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흠, 그러시구나 …."

 

아내의 병실을 찾아 온 로봇 수술 코디네이터. 로봇 수술을 택해서 고맙다며 수술 경과는 어떤지 어떻게 로봇 수술을 택하게 됐는지 등을 물었어요. 깔끔한 마스크에 단정한 옷차림의 코디네이터는 대화의 법칙 - 공감 표현과 긍정 리액션 - 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었어요. 대화는 순탄하게 진행됐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어요. '얼른 마무리를 하고 가줬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자꾸 피어 오르더군요.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인간관계 또한 복잡해져 사람을 대하는 여러 방법들이 횡행하고 있어요. 대화법만 해도 여러가지가 있지요. 그런데 그런 방법들 바탕에 진심이 깔려있지 않으면 제 아무리 좋은 방법도 무의미하지 않나 싶어요. 상대가 신뢰하지 않으니까요. 상대가 나를 진심으로 대하는지 위선으로 대하는지는 대화를 해보면 알 수 있지요. 로봇 수술 코디네이터를 불편하게 여긴 건 그의 말에서 진솔함을 느끼기 어려웠기 때문이에요. 건조한 사무적 친절만을 느꼈던 거지요. 이런 친절 보다는 차라리 솔직함이 묻어나는 불친절을 받는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해봤어요.

 

사진은 진수무향(眞水無香)이라고 읽어요. 참물은 향기가 없다, 란 뜻이에요. 가식없는 소박함이야말로 참된 것이며 수식과 번화함은 거짓된 것이다, 란 의미지요. 소나무 전지와 소독을 해줬던 정원관리사 분의 명함 뒷 면에 있던 글귀예요. 명함에 새기는 글귀는 그 자신의 가치관을 반영하지요. 이 정원관리사 분은 거의 진수무향에 가까운 분이에요. 투박한 말과 행동은 당연지사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신뢰가 가요.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지와 소독비가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 말 안했어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싶었던 거지요.

 

 

그런데 어제 이 분이 화분을 두 개 보내 왔어요. 대금이 좀 비싸긴 했나봐요. 미안해서 보낸 것으로 생각되더군요. 이 역시 그다운 행동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眞과 香 두 자만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眞은 匕(化의 변형, 화할 화)와 目(눈 목)과 ㄴ(隱의 옛 글자, 숨을 은)과 八(기초의 의미로 쓴 글자)의 합자예요. 눈에 보이는 기본적인 모습을 변화시켜 하늘로 숨어버린 사람이란 의미예요. 신선이란 의미예요. 신선을 진인(眞人)이라고도 하지요, 주로 '참되다'란 의미로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육신의 거짓된 모습을 벗어 버려야 참된 사람[신선, 진인]이 된다는 의미로요. 참 진. 眞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眞珠(진주), 眞善美(진선미)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香은 禾(黍의 약자, 기장 서)와 曰(甘의 약자, 달 감)의 합자예요. 향기롭다란 의미예요. 오곡중 가장 향기가 좋은 禾로 뜻을 표현했고 甘으로 뜻을 보충했어요. 향기로운 것은 좋다는 의미로요(甘에는 좋다란 의미가 내포돼 있어요). 향기 향. 香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香水(향수), 芳香(방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진수무향을 대하니 문득 조재도 시인의 '아름다운 사람'이란 시가 생각 나더군요. 진솔한 사람 덕에 세상을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얻는다는 내용인데, 서로 잘 어울려요. 같이 한 번 읽어 보실까요?

 

 

공기같은 사람이 있다. / 편안히 숨쉴 땐 알지 못하다가 / 숨막혀 질식할 때 절실한 사람이 있다. / 나무그늘 같은 사람이 있다. / 그 그늘  아래 쉬고 있을 땐 모르다가 / 그가 떠난 후 / 그늘의 서늘함을 느끼게 하는 이가 있다. / 이런 이는 얼마 되지 않는다. / 매일 같이 만나고 부딪는 사람이지만 / 위안을 주고 편안함을 주는 / 아름다운 사람은 몇 안된다. / 세상은 이들에 의해 맑아진다. / 메마른 민둥산이 / 돌틈에 흐르는 물에 의해 윤택해지듯 / 잿빛 수평선이 / 띠처럼 걸린 노을에 아름다워지듯 / 이들이 세상을 사랑하기에 / 사람들은 세상을 덜 무서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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