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흠, 그러시구나 …."

 

아내의 병실을 찾아 온 로봇 수술 코디네이터. 로봇 수술을 택해서 고맙다며 수술 경과는 어떤지 어떻게 로봇 수술을 택하게 됐는지 등을 물었어요. 깔끔한 마스크에 단정한 옷차림의 코디네이터는 대화의 법칙 - 공감 표현과 긍정 리액션 - 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었어요. 대화는 순탄하게 진행됐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어요. '얼른 마무리를 하고 가줬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자꾸 피어 오르더군요.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인간관계 또한 복잡해져 사람을 대하는 여러 방법들이 횡행하고 있어요. 대화법만 해도 여러가지가 있지요. 그런데 그런 방법들 바탕에 진심이 깔려있지 않으면 제 아무리 좋은 방법도 무의미하지 않나 싶어요. 상대가 신뢰하지 않으니까요. 상대가 나를 진심으로 대하는지 위선으로 대하는지는 대화를 해보면 알 수 있지요. 로봇 수술 코디네이터를 불편하게 여긴 건 그의 말에서 진솔함을 느끼기 어려웠기 때문이에요. 건조한 사무적 친절만을 느꼈던 거지요. 이런 친절 보다는 차라리 솔직함이 묻어나는 불친절을 받는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해봤어요.

 

사진은 진수무향(眞水無香)이라고 읽어요. 참물은 향기가 없다, 란 뜻이에요. 가식없는 소박함이야말로 참된 것이며 수식과 번화함은 거짓된 것이다, 란 의미지요. 소나무 전지와 소독을 해줬던 정원관리사 분의 명함 뒷 면에 있던 글귀예요. 명함에 새기는 글귀는 그 자신의 가치관을 반영하지요. 이 정원관리사 분은 거의 진수무향에 가까운 분이에요. 투박한 말과 행동은 당연지사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신뢰가 가요.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지와 소독비가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 말 안했어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싶었던 거지요.

 

 

그런데 어제 이 분이 화분을 두 개 보내 왔어요. 대금이 좀 비싸긴 했나봐요. 미안해서 보낸 것으로 생각되더군요. 이 역시 그다운 행동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眞과 香 두 자만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眞은 匕(化의 변형, 화할 화)와 目(눈 목)과 ㄴ(隱의 옛 글자, 숨을 은)과 八(기초의 의미로 쓴 글자)의 합자예요. 눈에 보이는 기본적인 모습을 변화시켜 하늘로 숨어버린 사람이란 의미예요. 신선이란 의미예요. 신선을 진인(眞人)이라고도 하지요, 주로 '참되다'란 의미로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육신의 거짓된 모습을 벗어 버려야 참된 사람[신선, 진인]이 된다는 의미로요. 참 진. 眞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眞珠(진주), 眞善美(진선미)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香은 禾(黍의 약자, 기장 서)와 曰(甘의 약자, 달 감)의 합자예요. 향기롭다란 의미예요. 오곡중 가장 향기가 좋은 禾로 뜻을 표현했고 甘으로 뜻을 보충했어요. 향기로운 것은 좋다는 의미로요(甘에는 좋다란 의미가 내포돼 있어요). 향기 향. 香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香水(향수), 芳香(방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진수무향을 대하니 문득 조재도 시인의 '아름다운 사람'이란 시가 생각 나더군요. 진솔한 사람 덕에 세상을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얻는다는 내용인데, 서로 잘 어울려요. 같이 한 번 읽어 보실까요?

 

 

공기같은 사람이 있다. / 편안히 숨쉴 땐 알지 못하다가 / 숨막혀 질식할 때 절실한 사람이 있다. / 나무그늘 같은 사람이 있다. / 그 그늘  아래 쉬고 있을 땐 모르다가 / 그가 떠난 후 / 그늘의 서늘함을 느끼게 하는 이가 있다. / 이런 이는 얼마 되지 않는다. / 매일 같이 만나고 부딪는 사람이지만 / 위안을 주고 편안함을 주는 / 아름다운 사람은 몇 안된다. / 세상은 이들에 의해 맑아진다. / 메마른 민둥산이 / 돌틈에 흐르는 물에 의해 윤택해지듯 / 잿빛 수평선이 / 띠처럼 걸린 노을에 아름다워지듯 / 이들이 세상을 사랑하기에 / 사람들은 세상을 덜 무서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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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게 통하라! 온통(溫通) 겨울 여행!"

