가 되고, 한 쪽은 가까이 하고 싶은 존재가 되었어요. 차이가 뭘까요? 한 쪽은 자신 만을 위해 살다간 존재이기에 죽어서도 역시 자신 만을 위해 살터이니 기대할 것이 없는 반면, 한 쪽은 타인을 위해 살다간 존재이기에 죽어서도 역시 타인을 위해 살터이니 기대할 것이 있기에 그런 것 아닐까요? 더구나 그가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죽었다면 여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보태어져 더 가까이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요?

 

사진은 '군수(郡守) 임공경업(林公慶業) 선정비(善政碑) 숭정(崇禎) 원년(元年, 1628) 사월(四月)' 이라고 읽어요. 임경업의 선정을 기념하는 비석이에요. 낙안읍성에 갔다가 찍었어요. 임경업은 낙안에서 2년(1626-1628)동안 군수로 재직했는데, 이 비석은 그가 낙안을 떠나던 해에 세워진 거예요.

 

임경업은 사후 평범한 귀신이 되지 않고 수호신이 되었어요. 최영, 남이 등과 함께 민간 신앙의 대상으로 추숭받고 있죠. 이 비석은 그런 신앙의 영향으로 해마다 제를 받으며 보호받고 있어요. 비석 상단에 금줄이 둘러져 있는 것을 보면 올 해도 제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임경업 - 정묘호란 발발 시 군사를 이끌고 참전했으며(당시 낙안군수로 재직. 청과 화의가 이뤄져 실제 전투는 못함) 병자호란 때는 백마산성을 지키며 청군에 대비했으나 그를 꺼린 청군이 우회하는 바람에 제대로 전투를 못해 본 사람. 이후 청이 명나라를 궤멸시키기 위해 조선의 참전을 요청했을 때 청군에 파견됐으나 의도적으로 명과의 접전을 피했던 사람. 청에의 압송을 피해 중국으로 탈출하여 명군과 함께 청에 대항하려 했으나 명군의 속절없는 항복으로 청에 포로가 되었던 사람. 청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고 버텼으나 조선 정부의 요청으로 - 심기원 역모 사건 연루자로 몰아- 국내로 송환된 뒤 김자점의 간계로 장살된 사람.

 

겉으로는 청을 배격하지만 실제로는 청에 굴종할 수 밖에 없었던 국내외 정치 상황에서 좌고우면하지 않고 친명배청의 대의를 내건 그의 과감한 행동은 민중들에게 많은 호감을 안겨줬을 거예요. 게다가 그가 낙안군수 재직시 보여준 선정이나 북방의 경비를 맡을 당시 명과의 무역거래로 민부병강(民富兵强, 백성은 부유하고 군사는 강해짐)을 이룩한 성과를 볼 때 적절한 뒷받침만 있었으면 그의 분투가 충분한 성과를 얻었으리란 가정을 하게 되면 호감에 안타까움까지 더해지겠죠. 그가 민중들에게 수호신으로 받을어질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는 달리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거예요: 민중들은 임경업의 삶에서 바르게 살려 노력하지만 늘 억울하게 핍박받으며 살아야 하는 자신들의 삶을 보았고, 그랬기에 그가 죽은 뒤에는 자신들의 삶을 이해하고 도와주리란 기대를 품었기에 수호신으로 섬긴 것이다. 임경업은 민중의 메시아였다.

 

한자를 공부해 볼까요?

