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게 통하라! 온통(溫通) 겨울 여행!"

"히든 제품과 맛! 온통(溫通) 희망해!"

"유스데이 가족 체험 활동 온동(溫通) FAM"

 

인터넷에서 '온통(溫通)'이란 단어로 검색해 발견한 문구들이에요. '있는대로 전부'의 의미를 갖는 '온통'과 '따뜻하게 통한다' 로 풀이할 수 있는'溫通(온통)'을 결합시켜 이중 의미를 표현하고 있어요. 사진의 '온통(溫通)'도 마찬가지예요. 음식 메뉴가 전부 고기 구이란 의미도 되고, 따뜻하게 정이 통하는 고기집이란 의미도 돼요. 재미난 표현이에요.

 

그런데 이 간판을 보면서 문득 정조(正祖, 1752-1800) 임금이 떠오르더군요. 그가 이 간판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싶었어요. 정조는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개혁 군주로 알려져 있죠. 개혁 군주인만큼 제반 문물을 새롭게 고쳤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의외의 개혁도 있어요. 문체반정(文體反正)이 그것이에요.

 

문체반정은 당시 유행하던 패사소품(稗史小品)류의 문체를 순정(醇正)한 고문체로 되돌리려 한 정책이에요. 이유는 패사소품류의 문체가 부박(浮薄)한 풍속을 조장한다고 보았기 때문이에요. 정조는 성리학적 사고, 흔히 말하는 규범적이고 격식에 맞는 것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한 임금이었어요. 이런 경향을 갖고 있었던만큼 문체도 재도(載道) 문학관에 입각한 장중한 문체를 선호했지요. 이런 그의 기준에 당시 유행하던 패사소품류의 문체는 다분히 경박하고 산만하게 보일 수 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이는 시대의 기풍을 흐리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고 여겼고요. 성군(聖君)을 꿈꿨던 그에겐 당연히 바로잡아야할 개혁 과제였지요.

 

정조 임금의 문체반정을 보면, 개혁이란 그 방향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돼요. 새롭게 고침이 아니라 과거로의 회귀도 개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요. (이것은 개악이라고 해야 더 적당한 표현일까요?)

 

당시 유행하던 패사소품류의 문체는 변화한 시대상을 반영한 문체였어요. 중국에서 유입된 이 문체는 본디 인간 욕망을 긍정한 양명학의 강한 영향을 받은 문체예요. 해학적이고 우언적이며 구어나 비속어를 거리낌없이 사용한 점이나 생활에서 주 소재를 찾고 단문(短文)을 즐긴 것은 그런 영향 때문이지요. 비록 조선에서 양명학이 유행한 적은 없지만 시대의 조류상 조선에서도 인간 욕망을 긍정하는 기풍이 형성되고 있었어요. 그리고 시대의 변화에 예민한 촉수를 가진 문인들은 자연스럽게 이런 변화를 담아낼 수 있는 패사소품체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이구요. 정조 임금의 문체반정은 이를 막으려 했던 것이죠.

 

자, 이런 정조 임금이 저 '온통(溫通)'이란 표기를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요? 한글로 그냥 '온통'이라고 표기하던가 아니면 한자로 '溫通'이라고만 표기할 것이지 왜 음이 같다는 이유로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말을 함께 표기했냐고 따지지 않았을까요?

 

사진의 한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溫은 氵(水의 변형, 물 수)와 昷(어질 온)의 합자예요. 본래 물이름이에요. 물이름 온. 후에 따뜻하다란 의미가 추가되었어요. 동음을 빌미로 차용된 것이지요. 따뜻할 온. 溫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溫突(온돌), 溫水(온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通은 辶(걸을 착)과 甬(湧의 약자, 샘솟을 용)의 합자예요. 솟아오르듯이 거침없이 간다란 의미예요. 통할 통. 通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疏通(소통), 通過(통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위 사진의 표기를 보면서, 비록 유희적인 표현으로 한자를 사용했지만, 우리 의식 속에는 여전히 한자에 대한 관심과 존중 의식이 살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지 않다면 굳이 저런 표기를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엔 한자 문맹이 너무 많아요. 溫과 通의 뜻을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아요. 한자 문맹은 과도한 한글 전용 주장과 한자 교육 경시가 빚은 기형아라고 생각해요. 뒤늦게라도 바로 잡아야 더 이상 기형아가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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