"히든 제품과 맛! 온통(溫通) 희망해!"

"유스데이 가족 체험 활동 온동(溫通) FAM"

 

인터넷에서 '온통(溫通)'이란 단어로 검색해 발견한 문구들이에요. '있는대로 전부'의 의미를 갖는 '온통'과 '따뜻하게 통한다' 로 풀이할 수 있는'溫通(온통)'을 결합시켜 이중 의미를 표현하고 있어요. 사진의 '온통(溫通)'도 마찬가지예요. 음식 메뉴가 전부 고기 구이란 의미도 되고, 따뜻하게 정이 통하는 고기집이란 의미도 돼요. 재미난 표현이에요.

 

그런데 이 간판을 보면서 문득 정조(正祖, 1752-1800) 임금이 떠오르더군요. 그가 이 간판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싶었어요. 정조는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개혁 군주로 알려져 있죠. 개혁 군주인만큼 제반 문물을 새롭게 고쳤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의외의 개혁도 있어요. 문체반정(文體反正)이 그것이에요.

 

문체반정은 당시 유행하던 패사소품(稗史小品)류의 문체를 순정(醇正)한 고문체로 되돌리려 한 정책이에요. 이유는 패사소품류의 문체가 부박(浮薄)한 풍속을 조장한다고 보았기 때문이에요. 정조는 성리학적 사고, 흔히 말하는 규범적이고 격식에 맞는 것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한 임금이었어요. 이런 경향을 갖고 있었던만큼 문체도 재도(載道) 문학관에 입각한 장중한 문체를 선호했지요. 이런 그의 기준에 당시 유행하던 패사소품류의 문체는 다분히 경박하고 산만하게 보일 수 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이는 시대의 기풍을 흐리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고 여겼고요. 성군(聖君)을 꿈꿨던 그에겐 당연히 바로잡아야할 개혁 과제였지요.

 

정조 임금의 문체반정을 보면, 개혁이란 그 방향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돼요. 새롭게 고침이 아니라 과거로의 회귀도 개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요. (이것은 개악이라고 해야 더 적당한 표현일까요?)

 

당시 유행하던 패사소품류의 문체는 변화한 시대상을 반영한 문체였어요. 중국에서 유입된 이 문체는 본디 인간 욕망을 긍정한 양명학의 강한 영향을 받은 문체예요. 해학적이고 우언적이며 구어나 비속어를 거리낌없이 사용한 점이나 생활에서 주 소재를 찾고 단문(短文)을 즐긴 것은 그런 영향 때문이지요. 비록 조선에서 양명학이 유행한 적은 없지만 시대의 조류상 조선에서도 인간 욕망을 긍정하는 기풍이 형성되고 있었어요. 그리고 시대의 변화에 예민한 촉수를 가진 문인들은 자연스럽게 이런 변화를 담아낼 수 있는 패사소품체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이구요. 정조 임금의 문체반정은 이를 막으려 했던 것이죠.

 

자, 이런 정조 임금이 저 '온통(溫通)'이란 표기를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요? 한글로 그냥 '온통'이라고 표기하던가 아니면 한자로 '溫通'이라고만 표기할 것이지 왜 음이 같다는 이유로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말을 함께 표기했냐고 따지지 않았을까요?