 

慶은 鹿(사슴 록)의 약자와 心(마음 심)과 夊(천천히 걸을 쇠)의 합자예요. 기뻐할 일이 있어 사슴 가죽을 가지고 가 축하해 준다는 의미예요. 경사 경. 慶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慶賀(경하), 慶事(경사)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業은 본래 종을 거는 틀을 그린 글자예요. 윗 부분은 종을 거는 상체를, 중간 부분은 장식물을, 아래 부분은 받침대를 나타낸 거예요. 후에, 종을 건다→일을 한다로 의미가 변화되었어요. 일 업. 業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就業(취업), 業種(업종)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將은 寸(마디 촌)과 酱(장 장)의 약자가 합쳐진 거예요. 장수라는 의미예요. 장수는 원칙과 법도가 있어야 부하를 통솔할 수 있기에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寸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酱의 약자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장(간장, 된장)은 맛을 조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데, 그같이 부하들의 여러 요구를 잘 조화시켜 이끌어야 하는 이가 장수란 의미로요. 장수 장. 將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將軍(장군), 將星(장성)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崇은 山(뫼 산)과 宗(마루 종)의 합자예요. 산이 높고 크다란 뜻이에요. 山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宗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宗에는 시조(始祖)라는 뜻이 있는데, 시조는 뭇 자손들의 가장 높은 존재이죠. 그같이 가장 높은 산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해주고 있어요. 높을 숭. 崇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崇尙(숭상), 崇仰(숭앙)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禎은 示(神의 약자, 귀신 신)과 貞(곧을 정)의 합자예요. 상서롭다란 뜻이에요. 示로 뜻을 표현했어요. 貞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곧아야, 즉 정직해야 상서로운 일이 생긴다란 의미로요. 상서로울 정. 禎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禎祥(정상, 상서, 길조), 禎瑞(정서, 상서, 길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임경업은 서해 지역에서 풍어신(豊漁神, 고기를 잘 잡게 해주는 신)으로 많이 숭배되고 있어요. 특히 조기잡이 철과 관계 깊은 풍어신으로 숭배되는데, 이는 임경업이 중국으로 망명한 시기와 상관성이 있어요. "조기 어군의 경우, 1~2월에 제주도 아래 남지나해 쪽에서 겨울을 난 후 흑산도와 홍도 일대에서 첫 어장이 형성되고, 영광 앞바다 안마도 어장을 거쳐 3월 초에는 전라도 부안 앞바다 칠산 어장에 이르게" 되는데 "수온이 상승함에 따라 북상해 충남 서천과 전북 군산 앞바다 죽도와 태안반도 앞 격렬비열도를 잠시 거쳐, 연평도 어장에서 산란을 하고 6월 말경에는 평안도 철산의 용암포 앞바다까지 이른다"고 해요. 임경업은 6월 마포 나루에서 출발해 서해를 거쳐 중국으로 갔는데, 이 시기가 바로 조기 어군의 이동과 관계 깊기에 조기잡이 철의 풍어신으로 숭배받게 됐다고 보는 거지요.(인용문: 이영태)

 

여담 둘. 선정비의 하단 거북의 모습이 상당히 유머러스하죠? 보통 비석 하단의 거북은 입을 다문 엄정한 모습인데 이 비석의 거북은 상당히 편안하고 해학적인 모습이에요. 선정비를 세운 이들이 외압에 못이겨 마지못해 선정비를 세운 것이 아니라 - 많은 경우 선정비는 외압에 의해 비자발적으로 세워졌지요 - 진심에서 우러나 선정비를 세운 것이란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듯 해요. 볼수록 정감가는 거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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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은 황소 글력(근력)으로 쥐고, 먹은 새[鳥] 글력으로 갈아야 해!"

 

어렸을 때 붓글씨를 쓸 적마다 선친께서 해주시던 말씀이에요. 하지만 저는 늘 반대로 했어요. 먹물을 빨리 만들려고 황소 근력으로 먹을 갈았고, 글씨를 그림 그리듯이 예쁘게 쓰려고 새 근력으로 붓을 잡았어요. 선친은 늘 혀를 차셨죠. 특히 붓을 잡을 때는 더욱 그러셨는데, "아예, 붓털을 잡고 쓰지 그러냐!" 하실 정도였어요. 붓을 잡는 힘이 약하다보니 점점 붓대 하단을 잡고 글씨를 썼기 때문이이에요.