 

사진의 한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溫은 氵(水의 변형, 물 수)와 昷(어질 온)의 합자예요. 본래 물이름이에요. 물이름 온. 후에 따뜻하다란 의미가 추가되었어요. 동음을 빌미로 차용된 것이지요. 따뜻할 온. 溫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溫突(온돌), 溫水(온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通은 辶(걸을 착)과 甬(湧의 약자, 샘솟을 용)의 합자예요. 솟아오르듯이 거침없이 간다란 의미예요. 통할 통. 通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疏通(소통), 通過(통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위 사진의 표기를 보면서, 비록 유희적인 표현으로 한자를 사용했지만, 우리 의식 속에는 여전히 한자에 대한 관심과 존중 의식이 살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지 않다면 굳이 저런 표기를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엔 한자 문맹이 너무 많아요. 溫과 通의 뜻을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아요. 한자 문맹은 과도한 한글 전용 주장과 한자 교육 경시가 빚은 기형아라고 생각해요. 뒤늦게라도 바로 잡아야 더 이상 기형아가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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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가 몸통을 흔들 수 있다."

 

작은 움직임이 큰 변화를 이끌 수 있다, 는 의미로 사용하는 말이에요. 이재명 성남 시장이 즐겨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작은 시정(市政)의 변화가 큰 국정(國政)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뜻으로요. 자신의 개혁 의지와 성과에 대한 자신감을 표현했다고 할 거예요. 긍정적 의미로 사용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 말은 부정적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어요. 작은 실수가 큰 낭패를 불러올 수 있다는 의미로요. 작은 부주의가 부른 대형 참사가 이 경우에 해당 될 거예요.

 

사진은 순천 시립 '뿌리 깊은 나무 박물관' 안에 있는 한옥의 주련과 그 해설판이에요. 뿌리 깊은 나무 박물관은 잡지 '뿌리 깊은 나무'의 발행인이었던 한창기(1936-1997)씨의 소장품을 기증받아 세운 박물관이에요. 한창기 씨는 평소 한옥을 애호했는데 구례읍 산성리에 있는 김무규(1908-1994) 씨의 한옥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해요. 순천시에서는 뿌리 깊은 나무 박물관을 지으면서 김무규 씨의 한옥을 사들여 이곳에 옮겨 놓았어요. 평소 한옥을 애호했던 한창기 씨의 뜻을 기림과 동시에 그가 혹호했던 건물을 박물관 옆에 놓아, 비록 사후일 망정, 그의 마음을 기쁘게 해준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뜻깊은 건물 앞에 세워진 주련 해설판이 건물의 가치와 의미를 일순간에 퇴색시켜 버리더군요. 꼬리가 몸통을 흔든 격이에요. 주련의 내용 중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 볼까요?

 

丹心縣日月(단심현일월)    일편단심은 영원하고  

忠孝可傳家(충효가전가)    충효는 가문에 전하고

文章思報國(문장사보국)    학문으로 국가에 보답하고

大義在春秋(대의재춘추)    대의는 자연에 있다

 

첫 구의 縣(고을 현)은 懸(매달 현)으로 고쳐야 해요. 縣과 懸은 비록 상통하는 글자이긴 하지만 한옥의 주련에 懸으로 표기되어 있으니 해설판에도 懸으로 표기하는게 관람객에게 혼동을 주지 않을 거예요. 해석도 "단심은 일월과 같이 영원하니"로 고치는게 나아요. 둘째 구의 해석도 "충효를 가훈으로 전하네"로 고치는게 나아요. 세째 구의 해석도 "문장은 나라의 은혜에 보답할 걸 생각하나니"로 고치는게 나아요. 네째 구의 해석은 "대의의 정신은 춘추(春秋, 공자가 편찬했다고 전하는 역사서. 정론직필(正論直筆)의 상징)에 있도다"로 바로 잡아야 해요. 다시 정리해 볼까요?

 

丹心懸日月(단심현일월)    단심은 일월과 같이 영원하니  

忠孝可傳家(충효가전가)    충효를 가훈으로 전하네

文章思報國(문장사보국)    문장은 나라의 은혜에 보답할 걸 생각하나니

大義在春秋(대의재춘추)    대의의 정신은 춘추에 있도다

 

해설판의 주련은 한 구 한 구를 독립된 구로 풀이했으나, 주련은 성격 상 두 구 혹은 네 구를 연결지어 해석하기에 위와 같이 연결지어 해석했어요. 위 주련 해설판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춘추'에 대한 풀이예요. 약간의 주의만 기울였어도 '자연'이라는 황당한 풀이는 하지 않았을텐데…. 전체적으로 너무 무성의한 해설이라고 아니할 수 없어요. 만약 김무규 씨나 한창기 씨가 생전에 이 해설판을 봤다면 필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을 거예요.