 

당시는 도저히 선친의 말씀을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하지만 중년이 된 지금은 이해할 것 같아요. 서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두 가지는 운필(運筆)과 먹물의 농담(濃淡)인데, 자유롭게 운필하기 위해서는 다다 붓대를 힘있게 높이 쥐고 움직여야 하며 먹물의 농담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먹을 갈아야 하기 때문이죠. 성마른 어린 시절 선친의 질책을 들어가며 붓글씨를 쓰는 것은 고역이었어요. 그래서 그랬을까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붓을 놓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좀 아쉬운 일이지만 당시엔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하하. 앞으로 혹 다시 서예를 하게 된다면, 선친의 말씀을 충실히 따를 것 같아요.

 

고창 선운사에 갔다가 선친께서 그토록 강조하던 필법의 글씨를 만났어요. 바로 추사 김정희 선생이 쓴 백파 선사 비문이에요. 비문을 대하니 과시 명필은 명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진의 한자를 읽어 볼까요? 화엄종주백파대율사대기대용지비(華嚴宗主白坡大律師大機大用之碑)라고 읽어요. 화엄종주는 화엄종의 최고 인물이란 의미이고, 백파는 긍선(亘璇, 1767-1852)이란 승려의 법호이며, 대율사는 불교의 교리에 해박한 승려란 의미이고, 대기대용은 부처님의 마음[대기]과 가르침[대용]이란 의미예요(대기 · 대용에 대해선 다양한 해석이 있는데, 저는 유홍준 교수의 설명을 따랐어요.『완당평전2』참조). '화엄종주백파대율사지비'라고 해도 될 것에 굳이 '대기기용'이란 말을 덧붙인 것은 백파 스님이 불립문자(不立文字)를 강조하는 조사선(祖師禪)에 입각하여 교선(敎禪)의 문제를 다룬 학승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예요.

 

한때 추사 김정희 선생은 선(禪)의 구분을 놓고 백파 선사와 논쟁을 하면서 감정적인 언사로 선사를 반박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가 돌아간 후 흔쾌히 비문을 짓고 쓴 것을 보면 선사에 대한 존중의 념(念)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실제 비문 뒷면에도 이를 짐작케하는 대목이 나와요: "예전에 나는 백파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논변한 적이 있는데 이를 갖고 세상 사람들이 함부로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이에 대해서는 오직 백파와 나만이 아는 것이니 아무리 만 가지 방법으로 입이 닳게 말한다 해도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어찌하면 다시 스님을 일으켜 서로 마주앉아 한번 웃을 수 있으리요(昔 與白坡頗有往復辨難者 即與世人所妄議者大異 此個處惟坡與吾知之 雖萬般苦口説 人皆不解悟者 安得再起師來相對一笑也)."(번역 인용처: 유홍준,『완당평전2』)

 

이 비문 글씨는 추사 선생 만년의 최고 가는 해서 · 행서로 평가받아요(전면은 해서, 후면은 행서로 씌였어요). 그런데 현재 세워져 있는 비석은 아쉽게도 모조품이에요. 워낙 많은 이들이 탁본을 떠가다보니 비석에 손상이 생겨 모조품으로 대체해 놓은 거죠. 비록 모조품이긴 하나 추사체의 특징 중 하나인 '역(力)'을 충분히 느낄 수 있어요. 비석을 뚫을 듯한 강렬한 힘이 느껴져요. 언젠가 추사 선생의 '서결(書訣, 글씨쓰는 비결)'이란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요지는 '온 몸의 충실한 힘과 정기가 붓끝에 모아져 종이를 뚫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이 비문의 글씨는 바로 그 서결의 요지를 오롯이 표현하고 있는 듯 해요.

 

낯선 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華는 꽃이 피었다란 의미예요. 윗 부분의 艹(풀 초)로 뜻을 나타냈고, 아래 부분은 음[화]을 담당해요. '빛나다'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꽃(빛날) 화. 華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華麗(화려), 榮華(영화)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嚴은 본래 상부의 지시가 급하다란 의미예요. 급하면 큰소리로 전달해야 하기에  吅(부르짖을 훤)으로 의미를 나타냈어요. 吅 아래 부분은 음[엄]을 담당해요. 지금은 '엄하다'란 의미로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긴급한 지시일수록 상대가 잘 알아듣도록 엄하게 전달한다란 의미로요. 엄할 엄. 嚴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嚴命(엄명), 嚴親(엄친)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宗은 宀(집 면)과 示(神의 약자, 귀신 신)의 합자예요. 조상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란 의미예요. '마루'라는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가묘(마루) 종. 宗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宗社(종사), 宗家(종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坡는 土(흙 토)와 皮(가죽 피)의 합자예요. 고개 혹은 둑이란 뜻이에요. 土로 뜻을 나타냈어요. 皮는 음을 담당해요(피→파). 고개(둑) 파. 坡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坡岸(파안, 제방), 坡陀(파타, 경사지고 평탄하지 아니한 모양)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律은 본래 가락을 조율하는 악기라는 뜻이었어요. 행하다란 의미의 彳(걸을 척)으로 뜻을 나타냈어요. 聿은 음[률]을 담당해요. 법이라는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가락을 조율하듯 사람들의 행동을 조율하는 것이 법이란 의미로요. 가락(법) 률. 律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調律(조율), 法律(법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機는 베틀이란 의미예요. 木(나무 목)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幾(기미 기)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미세한 움직임이란 의미의 기미처럼 미세한 날줄과 씨줄을 이용하여 옷감을 짜는 기계가 베틀이란 의미로요. 기틀, 실마리 등의 의미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모두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베틀(기틀, 실마리) 기. 機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機械(기계), 機會(기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추사체의 가장 큰 특징은 '기괴(奇怪)'죠. 기괴의 특징은 파격(破格)인데, 재미있는 것은 추사 선생이 전통적인 서예 수련 과정을 무척 강조했다는 점이에요. 해서의 전범이라 할 당대의 구양순과 저수량 등의 글씨를 충분히 수련하고 이후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며 서법을 수련할 것과 많은 법첩들을 열람할 것을 강조하고 있거든요. 아울러 충분한 독서도 강조하고 있구요. 추사체의 기괴는 이른바 법고창신(法古創新, 옛 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지음)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거에요. 기본기를 등한시한 채 어설픈 파격을 창조입네 과시하려는 서예인들이 본받아야 할 점 아닌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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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사람들이 흔적, 좀 더 정확하게는 문자나 문자와 유사한 흔적을 남긴 역사는 무척 오래되었죠. 서양 미술사의 첫 장을 장식하는 알타미라나 라스코의 동굴 벽화도 일종의 문자와 유사한 흔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사람이 남긴 문자의 흔적사가 얼마나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죠. 더구나 알타미라나 라스코의 동굴 벽화가 상당히 정제된 표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 이전의 원형에 해당하는 것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상정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사람이 남긴 문자의 흔적사는 한층 더 위로 올라가겠죠.

 

사람들은 왜 문자의 흔적을 남긴 걸까요? 다방면의 답변이 나올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론, 영원성에 대한 동경이 가장 큰 요인 아닐까 싶어요.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은 거죠. 그 욕망중에서 가장 큰 욕망은 당연히 영원히 살고 싶은 거겠죠. 비록 자신의 육신이 사라진다해도 문자로 남긴 흔적은 영원히 살아 자신의 삶을 대체한다고 믿는(믿고 싶은) 그런 불멸에 대한 욕망이 문자의 흔적을 남기게 한 것 같아요. 비록 그것이 역사에 발자국을 남긴 이의 흔적이 아니라 할지라도 말이죠.