 

낯선 한자를 두어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懸은 心(마음 심)과 縣(고을 현)의 합자예요. 마음이 윗 사람에게 매여있다는 뜻이에요. 心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縣은 음을 담당해요. 매달 현. 懸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懸賞金(현상금), 懸案(현안, 해결이 안되어 걸려있는 안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章은 音(소리 음)과 十(열 십)의 합자예요. 하나의 곡[音]이 완결됐다[十], 란 뜻이에요. 악장 장. 辛(매울 신)과 日의 결합으로 보기도 해요. 辛은 본래 죄수들에게 묵형을 행할 때 사용하던 바늘로, 묵형을 받은 죄수란 의미예요. 日은 묶음을 표시한 것으로, 죄수를 결박했다는 의미예요. 합쳐서, 죄지은 자를 구속할 수 있는 '법'이란 의미로 사용해요. 법 장. 후에 '글'이란 의미로도 사용하게 됐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완결된 곡처럼 잘 지어진 글, 혹은 죄수를 벌할 수 있는 법조문처럼 내용이 세밀한 글이란 의미로요. 위 시에서는 '글'이란 의미로 사용됐지요. 글 장. 章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樂章(악장), 憲章(헌장), 文章(문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在는 土(흙 토)와 才(재주 재)의 합자예요. 존재한다, 란 뜻이에요. 土로 뜻을 표현했어요. 존재하는 것들은 땅 위에 있다, 란 의미로요. 才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才는 본래 땅에서 싹이 트는 모양을 표현한 거예요. 싹은 땅에 의지해 존재한다, 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해주고 있어요. 있을 재. 在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存在(존재), 現在(현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위 주련이 있는 한옥의 전경(前景)이에요(아래 사진). 한창기 씨가 한옥에 관심을 기울이던 시절은 우리 것을 천시하고 외래 것을 추종하던 시기예요. 그의 한옥 사랑은 그의 시대와 연관지어야 그 의미가 드러나지요. 한창기 씨의 한옥 애호를 시대와 동떨어진 단순한 골동 취미로 평가한다면, 그건 대단한 실례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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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 2018-04-02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찔레꽃님의 해박하고 정확한 한시해석, 경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이 초읽기에 들어갔죠? 검찰 수사에 의하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300억이 넘는 돈을 비자금으로 사용했고, 그의 소유였던 영포빌딩은 다스의 비자금과 각종 불법 자금의 저수지였다더군요. 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서 혐의 대부분을 부인했다죠? 인정한 정도는 처 김윤옥 씨의 국정원 특수 활동비 10만 달러 수수 정도라는데, 이마저도 용처를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검찰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 영장을 청구했는데, 검찰의 수사를 모두 부인하는 사람이니, 검찰로선 당연히 구속 영장을 청구할 수 밖에 없었을 거에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위 사실은 이젠 공공연한 사실인데, 본인 혼자만 부인하고 있어요.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토록 자신의 비위 사실을 부인하게 만드는지 궁금해요. 전하는 말에 의하면 비위 사실을 하나라도 인정하는 순간 모든 비위가 다 드러나기에 부인으로 일관하는 거라고 하더군요. 연쇄고리처럼 연결돼있기 때문이라는 거죠.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앞으로도 계속 자신의 비위 사실을 부정할 것 같아요. 설령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형을 살더라도 말이죠.

 

사진은 수도선부(水到船浮)라고 읽어요. 물이 차오르면 배는 뜨기 마련이다, 란 뜻이에요.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의 수사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발표할 때 함께 찍혔던 사진이에요. 그런데 이 사진이 언론에 공개됐을 때 본뜻과는 다르게 해석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어요. 이 글의 원 의미는 "꾸준히 노력하고 공을 들이면 자연스럽게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다."예요. 조급한 성과를 경계하고 진득한 노력을 강조하는 의미이죠. 그런데 이것을 이명박 대통령의 비위와 견줘서는 이렇게들 해석했어요. 그간 이명박 전 대통령 주변 인물들의 비위 조사가 성과를 내자 드디어 그 비위의 몸통인 이 전 대통령이 자연스럽게 부상하게 되었다! 