 

사진은 정와(靜窩) 김인중(金仁中) 경암(敬庵) 김노수(金魯銖)라고 읽어요. 고창 선운사의 용문굴에 새겨진 흔적이에요. 『한국인명대사전』(신구문화사)과 『동양학대사전』(경인문화사)을 찾아 봤지만 이름이 올라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리 유명한 분의 성명은 아닌듯 싶어요. 두 사람은 왜 용문굴에 자신들의 호와 이름을 새긴 걸까요? 그건 앞서 말한대로 영원성에 대한 동경이 가장 큰 요인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바로 저 조용필의 노래 '킬로만자로의 표범' 한 대목처럼 가뭇없이 사라지는 삶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은 흔적을 남기는 것 밖에 없다는 욕망에서 말이죠. 비록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지만, 두 분은 꽤 오랫동안 그 욕망을 충족시킨 것 같고 시킬 수 있을 것 같아요.

 

낯선 한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魯는 日(白의 변형, 나타낼 백)과 魚(물고기 어)의 합자예요. 노둔하다(어리석다)란 의미예요. 어리석은 이는 말과 행동으로 그 어리석음을 드러낸다는 의미로 日을 가지고 의미를 나타냈어요. 魚는 음을 담당해요(어→노). 노둔할 노. 나라 이름으로도 사용해요. 나라이름 노. 魯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魯鈍(노둔), 魯論語(노논어.『논어』초기본 중의 하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銖는 金(쇠 금)과 朱(붉을 주)의 합자예요. 중량 이름이에요. 흔히 양(兩)의 1/24을 가리키는 무게라고 하는데 일정한 정설은 없어요. 다만 극소의 무게를 나타내는 단위라고 이해하고 있어요. 朱는 음을 담당해요(주→수). 銖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錙銖(치수), 銖分(수분, 세밀히 분석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靜은 靑(푸를 청)과 爭(다툴 쟁)의 합자예요. 본래 뜻은 '분명하게 살펴본다'였어요. 靑은 초목이 싹을 틔울 때의 색으로 그 빛깔이 선명하죠. 그래서 이 글자로 '분명하게 살펴본다'란 뜻을 표현했어요. 爭은 음을 담당하면서(쟁→정)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분명하게 살펴보려면 요란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로요. 靜은 주로 고요하다란 의미로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고요할 정. 靜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靜寂(정적), 靜中動(정중동)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窩는 穴(구멍 혈)과 咼(입비뚤어질 괘)의 합자예요. 움집이란 뜻이에요. 穴로 뜻을 표현했어요. 咼는 음을 담당하면서(괘→와)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움집은 출입구가 반듯하지 않다란 의미로요. 움집 와. 窩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窩家(와가, 도둑들의 소굴), 窩主(와주, 도둑들이 훔친 물건을 감추어 두는 곳)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구비문학이란 것이 있죠.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어 온 문학이란 뜻이죠. 여기서 구비란 말 그대로 입[口]에다 새긴 비석[碑]이란 뜻이죠. 구비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이면서 또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흔적 남기기 방법이에요. 비근한 예로 우리 부모님들의 삶은 대부분 구비로 그 흔적이 남죠. 갖가지 표기 방식이 발달한 현대에 여전히 가장 원시적인 방법이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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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딱~뚱~~…"

"……(뭔 소리여?)"

"으흠, 산을 품었구먼!"

 

지음(知音, 소리를 이해함. 상대방을 이해하다란 의미)이란 고사성어를 탄생시킨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 거문고의 달인인 백아가 산을 마음에 두고 거문고를 연주하면 종자기는 여지없이 그 마음에 둔 산을 바로 알아냈고, 물을 마음에 두고 연주하면 또한 여지없이 그 마음을 알아냈다고 하죠. 종자기 사후 백아는 자신의 가락을 이해해 줄 사람이 없다며 더 이상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았다고 하죠.