 

한 때 샐러리맨의 신화를 만들어냈던 그가 애호했다는 이 문구는 그 자신이 살아온 삶과 부합되는 바 있어요. 잘 알려진 것처럼 그는 적수공권의 일개 월급쟁이에서 현대건설 사장이라는 기업 최고의 자리에까지 올랐죠. 그 과정에서 그가 들인 공력이 어떠했으리라는 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어요. 마침내 사장 자리에 오르던 날 그는 이 말의 진가를 온몸으로 느꼈을 거에요. "그래, 수도선부지!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아!" 이렇게 외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이제 이 말은 그간 그가 숨겨온 비위의 적폐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는 증언이 되고 말았어요. 아울러 이로 인해  그에게 따라 붙었던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에도 고운 눈길만 보내기 어렵게 됐구요. 과연 그의 성공이 올바른 노력의 결과였을까, 라는 의구심을 갖게된 것이죠.

 

수도선부, 왠지 진득한 노력의 성과를 말하는 긍정적 면모보다는 성공의 추악한 이면(裏面)을 말해주는 부정적 면모로 오래 기억될 것 같아요.

 

낯선 한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到는 至(이를 지)와 刂(刀의 변형, 칼 도)의 합자예요. 이르다란 뜻이에요. 至로 뜻을 표현했어요. 刂는 음을 담당해요. 到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到達(도달), 到着(도착)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船은 舟(배 주)와 㕣(沿의 약자, 물따라 내려 갈 연)의 합자예요. 배라는 뜻이에요. 舟로 뜻을 표현했어요. 㕣은 음을 담당하면서(연→선)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물을 따라 내려가기 위해 만든 것이 배란 의미로요. 배 선. 船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船舶(선박), 艦船(함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浮는 氵(水의 변형, 물 수)와 孚(孵의 약자, 알깔 부)의 합자예요. 떠있다란 뜻이에요.  氵로 뜻을 표현했어요. 孚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새가 알을 부화시키기 위해 알 위에 올라 앉듯 물 위에 떠있다 ,란 의미로요. 뜰 부. 浮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浮流(부유), 浮草(부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인터넷을 찾아보니 수도선부는 주희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용한 문구로, 학문적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오랜 적공이 필요함을 강조한 것이라고 나오더군요. 후일 이 의미가 연역되어 세속적 성공과 관련한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해요.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적폐의 노출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게 될 것 같은데, 주희는 자신이 사용한 말의 의미 변천을 보면서 쓴 웃움을 지을 것 같아요. 허허, 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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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 2018-04-02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찔레꽃님의 유려한 문장과 해설! 늘 문장을 갈고 닦는 소설가로서도 감탄합니다.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디.
 

 

(사진 출처: http://blog.naver.com/cieunja/221116482507)

  

 

아무것도 따로 마련된 것이 없어도 된다. 산이면 산, 들이면 들, 물이면 물, 수풀이면 수풀,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로서 족하다. 머리 위에 보름달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고 세상은 충분히 아름답고 황홀하고 슬프고 유감한 것이다.”

 

김동리(1913-1995)의 수필보름달의 일부분이에요. 보름달의 원만구족(圓滿具足)한 풍모를 찬미하고 있어요. 흔히들 나도향(1902-1926)그믐달과 견줘, 나도향의 그믐달이 이인(異人)의 달이라면 김동리의 보름달은 범인(凡人)의 달이라고 말하곤 하죠세상엔 이인보다 범인이 많고 보면 그믐달보다는 보름달을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싶어요.

 

사진은 영월단(迎月壇)’이란 비석에 새겨진 시예요. 달맞이 장소란 의미의 영월단에서 맞이한 달은 어떤 달이었을까요?

   

梧桐霽夜有情來  오동제야유정래      구름 걷힌 밤 오동나무에 달(유정) 찾아오니

坍上層峦映雪梅  단상층만영설매      단상 위 산봉우리에 설중매 보이네

氷魄天然菱花鏡  영백천연능화경      밝기는 천연의 거울(능화경)이요

玉輪怳惚琉璃杯  옥륜황홀유리배      둥글기는 황홀한 유리잔이로다

輞川別業愊時在  망천별업핍시재      힘든 시절에 망천의 별장 있나니

赤壁淸遊取次開  적벽청유취차개      적벽의 맑은 놀이 다시 열었네

白首主翁閒飮坐  백수주옹한음좌      흰 머리 노옹은 한가로이 앉아 술 마시고

詩朋隨影共相回  시붕수영공상회      시 벗들은 그림자 따라 왔다 갔다

   

앞 네 구는 영월단에서 맞이한 달의 모습을, 뒤 네 구는 영월단에서 함께 한 이들의 모습을 그렸어요. 비석에 보면 원운(原韵)이란 제목이 있는데, 원래의 운이란 뜻이에요. 영월단에서 함께 했던 이들이 시를 지었는데, 그 때 사용한 운이 바로 이 시에서 사용한 운(, , , )이란 의미로 붙인 거예요.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는 제목은 아니예요.

   

시인은 시대와 불화를 겪고 있는 듯해요. 망천별업과 적벽청유가 이를 말해줘요. 망천별업은 왕유(王維, 699-761)가 정치적 시련기에 머물렀던 별장이고, 적벽청유는 소식(蘇軾, 1036-1101)이 유배 시절에 찾았던 적벽에서의 한유(閑遊)예요. 둘 다 시대와의 불화를 말해주는 것이지요. 시인은 이 둘을 통해 자신이 영월단에서 갖는 모임 역시 시대와의 불화에서 비롯된 것임을 드러냈어요. 아울러 왕유나 소식이 시대와의 불화에서 결코 좌절하지 않고 한층 더 성숙한 사람으로 거듭났듯 시인 자신도 그러겠노라는 의지를 드러냈고요.

   

시인이 바라본 달은, 시 내용으로 봤을 때, 보름달에 가까워요. 그런데 시인은 시대와 불화를 겪고 있으니 이인이라 할 만 해요. 그렇다면 그믐달을 맞이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텐데, 왜 그믐달을 맞지 않고 범인의 달이라 할 보름달(에 가까운 달)을 맞았을까요? 그렇죠! 앞서 언급한대로 성숙을 지향코자 하는 의지 때문이지요. 시인이 맞이한 달은 범인의 달이면서 범인의 달이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낯선 한자를 좀 자세히 살펴볼까요?

 

(비 우)(가지런할 제)의 합자예요. 비나 눈이 그쳤다, 란 뜻이에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는 쌀이나 보리 이삭이 패어 전체적으로 키가 비슷비슷해진 모습을 나타낸 거예요. 이때가 되면 성장도 멈추죠. 이 의미로 비가 그쳤다란 의미를 보충하고 있어요. 개일 제.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霽月(제월, 갠 날의 달), 霽朝(제조, 비가 갠 맑은 아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흙 토)(붉을 단)의 합자예요. 무너지다, 란 뜻이에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해요(). 무너질 담.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坍墻(담장, 무너진 담장)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은 단(흙을 높이 쌓아 올려 위를 평평하게 만든 장소)이란 뜻으로도 사용해요((단 단)과 통용). 위 시에서는 이 뜻으로 사용됐어요. 이때는 음을 단으로 읽어요. 단 단. 이 경우 坍上(단상) 정도를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은 작은 봉우리가 연이어 있는 산이란 뜻이에요. (뫼 산)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뫼 만.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巒峰(만봉, 산봉우리), 巒岡(만강, 언덕. 작은 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흰 백)(귀신 귀)의 합자예요. 넋이란 뜻이에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해요.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魂魄(혼백), 氣魄(기백)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달빛이란 의미로도 사용해요. 위 시에서는 달빛이란 의미로 사용됐죠.