 

"여인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하고,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는 말이 있죠. 사람이 얼마나 자신에 대한 이해를 갈구하는 존재인지를 극명하게 나타내준 말이라고 할 거예요. 백아와 종자기의 관계는 그 한 사례가 되겠죠? 평론가란 존재는 창작인에 비했을 때 분명 한 격 떨어지는 존재이지만, 정작 창작물의 평가를 통해 창작인의 명줄을 쥐고 있는 것은 평론가란 점을 생각할 때, 결코 홀대할 수 없는 존재예요. "세상에 천리마는 항상 있지만, 천리마를 알아볼 수 있는 백락(伯樂, 말 감정으로 뛰어난 인물)은 그렇지 않다."는 한유(韓愈)의 말은 평론가의 위상을 적실하게 나타낸 언급이에요.

 

그림에서, 특히 문인화에서, 화제는 흡사 평론가의 존재 같아요. 그림 그린 이의 화의(畵意)를 적실하게 드러낸다면 그림 그린 이에게 있어 그것은 종자기의 존재가 되어 창작의 환희를 안겨줄 거예요. 제 3자의 감상에도 일정 부분 기여를 할 테구요. 그런데,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그 화제는 옥상옥(屋上屋), 그야말로 군더더기가 되어 작품 그 자체의 가치는 물론이고 그림 그린 이의 창작욕을 퇴보시킬 거예요. 제 3자의 감상에도 여지없이 방해를 줄 테구요.

 

사진은 낙안읍성 옆에 있는 '뿌리깊은 나무 박물관' 한창기 컬렉션에서 찍은 거예요. 선생이 받은 선물이라고 하더군요. 선생은, 잘 알려진 것처럼, 하층 서민의 문화를 다룬 '뿌리깊은 나무'란 잡지의 발행인이셨죠. 한국에서 가장 영어를 잘하는 사람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았던, 하여 누구보다도 미국(서양)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었던 분이 어찌보면 그와 정반대되는 우리 문화 그것도 양반 사대부 문화보다는 하층 서민들의 문화를 담아내는 잡지를 펴낸 것은 참 아이러니했다고 아니할 수 없어요.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듯도 싶어요. 극과 극은 통한다고, 미국(서양) 문화의 본질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더욱 소중해지는 것이 우리 문화란 생각이 들고, 그 문화 중에서도 가장 원형질을 이루는 것은 민중의 문화라는 생각을 하게된 것 아닌가 싶은 거죠. 한창기 컬렉션에는 선생이 모은 소박한(?) 물건들이 전시돼 있더군요. 사진의 부채는 사실 대단한 물건이 아니지만 다른 소박한 물건들에 비교하면 외려 고급 물건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화제를 읽어 볼까요? "곡구소판교 산중고초각 일진황혼우 송향만허락(谷口小板橋 山中孤草閣 一陣黃昏雨 松香滿墟落)"이라고 읽어요. "골짜기 입구 작은 다리 건너니/ 산중에 외로운 초가 한 채/ 황혼녘 한바탕 비 내리니/ 소나무 향기 빈 골짝에 가득"이라고 풀이해요. 낙관은 "방매화도인필의 제구작이구 노안백련(傍梅花道人筆意 題舊作俚句 老顔白蓮)"이라고 읽어요. "매화도인의 그림 뜻에 부쳐, 전에 지었던 보잘 것 없는 시구로 화제(畵題)하다. 노안 백련(시를 짓고 쓴 이의 아호)"이라고 풀이해요.

 

이 화제는 화의를 살렸을까요? 죽였을까요? 그저 그럴까요? (사진으로는 명확하게 보이지 않지만, 실물을 본 제 입장에서는) 감히 말하건데, 그저 그런 것 같아요. 화제의 내용에 어울리는 내용이 그림으로 나타나 있거든요. 그런데 화제가 그림을 살리려면 그림 그린 이의 '신기(神氣)'를 드러내야 하죠. 아쉽게도 이 화제는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한 것 같아요. 선생은 이 화제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요. 신기한 것, 특별한 것에 크게 관심두지 않았던 선생이고 보면 이런 생각을 하시지 않았을까 싶어요: "음, 되얐어. 그림의 모습을 잘 표현했구먼. 그라문 되얐지, 뭐. 안 그런가?" (선생은 전라도 분이셨으니 편한 자리나 홀로 생각할 때는 전라도 말투를 쓰셨을 것 같아 흉내를….)