 

(풀 초)(의 약자, 능가할 릉)의 합자예요. 마름이라는 수초(水草)를 표현한 글자예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을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마름은 물 위로 꽃을 피운다는 의미로요. 마름 릉.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菱花(능화, 마름꽃. 거울의 별칭), 菱荷(능하, 마름과 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쇠 금)(의 약자, 지경 경)의 합자예요. 거울이란 뜻이에요. 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초기의 거울은 구리 종류를 사용했죠. 그래서 금속 종류를 나타내는 으로 거울이란 뜻을 나타낸 거예요.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나라와 나라 사이를 명확하게 구분 짓는 것이 지경이듯 대상을 명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거울이란 의미로요. 거울 경.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銅鏡(동경, 구리 거울), 顯微鏡(현미경)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수레 거)(다스릴 륜)의 합자예요. 바퀴란 뜻이에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수레바퀴가 잘 굴러 가려면 바퀴살이 고르게 잘 배치되어 있어야 한다, 란 의미로요. 바퀴 륜.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輪禍(윤화, 자동차 사고), 五輪(오륜, 올림픽)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옥과 흡사한 유리란 광물을 나타낸 글자예요. (의 약자, 구슬 옥)으로 뜻을 표현했도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유리 유.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琉璃窓(유리창), 琉璃甁(유리병)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실 사)(그물 망)의 합자예요. 그물이란 뜻이에요. 본래 만으로 그물이란 뜻을 표현했는데, 후에 가 추가되었어요. 그물 망.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網羅(망라), 投網(투망)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본래 종을 걸어 놓는 틀을 뜻하는 글자였어요. 위는 거는 부분, 중간과 아래는 지지대와 다리를 표현했어요. 후에 ''이란 뜻으로 전용됐는데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종을 거는 일을 한다, 란 의미로요. 일 업.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商業(상업), 職業(직업) 등을 들 수 있겠네요. 

 

(걸을 착)(떨어질 타)의 약자가 합쳐진 글자예요. 뒤따라간다는 뜻이에요. 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의 약자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듯 그같이 자연스럽게 뒤에서 앞을 따라간다는 의미로요. 따를 수.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隨筆(수필), 隨行(수행)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현대 수필 중에 윤오영(1907-1976)달밤이란 짤막한 수필이 있어요. 그런데 이 수필을 읽다 보면 왠지 위 시에서 미처 표현하지 못한 정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과연 그런지, 한 번 읽어 보시겠어요?

 

  

내가 잠시 낙향(落鄕)해서 있었을 때 일. 어느 날 밤이었다. 달이 몹시 밝았다. 서울서 이사온 웃마을 김군을 찾아 갔다. 대문은 깊이 잠겨 있고 주위는 고요했다. 나는 밖에서 혼자 머뭇거리다가 대문을 흔들지 않고 그대로 돌아섰다.

 

맞은 편 집 사랑 툇마루엔 웬 노인이 한 분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달을 보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그리고 옮겼다. 그는 내가 가까이 가도 별관심을 보이지 아니했다. “좀 쉬어 가겠습니다.” 하며 걸터앉았다. 그는 이웃 사람이 아닌 것을 알자, “아랫마을서 오셨소?” 하고 물었다.

 

, 달이 하도 밝기에 ......”

! 참 밝소.” 허연 수염을 쓰다듬었다. 두 사람은 각각 말이 없었다. 푸른 하늘은 먼 하늘에 덮여 있고, 뜰은 달빛에 잠겨 있었다. 노인이 방으로 들어가더니, 안으로 통한 문 소리가 나고 얼마 후에 다시 문소리가 들리더니, 노인은 방에서 상을 들고 나왔다. 소반에는 무청김치 한 그릇, 막걸리 두 사발이 놓여 있었다.

 

마침 잘 됐소. 농주(農酒) 두 사발이 남았더니.......”하고 권하며, 스스로 한 사발을 쭉 들이켰다. 나는 그런 큰 사발의 술을 마셔 본 적이 일찍이 없었지만 그 노인이 마시는 바람에 따라 마셔 버렸다.

 

이윽고 살펴 가우.”하고 노인의 인사를 들으며 내려오다 돌아보니, 노인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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