 

낯선 한자를 서너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板은 木(나무 목)과 反(반대할 반)의 합자예요, 널조각이란 의미예요. 木으로 의미를 나타냈어요. 反은 음을 담당하면서(반→판)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널조각은 원판을 반으로 쪼갠 한 쪽이기에 이 한 쪽은 다른 한 쪽과 반대 쪽이 된다는 의미로요. 널조각 판. 板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看板(간판), 板刻(판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橋는 木(나무 목)과 喬(높을 교)의 합자예요. 물 위를 걸어 다닐 수 있도록 물 위에 높게 설치한 목재 구조물이란 의미예요. 다리 교. 橋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鐵橋(철교), 橋梁(교량)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陣은 본래 車(陳의 축약 변형, 베풀 진)과 攴(칠 복)의 합자였어요. 진을 친다는 의미예요. 무질서한 군사들을 데리고 진을 치려면 강제적인 수단이 필요하기에, 이 뜻을 담은  攴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車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진은 늘어선 형태란 의미로요. 진칠 진. 陣은 '한바탕'이란 의미로도 사용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진을 칠 때의 어수선한 상황을 나타낸 의미로요. 한바탕 진. 陣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背水陣(배수진), 陣頭(진두)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墟는 土(흙 토)와 虛(빌 허)의 합자예요. 언덕 혹은 터란 뜻이에요. 土로 뜻을 나타냈어요. 虛는 음을 담당해요. 언덕(터) 허. 墟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廢墟(폐허), 墟囿(허유, 퇴폐한 옛 동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傍은 人(사람 인)과 旁(곁 방)의 합자예요. 가까운 곳,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이란 의미예요. 곁 방. 의거하다란 뜻으로도 사용해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의거할 방. 傍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傍觀(방관), 傍門戶飛(방문호비, 남에게 기대어 출세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俚는 人(사람 인)과 里(마을 리)의 합자예요. 타인에게 의지한다란 의미예요. 人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里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땅과 사람이 있는 마을에 의지해 살아가듯 타인에게 의지한다는 의미로요. 의지할 리. 비속하다란 의미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타인에게 의지해 살다보면 떳떳지 못하고 비루(속)하게 된다는 의미로요. 속될 리. 俚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俚言(이언, 속된 말), 俚淺(이천, 속되고 천박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시중유화 화중유시(詩中有畵 畵中有詩)'란 말이 있죠. '시 가운데 그림이 있고, 그림 가운데 시가 있다'란 뜻이에요. 소식이 왕유의 시와 그림을 평가한 말인데, 온축된 가운데 무궁한 의취를 풀어낼 수 있는 시와 그림이 최고라는 말로, 문인시화의 최고 경지를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죠. 이 말대로라면 문인화의 '화제'는 어찌보면 군더더기란 생각이 들어요. 자칫하면 무궁한 화의를 방해할 '우(愚)'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앞서 말한대로, 그림 그린 이의 신기를 드러낼 수 있다면 화룡점정의 '현(賢)'을 발휘할 수도 있겠죠. 화제는 이런 양 극단의 중간에서 줄타기를 하는 묘한 요소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담 둘. 해서를 제외한 여타의 글자체에 익숙치 못해 조금이라도 흘려 쓴 글씨를 만나면 해석하기가 어려워요. 위 화제도 마찬가지였어요(비교적 흘려 쓴 글씨가 적음에도). 할수없이 네이버 지식in의 '임정거사'님 도움을 받았는데, 이 분의 열의와 정성은 늘 저를 감동시켜요. 묻는 즉시 답변을 주시고, 본인이 생각하기에 미흡했다 싶은 답변은 요청이 없어도 추가 답변까지 해주시거든요. 이 자리를 빌어, 임정거사님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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